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2일 20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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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봉
pbpm@hanmail.net
이재봉 교수는 1983년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1994년 미국 하와이대학교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1996년부터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8년 현재 '남이랑북이랑' 공동대표, '통일경제포럼' 공동대표, '함석헌학회' 회장 등을 맡고 있습니다. 저서로 <두 눈으로 보는 북한>, <이재봉의 법정증언>, <문학과 예술 속의 반미> 등이 있습니다.
미국의 충실한 '용병'이었던 박정희
[베트남 전쟁] <3> 남한의 적극적 제안, 미국의 무리한 요구, 북한의 필사적 대응
4. 미국의 무리한 파병 요구와 남한의 지속적 파병 1964년 9월 남한의 제1차 베트남 파병이 이루어지고, 1964년 10월엔 중국이 핵실험에 성공했다. 이제는 미국이 먼저 공식적으로 한국의 파병을 요청했다. 1964년 12월 브라운 (Winthrop Brown) 주한미국대사가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존슨 대통령의 뜻이라며 공병이나 건설부대 또는 수송이나
이재봉 원광대학교 교수
박정희, 베트남 파병 간청하며 계엄령 선포한 이유?
[베트남 전쟁] <2> 남한의 적극적 제안, 미국의 무리한 요구, 북한의 필사적 대응
2. 1950~60년대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과 베트남 침략 미국은 1950년 소련과 중국이 동맹조약을 체결하자 동아시아 정책을 크게 바꾸었다. 1949년 중국에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소련에 대한 봉쇄를 강화하기 위해 중국을 승인하려 했지만, 중소동맹이 맺어지자 패전국 일본과의 동맹을 추진하며 소련에 이어 중국을 봉쇄하기 시작한 것이다. 1950년
제2의 한국전쟁이었던 바로 이 전쟁!
[베트남 전쟁] <1> 연재를 시작하며
1. 연재를 시작하며 2018년 7월 27일은 한국전쟁 정전협정 65주년 기념일이다. 한국전쟁을 완전히 끝내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멈추고 있는 상태가 두 세대 이상이나 흘렀다는 말이다. 다행히 4월 27일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올해 안에 전쟁 종식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로 합의했다. 남한과 북한 그리고 미국은 1950-53년 한반도에서만 싸
북한, 이제 미국에 푸에블로호 넘겨 줘라
[푸에블로호와 치욕적 북미협상] <4> 새로운 북미관계를 위하여
6. 푸에블로호 사건 이후에도 이어진 미국의 굴욕 앞에서 얘기했듯, 시체 1구를 포함한 푸에블로호 승무원 83명은 북한에 나포된 지 꼭 11개월 만인 1968년 12월 23일 풀려났다. 그들이 미국으로 돌아가자 해군은 청문회를 열어 2~3개월 동안 조사하고 함장과 정보수집 책임장교 그리고 항해사 등을 군법회의에 넘길 것을 요구했다. 다음과 같은 죄목이었다.
북한에 사과하지 않으려 했던 미국, 결국엔
[푸에블로호와 치욕적 북미협상] <3> 북한의 호통과 미국의 꼼수
3. 미국의 전방위 외교 1968년 1월 23일 푸에블로호가 나포되자 미국 국무부는 그날 모스크바 주재 미국대사관에 전보를 보냈다. 그로미코 (Andrei Gromyko) 소련 외상을 만나 미국 배와 승무원들이 빨리 풀려날 수 있도록 북한에 강력하게 항의하며 영향력을 행사해달라고 부탁하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모스크바를 방문 중이던 윌슨 (Harold Wil
트럼프 노벨상에 대해 '예언'을 해 보겠다
[기고] 북미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행보를 예측해본다면
6월 17일 전주고백교회 '6.15선언 기념 예배'에서 강연했다. 주어진 주제는 "북미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 목사님이 날 소개하며 '예언자'로 치켜세웠다. 2년 전 미국 대선 때부터 세계 평화를 위해 클린턴보다 트럼프가 당선되는 게 좋다고 주장해온 대로 맞아떨어졌다는 거다. 여기저기서 글과 강연을 통해 수없이 주장해온 터라 주변 사람들로부터 '족집게'
40년 전, 핵 없던 북한이 미국에게 했던 일은
[푸에블로호와 치욕적 북미협상] <2> 북한, 푸에블로호 나포한 이유
2. 북한의 푸에블로호 나포는 베트남을 돕기 위한 전략 1968년 1월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나포될 무렵 미국에겐 온갖 악재가 겹쳐 터지고 위기가 잇따르고 있었다. 이틀 전인 1월 21일엔 앞에 소개한 북한 무장침투조의 '청와대 습격' 뿐만 아니라, 북베트남 군대의 '케산 (Khe Sanh) 공습'이 시작됐다. 덴마크령 그린란드 (Greenland)의 미국
대동강의 푸에블로, 북미관계 70년의 키워드
[푸에블로호와 치욕적 북미협상] <1> 연재를 시작하며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푸에블로호와 북미협상에 관해 연재를 시작한다. 지난 4월 '한반도 문제와 미국의 개입'을 주제로 연재하기 시작하며 6월엔 1964년의 '6.3사태' 기념일을 맞아 "한일협정과 미국의 압력"을 다루겠다고 했지만, 트럼프와 김정은의 '세기적 회담'을 전후해 1968년의 치욕적 북미협상을 알아보는 게 더 의미 있을 것 같다.
5.16쿠데타, CIA의 '가장 성공적인' 해외 공작?
[한반도문제와 미국의 개입] 5.16쿠데타와 미국의 역할 (4)
5. 5.16은 중앙정보국 (CIA)의 '가장 성공적인 해외 공작' 앞에서 거듭 밝혔듯, 미국정부 외교문서집인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61-63, 제22권'엔 5.16 군사쿠데타를 앞두고 한 달이 넘는 기간의 기록이 통째로 빠져 있다. 쿠데타 모의 및 준비 기간이랄 수 있는 1961년 4월 12일부터 5
1년만에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장면
[한반도문제와 미국의 개입] 5.16쿠데타와 미국의 역할 (3)
4. 5.16쿠데타 발발과 미국의 대응 1961년 5월 16일 새벽 한국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자 매그루더 주한미군사령관은 그날 상황을 분석해 렘니처 (Lemnitzer) 합참의장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3시경 매그루더 사령관은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으로부터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장도영은 미군 헌병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