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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영 복덕방'을 만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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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영 복덕방'을 만든다면?"

[복지국가SOCIETY] "금융·보험·중개업에선 국가가 시장보다 효율적"

우리가 지금 당연히 '민간'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 중에 국가가 직접 주도하면 좋을 것 같은 일들이 상당히 많다. 예를 들어,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어느 후보가 '동사무소에 공공 복덕방을 설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되었다고 해보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선 지방정부는 '국선 공인중개사'를 배치하여 그 지역의 부동산 거래를 중개하게 된다. 부동산 매물 정보는 동사무소로 집중된다. 물론 이것은 일종의 공공서비스이기 때문에 무료 혹은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매각하는 측과 매입하는 측, 양측 모두에게 제공된다. 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들어가는 예산도 그리 크지 않다. 한 두 사람의 인건비 정도로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추가되는 효과는 매우 크다. 국가가 직접 거래를 중개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보증' 기능이 충족된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보호 받기 위해 '확정일자' 신고 따위를 해야 하고 전입신고도 해야 하는데, 국가가 직접 중개업에 진출하면 이런 서비스를 원 스톱으로 한방에 처리해주는 부가서비스를 설계할 수 있다. 거기다가 국가는 민간의 부동산 실거래정보를 파악할 수도 있다. 즉, 국가의 부동산업 진출은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만한 의미심장한 효과들이 있다.

문제는 이 경우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개인은 '국가가 자동으로 거래의 안전을 보증해주고 가격도 훨씬 저렴한' 국가 중개소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민간 공인중개사들은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또, 부동산 중개와 연계되어 있는 각종 법무사 서비스 등도 위축될 수 있다. 요즘의 화두는 일자리 늘리기이지만 국가가 이렇게 민간의 전매 사항처럼 되어있는 중개업에 진출할 경우 민간 일자리는 크게 줄어든다.

▲ 강남 대치동 일대 부동산 중개업소 풍경. ⓒ연합뉴스
물론, 국가에 의한 거래 포착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민간 부동산 중개업이 완전히 소멸하지는 않겠지만 크게 위축될 것은 자명하다. 현재 국가가 주도하고 있는 일자리 중개업을 보면 알 수 있다. 민간 직업소개소는 민간 결혼중개소에 비해 크게 위축되어있다.

그러나 각종 사회적 중개 기능을 국가가 직접 수행하는 대안들을 이제 생각 정도는 해 볼 때가 되었다. 국가의 본질은 일종의 유통비용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의 기능은 대개 어떤 거래의 안전을 '보증'하는 데 몰려있다고 할 수 있다. 상법이나 민법체계 역시 거래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데 주안점이 있다. 중개업은 국가의 본래 기능과 본질적으로 유사한 부분이 많다.

그런데 이러한 중개 산업 중에 가장 큰 것이 바로 은행업 같은 금융중개업이다. 금융중개업은 상품을 생산하는 것 보다는 상품생산의 토대가 되는 거래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주목적이 있다. 따라서 이 역시 민간의 이윤개입이 있을 필요가 크게 떨어진다. 민간의 이윤개입은 경쟁과 혁신을 도모하기 위해 도입하는 것인데, 중개 산업의 경우 경쟁과 혁신이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민간의 이윤개입보다는 국가가 자신의 태생적인 본질과 전국에 걸쳐있는 조직력을 활용해 금융중개업을 직접 주도하는 것이 거래의 안정성 확보 차원이건, 비용절감 차원이건 훨씬 효율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국가기관인 한국은행이 직접 화폐의 가치를 보장하는 우리나라의 체제는 민간은행인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달러의 가치를 떠받치고 있는 미국식보다 안정성 측면에서 훨씬 우월할 것이다.

얼마 전 있었던 카드회사 수수료 인하 운동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 진보신당의 노회찬 대표는 언젠가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운동을 한 적이 있었다. 중소상인들이 소비자로부터 카드를 받은 대가로 신용카드 회사에게 지불해야 하는 카드 수수료가 대략 3~4% 정도 되는데, 이것이 너무 비싸 중소상인들에게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인하해야 한다는 것이 이 운동의 골자였다.

필자는 그 운동을 보면서 수수료 인하가 아니라 카드회사 국유화를 하는 것이 어떨지 생각해 보았다. 사실 카드 수수료라는 것은 '0' 상태가 가장 이상적인 상태이다. 종이화폐와 전자화폐 사이에 유통 상의 아무런 비용 차이가 없어야 한다.

국립 카드회사의 출범이 그리 황당한 얘기도 아니다. 지금은 신한은행에 매각되었지만 LG카드는 한 때 산업은행의 지배를 받은 일이 있었다. 국가가 금융 중개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과 입장이 있다면 충분히 국립카드회사로 키워 볼 만한 조건에 있었다. 국가가 직접 카드회사를 운용한다면 아무래도 다양한 비용 인하 요인들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거래의 안전은 자동으로 보장된다. 민간기업이 의무적으로 챙겨야 할 민간이윤을 삭제하고 국가가 이를 대체하면, 카드 수수료율은 인하 여력이 크게 발생하고 장기적으로 '0'에 도전할 수도 있다.

사실, 보험도 민간보다는 정부가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영역이다. 보험이란 되도록 많은 가입자가 함께 운용할수록 유리한 시스템이다. 즉, 국민 전체가 함께 하기로 약속하는 보험이 가장 효율적인 보험인 것이다. 이 영역에 민간이윤이 개입하게 되면, 민간기업이 추구하는 이윤만큼 보장의 폭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광고비 등 불필요한 비용이 수반된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이 이 정도의 합리성이나마 갖게 된 이유는 민간이 아닌 공공부문의 주도로 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시장과 반대되는 개념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별로 없다. 효율과 평등이 정반대 조건에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국가가 처음부터 태생적으로 갖게 된 '보증, 보장, 보험' 기능을 적절히 이용하면 금융업, 보험업, 중개업에 광범하게 진출해서 돈 버는 국가를 만들 수도 있다. 이것이 민간보다 훨씬 효율적인 측면이 있다. 우리는 이제 금융이나 보험 같은 국가의 사회 유통 기능에 대한 국유화 해법을 우리의 상상력에 포함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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