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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46>
유희
많은 사람들이 잡혀갔다.솔개재 오동나무거리 교화소는 반동분자로 가득찼다. 연동 뻘바탕 가난뱅이 동네에서는 잡혀간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내 주변엔 그러나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문태 숙부가 반동부화분자(反動浮化分子) 즉 인민을 괴롭히는 깡패로 몰려 잡혀가 오동나
김지하 시인
2001.11.28 10:03: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45>
깃발
인민군 들어오던 날 아침 연동에서다.나는 친구들과 함께 다리뚝이 보이는 신작로에 나가 있었다. 누군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느그 아부지 온다’ 했다.바라보니 목포시내 방향의 길 저쪽에서 흰 와이셔츠에 검은 바지를 차려입은 아버지가 동네 청년들로 하여금 거대한
2001.11.27 10:09: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44>
불빛
그날 밤.높은 언덕위에 있던 우리집 토담너머로 머언 일로의 비녀산 아래 캄캄한 밤속을 천천히 움직이는 불빛이 있었다. 멈췄다 움직이고 또 멈췄다 천천히 다시 움직이고 불빛이 음산한 운명처럼 이쪽을 향하여 다가오고 있는 것을 우리는 담너머로 내내 지켜보고 있었다.
2001.11.26 10:02: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43>
개운동회
개운동회를 본적이 있는가?6월 26일이던가? 27일이던가?그 화창하던 날, 유달산 아래 한 숲속의 공터에서 보도연맹 주최로 열린 개 운동회를 잊을 수 없다.개들이 모두 다 각각 제 번호를 달고 ‘준비-탕!’ 하면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트랙을 돌며 뛰어 달리는 개운동회를
2001.11.23 10:05: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42>
우리집
아버지는 드디어 집을 짓기 시작했다. 우리집, 우리집, 간절한 소원이던 우리집. 평생 그 후로 가져본 적이 없는 단 한번뿐이었던 우리집.왕자회사와 영산강이 환히 내다보이는 산어덩이었다. 방 두 칸, 부엌 두 칸, 기역자 마루에 동남향(東南向)으로 아담한 일자 기와집.
2001.11.22 10:16: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41>
길
우리집 마당은 신작로.밤에 길에 나와 앉아 있으면 기이한 생각이 들곤했다. 왼쪽 저편은 후미끼리, 건널목 너머무수한 도시의 불빛, 오른쪽 곧게 뻗어간 길은 컴컴한 수돗거리를 지나 일로(一老)의 새카만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내가 앉아있는 나직한 고갯길은 빛과 어둠의
2001.11.21 09:53: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40>
빛나는 날들
군산동 제3 수원지의 눈부신 벚꽃구름. 동네 야유회였다. 그날 나의 삶은 빛나는 꽃잎과 꽃잎 사이 친척과 이웃들의 꽃피듯 함뿍 웃음담은 눈빛과 눈빛 사이에서 섬세하게 떨리는 티없이 맑고 화사하고 드높은 기쁨에 넘친 한 소절의 노래같은 것이었다. 맨발에 밟히는 꽃잎
2001.11.20 10:01: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39>
기러기 훨훨
아홉 살이 되었다. 3학년. 내겐 좋은 일만, 지금 기억하기에도 싱그레 웃음 배어날 그런 일만 거듭 있었다.궂은 일 뒤엔 반드시 좋은 일이, 더 궂은 세월 오기 전엔 으레 한 번쯤은 오붓한 시절이 있는 법인가. 아홉 살에서 열 살 초여름, 6․25동란 나기 직전 무렵까지
2001.11.19 10:03: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38>
오줌싸개
나는 분명 열 살까지 오줌싸개였다. 이상하고 재미난 꿈을 신나게 꾸다가 그만 싸버리고, 오줌이 마려운데도 잠을 깨기 싫어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그만 싸버리고, 짜게 먹고 물켰다고 싸고, 불장난했다고 싸고, 곤하다고 싸고.“또 쌌다. 또 쌌어!”‘또’라는 소리
2001.11.16 10:01: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37>
성
남자의 성(性)의 뿌리는 어머니에게 있다. 어머니의 희고 보드랍고 풍만한 젖가슴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의 마음의 여성은 희고 보드랍고 풍만할 것이므로 그래서 그의 마음 역시 희고 보드랍고 풍만할 수 있을 것이므로.내겐 기억이 없다.내가 기억하는 젖가
2001.11.15 10:0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