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3일 2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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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대학살의 공모자다"
[김영종의 '잡설'·7]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축제를 본 소감 ①
<몽골리안 1만 년의 지혜>는 아시아에 살던 몽골리언들이 베링해협을 건너 기나긴 이동 끝에 신대륙에 정착한 이야기다. 그토록 오래된 이야기가 바로 엊그제 일처럼 느껴져 스스로도 놀라웠다. 구전 기록이라서 육성을 듣는 듯 생생한 느낌도 한몫했겠지만, 내 개인적
김영종 저술가
시대의 광대들…조용필과 장기하의 공통점은?
[김영종의 '잡설'·6] 산조 정신과 애니미즘 미학 ②
산조(散調)는 형성의 미학이다. 문자 그대로 흩어져 있는(散) 소리를 한데 모아 어울리게(調) 만든 음악이다. 19세기 말 전남 영암 사람 김창조가 산조의 틀을 만들었다. 당시 민중의 현장에 흩어져 있던 소리 가락(散調)을 대표하는 것은 시나위와 판소리의 가락이었다. 시
기독교, 빛의 이름으로 탄생한 '노예의 종교'
[김영종의 '잡설'·5] 산조 정신과 애니미즘 미학 ①
나는 엇모리장단을 '태양의 춤곡'이라 부른다. 엇모리장단을 들으면 거나하게 술에 취해 비틀비틀 춤추는 듯한 느낌인데, 영락없이 이글이글 타는 태양이 은하계를 중심으로 비틀거리며 자전과 공전을 하는 바로 그 모습이다.
나비족에서 '성기 관망파' 예술에 대한 반격을 보다
[김영종의 '잡설'·4] 성기 관망파의 예술
진리도 선도 상대적이지만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만큼은 절대적이다. 그것은 인간이 아름다움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태어났다. 요즘처럼 교육을 받아야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은 요컨대 문명의 형벌이다.
"죽은 예술 살리는 '소년 검객'이여 나오라"
[김영종의 '잡설'·3] 검객과 제관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에 "대장부는 부처님이나 조사 보기를 원수같이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나는 이렇게 고쳐 말하고 싶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오피니언 리더? 바로 그들의 말을 의심하라"
[김영종의 '잡설'·2] 거대 담론과 일상에 대한 오해 ②
과연 독자 여러분은 과거와 현재의 개념 중 어느 것이 마음에 드는지? 인류는 수백만 년 동안 선물로서의 일상을 살아왔다. 그리고 사람과 물건을 구별하지 않았다. 물건을 효용과 이익의 개념으로만 본 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물건에는 생명이 숨
"기생충에 감염된 개미보다 비참한 현대인이여!"
[김영종의 '잡설'·1] '잡설'의 연재를 시작하며
자연 다큐멘터리 <파브르 곤충기>를 보면, 양의 간으로 들어가기 위해 개미의 뇌를 장악한 간디스토마 기생충 이야기가 나온다. 그 영상물을 본 지 벌써 5년쯤 지났지만, 현대인의 처지가 바로 저거라고 생각하며 소름끼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