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0일 치러지는 민주노총 임원선거에 이남신 전 서울비정규직연대회의 의장이 부위원장에 입후보했다. 이는 전국비정규연대회의(전비연)의 조직적 결정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 출범한 전비연은 현재 노동계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대표적 조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전비연이 조직적 결정에 따라 민주노총 임원선거에 후보를 냈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전비연의 대표가 민주노총의 임원진에 포함되면 그동안 비정규직 관련 활동에서 민주노총 지도부와 전비연 사이에 나타나곤 했던 불협화음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고, 비정규직 노조 운동이 보다 큰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프레시안>은 구권서 전비연 의장을 만나, 전비연이 이번 민주노총 임원선거에 후보를 내게 된 배경을 들어봤다. 이 인터뷰는 설 연휴가 시작되기 하루 전날인 1월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민주노총 기자실에서 진행됐다. <편집자>
***"민주노총과 전비연 간 의사소통의 한계를 뛰어넘겠다"**
〈프레시안〉 : 전비연은 조직적 결정으로 이번 민주노총 임원 보궐선거에 이남신 전 서울비정규연대회의 의장을 부위원장 후보로 냈다. 그 의미는 뭔가?
구권서 : 민주노총 임원 중에 비정규직을 담당하는 '부위원장'이 그동안 여럿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대개 정규직 출신이었다(전임 이수호 집행부에서 비정규직을 담당한 신승철 부위원장도 기아자동차 노동조합 출신이었다). 물론 그들이 정규직 출신이었다고 해서 사업을 잘못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비정규직 노조의 입장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또한 민주노총 제1의 사업과제에 비정규직 문제가 올라 있다는 점을 봐도 알 수 있겠지만, 비정규직 문제는 이제 비정규직만의 문제가 아니게 됐다. 우리는 비정규직 문제에 전문성과 경험을 보다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 비정규직 관련 사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프레시안〉 : 그간 비정규직 관련 사업에서 곤란했던 점은 무엇인가?
구권서 : 지난 한 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자연발생적인 투쟁이 많았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철폐투쟁으로 시작해, 특수고용직인 울산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의 투쟁, 덤프연대의 파업 등 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다.
전비연이 이들 투쟁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일이 있었다. 그것은 투쟁을 총지휘해야 하는 민주노총 지도부와 충분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민주노총 위원장·사무총장과의 간담회를 통해 의견을 교환했지만, 그런 간담회는 상시적인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의사소통의 한계가 여전히 존재했다.
비정규직 노조의 대표자가 민주노총 부위원장에 당선되면 이런 한계가 상당부분 해소될 것으로 본다. 전비연으로서는 확실한 의사소통의 수단을 확보하는 셈이다.
〈프레시안〉 : 공식적 대화 채널을 갖게 된다는 의미 외에 다른 의미도 많을 것 같다.
구권서 : 지금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면 자연발생적이고 산발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격렬한 투쟁이 진행됐지만 하나의 힘으로 모이지 않았다. 투쟁의 흐름이 연결되지 못하고 단속적이었다.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한 곳으로 묶어줄 단위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체를 조율하고 계급적 전선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전비연의 올해 주요 활동목표가 바로 그것이다. 전체 비정규직 투쟁을 하나로 묶어내고 조직화하는 일에 주력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노총과의 긴밀한 소통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때문에 내부논의에서 다소 반발이 있었지만 그런 반발을 무릅쓰고서도 전비연에서 부위원장 후보를 낸 것이다. 이런 구상이 제대로 실현되면 앞으로 비정규직 투쟁이 지난해보다 훨씬 더 의미 있게 진행될 것이다.
***"정규직 대의원들도 전비연을 외면하지 않을 것"**
〈프레시안〉 : 선거운동은 어떻게 진행되나?
구권서 : 장기투쟁 사업장이나 비정규직 노조가 투쟁하는 사업장을 중심으로 돌아다니고 있다. 구정 연휴가 선거운동 기간에 포함돼있어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가능한 한 현재 싸움을 진행하고 있는 사업장은 모두 방문할 예정이다.
전비연이 후보를 낸 이유를 설명하고 공감대를 이끌어낼 것이다. 또한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고민과 전망을 선거운동 기간에 공유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할 예정이다.
〈프레시안〉 : 임원선거는 간선제다. 다시 말해 표가 나오는 곳은 현장 노동자들이 아니라 대의원들이다. 또한 대의원이 많은 곳은 대공장 사업장인데….
