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련의 소식들은 '삼성의 3세 경영' 준비가 시작됐음을 상징한다. 이건희 전 회장이 결국은 자식들에게 거대 그룹을 물려주려 한다. 그런데 총수일가의 그룹 지배력은 보유 지분으로만 볼 때 그다지 튼튼하지 못하다. 이를 위해서는 그룹 지배구도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 이 전 회장이 복귀한다면 그룹 전면에 다시 나서 지배구도 개편작업을 마무리하고, 큰 내분 없이 자식들에게 회사를 물려줄 준비에 전념할 것이다.
핵심은 '총수일가-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 및 삼성물산'으로 이어지는 현 출자구조를 어떻게 매만지느냐다. 현행법에 따르면서 구도 개편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재벌그룹처럼 지주회사를 설립하거나, 삼성생명 지배구조를 뒤바꿔야 한다. 어떤 방법이든 법망의 감시와 시민 사회의 비판을 완전히 피해가기는 상당히 어렵다.
경제개혁연대(소장 :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17일 오후 '특검 이후의 삼성, 얼마나 변했고 어떻게 더 변화해야 하는가?'란 제목의 토론회를 열고 삼성그룹의 오늘과 문제점 등을 진단했다. 이날 경제개혁연대는 '삼성그룹의 소유구조 개편 시나리오 검토'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앞으로 삼성그룹 지배구도 개편 작업이 어떤 방향으로 이뤄질지를 예측했다. 결론은? 일단 삼성그룹이 당장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나리오가 100%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거론된 예측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보고서 내용을 요약 게재한다.
▲경제개혁연대가 예상한 향후 삼성그룹 지배구도 개편 시나리오. ⓒ경제개혁연대 제공 |
지주회사 체제로 이행할 경우
지주회사 체제는 그룹 지배구조를 단순화 할 수 있다. 이미 LG, SK 등의 재벌은 후계구도를 완성시키는 과정에서 지주회사 체제로 그룹을 재편했다. 그러나 삼성그룹의 경우 현재의 순환형 출자구조 때문에 지주회사 설립이 쉽지 않다.
삼성생명 최대 주주인 이 전 회장(20.76%)이 자녀에게 삼성생명 지분을 증여하고 관련 세금을 지분 일부로 대납할 경우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이는 지주회사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자산총액 1000억 원 이상인 회사(삼성에버랜드)가 보유한 자회사(삼성생명) 주식 가액이 회사 자산의 절반을 넘을 경우, 그 회사는 지주회사가 된다. 지난 2004년 당시 삼성에버랜드는 이 전 회장의 차명주식을 포함해 삼성생명 지분 50% 이상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 현행 공정거래법은 비금융지주회사(삼성에버랜드)가 금융회사(삼성생명)를 지배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이 규제를 피하기 위해 삼성생명을 지배할 금융지주회사를 따로 설립할 경우, 금융지주회사법에 걸린다. 지난 1일부터 적용되기 시작한 개정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르면 보험지주회사는 보험회사(삼성생명)와 비보험금융회사, 비금융회사를 자회사로 둘 수 있다. 그런데 자회사인 비금융회사는 비금융회사만을 손자회사로 둘 수 있다. 그리고 자회사인 보험회사(삼성생명)는 보험회사와 비금융회사(삼성전자)를 손자회사로 둘 수 없다.
현재 삼성그룹 소유구도는 삼성에버랜드(비금융)-삼성생명(금융)-삼성전자(비금융)로 이어진다. 금융지주사가 직접 삼성에버랜드, 즉 비금융자회사를 거느린다면 금융손자회사가 삼성생명이 되므로 관련법에 걸린다. 금융지주사가 삼성생명을 소유할 경우, 역시 비금융회사를 손자회사로 둘 수 없다는 조항에 위배된다. 관련 법 개정 없이는 지주회사 설립이 쉽지 않음을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지주회사 설립으로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하려면 관련법이 개정돼야 한다. 삼성그룹 내부의 문제가 아닌, 외부에서 해결해줘야 할 숙제다. 이 회장이 유죄판결을 받게 된 주요 원인도 결국 법망을 피해 상속문제를 해결하려던 욕망이었다. 다만 한국의 법이 현실적으로 삼성그룹을 제약하는 요인이 아닐 수도 있다. 지난 2005년 터진 '안기부 X파일' 사태는 삼성의 영향력이 법 위에 군림하고 있음을 상징했다.
