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행정중심복합도시가 관제(官制) 기업도시로 바뀌었다"며 "심각한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세종시 수정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너무 큰 변화를 수정안에 담아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기본 가치 왜곡과 훼손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이들 문제로 인해 행정도시 논란은 이미 심각해진 사회적 갈등 비용 초래, 균형발전 전략의 좌초를 넘어 민주주의의 훼손까지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 부처 집중된 나라 없어"
조 교수는 정부가 원안을 뒤집기 위해 의도적으로 원안의 내용을 왜곡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지난 11일 정운찬 국무총리가 발표한 세종시 발전방안은 기존 행정도시 방안의 문제점으로 △중앙부처 분산 이전에 따른 문제점에 대한 체계적 분석이 없고 △인구 50만 도시를 위한 자족용지가 부족하며 △인센티브가 미비해 기업이 오지 않을 것이고 △일자리 대책이 크게 미흡하다는 점 등을 꼽았다.
조 교수는 "국가중추 행정기능 이전으로 국토의 균형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은 1960년대부터 추진된 국토정책의 중요 과제"라며 "오히려 행정도시 원안은 9부2청2처를 집중적으로 이전시켜 그 동안 비계획적으로 분산된(과천청사, 대전청사) 정부 부처의 계획적 운용을 도모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오히려 행정 효율성이 늘어난다는 말이다.
이상민 자유선진당 의원 역시 "모든 나라의 정부 부처는 분산돼 있다"며 "수도가 분할된 나라는 독일, 스위스, 말레이시아, 칠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매우 많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경우 지난 1973년과 80년, 90년 등 3차례에 걸쳐 이미 59개 정부기관이 지방으로 옮겨졌다.
실제 행정수도 건설은 과거 60년대 김대중 당시 신민당 의원이 선거공약(대전 수도)으로 처음 제기했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7년 2월 10일 서울시 연두순시 자리에서 '임시행정수도 건설 구상'을 발표하며 이미 구체화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국가 안보'와 '서울의 무질서한 과밀성장에 따른 폐해', '행정수도 건설을 통한 지속적 성장'을 이유로 들었다. 당시 최종 후보지는 장기와 논산 두 곳이었다.
▲ 이명박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함에 따라 이미 심각해진 사회적 갈등 비용 초래, 균형발전 전략의 좌초를 넘어 민주주의의 훼손까지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프레시안 |
행정도시 원안은 '콤팩트 시티' 지향
조 교수는 "원안에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정부 발표 역시 거짓말이라고 비판했다. 조 교수는 "원안에는 2030년을 목표로 해 고용인구는 25만 명으로 분명히 설정돼 있고, 산업별 용지 수요까지 도출돼 있다"며 "이를 위한 토지공급은 용적률 400%를 적용해 굉장히 밀도가 높은 도시공간을 만들도록 돼 있다. 대부분 선진국의 도시개발 개념인 '콤팩트 시티' 모델"이라고 했다.
"자족용지가 부족해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정부 비판 역시 사실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조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원안대로 계산하면 자족용지는 전체의 11.4%, 인구 일인당 자족용지는 16.4㎡로 수도권 13개 신도시 중 일인당 자족용지가 가장 많은 광교(12.5㎡)보다 1.3배가 많다"며 "정부 주장과 전제는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평가했다.
정부가 행정도시 원안을 뒤집고 자족성 확보에 따른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두면서 문제점은 오히려 심각해진다고 조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원안은 행정도시 건설을 크게 3단계로 나눠 자족성숙기(2016~2020년)는 2단계 과정으로 잡고 있다. 이에 따르면 올해는 아직 기업유치 사업에 집중할 때가 아니다"라며 "정부가 원안의 2단계 사업을 처음부터 추진하면서 행정도시 주력사업이 전국적으로 추진되는 10개의 혁신도시, 6개의 기업도시, 6개의 경제자유구역, 2개의 첨단의료복합단지 등과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행정도시를 국가 균형발전의 새 중추로 삼고, 10개 혁신도시를 지역 경제 성장의 거점으로 삼는 일종의 '국가 발전 허브' 과정이 정부 수정안으로 인해 뭉개지면서, 행정도시가 다른 도시와 차별되지 않는 기업도시의 하나로 전락해버렸다는 뜻이다.
행정도시가 기업도시화되면서 인접 도시 산업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현상이 일어남은 물론, 무리한 세제 지원이 이뤄져 결과적으로 온 국민적 피해가 일어나고 있다고 조 교수는 비판했다.
