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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과 진보정당, 치킨게임은 공멸의 길"

[복지국가SOCIETY] 진보개혁정치 세력 재편과 시민사회의 역할

지난 10월 28일 치러졌던 국회의원 재보선은 진보개혁정치 진영에게 심각한 패배와 함께 많은 숙제를 안겨줬다. 우선, 이명박 정부가 실정을 거듭하여 그야말로 정책적으로 죽을 쑤고 있음에도, 진보개혁정치 진영의 실력이 여전히 형편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진보신당은 자당의 후보를 한 명도 내지 못하였고, 민주노동당도 경기 수원 장안 선거구에 출마한 안동섭 후보가 7%대의 득표를 해 3위를 차지한 것이 다소의 위안거리일 뿐이었다.

3당의 연합 후보였던 경기 안산 상록을 선거구의 임종인 후보는 진보개혁정치 진영과 시민사회의 지지와 기대에도 불구하고, 15.57%의 저조한 득표에 그쳐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는 민주당 김영환 후보의 41.17%, 한나라당 송진섭 후보의 33.17% 득표에 비해 매우 저조한 성적임에 틀림없다. 진보 성향의 3당이 연합 공천하고 시민사회가 지지한, 전직 국회의원으로서 진보 성향의 검증된 정치인인 임 후보가 야권 후보단일화에 실패하고, 이렇게 참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 두 가지 측면의 조명이 필요하다.

첫째, 진보개혁정치 진영의 실력이 크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기존의 올망졸망한 수준인 진보 성향의 분립된 3당 체제의 실력으로는 의미 있는 정치적 성과를 얻기 어렵다는 점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다. 진보개혁정치 진영의 새로운 정치 기획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하겠다.

둘째, 민주당의 욕심과 근시안적 단견이 장차 화를 부를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점이다. 이번 국회의원 재보선의 경우, 독자 당선 가능성이 높아진 특별한 정치적 조건에서 민주당의 수도권 독식이 가능했지만, 앞으로의 선거에서도 상황이 이렇게 진행되리란 보장이 없을 뿐더러, 특히 내년 6월의 지자체 선거는 야권 후보 단일화가 없으면, 싸워보나 마나 한 선거가 될 것이 자명하고, 2012년 대선에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민주당은 야당 중 맏형에 해당하는 제1야당이다. 틈 날 때마다 '반MB 연대'를 주장하며 야권 연대의 구심을 자처해왔던 터였다. 그런데 안산 상록을 선거구에서 국회의원 의석 하나를 더 얻겠다고, 한나라당과 박빙의 경합을 하던 수원 장안과 양산 선거구에서 민주노동당의 양보를 얻어낼 수도 있었던 '안산 상록을 선거구에서의 대승적 양보'를 끝내 거부하고,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제 갈 길을 가고 만 것이었다. 민주당은 수도권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긴 하였으나, 결국, 야권 연대의 틀이 크게 훼손되었고, 민주당에 대한 진보진영의 정치적 불신이 매우 커졌다. 소탐대실이란 말은 이런 경우에 적합하다.

▲ 수원 장안에서 이찬열 후보 지원 유세를 펼치고 있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와 정세균 민주당 대표. 지난달 28일 치러진 재보궐 선거에서 민주당은 수도권에서 승리를 거뒀으나, '반MB 연대'의 구심점을 자처하기는 어려워졌다. ⓒ뉴시스

아마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다가오는 2012년 대선에서 민주당과 진보개혁정당이 모두 대통령 후보를 낼 경우, 한나라당이 승리하게 될 것이다.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진보개혁 정치세력이 각각 후보를 내는 대통령 선거에서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독자적 힘으로 승리한 경우는 2002년 대선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이제 '비판적 지지' 유형의 정치 시나리오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는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 사회가 경제사회적으로 지나치게 양극화되어 버렸고, 전통적인 '민주 대 반민주' 구도의 안이한 해법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진보적 의제가 너무 많아졌다.

민주당이 2012년 대선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최소 10%에 달하는 진보개혁정당 지지 유권자의 표를 반드시 얻어내야 한다. 그런데 이들 진보개혁정당 지지 유권자들은 진보개혁정당이 대선 후보를 내는 한, 진보개혁정당 후보에게 투표할 것이 분명하다. 대부분의 진보개혁정당 지지 유권자들은 이제 더 이상 한나라당과 민주당 간 대결 구도의 긴박성을 이유로 자신의 지지 정당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고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하는 일을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소한 이들 진보개혁정당 지지 유권자들은 스스로 진보 후보 지지를 포기해야 할 만큼 한나라당과 민주당 간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음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당이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진보개혁정당과 전략적 제휴를 하는 수밖에 없다. 가장 가능한 길은 연합정권을 창출하는 것이다. 연정을 하기 위해서는 평소 정치적 신뢰를 쌓고, 정책적 연대의 경험들을 통해 최대한 합의할 수 있는 공동의 정책 강령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10월 28일 재보선은 이를 실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나, 민주당은 이를 놓쳐버렸다.

