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롯데에 부임하면서 강조한 말은 바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는 주눅 든 선수들에게 경기 중의 실수를 질책하지 않았고 공격적 플레이를 시도했다면 결국 실수하더라도 그의 플레이를 칭찬했다. 그러는 사이 롯데 선수들은 바뀌어 갔다. 오자마자 훈련량도 확 줄였고 자율 야구를 강조했다. 처음엔 선수들 스스로 불안할 정도였다. 그러나 로이스터는 선수들을 믿었다. 한두 번 실수 했다고, 나쁜 결과가 나왔다고 선수들을 나무라거나 내치지 않았다.
시즌 초 임경완이 클로저의 역할을 제대로 못해 말들이 많을 때에도 그를 고집스럽게 마운드에 올려보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조성환이 혼자 죽쑤고 있을 때엔 그 흔한 타순 조정조차 없었다. 다른 감독 같았으면 3번 조성환과 6번 강민호를 맞바꿨을 것이다. 또 그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선수들을 칭찬했다. 그가 롯데 돌풍의 주역이 되면서 수많은 인터뷰를 했지만 단 한 번도 선수들을 탓하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 항상 선수들에게 날아가는 비난의 화살을 잘라버리며 보호했고 그들의 장점만을 강조했다.
로이스터 vs. 히딩크
히딩크와 로이스터의 리더십을 비교하는 것도 의미 있을 듯 하다. 우선 히딩크와 로이스터의 공통점은 첫째 그들의 고집이다. 두 사람 모두 이방인이기에 국내파 감독들의 질시와 훈련방법과 경기 운영에 대한 끊임없는 비난이 있었다. 히딩크는 언론이 '오대영'이라 부르며 그를 낙마시키려고 작심한 듯 끈질기게 시비를 걸었다. 로이스터도 우리나라에서 미국식 야구는 맞지 않다는 이른바 '야구 전문가'들의 조소 어린 비평이 많았다. 처음엔 롯데 선수들조차 못미더워했다.
특히 로이스터가 대표팀 감독도 아닌 프로구단의 첫 외국인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자 일자리 빼앗긴 국내야구인들의 불만은 상당했다. 미국은 메이저리그만 30개의 감독 자리가 있고 일본 프로야구는 12개가 있지만 한국은 8개 밖에 없는 상황에서 혹 그가 성공하면 실직 신세인 국내파 감독이 더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로이스터는 뚝심으로 밀어 붙여 롯데를 전혀 다른 팀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은 항상 목표를 높게 잡았다. 줄기찬 동기 부여다. 한국이 월드컵 8강에 진출하자 많은 이들이 8강이니 됐다, 4강은 좀 미안(?)하지 않냐면서 '다~ 이루었다~' 분위기로 가려했지만 히딩크는 오히려 'I'm still hungry(나는 아직도 배고프다)'고 받아쳤다. 로이스터 역시 롯데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만족하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우리 목표는 우승'이라고 일축했다.
또 다른 공통점은 이름값에 연연해하지 않고 신인들을 선발하는 데 순발력이 있다는 점, 그리고 그들의 실력을 '확' 키워버린 것이다. 2002년의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이천수, 송종국, 김남일이 그랬다. 2008년엔 장원준, 강영식, 김주찬, 이인구, 박기혁, 손광민, 김이슬이 그랬다. 그 결과 롯데의 팀타율 .282에 팀방어율은 3.68이다. 전체 구단 중 각각 1, 2위 성적이다.
다른 점도 있다. 로이스터 역시 히딩크와 마찬가지로 카리스마를 보여줬지만 조금 다르다. 히딩크 부임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동국이 없는 공격진은 '앙꼬 없는 찐빵'이라 생각했지만 히딩크는 그를 가차없이 내보내 버렸고 겁먹은 '긴머리 소년' 안정환은 머리를 짧게 볶아 버리고는 자기 외제차 집에 두고 트레이닝센터에 걸어들어왔다. 이렇듯 히딩크의 카리스마엔 강력한 권위주의적 카리스마가 주성분이라면 로이스터의 카리스마는 온화한 카리스마라 해야 할 것이다.
