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2일 19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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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일 '평화 삼각형' 만들어야 미·중 영향력 극복 가능"
[인터뷰] 남기정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교수 ① 한반도 평화와 한일관계 개선은 함께 진행
2018년 손에 잡힐 듯했던 한반도 평화가 다시금 멀어져 가고 있다. 남북, 북미, 한일 관계 등이 모두 교착과 갈등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미국에서는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했고 한국에서는 강창일 신임 대사가 일본에 부임하면서 새로운 돌파구가 열릴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한일 관계가 주로 과거사 청산의 시각으로 조명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이재호 기자
'묘수' 없는 미·중 경쟁…'바이든 시대' 한국은?
[인터뷰 - 바이든 시대] ③ 현실 직시 외교전략, 한미동맹 재구성 필요
1월 20일(현지 시각) 바이든 정부가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정치적 이단아를 권좌에서 몰아낸 미국은 과연 이전과 같은 패권을 회복할 수 있을까? 미중관계는 어떻게 진전될 것이며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의 앞날은 어떻게 전개될까?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미국 전문가인 이혜정 중앙대학교 교수와 인터뷰를 통해 바이든 정부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이재호 기자(정리)
오바마의 실패가 트럼프를 낳았다
[인터뷰 - 바이든 시대] ② 미국, 백인우선주의가 문제다
1월 20일(현지 시각) 바이든 정부가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정치적 이단아를 권좌에서 몰아낸 미국은 과연 이전과 같은 패권을 회복할 수 있을까? 미중관계는 어떻게 진전될 것이며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의 앞날은 어떻게 전대될까?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미국 전문가인 이혜정 중앙대학교 교수와 인터뷰를 통해 바이든 정부
남북전쟁 이후 최대 분열, 바이든 '트럼프 유산' 극복할까?
[인터뷰- 바이든 시대] ① 분열된 미국, 패권 회복은 가능한가
1월 20일(현지 시각) 바이든 정부가 공식적으로 출범한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정치적 이단아를 권좌에서 몰아낸 미국은 과연 이전과 같은 패권을 회복할 수 있을까? 미중관계는 어떻게 진전될 것이며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의 앞날은 어떻게 전개될까?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미국 전문가인 이혜정 중앙대학교 교수와 인터뷰를 통해 바이든 정부
미국이 이란·이라크와 전쟁을 벌인 진짜 이유
[전쟁국가 미국·4강-⑤] 국제석유체제와 이란, 이라크
아람코 출범과 영미석유협정의 무산에서 분명해진 것은 국제 석유시장의 운영과 통제는 전적으로 석유카르텔의 몫이라는 점이다. 즉 미국이나 영국 정부의 직접 통제는 허용될 수 없으며, 정부 역할은 석유카르텔의 시장 지배를 위한 정치군사적 지원에 한정된다는 것이다. 특히 2차 대전 이후 미국 석유메이저와 정부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석유메이저는 첫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
석유가 미국을 지배했나, 미국이 석유를 지배했나?
[전쟁국가 미국·4강-④] 국제석유체제의 형성과 진화
이란의 석유 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놓고 이란과 영국이 갈등하는 가운데 미국 정보기관이 이란 정부를 전복시켰다. 이것이 모사데크 정권 제거의 본질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왜 미국은 다른 국가들 간의 경제 분쟁에 폭력적으로 개입한 것일까? 그 이유는 모사데크의 석유 국유화가 미-영 석유카르텔의 세계 석유 자원 지배에 대한 치명적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이란이 영
CIA 최초의 성공적 비밀공작...이란의 석유 국유화를 막아라
[전쟁국가 미국·4강-③] "세계를 지배하려면 에너지를 지배하라"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국은 군사력의 절대적 우위를 확보했다. 그 결과는 군사적 일방주의였다. 외교나 협상 대신 군사력에 의한 일방적 강제가 대외정책의 핵심 수단이 된 것이다. 그 첫 사례가 1953년 8월 중앙정보국(CIA)의 이란 모사데크 정권 전복이다. 이는 미국 최초의 비밀공작이었고, 이후 아이젠하워 행정부 8년 동안 48개 국가에서 170차례의 비밀공
"군산복합체가 미국의 민주주의를 침해하고 있다"
[전쟁국가 미국·4강-②] 워싱턴 룰의 형성과 지속
"미국은 미국인 대부분이 알고 있는 것보다, 혹은 그들이 알고 싶은 것보다 훨씬 빈번하게 해외에서 벌어진 폭력에 관여해 왔다, 때로는 공개된 군사배치이기도 했고 때로는 유엔이나 나토와의 공동작전이기도 했지만, 독자적이고 은밀한, '어두운' 작전인 경우도 많았다. 냉전 중의 소련, 냉전 후의 러시아가 그랬듯이 미국 역시 대리전이나 무기판매, 독재정권에 대한
'압도적 우위' 미국의 역설...베트남 속으로 빨려들어가다
[전쟁국가 미국·4강-①] 압도적 우위의 위험
한국전쟁은 냉전의 역사(1947-1989년)에서 첫 번째 중대한 변곡점이었다. 한국전쟁을 빌미로 한 대대적 재무장으로 미국의 군사력이 소련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전략 핵무기 부문에서 거의 절대적 우위를 확보했다. 소련에 대한 미 군사력의 압도적 우위는 대략 한국전쟁이 끝나는 1953년부터 미 지상군이 베트남전쟁에 투입되는 1965년까지 지속됐다
인류 역사 최강자 미국, '빨갱이 공포'를 내면화하다
[전쟁국가 미국·3강-⑨] 현존위험위원회(CPD)와 반공군사주의
공화당의 반격과 CPD의 대응 1951년 1월 5일 아이젠하워는 유럽연합군 최고사령관으로서 현지 실태 조사를 위해 유럽으로 떠난다. 같은 날 공화당 출신의 전 대통령 허버트 후버는 미군의 유럽 추가 파병은 "또 다른 한국전쟁을 초래"할 것이라며 나토 결성을 강력 반대한다. 후버는 공군과 해군력만으로 미국을 지킬 수 있다면서 유럽이 스스로를 지킬 의지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