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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적자생존? 해법은 '뭉쳐야 산다'"

[벼랑 끝 31년, 희망 없는 강의실 ⑪]

지난 2월 26일 고 한경선 교수가 자신이 수학했던 텍사스 주립대학으로 찾아가 생을 마감했다. 언론에서는 이에 대해 짤막하고 축약된 말로 그녀의 죽음을 전했고 일부 언론에서는 비정규직 교수들의 자살이 고 한경선 교수만의 일이 아니라고 전했다. <경향신문>과 에서는 비정규직 교원관련 제도가 무엇이 문제이고 법 개정이 왜 필요한지도 미약하지만 다루었다. 비정규직 교수들의 자살로 말미암아 겨우 사회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언론 보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관심은 미약하다. 설령 비정규직 교수 문제가 잘못되어도 상관없다는 사람도 있다. 자신들의 문제와 별개라는 식이다. 어쩌면 박사 학위까지 마친 사람들이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니 강단에 서는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대학이 진리의 상아탑이 아니라 계급 재생산의 공간이라고 절대다수가 생각하는 삭막한 현실이다. 일반 사람들에게 부당함을 알리고 힘을 보태달라고 하는 요청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작금의 상황이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학생은 입장이 다르다. 연 등록금 천만원 시대에 학교를 다니고 있다. 학생들 자신이 받는 수업의 절대다수를 맡고 있는 비정규직 교수 문제가 타인의 문제, 자신들과 유리된 문제가 아니다. 밀접한 문제다.

정당한 교육 서비스를 받고 있는가

가끔 학우들에게 묻는다. 과연 우리가 낸 등록금만큼 교육 서비스를 잘 받고 있는 것인가. 대답은 대체적으로 두 부류다. 물가상승률에 비해 등록금이 비싸다, 라고 답하는 부류와 그래도 좋은 환경에서 교육 받고 있다, 라고 답하는 부류. 전자의 경우는 대학 등록금에 비해 자신이 받는 교육 서비스, 수업에 불만족하는 경우가 많고 후자의 경우는 과거에 비해 좋아진 교육환경, 건물을 많이 예로 든다.

물론 좋은 교육환경을 마련하는 일도 중요하다. 좋은 시설에서 공부하는 것이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쾌적한 환경에서서 수업을 들을 때 정작 중요한 수업이 부실하다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교육이다. 경제학의 경우 세계 경제학 학회지에 논문을 등재하는 국내 교수는 극히 일부다. 국내 경제학 교수들의 대부분이 영미권의 저명한 대학에서 공부한 것과 비교한다면 미비한 수치다. 이는 자신의 수업을 담당하는 교수가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수학을 했더라도 세계 학문의 흐름에 뒤처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연구와 가르치는 것은 별개다. 하지만 한국의 대학생들은 타국의 대학생들과 비교한다면 정보의 접근 정도가 다르다. 타국의 학생들은 자신들의 교수를 통해 학문의 새로운 경향을 접할 기회가 있는 반면, 한국의 학생들은 정보의 접근 자체가 제한적이다. 선택할 수 있느냐, 선택 자체가 제한되었느냐는 큰 차이다.

여기에 대학 수업의 절대다수를 비정규직 교수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학생들의 교육권의 침해 정도는 더욱 심각하다. 비정규직 교수들은 교원지위가 없기 때문에 방학동안 수입이 없다. 학기 중에 받는 수입도 얼마 되지 않는다. 학교에 연구실도 마련 되어있지 않다. 연구가 될 리가 없다.
▲ 대학 내에 시간강사에게 주어진 공간은 공용 강사휴게실 뿐이다. 그곳에서는 연구는커녕 상담이나 휴게조차도 할 수 없다. ⓒ이광수

여건이 상대적으로 좋은 전임 교수들이 제공하는 교육 서비스도 제한적인데 그보다 환경이 더 열악한 비정규직 교수들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셈이다. 학생들은 이렇게 구조적으로 부실할 수밖에 없는 수업을 듣고 졸업한다. 매년 똑같은 수업, 연구가 답보된 교수들의 수업을 듣고 학위를 따는 것이다. 이런 교육 환경에서 글로벌 프라이드를 외치는 것은 왠지 공허해 보인다. 가끔 학교의 포탈메일을 확인하다 보면 하버드, 옥스퍼드 대학과 학문 교류를 위한 뜬구름 잡기식의 만남을 가졌다는 소식과 어떤 건물이 어떤 회사의 기부금으로 신축된다는 소식을 접한다. 과연 이러한 것들이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지표인지는 실로 의문이다.

