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지난 15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 가운데 일부다. 여기서 큰 기둥이란 지난 13일 헌법재판소가 내린 세대별 합산 위헌 결정으로 사실상 무력화된 종합부동산세를 가리킨다.
이런 평가는 "교과서를 바꿔 쓰라는 말인가"라는 이 교수의 글 제목에서도 잘 드러난다. 헌재의 이번 결정이 경제학 교과서 수준의 상식과 한참 동떨어져 있다는 것.
이처럼 상식과 동떨어진 대목으로 이 교수가 꼽은 것 중 하나가 '공평한 과세' 원칙의 붕괴다. 이 교수는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높은 경제력을 가진 사람이 세금을 더 많이 내야한다는 '수직적 공평성'이 무너졌을 뿐아니라, 같은 경제력을 가진 사람은 같은 규모의 세금을 내야한다는 '수평적 공평성' 역시 허물어졌다고 지적했다.
아파트 등기가 부부 중 한 명의 이름으로 된 경우와 부부 공동 명의로 된 경우에 대해 각각 다른 세금이 부과된다는 것.
이런 설명에 이어 이 교수는 "부부 공동명의로 등기했기 때문에 더 가난해지기라도 했단 말인가?"라고 되물었다.
이처럼 '공평성'이 허물어진 세금 체계에 대해 이 교수가 갖는 불안감은 각별하다. 세금은 국가를 지탱하는 근간이기 때문. 이 교수는 "조세부담이 공평하게 나눠지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기쁜 마음으로 세금을 내지 않는다"며 "과거의 역사를 보면 공평하지 못한 조세부담이 왕조의 몰락을 가져온 숱한 사례들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지난 9월에도 "슬픈 종부세"라는 글을 통해 정부와 여당의 종부세 완화 움직임을 강력하게 비판했었다. (☞관련 기사: "MB정부, 최후의 안전핀까지 뽑았다")
다음은 이 교수가 홈페이지에 올린 글 전문이다.
교과서를 바꿔 쓰라는 말인가?
나는 지난 28년 동안 줄곧 대학에서 재정학 과목을 강의해 왔다. 또한 재정학 교과서를 집필해 내 강의를 직접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간접적으로 지식을 전파해 왔다. 강의를 할 때나 책을 쓸 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온 것은 학문적 진실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학자와 교육자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덕목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인간인지라 개인적인 취향이나 편견 같은 것을 갖고 있고, 이런 것들이 내가 가르치는 내용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학계에서 널리 인정되는 정설 위주로 가르쳐 왔다. 간혹 소수자의 이론을 소개할 때는 그것이 정설은 아님을 밝혀 불필요한 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들었다.
▲ 헌법재판소가 종부세에 대해 일부 위헌 판결을 내린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들이 재판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뉴시스 |
이번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에 관한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부분위헌 결정은 내가 정설이라고 믿고 있는 이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만약 헌재의 결정이 명명백백하게 옳은 것이라면 나는 교과서를 다시 바꿔 써야 한다. 그리고 그 동안 내가 전파한 지식이 옳지 못했음에 대해 내 제자들과 독자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지난 번에 쓴 "슬픈 종부세"라는 글에서 경제적 논리상 종부세 부과의 기본단위는 당연히 세대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중복을 피하기 위해 자세한 논의는 생략하겠지만, 부동산과 관련된 의사결정 단위가 세대인 만큼 과세의 단위도 세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주장의 핵심이었다.
솔직히 말해 이와 같은 주장이 이론의 여지가 없이 타당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나는 타당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다른 사람은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내 주장을 문자 그대로 뒷받침해 주는 이론을 꼭 집어 밝혀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경제학의 상식에 비추어 볼 때 타당한 주장이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따라서 헌재가 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서 특별히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그러나 헌재가 세대별 합산방식이 위헌이라고 결정을 내린 근거를 보면 명확하게 경제이론과 배치되는 부분이 있다. 어느 누구도 이 부분에 대해서만은 이견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내 믿음이다. 객관적이고 엄밀한 논의를 위해 우선 헌재가 위헌 결정의 근거로 제시한 부분을 인용해 보자.
"세대별 합산 규정은 혼인한 자 또는 가족과 함께 세대를 구성한 자를 비례의 원칙에 반해 개인별로 과세되는 독신자, 사실혼 관계의 부부, 세대원이 아닌 주택 등의 소유자에 비해 불리하게 차별 취급하고 있어 헌법에 위반된다."
경제학 용어를 사용해 표현을 바꾸면 세대별 합산 방식이 '결혼중립성'(marriage neutrality)을 위배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요지다. 그런데 이론적으로 보면 과세의 기본단위가 개인이어야 하느냐 아니면 세대여야 하느냐를 논의할 때 결혼중립성 못지 않게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또 하나의 기준이 있다. 그런데 헌재는 이 부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성급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 기준은 다름이 아니고 똑 같은 경제적 능력의 소유자는 똑 같은 조세 부담을 져야 한다는 '수평적 공평성'(horizontal equity)의 원칙이다. 과세의 기본단위를 어느 쪽으로 선택하든 이 두 가지 기준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는 없게 되어 있다. 헌재는 결혼중립성을 중시한 나머지 수평적 공평성을 무시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와 같은 현명하지 못한 선택의 결과 공평과세의 원칙은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다음과 같은 예를 보면 개인별 과세가 왜 수평적 공평성에 정면으로 위배되는지 바로 알 수 있다. 어떤 아파트 3동 501호와 502호에 사는 두 세대가 있다고 하자. 이 두 세대는 소득과 재산 등의 모든 측면에서 똑같다고 한다. 다만 한 가지 차이가 있는데, 501호는 남편의 이름으로 아파트 등기가 되어 있는 한편 502호는 부부 공동명의로 등기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두 세대는 작년에 종부세를 똑같이 5백만원씩 납부했다. 그런데 이번 헌재 결정으로 인해 502호에 사는 세대는 5백만원을 돌려 받는 반면, 501호에 사는 세대는 그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한쪽은 종부세를 안 내는데 다른 쪽만 종부세를 내는 일이 앞으로도 계속된다. 이것이 결코 공평한 과세가 될 수 없음은 구태여 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501호에 사는 사람이라면 이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어떤 감정상태가 될까?)