만약 삼성이 원하는 밑그림이 그려진다고 가정할 때, 지주회사 설립은 크게 비금융회사 중심으로 새 소유구조를 짜는 일반지주회사 설립, 그리고 금융지주회사 체제 등 두 가지를 가정할 수 있다.
먼저 일반지주회사 설립 방법에 대해 경제개혁연대는 '삼성물산과 삼성전자를 분할 후 설립'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즉, 삼성물산과 삼성전자를 각각 지주부문과 사업부문으로 인적분할한 후 지주부문을 합병하는 방법이다. 이 경우, 삼성그룹 소유구도는 총수일가가 비금융지주회사와 삼성생명 지분을 보유하고 삼성생명은 금융계열사와 새로 생긴 비금융지주회사(금산법에 따라 5% 미만 지분 보유 가능) 지분을, 그리고 비금융 지주회사는 삼성전자 등 비금융 계열사를 지배하는 식으로 변한다.
▲일반지주회사(비금융지주회사) 설립 시 변화하는 삼성그룹 지배구도. ⓒ경제개혁연대 제공 |
이건희 전 회장 부자는 지주사의 공개매수에 참여해 자회사(삼성물산 사업부문, 삼성전자 사업부문 등) 지분을 지주사에 넘기고 대신 지주사 지분을 받게 된다. 따라서 총수일가는 지주사 지분을 대폭 늘릴 수 있어 안정적인 그룹 지배가 가능해진다. 경제개혁연대가 지주사로 전환한 5개 재벌(SK, LG, CJ, 한진중공업, 웅진)의 공개매수 사례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 지주사의 지배주주 지분은 전환 후 평균 34.35%포인트 증가했다.
금융지주회사 중심으로 그룹 소유구도를 짤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다. 현재 삼성생명의 2대 주주인 삼성에버랜드를 지주부문과 사업부문으로 분할해 지주부문을 지주사로 전환하면 된다. 삼성생명과 지주회사는 자회사로 편입될 회사들의 지분을 정리하게 되면 총수일가가 보험지주사를 필두로 한 금융계열사를 수직적으로 거느리게 된다. 또 삼성생명이 삼성물산과 삼성전자를 거느린 현재 형태는 그대로 유지된다.
▲보험지주회사를 설립할 대 변화하는 삼성그룹 지배구도. ⓒ경제개혁연대 제공 |
다만 이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보험지주사의 자회사, 즉 삼성생명은 지배목적 요건에 해당되지 않을 경우 계열사 지분 보유한도가 일정 수준 이하로 규제된다. 따라서 삼성SDI가 최대주주인 삼성물산은 삼성생명이 현재 가진 보유지분을 정리할 필요가 없지만, 삼성전자 지분은 정리해야 한다. 삼성생명이 최대주주이기 때문이다.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 지배력이 취약해지는 셈이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이 과정에서 삼성생명이 처분하는 삼성전자 주식의 매각이익의 상당부분을 유배당 보험계약자에게 배당해야 한다. 물론, 이들 문제는 관련법이 개정된다면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지난해 4월 22일,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이른바 쇄신안을 발표하며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1년 만에 그의 복귀를 한국 사회는 준비하고 있다. ⓒ뉴시스 |
지주회사를 설립하지 않을 경우
삼성그룹은 따로 지주회사를 만들지 않고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하려 할 수도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삼성은 가만히 있는데 법이 해결해주는 것이다. 만에 하나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한국 사회는 '삼성왕국'임이 다시금 확인된다. 법이 이 전 회장 일가의 후계구도 안정을 위해 뒤바뀌는 셈이기 때문이다. 실제 이미 국회에서 이런 움직임은 포착되고 있다. 비금융지주회사(삼성에버랜드)의 금융회사(삼성생명) 지배를 허용하는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법이 움직이지 않을 경우, 경제개혁연대 보고서가 제시한 시나리오의 하나는 삼성생명의 지분 조정이다. 따로 지주회사를 만들 필요성은 결국 삼성에버랜드의 지주사 요건 충족 가능성 때문에 발생한다. 따라서 이 전 회장이 삼성생명 지분을 매각 또는 상속·증여하더라도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의 최대주주가 되지 않도록 삼성생명 소유구도를 바꾸면 문제가 해결된다.