그는 "기업도시와 혁신도시의 평균 토지공급가격은 3.3㎡당 172만 원으로 세종시 수정안에 밝힌 원형지 가격의 4.3~4.8배에 달한다"며 "대통령이 형평성을 고려해 다른 유사지역에도 저가로 용지를 공급하면 재정부담 등 큰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수정안 대로면 세종시는 70년대 구로공단"
이와 같은 무분별한 규제 완화와 혜택 제공은 결국 일부 기업에 대한 특혜로 드러나고 있다. 3.3㎡당 조성가격(227만 원)과 공급가격(40만 원)의 차액에 기업이 원형지를 사들인 후 투입할 개발비(약 40만 원 추산)를 제외한 150만 원이 대기업에 제공되는 특혜라고 조 교수는 평가했다.
조 교수는 "적게는 3조 원, 많게는 4조 원 정도가 대기업에 특혜로 돌아간다"며 "원형지 개발권이 결국 자유개발권이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정부가 기업에 세금을 들여 저가로 땅을 준 후 막대한 개발이익을 보장하는 어마어마한 특혜를 제공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삼성, 한화 등 지역 투자의사를 밝힌 기업들은 대부분 부지 매입비용을 제외한 나머지 비용 집행은 이명박 대통령 퇴임 후인 2012년으로 잡아놓은 상태다. 이 대통령 집권 기간 동안에는 땅만 사놓겠다는 말과 같다.
수정안이 강조한 고용효과도 지나치게 부풀려졌다고 조 교수는 말했다. 실질 고용 규모는 정부 안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고 조 교수는 추정했다. 이는 본지의 '홍헌호 칼럼'(☞ 관련 기사: 세종시 토지공급가, 40만 원 아니라 189만 원이 '정상')에서도 제기된 문제다. 정부는 삼성, 한화 등 투자를 포함해 총 2만2994개의 일자리가 만들어 질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조 교수는 "제조업에서 1억 원을 투자하면 0.164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4조5000억 원을 투자하면 7000여 개 정도의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셈"이라며 "만약 2만3000여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면 대단히 노동집약적인 생산방식의 일자리로, 누가 봐도 삼성이 이와 같은 사업체를 만들진 않는다"고 비판했다.
특히 정부 수정안 대로면 중소기업의 경우 70년대 구로공단의 모습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조 교수는 지적했다. 수정안은 중소기업 몫의 부지를 전체의 14.2%로 잡아 놓았으며, 일자리의 53%가 이곳에서 생겨날 것으로 계산했다.
조 교수는 "정부 계산 대로면 중소기업 근로자 일인당 생산공간은 19㎡에 불과하다"며 "이제는 사라진 옛 구로공단의 일인당 생산공간이 28㎡에 달한다"라고 지적했다. 정부 수정안이 불가능한 사실을 부풀려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는 얘기다.
"통일 후 북한 주민 이주로 인한 수도권 혼란은 상상 초월"
토론회 참석자들은 결과적으로 원안을 정상 추진하는 것만이 대안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상민 의원은 "행정도시 건설은 매 정권마다 2~5개씩 건설하는 수도권 신도시 건설비용과 인구증가를 줄여준다"며 "수도권 교통혼잡비만 14조5000억 원에 달한다(2007년 기준)"고 했다.
이 의원은 "통일을 대비해서도 행정도시 원안 추진이 필요하다"며 "지금과 같은 일극 중심 국토공간이 유지될 경우, 북한 주민들의 이주로 인해 수도권의 혼란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했다.
홍윤기 동국대 교수는 나아가 과거부터 거론됐던 행정수도 건설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단순히 세종시 논란을 넘어 '충청국가시-서울국제시'의 복합수도 구상을 해야 할 때"라며 "서울은 개성과 인천, 수원, 춘천을 아우르는 범아시아의 국제수도로 업그레이드시키고, 행정도시는 행정기관에 더해 입법부 등을 전면 이전해 한국의 수도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는 국회 지역균형발전 연구모임(이상민, 권경석, 이낙연 의원 공동대표)과 공간환경정책포럼, 분권균형발전전국회의, 참여사회연구소, 한국NGO학회가 공동 주최했다.
이정전 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가 사회자로 참석했고, 조 교수를 비롯해 △이상민 자유선진당 의원 △양승조 민주당 의원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 △변창흠 세종대 교수 △이상선 행정도시무산저지 충청권비상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박재율 분권과 균형발전을 위한 전국회의 상임집행위원장 △홍헌호 시민사회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홍윤기 동국대 철학과 교수가 토론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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