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전두환은 문화적 소양을 지닌 독재자였다. 대중을 지배하는 데 탁월한 효용을 지닌 문화의 가치를 그는 제대로 보았다. 그래서 '전통'과 '문화'를 입에 달고 다녔고 지금의 프로 스포츠는 그가 죄다 만들어줬으며 올림픽까지 개최했다. 온갖 국제행사도 열심히 지원했다. 광주의 피비린내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1980년 7월엔 세종문화회관에서 미인대회인 '미스유니버스'도 열렸다. '외국 손님들'이 왔다고 온 국민이 웃고 다녀야 했다.
태평성대를 알리는 '부산의 국풍'
지난 18일 토요일 저녁, 부산 전역엔 '빠방' 소리가 진동했다. 광안리 바닷가에서 광안대교를 배경으로 불꽃 축제가 열린 것이다. 45분간 8만5000발의 폭죽을 쏘아 올렸다는데 그 굉음은 부산 전 지역의 절반 이상을 뒤덮었다. 금요일에 있었던 전야제에선 3만 발을 쏘아 올렸다니 이틀간 도합 12만 발에 육박하는 폭죽을 쏘아 올렸는데 그 중엔 부산 불꽃 축제에서만 불 수 있다는 25인치짜리 '대통령 폭죽'도 쏘았다고 한다. 인터넷을 잠깐 보니 타 지역 사람들 중에 부산을 꽤 부러워하는 이들도 있는 듯하다.
씁쓸함을 금할 길이 없다. 지역의 현실이 암울하기만 한 상황임에도 불꽃 축제는 '태평성대 부산'을 상징하는 듯하다. 한 언론기사의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불꽃에 넋을 놓다.' 그렇다. 불꽃 축제는 부산 시민들의 넋이 나가 버리게 했다. 또 한 TV 뉴스는 관련 보도 제목을 "부산 광안리 밤하늘에 '희망의 불꽃'을 수놓다"로 잡았다. 그러니까 이런 그림이 나온다. 불꽃 축제는 부산시민들의 넋을 내보낸 빈 공간에 희망을 들여앉힌 것이다. '상징조작의 도구'의 범위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는다.
부산 불꽃 축제는 2005년 APEC을 유치한 것을 자축하기 위해 시작된 축제다. 45분 동안 '빠바방' 하고 끝나는 이 행사는 수십억 원의 예산이 들어간다. 2006년 12억 원, 2007년엔 16억 원을 쏟아 부은, 대표적 '뻥이요~' 축제다. 작년에도 감사원 감사에도 지적됐고 행자부도 과도한 예산집행이라 해서 재검토를 지시 했지만 결국 강행했던 부산시의 야심작이다.
그런데 올해 행사를 즈음해서는 예년과는 달리 지역언론 그 어느 곳에서도 예산의 액수를 밝히지 않고 있다. 감사원, 행정안전부에 이어 시민들도 이 행사의 효용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자 아예 예산을 공개하지 않기로 한 것 같다. 올해도 부산시 측에서는 규모를 더 키웠다 하니 20억 원은 훌쩍 넘었을 것이다. 과도한 예산이 낭비되는 과시적 행사라는 비판 외에도 불꽃축제를 보기 위해 몰려든 100만 인파로 인한 무질서와 쓰레기, 그리고 극심한 교통정체 문제는 수년째 반복되고 있지만 계속 규모가 오히려 커지는 이유는 무얼까. 도대체 이 행사 덕에 건더기(?)를 건지는 사람은 누굴까.
우리나라의 축제가 대부분 그러하듯 부산 불꽃 축제도 시민들은 보고 즐기다 들어가는 것으로 끝이지만 짭짤한 건더기를 건지는 이는 언제나 지자체장이다. 부산시장은 100만 인파 속에서 스포트라이트도 받고 개회선언도 했으니 1936년 제국경기장에 모인 8만 관중 앞에서 베를린올림픽의 개회선언을 한 히틀러도, 1982년 프로야구 개막식에서 시구를 한 전두환도 부럽지 않을 것이다.
정치인과 연예인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노출'을 좋아한다는 것 아닌가. 잊혀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지 않는가. 그래서 잊혀져 가는 연예인은 음주운전이라도 걸려서 인터넷 포털 검색순위에 오르는 자기 이름을 보고 기뻐하며 또 한 잔 한다지 않는가. 어쨌든 허 시장은 불꽃 축제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계속 가야만 한다, 쭈욱~.