▲ 헌법재판소가 종부세에 대해 일부 위헌 판결을 내린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일부 시민단체들이 '종부세 취지는 정당하다'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시스 |
그럴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앞서의 두 세대가 왜 그와 같은 차별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이유를 밝혀보기 바란다. 부부 공동명의로 등기했기 때문에 더 가난해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아니면 그렇게 했기 때문에 생활비가 더 들기라도 하는가? 혹시 부부 공동명의로 등기하는 행위를 국가적 차원에서 장려해야 할 이유라도 있는 것인가? 단 하나라도 그럴듯한 이유가 있으면 한번 들어보기를 간절히 원한다. 바람직한 조세제도가 가져야 할 성격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모든 경제학자가 한 입이 되어 말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조세부담의 공평한 분배'다. 조세부담이 공평하게 나눠지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기쁜 마음으로 세금을 내지 않는다. 과거의 역사를 보면 공평하지 못한 조세부담이 왕조의 몰락을 가져온 숱한 사례들을 볼 수 있다. 조세부담의 공평한 분배가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말이다.
조세부담의 공평한 분배는 결국 납세자의 경제적 능력에 걸맞은 조세부담을 지게 만드는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은 원칙을 '능력원칙'이라고 부르는데,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세부원칙이 준수되어야 한다. 하나는 수직적 공평성(vertical equity)의 원칙인데, 경제적 능력이 더 큰 사람은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원칙이다. 또 다른 하나가 바로 앞에서 말한 수평적 공평성의 원칙이다.
따라서 조세제도와 관련해서는 이 두 가지 공평성의 원칙이 마치 헌법과도 같은 중요성을 갖는다. 어느 한쪽의 원칙이라도 어긴다면 더 이상 공평한 과세라고 부를 수 없고, 따라서 그런 조세제도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결혼중립성이라는 사소한 중요성을 갖는 원칙을 충족시키기 위해 수평적 공평성이라는 헌법과도 같이 중요한 원칙을 버렸다는 것은 불행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헌재가 그런 결정을 내릴 때 과연 이와 같은 귀결을 짐작이나 해 보았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헌재의 결정을 두둔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결혼중립성의 원칙은 헌법에 명기되어 있지만, 수평적 공평성의 원칙은 어디에도 명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결정이 불가피했다는 식으로 말이다. 나는 헌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조세와 관련된 수평적 공평성의 원칙이 명기되어 있는지의 여부를 알 수 없다. 만약 헌법 어딘가에 그런 원칙이 명기되어 있다면 나로서는 더 이상 기쁜 일이 없다.
그러나 명기되어 있지 않다고 해도 헌재의 결정이 옳지 않다는 내 믿음에는 흔들림이 없다. 만약 그 원칙이 명기되지 않았다면 너무나도 자명한 원칙이기 때문에 구태여 명기할 필요를 느끼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똑 같은 경제적 능력의 소유자는 똑 같은 세금을 내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자명한 원칙이기 때문에 구태여 이를 명기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는 말이다.
헌법 여기저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와 같은 수평적 공평성을 간접적으로 요구한 대목이 숱하게 발견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수평적 공평성의 원칙은 법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해야 한다는 요구를 뜻한다. 똑 같은 경제적 능력의 소유자가 서로 다른 세금을 내게 된다면 이 평등성의 원칙에 위배되는 결과가 빚어진다. 평등성의 원칙은 헌법의 기본정신으로 그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런 명문 규정이 없더라 하더라도 수평적 공평성은 자동적으로 전제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수직적 공평성과 수평적 공평성이 공평한 과세의 핵심적 기본원칙이라는 것은 재정학의 정설 중 정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헌재 결정은 그 중 하나인 수평적 공평성의 원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혼중립성이 중요하니 수평적 공평성 따위는 무시해도 좋다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만약 헌재의 결정이 옳은 것이라면 내가 믿고 있는 정설은 틀린 것으로 판명된 셈이다.
그러나 내 믿음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학자적 양심을 걸고 말할 수 있다. 경제이론이든 헌법이든 상식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설사 헌재가 헌법을 적절하게 해석해 결정을 내렸다 할지라도 상식에 어긋나는 결정이면 그것은 결코 올바른 것이 될 수 없다. 앞에서 예로 든 두 세대의 경우를 보면 이번의 결정이 상식에 어긋나는 것임을 너무나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더 이상의 언급이 필요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종부세가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세대별 합산과세가 문제가 되어야 할 하등의 이유를 찾아볼 수 없다. 이론적으로 보아도 그렇고 상식에 비추어 생각해 보아도 그렇다. 헌재가 하필이면 이 부분을 위헌으로 결정해 종부세를 무력화시킨 것은 불행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번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공평한 과세를 가로막는 대못 하나가 빠졌다고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오해다. 실제로 그 결정은 우리 조세제도의 허약한 공평성의 뼈대를 간신히 지켜주던 큰 기둥 하나를 뽑아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헌재의 결정은 우리 사회와 경제에 거센 회오리바람을 몰고 올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 큰 혼란만은 없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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