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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영 경찰청장의 '버티기', 무엇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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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영 경찰청장의 '버티기', 무엇을 위해?

[기자의 눈] 무책임한 공권력이 걱정스럽다

농민 2명을 죽게 한 경찰의 총책임자인 허준영 경찰청장이 '책임지라'는 여론에 정면으로 맞서 '물러나지 않겠다'고 버틸 수 있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법률이 '2년 임기제'로 나를 보호한다?**

우선 허 청장은 법률이 자신에게 2년의 임기를 보장하고 있음을 내세우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2003년에 개정된 현행 경찰법은 경찰청장에게 2년의 임기를 보장하고 있고, 직무수행에 있어서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을 경우에 한해 국회에서 경찰청장을 탄핵소추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법률 조문을 글자 그대로만 해석한다면 취임한지 1년이 채 안 되는 허 청장의 진퇴는 본인의 결심이나 국회의 조처에 의해서만 결정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대국민 사과를 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경찰청장의 임기제를 강조했다. '허 청장의 경질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노 대통령은 "허 청장에게 책임을 묻는 게 옳으냐 그르냐는 판단을 하기 전에 지금 대통령이 제도적으로 경찰청장에 대해 문책인사를 할 수 있는 근거나 권한을 갖고 있는지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허 청장 본인은 더 직접적으로 임기제를 강조했다. 그는 노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한 뒤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임기제 청장으로서 맡은 일을 다하는 게 국가공무원으로서 대통령에 대한 충성이고 국민에 대한 충성"이라고 못박았다.

하지만 임기제의 본뜻이 정치권력으로부터 경찰의 독립성을 보호한다는 데 있다는 점에 비추어보면, 노 대통령은 물론이고 특히 허 총장의 태도는 어불성설에 가깝다. 대통령까지 직접 국민 앞에 나서서 사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경찰권 행사의 잘못'이 있었다면 경찰청장이 물러나는 것이 '상식'이다.

이미 일부 정당과 농민단체, 시민단체 등이 '버티기'에 나선 허 청장에게 다시 '퇴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를 고려하면 허 청장은 경찰 총수가 지녀야 할 덕목인 사회적 권위를 이미 잃어버리고 있다.

***경찰 내부의 '허준영 지키기' 움직임도 작용하는 듯**

왜 허 청장은 이처럼 법률의 장막 뒤에 숨어 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일까?

일각에서는 허 청장이 경찰 내부의 분위기를 무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경찰 내부에는 '정치권이 저질러 놓은 일로 발생한 시위를 경찰이 막다가 불상사가 일어난 것인데, 왜 경찰 총수가 옷을 벗어야 하는가'라는 볼멘소리가 적지 않다. 경찰청 내부 통신망에서는 허 청장의 '버티기'를 지지하는 글들도 돌아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경찰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도 경찰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그동안 검찰에 눌려 목소리 한 번 제대로 못 내던 경찰이 최근에야 비로소 검경 간 수사권 분리를 주장하는 등 오랜만에 맺힌 한을 터뜨리고 있는 마당에 경찰 총수가 사퇴하는 것은 경찰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허 청장은 취임 일성에서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전면에 내걸 정도로 검경 간 수사권 분리를 앞장서 주장해왔기에 경찰 내부에서 절대적 신임을 받으면서 경찰 자존심의 상징으로 추켜세워져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지엽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회가 지탱되는 데는 '공권력의 정당성'이 중요한 버팀목이 된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선거과정을 통해 시민의 권한이 정부에 위임되고, 정부는 위임받은 권한으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한다. 바로 이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적인 원리다.

경찰이 일반 국민과 달리 각종 장비를 들고 시위 진압에 나설 수 있는 것도, 시민들이 지나다니는 대로를 수십, 수백 대의 전의경 버스로 가로막을 수 있는 것도 시민들이 경찰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해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찰은 '시민의 공복'이다.

그런데 시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공권력이 그 권한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권한을 위임해준 주체인 시민을 죽게 했다면, 그 공권력은 스스로 정당성을 상실하면서 민주주의의 기본을 허물게 된다고 봐야 한다. 더구나 그런 공권력 행사 과정에서 저질러진 잘못에 대해 책임자가 책임을 지지 않을 뿐 아니라 대통령을 포함해 누구도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게 우리 사회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공권력 신뢰의 위기…버티는 책임자와 소실된 책임소재**

대통령의 사과 발표 뒤에 오히려 허 청장에게 사퇴를 요구하는 여론이 더 확산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한 번의 시위에서 공권력에 의해 두 명의 시민이 죽은 일이 과거 군사정권에서도 없었다는 이유에서만이 아니다. 허 청장의 '버티기'에서 국민들은 우리 사회의 시스템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우려를 느끼고 있다.

시위대가 먼저 폭력성을 띠었기 때문에 자구책으로 전의경들도 과잉진압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은 허 청장에게 사퇴를 요구하는 여론에 대응하는 논리로는 궤변에 불과하다. 폭력시위의 잘못은 그것대로 따질 문제이지, 그것을 끄집어내어 과잉진압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것은 경찰청장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경찰청장의 소임이 '시위문화의 개선'이라는 허 청장의 주장도 참으로 허술하기 이를 데 없다.

지난 2002년 10월 서울지검에서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했을 때 당시 검찰총장은 사건발생 8일만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검찰총장 역시 경찰청장과 마찬가지로 임기를 보장받는 자리다. 그런데 검찰총장은 사퇴했고, 경찰청장은 사퇴 요구를 수용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공권력의 정당성이 훼손되는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책임을 누가 어떻게 져야 하는가를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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