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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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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43>

개운동회

개운동회를 본적이 있는가?
6월 26일이던가? 27일이던가?
그 화창하던 날, 유달산 아래 한 숲속의 공터에서 보도연맹 주최로 열린 개 운동회를 잊을 수 없다.

개들이 모두 다 각각 제 번호를 달고 ‘준비-탕!’ 하면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트랙을 돌며 뛰어 달리는 개운동회를 잊을 수 없다. 본적 있는가?

모두들 박장대소를 하며, 이겨라! 이겨라! 응원들을 하며 야단 법석을 하던 화창한, 화창한 그날을 잊을 수 없다.

본능이었을까?
나는 그 요란한 속에서도 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을 내내 지켜보고 있었다. 시끄러운 소음속에서 아버지와 보도연맹 동료들은 한곳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무엇인가를 내내 수근대고 있었고 웬지 핼쓱하니 심각한 얼굴들이었다.

뉘엿뉘엿 해가 기울고 있었다.
아버지가 시켜준 국밥을 먹으면서 나는 갑자기 운동회가 중지되고 주최측 사람들이 흩어져 어디론가들 바삐 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거 묵고 집에 가거라 잉-’
한마디 남기고 아버지도 어디론가 바삐 가셨다.
아버지!

훗날,
아주 먼 훗날,
아버지는 그 뒷 얘기를 들려 주셨다. 그날 밤 보도연맹원들은 일제히 예비검속되어 목포 경찰서 유치장에 모두 입감되었다. 저 유명한 보도연맹사건의 시작이다. 그때 검속된 보도연맹원들은 본능적으로 죽음이 임박한 걸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목불인견의 아수라장!

그때 한 경찰간부가 와서 유치장 자물쇠를 덜커덩 따면서 큰 소리로
‘김맹모! 나와!’
그래서 아버지는 살아나셨다.
경찰은 기술자가 필요했고 아버지는 목포 제일의 기술자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기술이 아버지를 살린 것이다. 전기나 기계기술을 신화처럼 숭배하던 시절이다. 그 뒤로도 여러번 위험한 고비에서 기술은 아버지의 목숨을 살리는 효자 노릇을 다 했다.

보도연맹사건!
그날 밤, 그리고 이튿날 새벽.
연맹원들은 모두들 엘에스티라는 거대한 해군 수송선에 실려 한 바다에 나아갔다. 둘씩 짝지어 철사로 묶인 채, 무거운 돌을 달아 바다에 밀어넣어졌다. 밤바다에서의 대살륙! 아귀지옥이었다는 후문이다.

인공 치하에서 어느 날이던가, 나는 친구들과 영산강가 왕자회사 옆을 지나다가 둘이 함께 묶인 시체가 갯가에 밀린 것을 본적이 있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물에 퉁퉁 부은 위에 고기들이 파먹어 괴상하게 일그러진, 그야말로 기괴한 물건에 불과했다.

그 물건!
두고두고 잊히지 않던 그 물건이 보도연맹원들의 시체였음을 알게 된 것은 그러나 훗날 일이다.

‘바다에 송장이 꽉찼어!’
‘너 바다우는 소리 들어봤니?’
‘날개가 새빨갛고 눈이 새파란게 세 개가 달리고, 발은 열개야 열개! 노오란 발이 열개!’
‘밤에 하얀 파도속에서 기어나와 하늘로 날아가는 바다새 봤니?’
‘못봤어? 에이 이 병신! 병신! 병신!’

6.25 직전 해군사령부가 있던 다순구미에서 만난 이상한 서울 아이의 환영이 나를 그토록 괴롭힌 것도 역시 보도연맹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훗날의 일이었다. 아는 것이 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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