히딩크는 부임하자마자 체력 훈련을 강조하고 기록을 측정, 비교하며 긴장감을 만들어냈지만 로이스터는 오자마자 자율 훈련을 실시하고 즐거운 훈련 분위기를 조성했다. 선수들 가족 이름까지 외우려 했고 오늘 피자 등 간식은 누가 살 순서냐는 식으로 선수들과 직접 소통하고 어울렸다. 물론 맨날 잘 해주기만 해서야 되겠는가. 그는 선수들의 자세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경기 중 선수들을 집합시켜 쓰레기통을 걷어차기도 하면서 다그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역시도 특정 선수를 향했다기보다는 팀 전체의 분발을 끌어내려는 충격요법, 다른 말로는 '쑈'였다.
히딩크는 선수들을 통제했고 때론 냉정했지만 로이스터는 선수들을 믿었고 온화했다. 이는 히딩크의 경우엔 각자 최고로 잘났다고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국가대표 축구 선수들을 다스려야 했고 로이스터는 오랜 세월 '밑바닥 생활'에 주눅이 든 롯데 선수들을 다뤄야 했기 때문에 생겨난 차이일 것이다. 이들 둘은 자신이 이끌어야 할 팀을 잘 이해했고 거기에 적절한 리더십을 채택한 것이다.
로이스터의 성과에 시비 걸기?
요 며칠 롯데가 예상 밖 3연패로 탈락하자 많은 야구전문가들은 '스몰볼'을 잘 모르고 데이터 야구를 무시하는 야구의 한계라며 로이스터를 열심히 씹고 있다.
'정규 시즌대로' 준PO를 대하는 '무대책 야구'로는 롯데가 질 수 밖에 없고 또 그 '고집'을 버리지 않으면 내년 롯데의 전망은 어둡다고까지 한다. 롯데가 시즌 중에 신나게 달릴 때는 그를 찬양하는 기사만 쓰다가 한 시즌 126경기의 결과는 다 어디로 보내버렸는지 세 경기만 가지고 별 소설을 다 쓴다. 로이스터가 '준비'를 안 했다는 말까지 등장하던데 도대체 전력이 앞서는 팀인데 왜 팀구성을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그런 '준비'를 해야 하나. 어떻게든 조그만 가능성이라도 찾아내 작전을 거는 '준비'는 열세에 놓인 팀이 하는 거다.
롯데의 3연패는 한마디로 운이 따르지 않은 것이다. 올림픽 직후 슬럼프에 빠졌던 롯데가 시즌 후반 11연승을 거둔 것 역시 당시엔 운이 따랐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선동렬 감독과의 벤치 싸움에서 졌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역시 동의하기 힘든 이야기다. 스몰볼과 빅볼의 차이는 기본적으로 이런 거다. 스몰볼은 감독이 자신의 능력으로 경기를 이기려 들 때 등장하게 된다. 당연히 선수들의 실력이 못 미더운 감독이 시도한다. 반면 빅볼은 선수들의 능력으로, 선수들로 하여금 이기게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일본야구의 영향도 있지만 또 오랜 세월 감독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환경이 지속됐기에 스몰볼에 익숙하고 빅볼은 어색하다. (사실은 모르는 거다.) 특히 이기면 감독 탓이고 지면 선수 탓으로 돌리는 한국 야구의 오랜 관행은 감독으로 하여금 스몰볼을 더욱 애용하게 만드는 텃밭이 됐다.
몇몇 야구인들 역시 단기전은 데이터 야구에 기반한 스몰볼이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데 한번 기억을 더듬어 보시라. 실력이 뒤지는 팀이 변칙위주의 스몰볼로 성공한 사례가 머리 속에 강렬하게 남아서 그렇지 결국 원래 실력대로 판가름 난 경기가 훨씬 더 많다. 감독이 자꾸 작전 걸면 성공한 확률은 얼마나 될까. 김인식감독은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진 경기를 감독이 이기게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감독 때문에 다 이긴 경기가 뒤집히는 경우는 숱하게 봤다"고 말이다. 또 '자율야구,' '신바람야구'로 'LG신드롬'을 일으키며 우승을 차지한 이광환감독이나 이른바 '휴먼야구'로 WBC에서 미국, 일본을 연파하며 돌풍을 일으킨 김인식감독의 경기운영방식이 김성근, 선동렬감독의 그것보다 쳐지겠는가.