그리고 모든 관주도 행사가 그렇듯 이 불꽃 축제도 결국 '집객수'로 포장된다. 100만 인파, 그리고 '뻥' 튀겨진 경제 파급 효과, 이로써 모든 게 용서된다. 그러나 이는 용감한 공무원들이 애용하는 매우 지적인 조작 전략 중 하나다. 인구 350만 부산시에서 광안리에만 100만이 몰리면 다른 지역 상권은 파리 날리는 것 모르나. 부산의 행사도 아니었지만 베이징올림픽 때문에 같은 기간 부산의 영화 상영관들이 파리 날린 것도 좀 참고하기 바란다. 축제 등의 대규모 이벤트가 항상 초래하는 불균등한 경제 효과는 이제는 더 이상 '연구'할 필요도 없는 '결론'이다.
빚더미 재정 고민 않고 축제 즐기는 부산시장
그렇다면 '불꽃만발'한 부산의 현실은 어떠한가. 1인당 GRDP(지역내총생산)는 전국 16개 시도 중 14위에 처박혀 있다. 실업률은 4% 안팎을 기록해 7대 도시 중 최고인데다 울산의 0.49%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다. 며칠 전 접한 한 신문기사는 인구성장, 재정자립, 사회복지 등 14개 항목에 대한 분석을 통해 지역 경쟁력 지표 산출에서 부산은 모두 14점을 받아 7개 광역시 중 6위에 주저앉아있다고 전했다.
한때 400만 명을 향해 달려가던 부산 인구는 전국 광역시 중 인구가 줄고 있는 유일한 도시일 뿐 아니라 그 감소율은 군계일학이다. 지금 360만 명이다. 게다가 노령인구는 10%에 달하고 있고 IMF 이후 1000개의 기업이 부산을 떠났는데 들어온다는 기업 이야기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 거의 모든 경제지표에서 부산은 바닥을 헤매고 있으니 젊은이들은 부산을 떠나고 있고, 지역에 기업이 없으니 취직이 되지 않아 부산의 대학생 휴학률은 30~40%를 오르내리고 있는 형편이다. 악순환의 전형이다. 한마디로 현재 부산은 더 이상 나쁠 수 없다고 보면 된다.
그래도 예서 말수는 없다. 부산시는 빚도 최고다. 채무액이 지난해 연말 현재 2조3063억 원으로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가장 많고 2010년까지 계속 늘어날 전망이란다. 지난 16일 부산시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부산시의 연도별 실질채무액은 2007년말 2조3063억 원으로 같은 해 부산시 예산 6조625억 원의 37%에 해당하는 빚을 지고 있는 것인데 이는 부산시민 한명 당 62만9000여 원씩의 빚을 지고 있는 꼴이란다. 부산시의 재정건전성은 인천, 대전, 울산, 대구 등에 비해서도 열악하다니 이쯤되면 침몰하는 배 갑판에서 밧줄에 묶여 있는 상황보다 나을 게 없다.
허남식, 이명박에게 배우고 전두환 닮아가나
부산은 올해 뭔가 '되는 도시'처럼 보인다. 그 일등공신은 역시 롯데 자이언츠. 그런데 롯데가 만들어낸 축제 분위기에 끼어든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허남식 시장. 그는 롯데의 준플레이오프 진출이 확정된 후 홈구장에서 열린 마지막 경기에 로이스터 감독과 함께 3만 관중 앞에서 '부산갈매기'를 열창했다. 개막전 때 허 시장은 롯데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면 관중들 앞에서 같이 부르자고 제안 했는데 이를 로이스터가 받아들인 덕에 시즌 홈 최종전에서 그 꿈을 이룬 것이다.
7년간 성적이 엉망이었던 롯데가 또 죽을 쑤면 그냥 넘어가면 되는 것이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면 8년만의 경사가 될 것이므로 축제분위기에서 노래만 부르면 되는 것이었다. 돈 들 것도, 손해 볼 것도 없는 제안이었다. 허 시장은 삼성과의 준플레이오프 때도 경기장에 나타났는데 응원단원이 소개로 박수를 받기도 했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여느 지자체장이 그렇듯 마이크를 잡고 싶었지만 그 정도로 절충한 듯 하다.
