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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15>
사제단
내 발은 명동성당의 아침미사를 목표로 가고 있었다. 눈부신 아침, 창으로 흘러드는 햇빛과 조명에 빛나는 새하얀 미사. 그 미사는 만원이었다. 입구쪽에서 뒷전에 서서 바라본 성당 내부는, 그리고 미사는 참으로 숭고하고 장엄했다. 그러나 바로 그때 내 생전 처음으로 시
김지하 시인
2003.01.22 08:56: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14>
석방
나는 조금 들떠 있었다. 가라앉히지 않으면 실수할 것 같았다. 인사를 끝내고 재빨리 정릉(貞陵)에 있는 처가로 돌아갔다. 아내와 아기와 장모님과 아기의 고할매가 모두 잠들었다. 추운 겨울날 영등포감옥 앞에서 진종일 떨며 견뎠으니 지칠 만도 했다. 나는 전등 아래 오도
2003.01.21 09:03: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13>
징역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언가 나의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직결되는 것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았다. 그후 천주교 교리방(敎理房)에서 자고 제본(製本)공장에서 징역을 살 때 그 흔해빠진 종이로 스스로 만든 수첩에 그 환영을 그대로 써놓
2003.01.20 08:57: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12>
통방
혹간 가다 구치소 간부에게라도 걸리면 다시는 안 하겠다고 약속한 뒤 돌아서자마자 그 일을 가지고 또 통방! 그렇다. 통방으로 해가 떠서 통방으로 해가 지는 통방 징역이었다. 통방! 그것은 유신 시절의 메스컴이었던 '유비통신'(流蜚通信·유언비어를 그렇게 불렀
2003.01.18 10:19: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11>
군사재판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죽음을 이겼고 죽음을 스스로 선택함으로써 우리들, 이 집단의 영생을 얻은 것이다. 우리는 우리들 이 집단의 사슬에 묶인 가슴 속에서 비로소 타오르기 시작하는 참된 삶의 저 휘황한 불꽃을 감격에 차서 바라보고 있었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아니
2003.01.17 09:14: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10>
인혁당
어느날인가 출정하다 한 사람이 나에게 "김지하 씨지요" 하고 묻더군요."네, 그렇습니다만…" 하고 대답하자 "나 이수병이오" 하고 말합디다. "아하, 그 '만적론'을 쓰신 이수병 씨요?" "네." "어떻게 된 겁입니까." "정말 창피하군요. 이거 아무일도 나라 위해
2003.01.16 08:55: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09>
슬라이딩 태클
지주교님이 입국, 공항에서 연행되었다가 박정희의 특명으로 석방되었으나 며칠후 200여명의 원주교구 청년신도들과 함께 상경하여 성모병원에 입원한 뒤 병실에서 내외신(內外信) 기자회견을 열고 그 자리에서 양심선언을 하셨다고. 그 내용은 유신 철폐를 위한 학생시위 자
2003.01.15 09:04: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08>
제6국
1975 년 2월자로 된 '동아일보' 지상의 글 '고행(苦行) 1974년', 그러니까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고 사형선고, 무기감형되었다 10여개월만에 석방된 직후 기고한 이 글은 제 6국에서의 체험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2003.01.14 08:48: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07>
부두에서
그렇게 심한 기침 속에서 자장면 한 그릇을 마저 다 못먹고 출발하여 그 무렵에 운행되기 시작한 고속버스를 탔다. 호송하는 두 사람의 경관은 권총을 찼고 내 손의 수갑은 소매 속으로 감추어졌다. 그 경관이 호의를 베풀어 서비스했다. 고향의 인사였다. 그날 신문이었다.
2003.01.13 09:05:00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06>
홍도
목포의 사촌누이 집에 들렀던 게 화근이었다. 아니, 화근이라기보다 별로 두려워하지도 않았으니 반쯤은 이미 화를 자초한 셈이었다. 마음 약한 매형이 혹시 자기 가족에게 화가 미칠까 걱정해서 일찌감치 경찰에 신고해버린 것이다. 우리가 대흑산(大黑山)에 묵지 않고 바로
2003.01.11 08:5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