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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최저임금 하한선, 법제화 필요하다"

[최저임금논란, 무엇이 문제인가③]최저임금결정 시스템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아니 그냥 역시나가 아니라 오히려 더 나빠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올해 최저임금 결정을 둘러싼 최저임금위원회 움직임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지난 5월 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많은 문제점을 노정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개선은 개선이었다. 상당 부분 형식적이긴 하지만 원하청 연대책임 조항을 만들었고 최저임금 적용대상도 확대했다. 최저임금제도가 가진 문제점의 핵심은 건드리지도 못했지만 어찌되었든 제도권 안에서 공론화의 계기를 만들었고 후일을 도모하자는 얘기로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하지만 법개정 이후 진행되고 있는 최저임금결정을 위한 논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최저임금제도의 개선은 점진적이거나 단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제도의 취지를 살릴 것인가, 아니면 그냥 죽은 채로 놔둘 것인가, 결국 ‘도 아니면 모’ 식으로 진행될 수 밖에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최저임금액이 아니라 인상률에만 주목하는 최임위**

올해도 최저임금 결정을 둘러싼 최저임금위원회의 관심사는 최저임금액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상률이 얼마냐에 쏠려있다. 노동계는 올해 9월부터 내년 12월까지 적용되는 최저임금 요구안으로 5인 이상 상용직 노동자 한달 통상임금 1,635,649원의 절반인 시급 3,900원(주40시간 기준 한달 815,100원)을 제출했다. 이에 대해 재계는 최근 3년간 섬유-고무 등 한계-저임업종 노동생산성 증가율 평균치를 반영한 시급 2,925원(주44시간 기준 한달 661,050원)을 최저임금위원회에 제출했다. 노사의 요구안을 굳이 인상률로 표현하면 각각 37.3%와 3.0%이다.

현 제도상의 최저임금 결정방식을 감안할 때 공익위원들의 판단이 어떠한가는 거의 절대적이다. 노사의 요구안에 대해 공익위원들은 지난 17일 3차 전원회의에서 최저임금 인상범위로 7.5~13.5%를 내놨다. 이러한 수치의 근거로 공익위원들은 올해 임금인상률전망치와 소득분배율 3% 개선시 요구되는 임금인상률, 그리고 이번 최저임금은 16개월분이라는 점이 고려됐다고 밝혔다.

이번 공익위원안의 경우 주40시간 적용시의 임금하락 요인들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치명적인 한계 이외에도, 실질적으로 공익위원이 결정권을 행사할 수 밖에 없는 현재의 최저임금위원회 구조하에서 공익위원안이 노사 주장의 예봉을 꺾고 공익안으로 수렴시키는 역할만을 한다는 측면에서 최저임금제도의 취지는 여전히 유실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사간에 힘겨루기를 하다가 최종적으로 공익안에 가까운 수정안을 제시한 쪽의 손을 공익위원들이 들어줌으로써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모양새가 되풀이되고, 이러한 방식은 기업의 임금교섭 방식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기’한다는 법 취지는 노사간의 힘 관계와 해마다의 경제상황에 묻혀버리는 것이다.

***공익위원의 중립성 확보로도 문제 안 풀려**

이러한 현상이 조금도 바뀌지 않고 수년째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공익위원의 중립성 문제가 거론되지만 노사 주장의 중간을 선택하거나 중재의 역할을 맡는 것이 곧 중립성과 공익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현재의 제도하에서는 공익위원의 중립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핵심이 될 수 없다. 물론 공익위원 선출권을 정부가 독점하고 있는 문제도 개선되어야 하고 공익위원 자격도 사회학, 복지학 등으로 영역을 확대해야 하지만 공익위원에 의해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구조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미봉책에 불과한 것이다.

최저임금 결정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저임금액의 적정성 중심으로 사고하지 않고 주객관적인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인상률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논의의 중심이 되어서는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저임금제도의 취지는 애초부터 기대하기 힘든 것이다.

1988년 최저임금법이 시행된 이래로 해마다 결정된 법정 최저임금은 저임금 노동자의 생계를 보장하기에 턱없이 낮았다. 전체 노동자 정액급여 평균액의 1/3 수준이고 3인 가구 월평균 가계지출액의 1/4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 사무국이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조사한 29세 이하 단신노동자 생계비가 1,135,234원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현재 최저임금 641,840원은 56.5% 밖에 안된다. 한국사회에서 노동자 한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지출해야 하는 비용의 반밖에 안되는 것이다.

이렇듯 지나치게 낮은 최저임금은 최저임금 결정방식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애초에 낮게 결정된 최저임금에서 해마다 명목임금인상률을 감안하여 최저임금을 결정해 왔으니 전체 노동자 임금과 비교할 때 절대액에서는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일반 사업장의 임금인상률과 최저임금 인상률은 처음부터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평균임금 50%로 최저임금 하한선 법제화해야**

앞서 지적한 것처럼 최저임금액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 결정방식을 보다 객관화시킬 필요가 있고, 심의 위원 개개인의 성향에 좌우되거나 노사간의 소모적인 힘겨루기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더더욱 그러하다. 그런 측면에서 전체 노동자 정액임금 평균액의 50%를 최저임금의 하한선으로 정할 것을 주장하는 최저임금연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23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최저임금연대는 최저임금의 현실화와 제도개선을 위해 노력해 왔고 최저임금수준의 결정방식과 관련해서도 전체 노동자 임금평균 50%를 하한선으로 하는 법개정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임금평균을 비교대상 기준으로 삼는다는 얘기는 최저임금 결정과정에서의 자의성을 최소화할 수 있고 상대적 저임금 해소와 임금격차 축소라는 취지를 살릴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하한선을 50%로 한다는 얘기는 현재의 최저임금액을 현실화하고 최저임금의 생활보장적 성격을 복원하기 위한 적정수준을 의미한다. OECD는 상대적 빈곤선의 기준을 ‘상용직 중위임금의 2/3’로 정의하고 있고, 서유럽 여러 국가에서도 상용직 중위임금의 1/2~2/3 수준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 최저임금 결정시 고려사항으로 노동자 생계비, 유사노동자 임금, 노동생산성 그리고 지난 5월 법개정으로 추가된 소득분배율 등이 있으나 이러한 항목들을 감안하여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는 현재의 최저임금 수준이 현실적이라는 것을 전제할 때만이 가능하다. 최저임금이 생활임금의 의미를 가질 정도의 적정수준을 유지하고 있을 때 해마다의 인상률을 앞의 기준들을 고려하여 결정할 수 있는 것이지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최저임금액을 베이스로 놓고 인상기준만을 고려한다는 것은 앞뒤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한국의 경우 사회보장제도가 극히 미비한 상황임을 고려했을 때 최저임금제도는 한계임금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활보장을 위해 매우 중요한 제도라 할 수 있다. 또한 노동조합 조직율이 12%대로 낮고,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률이 3.1% 밖에 안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최저임금제도는 노동자 내부의 임금격차를 완화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제도이다. 이러한 측면들을 고려했을 때 최저임금 현실화와 결정과정의 객관화를 위해서 평균임금의 50%를 하한선으로 법제화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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