이제 내년 6월의 지방선거가 남아있다. 민주당이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욕심과 근시안적 사고에 사로 잡혀 진보개혁정치 진영과의 '통 큰 연대'를 거부한다면, 지방선거의 패배뿐만 아니라 이후의 총선과 대선에서 참혹한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10월 28일 재보선에서 드러났듯, 최근 진보정당들의 실력이 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가중되는 신자유주의 양극화의 고통과 불안으로 민생이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고, 여당과 제1야당이 연일 죽을 쑤고 있음에도, 진보정당의 존재감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이대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널리 퍼져있다. 힘을 한 곳으로 모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대세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의 생각도 같다.

그런데 최근 민주노총은 위원장이 직접 나서 연일 진보양당의 재결합을 촉구하고 있고, 이를 위한 10만 명 서명운동을 벌인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무슨 효험이 있겠는가? 회의적이다. 진보양당이 쪼개질 때의 잡음과 갈등은 이미 언론을 통해 세상이 다 알고 있는데, 이 두 조각을 원래대로 끼워 맞춘다고 통합의 시너지가 있을 리는 만무하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제3세력의 등장이다. 시민사회가 이 일을 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그 가능성에 대해 기대하는 시나리오다.

그런데 두 가지의 문제가 있다. 하나는 시민사회가 아직까지도 애매한 '중립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시민사회의 원로와 중진들로 구성되어 출범한 '희망과 대안'도 그렇다. 스스로가 나서서 정치적으로 결사하고 뭘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필자는 '희망과 대안'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 이어 제3의 진보정치세력으로 나서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런데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다른 하나는 시민사회가 민주당과 진보정당들 사이에서 모호한 줄타기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급하게 시민사회의 진보적 정체성을 확고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 또한 쉽게 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진보개혁정치 진영이 지금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양립 체제로 총선과 대선을 맞을 수는 없는 일이다. 시민사회의 제3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들 3자가 참여하고, 이에 더해 기존의 두 진보정당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여타 좌파 세력들과 진보적 자유주의 세력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고 참여를 적극 독려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즉, 시너지 효과가 있는 범 진보정치 진영의 대통합이 요구된다. 이러한 조건에서 총선과 대선을 맞이해야, '반MB 정치 연대'를 통해, 민주당과 지금보다 훨씬 격상된 지위에서 연대 전략을 세울 수 있게 되고, 이로 인해 진보정치의 지평이 대폭 넓어질 계기를 잡게 될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문제는 당장 시민사회가 제3의 정치세력으로 집결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기존 시민사회의 관성이 잘못되었다면, 이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가올 지방선거에 시민사회의 활동가 출신 인사들과 진보 성향의 지식인들이 스스로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야 한다. 어떤 이는 후보로 나서고, 다른 이는 시민정치세력화의 열렬한 참여자가 되어야 한다.

당장,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의 진보정당들이 낼 시장후보들과 시민사회 정치세력화를 통해 나올 시장후보들이 조기에 가시화 되어야 하고, 경선에 돌입해야 한다. 그래서 최강의 진보진영 시장 후보를 선출하고, 이렇게 선출된 후보가 민주당 후보와 일전을 겨루도록 하는 기본 틀을 고민해야 한다.

일이 이렇게 진행된다면, 필연적으로 서울시장과 경기지사의 경우, 민주당은 독자후보로 당선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게 된다. 진보개혁정치 진영과 끝까지 경합으로 가는 '치킨게임'은 당장 수권정당이 되고자 하는 민주당에 치명상을 주게 될 것이다.

결국, 민주당의 입장에서도 진보개혁정치 진영과의 후보 빅딜이나 연합지방정부 구성이 최선의 대안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경우, 양 진영 간의 후보단일화는 후보의 단순 지지도를 묻는 방식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과제를 중심으로 양 진영이 미리 합의한 가칭, '복지국가 서울시정의 10대 정책 과제'를 어느 후보가 더 잘 수행할 수 있겠는지를 묻는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적 모순은 중층적이다. 분단모순으로 인한 남북 간의 평화문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고, 지난 20년 간 우리 사회가 성취한 정치적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지난 10여 년 간 지속된 신자유주의 양극화의 모순이 가중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민생의 고통과 불안이 심화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가 기존의 패러다임을 과감하게 넘어서서 '역동적 복지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진보개혁정치가 활성화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당장, 진보정당들을 포함한 진보개혁정치 세력의 '역동적 대통합'을 가능하게 할 제3의 진보개혁정치 세력이 시민사회로부터 출현해야 하는 이유다. 이제, 시민사회의 누군가가 먼저 이 일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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