적자생존은 답이 아니다

대학가에는 적자생존을 외치는 학우들이 많다. 학교와 재단이 부실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해도, 수업의 절대다수를 구조적으로 부실한 형태로 채워도 어떻게든 좋은 학점을 따고 장학금을 받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 하지만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장학금을 수혜 받을 수 있는 학생은 극히 일부다. 단과대 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평균적으로 한 과에 두 명 남짓 될 것이다. 나머지 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실한 교육을 받고 비싼 등록금을 내야하는 부당한 현실을 감내해야 하는가. 아니면 열심히 노력하면 자신이 그 두 명 안에 들 수 있다고 자위해야 하나. 적자생존은 답이 아니다. 설령 앞서 말한 수혜조건을 충족을 한다고 해도 학생입장에서는 부실한 수업을 받게 되면 여러모로 손해다.

과거에 비해 습득한 지식의 유통기한이 짧아졌다. 과거에는 대학에서 배운 학문이 적어도 자신이 사회에서 은퇴할 무렵까지는 유지되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과거 대학에서 배운 지식이 몇 년 사이에 사장된다. 자연 과학 뿐만 아니라 인문, 사회학도 빠르게 변한다. 과거 옳다고 대학에서 배운 사실이 몇 년 사이에 뒤집힌다. 지식의 소유 여부보다는 지속가능한 학습능력이 필요한 시대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능력을 한국 대학에서 키워줄 수 있는가, 라는 물음에 흔쾌히 대답할 수 있는 한국의 대학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한국 대학들의 수업이 비정규직 교수, 즉 교원지위가 불안정한 교수들의 수업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 유신정권 때 개정된 교육공무원 법 때문에 아직도 한국의 비정규직 교수들은 많은 차별을 받는다. 계약 연장은 전임교수에게 의존되어 있고 강의 평가도 전임교수에 비해 불이익을 받는다. 가령 전임교수는 강의 평가가 낮더라도 큰 불이익이 없지만 비정규직 교수는 일정 점수가 되지 않으면 다음 학기 수업을 할 수 없다. 이는 비정규직 교수들의 재량을 제한해 수업의 질을 떨어트리는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소위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수업, 학점 잘 주는 수업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대학 4년은 중요한 시기다. 한국에서는 거의 이 시기에 제한적으로나마 학문을 접하고 사회에서 필요한 능력을 키운다. 다른 시기에는 학문을 접하고 지속가능한 지적능력을 갖추기는 사실상 힘들다. 따라서 중요한 때에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그러한 기회 자체가 제한되는 교육환경은 학생들에게 큰 손실이다.