이재용 부사장이 충분한 자금을 확보했을 경우, 증여받은 주식을 세금으로 대납하지 않고 다른 재원으로 납부하면 된다. 또는 증여 과정과 동시에 삼성에버랜드도 상당량의 삼성생명 주식을 매각해 계속 2대 주주 지위를 유지할 수도 있다.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주식을 이 전 회장 부자에게 매각하고, 부자는 삼성전자 주식을 삼성에버랜드에 매각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이 거래가 이뤄지면,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하면서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유지할 수 있고, 삼성생명 지분 문제는 해결된다. 다만 이 경우, 이 전 회장 부자는 매각차익의 20%를 양도소득세로 내야하며, 삼성에버랜드는 법인세를 납부해야 한다. 수조 원대의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삼성생명의 지분조정이 마무리될 경우 예상되는 그룹지배구도. ⓒ경제개혁연대 제공 |
삼성물산과 삼성에버랜드의 합병도 가능한 방법으로 거론된다. 이와 같은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는 장남인 이 부사장 외에도 야심가로 알려진 이부진 삼성에버랜드 전무에게 줄 상속분도 그룹이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이란 거대 자회사를 둔 까닭에 두 회사 합병시 삼성에버랜드 주식의 평가 가치가 높아진다. 예를 들어, 합병비율이 삼성물산 1 : 삼성에버랜드 2 정도가 될 경우 이 전 회장 일가의 삼성물산 보유지분은 합병 전 14%에서 합병 후 34%가량으로 늘어난다. 이를 통해 생긴 여유는 삼성에버랜드 사업부문 분할 후 이 전무 상속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자주 적대적 M&A 대상으로 시장에서 언급되던 삼성물산에 대한 이 전 회장 일가의 지배력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
원래 삼성에버랜드 지분 25.64%를 보유하고 있는 삼성카드는 금산법 위반 상태인 20.64%의 지분을 오는 2012년 1월까지 전부 매각해야 한다. 그러나 삼성물산과 합병할 경우 삼성카드가 보유한 합병회사 지분은 8.55%로 줄어든다. 매각해야 할 지분이 3.55%로 줄어드는 셈이다. 그만큼 매각은 쉬워진다.