어쨌든 부산에 '롯데광풍'을 몰고 온 자이언츠경기에 앞서 현재 부산 최고의 인기인 로이스터의 곁에서 노래를 함께 부른 것은 허 시장에겐 정치적 대박이었다. 한 지역신문은 허 시장의 입이 귀에 걸리자 차기 시장 후보군 등 지역 유력 정치인들은 전전긍긍 속을 앓았다고 한다. 이들까지 포스트시즌 야구이벤트에 골몰하며 속을 태우자 괜히 섣불리 나섰다가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며 참모들이 '배가 아파도 참아라'고 말렸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베이징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의 선전 덕에 대통령의 입을 귀에 걸리게 했다던데 스포츠는 '대통령급' 입만 귀에 걸리게 하는 게 아니었다. '시장급'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이번에 확인시켰다. 그런데 허 시장의 야심은 이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딱 20년 전 전두환의 모습에서 제대로 배운 모양이다. 바로 올림픽!
9월 말 부산에서 연이어 개최된 IOC포럼과 세계사회체육대회는 2020년 하계올림픽을 유치하겠다는 부산시의 야심작이었다. 정말 올림픽유치가 코앞에 온 것 같은 들뜬 분위기가 연출됐다. 그러나 이 역시 속보이는 이벤트였다. 지역 경제도 어려운데 IOC포럼을 개최해 참가자들을 칙사대접 한 것이나, 특히 '놀이'에 가까운 각국의 전통스포츠를 소개하던, 1000명 규모의 조촐한 세계사회체육대회가 100여개국 1만명 규모의 메가이벤트로 변신한 것이 그렇다. 이름도 없던 대회를 유치해 물경 15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한 것이다. 잠재적 올림픽 경쟁도시인 토론토, 코펜하겐이나 국내경쟁도시인 평창도 아직 조용하던데 부산시는 한마디로 난리법석이다.
부산시가 이렇게 총력을 기울여 매진한 사례가 있었던가. 바닥을 헤매고 있는 지역 경제 문제에 이렇게 열심인 적이 있었던가. 하도 이상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역시 집히는 게 있다. 올림픽유치는 우리 시장의 '3선 프로젝트'다. 실제로 21세기 들어 지자체마다 불어닥친 스포츠이벤트 유치 열풍은 사실상 '선거용 프로젝트' 아니었던가.
업적 없는 허 시장 앞길에 '서민'은 '흉물'인가
동계올림픽에 집착하다 강원도민에게 '잃어버린 10년'을 선사한 강원도지사는 '평창올림픽'의 깃발을 내건 덕에 쉽게 3선에 이를 수 있었다. 부산도 새로 들어서는 시장마다 올림픽 유치를 떠들지 않았던가. 2010년 지방선거가 채 2년도 남지 않은 시장은 급할 것이다. 시장이 된 지 4년이 넘었건만 업적이라곤 아무 것도, 정말 아무 것도 없지 않은가. 한나라당 내 예선통과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제 시간이 없다. 되도 않을 시시껍절한 지역현안 붙들고 있을 것 없다. 오로지 올림픽이다.
사실 부산이 세계적 초거대도시들의 각축장인 하계올림픽을 유치할 가능성은 여름에 눈 맞을 확률에 가깝다. 유치가능성만 따지자면 평창이 훨씬 높다. 그런데도 부산시는 거짓말까지 섞어가며 올림픽 개최가 가능하다며 밀어붙인다. 한 공무원은 방송토론에서 1조5천억 정도면 올림픽을 치를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말문이 막힌다. 2004올림픽 때 아테네는 보안경비예산만 2조5천억원를 썼고 인천이 문체부에 올린 아시안게임 사업비는 4조6490억이었다.
세계사회체육대회도 그 경제효과가 2000억 원을 넘어선다는 '상상력만발'의 결과를 내놓았던데 거기에 부산시가 투입한 150억 원은 포함시켰는가. 시내 노점상들을 '흉물'이라며 쫓아낸다던데 생계를 잃은 400여 노점상과 그 가족의 경제적 피해는 계산했는가. 먹고살기 힘든 서민들이 정녕 부산시에겐 보여서는 안 될 '흉물'일 뿐인가.
올림픽 유치? 공장이나 유치해라
결국 부산은 수십조 원의 빚을 낼 수밖에 없는데 만약 부산이 올림픽을 개최한다면 이는 임진왜란 이후 최대의 재앙이 될 것이다. 그리고 폐막 후 우리의 허리가 휘도록 그 뒷감당을 해야 할 때 지금의 시장은 그 자리에 없을 것이다. 물건을 팔고는 곧 사라지는 지하철외판원이 생각난다.
제2의 도시 부산의 대학졸업생 취업률이 76%로 16개 시·도 중 11위라고 한다. 졸업생수에 비해 기업이 없기 때문이란다. 시장은 올림픽유치에 시간 뺏기지 마시고, '빠바방' 잔치판만 찾아다니지 마시고 공장이나 유치하시기 바란다. 그게 제대로 된 3선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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