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이명박 대통령의 대운하 포기 선언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대운하 사업에서 4대강 정비사업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이 대통령이 하고 싶은 일을 밀어붙이는 태도는 바뀐 게 없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지난 29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전혀 반갑지 않은 대운하 포기 선언"이라는 글에서 "정부는 국민의 바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4대강 정비사업을 실질적인 대운하 사업으로 변질시켜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내가 애당초 한반도 대운하사업에 반대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경제적 효과도 별로 없으면서 환경을 대규모로 파괴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라며 "사람이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 손을 대서 생태계가 더욱 건강해진다는 것은 도대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대운하를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 속 핵심을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태도에 대해 이 교수는 "누구나 자신만의 믿음을 가질 권리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정치 지도자의 그런 믿음이 정책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때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 흔쾌히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이 지도자의 덕목"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 대통령에 대해 "아무런 의견 수렴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 붙이는 태도가 불안하기 짝이 없다"며 "이 세상의 모든 이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도 아닐 텐데, 왜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이 교수의 글 전문.
전혀 반갑지 않은 대운하 포기 선언
이명박 대통령이 드디어 대운하 포기 선언을 했다고 한다. 라디오 연설에서 대운하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소신에 변함이 없으나 자기 임기 중에는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그 동안 이 말을 왜 하지 않느냐고 비판해 오던 나로서는 가뭄 끝의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이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이 소식을 듣고 조금도 반갑지 않았다. 왜 그럴까? 내가 변덕쟁이라서 그런 것일까?
4대강 정비사업이란 말이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감추어진 대운하사업이 아니냐는 의심을 했다. 사실 의심을 살 만한 구석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그것이 대운하 사업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딱 부러진 한 마디를 요구한 것이다. 입으로만 그것이 대운하사업이 아니라고 말할 것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사업의 내용이 진정으로 그들이 말하는 '4대강 살리기'이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국민의 바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4대강 정비사업을 실질적인 대운하 사업으로 변질시켜 왔다. 그 동안 몇 차례에 걸친 예산 증액을 통해 이제 4대강 정비사업에 들어가는 직접적 비용만도 대운하사업에 예상되었던 비용의 규모를 훨씬 뛰어넘게 되었다.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낙동강의 보 설치와 토사 준설도 대운하사업 때 구상되었던 규모에 버금가고 있다. 이름만 바꿨을 뿐 정부가 원래 하고 싶었던 것을 그대로 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대운하사업 포기 선언이 생각보다 뒤늦게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정치적 타산에 능하다면 이미 오래 전에 그 선언을 했을 테니 말이다. 4대강 살리기로 위장한 상황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100% 이상 할 수 있게 되었는데 공연히 대운하와 관련지을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오히려 대운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반대파 입에 더 쉽게 재갈을 물릴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런데도 진작 대운하를 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내가 애당초 한반도 대운하사업에 반대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경제적 효과도 별로 없으면서 환경을 대규모로 파괴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로 인해 주변의 생태계가 회복불능의 상태로 망가지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사람이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 손을 대서 생태계가 더욱 건강해진다는 것은 도대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대운하사업은 이 단순한 상식에 위배되기 때문에 그것만은 절대로 안된다고 부르짖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내놓고 있는 4대강 정비사업은 별 경제적 효과 없이 환경을 대규모로 파괴할 잠재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대운하사업과 단 한 치의 차이도 없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정부가 이제는 우리 강을 살리기 위해 그 사업을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정부가 무슨 말을 하든 간에 4대강 정비사업이 주변 환경과 생태계에 대운하사업 이상의 피해를 가져올 것은 너무나도 뻔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다.
오죽하면 환경부와 국책연구소까지 환경 피해를 우려해 신중한 사업 추진을 주문했겠는가? 현 정부가 들어오면서 관료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대운하사업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 환경부 장관이 괴상한 논리로 그 사업을 두둔하고 나선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환경의 지킴이가 되어야 할 환경부까지 환경 파괴의 가능성이 있는 대운하사업에 들러리를 설 정도니 긴 말이 필요 없지 않을까?
정확하게 검증할 수 없는 일이지만, 현 정부가 들어오면서 국책연구소에 대한 통제도 강화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환경부와 국책연구소가 4대강 정비사업의 환경피해를 우려하는 보고서를 제출했다는 것은 이만저만 심각한 일이 아니다. 위기의식이 웬만큼 크지 않고서는 자신의 신상에 불이익이 올 것을 각오하고 진실을 밝히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을 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그런 보고서를 썼을 것임에 틀림없다.
정부 일각에서 제기되는 이 진정 어린 지적에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늘 하던 대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방식으로 대응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담할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할 가능성이 커 보이기 때문에 시름이 깊을 수밖에 없다. 그 동안 왜 '소통의 부족'이 언제나 현 정부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 되었을까? 정부가 환골탈태하지 않는 한, 듣기 싫은 얘기 하는 사람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언제는 대운하 포기 선언을 하라고 요구하더니 막상 선언하고 나니 딴소리 한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4대강 정비사업이란 말이 처음 나왔을 때 우리들이 대운하가 아니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라고 요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요구의 실질적 내용은 4대강 정비사업을 통해 대운하사업에 버금가는 환경 파괴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단순히 "대운하는 하지 않는다."는 말 한 마디를 듣고 싶었던 것이 결코 아니었다.
4대강 정비사업이 끝난 후 낙동강에 큰 배가 떠다니게 되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낙동강과 한강의 물길이 이어지게 될지의 여부도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4대강 정비사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환경 파괴가 발생하게 된다는 사실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미 대규모 환경 파괴가 일어난 다음에 배가 한 척도 다니지 못하는 광경을 본다 해서 무슨 위안을 얻을 수 있을까?
현재 계획대로 4대강 정비사업을 강행하면 대규모 환경 파괴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 우리들이 간절하게 바라는 것은 대운하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공허한 수사가 아니다. 4대강 정비사업으로 인해 환경이 회복 불능의 상태로 망가질지도 모른다는 우리의 걱정을 말끔히 씻어주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바다. 환경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우려가 많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철저한 재검토를 통해 국민의 우려를 씻어내겠다고 약속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믿음을 가질 권리가 있다. 대통령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 강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굳은 믿음을 갖고 있는 듯하다. 이런 믿음을 공유하는 사람도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의 그런 믿음이 정책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때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 흔쾌히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이 지도자의 덕목이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할 일이 없어 4대강 정비사업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사사로운 이득을 내던지고 이 일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의견에 겸허하게 귀 기울여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한 다음 하나하나 보완해 나가야 마땅한 일이다. 아무런 의견 수렴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 붙이는 태도가 불안하기 짝이 없다.이 세상의 모든 이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도 아닐 텐데, 왜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보를 쌓아 강물을 가둬두지 않으면 당장 내년부터 먹을 물조차 없어진다면 4대강 정비사업을 하루 빨리 서둘러야 한다. 강 바닥을 6미터씩이나 파내지 않으면 강물이 바로 썩어버려 농사짓는 데조차 쓸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한시라도 시간을 늦출 수 없다. 그러나 누가 이 말을 선뜻 믿으려 들겠는가? 분명한 사실은 그렇게 서둘러야 할 이유가 단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지금이라도 원점으로 되돌아가 작은 문제점 하나까지 세심하게 짚어 본 다음 사업의 첫 삽을 떠야 한다. 정부도 전국의 강을 따라 세워진 시멘트 구조물들이 방만하고 낭비적인 재정지출의 표상으로 두고두고 손가락질 받는 일은 원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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