▲삼성물산과 삼성에버랜드 합병 후 지배구조 변화. ⓒ경제개혁연대 제공 |
어떤 방법이 될지 추측하기는 어려우나, 보고서는 이 전 회장이 복귀하더라도 삼성그룹이 당장 지주회사 전환 과정을 밟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단 이 전 회장이 건재한 이상, 당장 현재의 지배구도가 위협받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전 회장의 상속이 본격화된다면, 어떤 식으로든 소유구도 개변은 불가피하다. 이 경우 지주사 체제로의 전환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리고 체제 전환이 어떤 식으로 이행되든, 이 전 회장 일가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 개정이 뒤따라줘야 한다. 삼성의 후계구도 문제는 결국 법의 문제, 정치의 문제로까지 이어지는 셈이다. 그리고 이를 감시할 한국 사회의 문제로도 이어질 수밖에 없다. X파일 사태,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이 폭풍처럼 이 사회를 휩쓸고 지나갔음에도, 아직 '삼성 사태는 끝났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
이건희의 '은퇴선언' 이후, 과연 변한 건 있었나 지난해 4월 22일, 이건희 전 회장은 이학수 당시 부회장 등 구조본 핵심 멤버들과 함께 국민 앞에 동반 퇴진을 선언했다. 그리고 계열사 자율경영을 약속했다. 이른바 '삼성 쇄신안'의 핵심 내용이다. 그로부터 1년. 과연 무엇이 변했나. 지난 15일 장남 이재용 전 삼성전자 전무는 같은 회사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 부사장의 '과외선생'으로 꼽히는 최지성 삼성전자 DMC부문 사장은 단독 CEO가 됐다. 세상은 이를 이 부사장 단독 승계가 본격화된 것으로 해석했다. 때맞춰 올림픽 유치를 이유로 이 전 회장 사면론이 재계와 체육계에서 강하게 거론된다. 후계자 승계 수순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지난 4년 간 연달아 터져나온 삼성의 비리를 고발하는 각종 사건에도 불구, 한국 사회를 손아귀에 쥔 삼성 총수일가의 '비정상적' 힘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고 했다. 먼저 꼽을 수 있는 문제는 경제위기 여파까지 맞물리면서 삼성 의존도가 더욱 높아진 언론의 서글픈 현실이다. 토론자로 참석한 곽정수 <한겨레> 대기업전문기자는 "친재벌적 언론뿐만이 아니라 진보언론마저 삼성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한다"며 "경제위기는 자본의 위기로 이어지기 마련인데, 오히려 한국에서는 '삼성공화국'의 영향력을 더 키우고 있다"고 한탄했다. 곽 기자는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복권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게 지난달 중순인데 '사면복권이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민주주의의 원칙을 거스른다'는 비판적 기사를 쓴 곳은 찾아보기 힘들었다"며 "언론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는 삼성의 핵심임원들을 만나서 광고 달라고 애걸하는 게 한국의 현실"이라고 했다. 언론만 침묵을 지키는 게 아니다. 법조 정치 문화 체육 등 한국 사회의 모든 부문이 삼성 앞에 숨을 죽이고 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결국 삼성 문제는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했다. 노 대표는 "지난 1987년 민주화가 이뤄졌으나 삼성 문제로 대표되는 재벌체제는 오히려 강화돼 왔다. 대표적인 게 삼성의 무노조 경영"이라며 "헌법이 보장한 노동자의 단결권이 삼성에는 통하지 않는다. 삼성은 '헌법이 적용되지 않는 집단'이 아니라 '초헌법적 권력, 헌법 위의 조직'"이라고 했다. 노 대표는 "민주화 이후 들어선 모든 정부가 삼성이 건넨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았음은 그 부실했던 검찰 수사를 통해서도 확증된 사안"이라며 "이런 삼성의 로비가 결국 솜방망이 처분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따라서 이 전 회장의 사면을 요구하는 일부 계층의 목소리를 강하게 비판했다. 노 대표는 "이 전 회장을 다시 IOC 위원으로 만들어 올림픽을 유치하자는 목소리가 있는데, 이제껏 한국이 배출한 IOC 위원은 모두 부정비리 연루자"라며 "한국은 반성하는 차원에서도 앞으로는 IOC 위원을 내지 말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한국이 배출한 역대 IOC 위원은 △이기붕 전 부통령 △이상백 전 서울대학교 교수 △장기영 전 <한국일보> 사장 △김택수 전 대한체육회 회장 △박종규 전 대통령 경호실장 △김운용 전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등 8명이다. 이기붕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위해 사사오입 개헌을 강행한 핵심 인물이다. 박종규는 5.16 군부 쿠데타의 핵심인물 중 하나다. 김운용, 이건희, 박용성은 모두 비리혐의로 법정에 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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