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인간의 폭력성, 차라리 눈을 감고 싶지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인간의 폭력성, 차라리 눈을 감고 싶지만...

[뷰포인트] 주제 사마라구 원작의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 리뷰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 251쪽에서 255쪽까지에(해냄版) 담겨져 있는 내용은 너무 괴로워서 차라리 책을 덮고 싶게 만든다. 실제로 책읽기를 몇 번 멈추게 된다. 이 부분은 수용소 내의 깡패조직이 음식물을 장악한 채 먹을 것을 미끼로 여자들에게 집단 성상납을 요구하고 또 그런 과정을 통해 여인들이 유린되는 장면이다. 눈먼자들 사이에서까지 나타나는 이 폭압적 계급의 착취는 그 어떤 디스토피아적 상상력도 만들어 내지 못할 어두운 음영을 드러낸다. 이런 세상이라면 정녕 살 가치가 별로 없다.

페르난도 메이렐레스가 사라마구의 이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을 만든다고 했을 때 그의 전작을 생각한 사람들은 아마도 매우 폭력적인 묘사가 주를 이룰 것이라고 내다봤다. 메이렐레스는 데뷔작인 <시티 오브 갓>에서 폭력을 통해 충분히 세상을 끝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다. 메이렐레스는 자신의 모국인 브라질에 마약을 둘러싼 조직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무엇보다 그 범죄단이 10세~14세의 아동들이라는 점을 폭로한 바 있다. 아이들이 소총과 건십을 들고 전쟁을 벌이는 모습은 차라리 너무 비현실적이라 오히려 '영화적'이라는 느낌을 줬다. 그의 두 번째 작품 <콘스탄틴 가드너>도 마찬가지다. 권력과 결탁돼 있는 한 다국적 제약회사 자본이 인권운동가를 살해하는 과정이 충격적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번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은, 폭력을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 데뷔작인 <시티 오브 갓>보다는 <콘스탄틴 가드너>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처럼 보인다. <시티 오브 갓>이 굉장히 직설적이었다면 <콘스탄틴 가드너>는 다소 우회적이며 생략을 통해 여백을 남겨놓는 스타일이었는데 그 둘 가운데에서 정서적으로 폭력의 공포와 그 느낌을 전달받는 데는 후자가 더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여성들이 집단으로 성폭행당하는 장면은 생략과 의도적으로 왜곡시킨 이미지, 혹은 검은 화면(극중 인물들의 시점으로 보면, 아무 것도 안보이기 때문에 당연히 스크린에는 아무 것도 안 보일 수가 있다), 여성들이 공포에 떠는 숨소리와 흐느낌, 깡패들이 동물적으로 질러대는 소리 등등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그렇게 오히려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한 장면이 더 큰 충격을 준다. 폭력이 얼마나 인간의 존엄성을 무참하게 짓밟는가의 절정을 보여준다.
▲ 눈먼 자들의 도시

<눈먼 자들의 도시>의 설정은 어쩌면 단순하다.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시력을 잃고 장님이 된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이 같은 현상은 처음엔 전염병처럼 인식돼 사람들은 정부당국에 의해 수용소에 격리된다. 단 한 사람만이 눈이 멀지 않는데 주인공 격인 안과의사의 부인이다. 남편을 사랑하는 이 여자는 스스로 수용소 생활을 자처하며 몰래 사람들을 돕기 시작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 눈먼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권력을 쥐려는 자들이 생기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가장 공정하고 평등한 룰을 통해 이상적 공동사회가 구현되야 하는 곳에서 극악한 계급사회의 악몽이 재현되는 셈이다. 권력에 대한 인간의 탐욕, 그 권력의 주변에서 기생하는 나약한 위선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세상의 타락은 정말 끝이 없음을 보여준다. 계급사회는 결코 끝나지 않는 것일까. 인간의 악마성은 없어지지 않는 것일까. 하나의 권력자가 없어지면 또 다른 대리 권력자가 나타나 사람들을 억압하는 이 악순환의 사슬은 결코 끊어지지 않는 것일까.

사라마구의 원작이나 페르난도 메이렐레스의 영화나 이런 질문에 대해 두 가지 방식의 해법을 내놓는다. 그리고 다시 역으로 질문을 해낸다. 한 가지는 인간적 해법과 질문.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종교적 해법(그렇다고 기독교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과 질문이다. 한 가지의 해법과 질문. 홀로 세상을 보는 주인공 여자는 결국 깡패 우두머리를 잔인하게 살해한다. 그녀의 선택과 행동은 과연 옳았는가. 최선이었는가. 그리고 또 한 가지의 해법과 질문.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이 모든 일이 사실은 신의 섭리에 따른 것이며 따라서 이제는 인간 스스로 몸을 낮춰 그것을 받아들이되 정화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무엇보다 신은 정말 존재하는가. 신은 정말 옳은 것인가. 세상에 대해 신은 과연 재대로 일을 하고 있기나 한 것일까.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은 결코 쉽게 읽혀지는 문체가 아니다. 다이얼로그가 모두 다 한꺼번에 붙어 있어서 읽다 보면 마치 사람들의 머릿 속 관념의 바다를 헤엄치는 느낌을 준다. 때문에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드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고 생각돼 왔다. 그런 의미에서 페르난도 메이렐레스의 뛰어난 작가적 역량은 찬사를 받을 만하다. 무엇보다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는 빛과 어둠의 예술이라는, 영화의 기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주는 작품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