참여는 '복잡'한 게 아니다

입시철만 되면 고등학생들은 대학교 홍보 책자를 유독 많이 보게 된다. 많은 대학들은 본교가 우수한 교수진과 우수한 교육시설을 가지고 있고 세계 유수의 대학과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짜여있어 다른 대학과 다르게 경쟁력 있다고 학생들에게 홍보한다. 그리고 학생들은 대부분 자신의 성적 대 범위에서 사회적 평판과 학교에서 제공하는 홍보 자료를 참고해 대학을 결정한다. 그래서 입학하고 일정부분 시간이 지나기 전까지 대학 강의가 번지르르한 건물과 다르게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분명 우수한 교수진이라고 했는데 수업의 대부분을 맡고 있는 사람들은 비정규직 교수들이다. 또한 학교와 재단은 등록금 인상을 이야기 할 때 질 높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라는 말을 자주한다. 이는 학생을 소비자로 학교와 재단을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종의 교육 기업이라는 방증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등록금 인상에 반대해도 학교의 교육서비스에 불만이 있어도 학교의 안을 결국 수용하고 감내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혹여나 재학기간 동안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처음 타본 아이처럼 학교와 재단에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행위는 그들에게 어렵고 먼 이야기다. 하지만 학교와 재단이 진리의 상아탑에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자신들의 포지션을 정한만큼 학생들도 소비자로서 포지션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학교와 재단, 학생의 관계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다. 서비스에 불만이 있으면 의견을 개진할 권리가 얼마든지 소비자에게 있다. 가령, 옥션에서 개인정보 유출사고 났을 때 소비자들은 공동으로 대응해 소송을 냈다. 이는 학생들이 제대로 된 교육 서비스를 제공 받기를 요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참여 방법도 그리 복잡하지 않다. 옥션 소송의 경우도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지 않았다. 변호사를 선임하고 각자 서명과 약간의 착수금만 지불했다.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진행되는지만 파악하면 일은 별 무리 없이 진행됐고 현재까지 옥션측과 소송이 진행 중이다. 비정규직 교수문제도 마찬가지다. 학교 마다 학생회가 있기 마련이고 학생들은 학생회를 뽑고 이러한 사안에 관심을 가지고, 서명과 같은 약간의 참여만 있으면 생각보다 일이 수월하게 풀릴 수 있다. 과거 민주화 투쟁을 하던 때와 다르게 무언가 큰 결심이 필요하지 않다. 작은 관심과 행동만 있으면 된다.
▲ 학생은 시간강사 문제의 또 다른 당사자다. 학생은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참여해야 한다. ⓒ이광수

약자가 서로 연대할 이유는 충분하다

세상에는 좋은 말들이 많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 '싸워서는 안 된다' 등등 실로 많다. 나는 이런 이타적인 가치, 행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상주의자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사회적 지지, 참여를 제안할 때는 그런 이타적인 가치, 이타적인 행동을 배제한다. 사람들은 자기와 먼 불특정 다수를 위한 이타적인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지인이 다쳤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와 몇 사람을 거쳐서 아는 사람이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느끼는 감정의 기복을 살펴만 봐도 그렇다. 사람은 아무리 옳은 일이라고 해도 나 자신과 먼 일이라고 판단되면 무관심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좋은 상대방이 관심을 가질만한, 상대방의 이해득실과 공통 분모가 있어야 연대가 수월하다.

그런데 비정규직 교수문제와 대학생들은 밀접한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다. 박정희 때 개정된 현재 교육공무원 법은 개정이 필요하다. 비정규직 교수들의 교원지위를 보장해야한다. 학생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서비스 받을 권리가 있다. 학생들은 이미 물가상승률보다 높은 등록금 인상률을 부담하고, 연 천만 원의 등록금을 납부한다. 도덕적으로, 상식적으로도 둘 모두의 입장이 옳다. 하지만 이해관계자인 학교와 재단은 갑이고, 학생과 비정규직 교수들은 을이다. 소위 갑을 관계다. 사회의 기존 룰이 학교와 재단 측에 유리하다. 학생과 비정규직 교수들은 상대적으로 약자다. 이로써 약자인 둘이 서로 연대할 이유는 충분하다.

대학은 재정의 상당 부분을 학생들의 대학 등록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학생들이 비정규직 교수 측과 연대해 집단행동을 할 경우 학교의 입장이 곤란해진다. 실제로 영남 지역에서는 등록금 납부 거부 운동이 있었는데 만약 학생들의 참여가 좀 더 높았다면 일반 기업에서 노조가 파업을 하는 것보다 파급효과가 컸을 것이다. 기업의 노동자는 자신들의 노동력 제공을 제하는 것이지만 학생들의 등록금은 기업으로 치면 매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법개정 투쟁에서 대학생의 역할

비정규직 교수문제, 즉 비정규직 교수의 교원 지위 회복에 있어서 대학생들의 역할은 복잡하지 않다. 비정규직 교수문제가 자신들의 교육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비정규직 교수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시작하면 된다. 비록 학교와 재단이 갑, 학생과 비정규직 교수 측이 을이지만 학생들이 대거 관여하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현재까지 한국의 대다수 대학 재정은 대부분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대부분 충당되었다. 학생들이 집단적인 움직임을 취하면 학교와 재단은 움츠려들 수밖에 없다.

* 이 연재는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교원법적지위쟁취특별위원회의 기획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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