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4일 09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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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등급 하락 속에 벌어진 '기아 쟁탈전'
<손광식의 '1997 비망록'> (31) 국제금융계의 경보
7월24일 미국의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기아쇼크 등 한국의 불안정한 경제상태, 북한의 붕괴가능성 등을 고려해서 한국의 국책은행들을 주의대상으로 올려 놓았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무디스는 산업은행 주택은행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정부지분이 있는 4개 국책은행
손광식 언론인, 프레시안 고문
기아사태를 정치논리로 풀라 한 동아일보 사설
<손광식의 '1997 비망록'> (30) ‘국민정서’라는 해법
‘기아쇼크’가 경제적 충격파를 몰아온 직후 이번에는 휴전선에서 군사적 쇼크가 일어났다. 7월16일 오전 중동부전선 비무장지대(DMZ)내 군사분계선을 북한군 14명이 기관총과 소총을 동원하면서 침입한 사건이 발생했다. 북의 도발에 대해 아군측은 즉각 응사, 쌍방은 포까
한국 상공을 뒤덮기 시작한 공황 먹구름
<손광식의 '1997 비망록'> (29) ‘기아 쇼크’
7월10일 국가안전 기획부 회의실. 전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과 전 여광무역연합총회사 총사장 김덕흥의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날 황장엽이 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밝힌 내용은 이러했다. < 북한의 김정일체제의 출로는 없으며 있다면 오직 전쟁뿐이다. 꼭 한
'경제호전 착시' 속에 침몰한 국가신인도
<손광식의 '1997 비망록'> (28) 국가위험도는 곤두박질
부총리 강경식은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또한편의 금융개혁 시리즈를 발표했다. 당초 금개위가 소유한도를 10%까지 높이자고 했던 은행주식 소유한도를 백지화시키는 대신 5대 재벌그룹의 주주권 행사를 인정하며 은행 증권 보험 등을 지배하는 금융지주회사 설립을 허용키
'혼미의 법칙'에 빨려들어간 금융개혁
<손광식의 '1997 비망록'> (27) 찬반만 무성한 ‘금융 빅뱅’
6월의 둘째주부터 한보는 퇴장했다. 그 들끓던 한보사태의 공간에는 보습학원으로부터 빚어진 부정 비리가 교육방송 간부와 교육계로 번져나간 학원비리 사건, 대선주자들의 방송출연 경쟁, 돈봉투바람, 그리고 한총련 사건 등으로 분할 점거되었다. 그리고 현충일을 시작으
언론의 외면속에 던진 참여연대의 문제제기
<손광식의 '1997 비망록'> (26) 경제지표는 정상?
한보사태로 인한 불연속성기류속에 휘말렸던 경제는 조금씩 방향을 찾는 듯 했다. 한신공영이 부도를 내고 쓰러졌음에도 종합주가지수는 계속 오름세를 탔고 6월2일에는 총거래량이 8천4백여만주로 국내증시 사상 두 번째로 많은 물량이 거래됐다. 통상산업부가 발표한 5월중
무덤 속으로 들어간 한보사태의 진실
<손광식의 '1997 비망록'> (25) “저승에서나 봅시다”
외관상 여당권의 흐름은 모든 현안을 ‘찻잔 속의 태풍’으로 진정시키는 듯 보였다. 아마도 이날 회동에서 YS가 말을 아낀 것은 다음날로 예정된 ‘대통령 담화’를 통한 일대 정치적 반격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때문이 아닌가 보여졌다. 이른바 ‘난(亂)’ ‘치(治)’
'대쪽'을 '무쪽' 자르듯 해 버렸다?
<손광식의 '1997 비망록'> (24) YS의 두 가지 베팅
5월의 마지막 주로 들어서자 한보사태와 김현철 게이트는 표면적으로는 관심의 표적권으로부터 밀리는 듯 싶었다. 국민재판정으로부터 여.야의 정치전투장으로 이동하는 흐름이었다. 일대 시국의 조정국면으로 변하는 것일까. 언론들도 관심사항의 분화현상을 지면에 드러냈
검찰, '정태수 리스트' 33명중 24명에게 면죄부
<손광식의 '1997 비망록'> (23) 여당의 반격 '사정'
DJ의 부활을 재확인한 국민회의의 전당대회는 대통령후보와 총재경선에 나선 정대철과 김상현이 DJ의 손을 잡고 흔들자 크게 고양되었다. 대의원들은 각목과 돈봉투가 판을 치던 과거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신한국당은 “뻔한 시나리오가 아니냐”
김대중 조선일보주필, "이제 북한을 생각할 때"
<손광식의 '1997 비망록'> (22) 마감이냐, 시작이냐
피의자 김현철의 영장청구 혐의사실 어느 구석에도 한보와 관련된 범죄사실은 하나도 없었다. 한보사건의 몸통은 이제 미궁으로 들어가는 순간에 접어들었다. 사회적 재판이 일찌감치 피고로 점찍어 ‘기소’했던 김현철은 비록 총액 32억2천만원의 알선수재와 총액 33억3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