구권서 : 물론 대공장 사업장도 간다. 그러나 대공장 사업장 방문에 많은 시간은 할애하기는 힘들 것 같다. 우리는 대의원들을 믿는다. 아니 정규직 동지들을 믿는다.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는 데 이견이 없을 테고, 또한 그들은 전비연을 신뢰한다고 생각한다. 정규직 대의원들이 우리를 외면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않았다.
〈프레시안〉 : 생각해보면 불과 2년 전만 해도 전비연의 힘은 미미했다.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정작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발언력은 노동운동 내에서도 취약했는데, 지금은 민주노총 임원 선거에 후보를 낼 정도가 됐다.
구권서 : 물론 전비연은 성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도 매우 많다. 솔직히 후보를 낼 만큼 뒷받침해줄 실력이 전비연에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다 받아안지는 못하지만, 현장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투쟁주체들의 요구와 열망을 외면할 수 없었다. 현장에서 싸우는 만큼 중앙무대에서 발언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이 없어서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게 아니다"**
〈프레시안〉 : 정세를 이야기해보자. 2월 비정규직 법안 처리, 4월 노사관계 로드맵 법안 상정이 공공연하게 이야기되고 있다.
구권서 : 한나라당이 국회로 복귀하기만 하면 열린우리당이 비정규직 법안을 처리해버린다는 말들이 많다. 솔직히 노동운동 진영의 힘이 절대적으로 약하다. 정부가 밀어붙이면 그냥 당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럴 때 고민해야 하는 것은 법안이 통과된다 하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설령 좋은 법이 입법된다 해도 마찬가지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것이 근로기준법이 없어서는 아니었지 않나? 또한 매년 최저임금이 결정되지만, 현장에서는 최저임금을 준수하라면서 머리 터지게 싸우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한 마디로 지금까지 우리는 입법논의에 지나치게 매몰돼 왔다. 반성해야 한다.
〈프레시안〉 : 입법논의에 한정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번 2월 국면에서 전비연은 무엇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나?
구권서 : 싸움의 근거들을 만들어가야 한다. 법안 통과에만 연연한다면, 또다시 입법논의에 매몰될 수 있다. 물론 교섭전술을 잘 사용해 보다 진전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것은 아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우리 현실의 비극은 법이 있어도 노동현장에서는 그 법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현장에서는 역학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비정규직 법이 훌륭하게 제정되더라도 현장에 힘이 없다면 그것은 무용지물이 된다. 전비연은 바로 그런 부분에 주목한다. 현장의 힘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입법논의에 너무 매몰되면 안 된다"**
<프레시안> : 원론적 이야기다. 현장의 힘을 강화하는 것은 언제나 노력해야 할 부분이고, 2월은 법안 통과 여부가 결정되는 시기 아닌가? 뭔가 전략이 필요하지 않나?
구권서 : 현장의 힘을 강화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실리주의적 경향을 막아내는 것이다. 노동기본권 보장이라는 기본적 전제가 반영되지 않은 수준에서 노동계가 비정규직 법안 협상을 종결지어서는 안 된다.
<프레시안> : 원칙만 강조할 경우 얻을 수 있는 실리마저 놓칠 수 있다. 과거 주5일제 협상에서 민주노총이 협상테이블을 뛰쳐나온 뒤 통과된 입법안은 최종 협상안보다 더 개악된 것이 아니었나?
구권서 : 당시 민주노총 지도부가 잘못한 것은 협상장을 뛰쳐나왔다는 점이 아니다. 뛰쳐나온 이후 대응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지도부는 협상을 중단한 뒤 기업 단위의 단체협상을 통해 입법안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자고 조합원들을 설득했다. 사실상 당시 국면에서 지도부가 모든 책임을 단위 사업장으로 넘겨버린 것이다.
그 뒤 조직된 사업장은 지도부 말대로 단협을 통해 생리휴가, 월차수당 등을 다 얻어냈다. 하지만 조직되지 않은 대다수 사업장은 개악안이 그대로 적용됐다. 지도부가 협상장을 뛰쳐나오면서 동시에 대규모 투쟁을 조직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양상이 됐을 것이다.
<프레시안> : 올해는 특수고용직 관련 대책도 나올 예정이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전히 노동계에서는 비정규직 문제가 핵심 이슈가 될 것 같다. 전비연의 결의를 밝혀달라.
구권서 : 연초부터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심상치 않다. 언제나 마찬가지이지만, 전비연은 지금껏 하던 방식대로 간다. 민주노총 지도부에 비정규직 대표자가 들어가게 된다면, 민주노총 지도부와 좀더 원활히 의사소통을 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을 더욱 조직적으로 펼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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