나는 당신이 지금 이 순간 던질 질문을 알고 있다. 한국야구가 철저한 스몰볼로 미국, 일본을 이긴 것은 뭐냐는 것 말이다. 그걸 몰라서 묻는가. 그쪽 선수들 중엔 올림픽 출전에 시큰둥 하거나 부상 염려하며 '살살' 뛰는 선수들이 상당수다. 그렇다면 한국선수들은? 걱정마시라. 죽을 힘을 다해 뛴다. 병역면제를 위해. 지면 군대 간단 말이다. 박찬호는 98년 아시안게임에서 어깨도 안 좋았는데 사력을 다해 던져 자기 문제 스스로 해결했고 올해 베이징에서 이승엽이 대회 중반까지 부진으로 인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것도 다 군면제 대상 후배들 때문이었다. 기억 나는가. 카메라 앞에서 펑펑 울 정도로 말이다.
롯데의 숙제
이번 준플레이오프를 보자. 많은 이들은 롯데의 타자들이 삼성 투수를 공략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3연패 했다며 타자들 이름까지 거명하고 또 단기전의 특수성을 모른다며 로이스터의 한계를 지적했다. 롯데 타자들은 제대로 쳐냈다. 삼성을 상대로 1차전 9안타, 2차전 12안타, 3차전 9안타를 쳤다. 아쉬운 점은 그러는 동안 3점, 3점, 4점 밖에 얻지 못했는데 삼성은 19안타에 12점, 9안타에 4점과 6점으로 타격에서 집중력을 보였다는 점일 것이다.
롯데의 결정적 패인은 선발투수진이 무너진 것이다. 사실 점수는 선발투수진이나 불펜투수진이나 구별 없이 내줬지만 5회를 버틴 선발투수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 첫 번째 결정타였고 두 번째 결정타는 준플레이오프 들어 갑자기 '볼넷공장'이 돼버린 것이다. 1차전 7개, 2차전 8개, 3차전 9개로 모두 24개의 사구를 내줬다. 로이스터의 말대로 사구를 이렇게 내주면 이길 수가 없다.
얼마나 동의할 지 모르겠지만 또 하나의 결정적 요인은 선수들의 긴장인데 특히 (올해 롯데돌풍을 이끈 본인에겐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경기전 기자회견에서 조성환이 한 발언이다. 롯데 주장인 그가 "많이 긴장되지만 내일 경기에서는 절대 긴장하지 않겠다"고 말하자 삼성의 주장 진갑용이 "막상 경기에 들어가면 엄청나게 긴장될 것"이라며 "나는 매년 큰 경기를 해 왔기 때문에 자신있다"고 선방을 날린 것이다. 진갑용의 재치는 둘째 치고 조성환은 주장으로서 그런 얘기를 사석에서도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선수단 간 평균적(?) 긴장도는 포스트시즌 경험이 없는 롯데가 당연히 높았겠지만 그래도 롯데선수들은 기세등등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결전의 날을 기다렸을 텐데 조성환의 이 발언은 선수들의 긴장감을 증폭시켰을 것이다. 선수들은 이 둘간의 대화를 곱씹게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긴장은 자동화(?) 된다. 롯데의 선발투수진이 초반부터 헤매고 특히 제구력 불안으로 사구를 남발한 것은 스포츠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초킹(choking, 숨막힘 또는 목이 메임. 스포츠 경쟁상황에서 지나친 긴장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을 뜻함) 상태에 들어간 게 아닌가 싶다. 축구 페널티킥에서 골키퍼보다 키커가 더 부담을 갖듯이 야구에서도 타자보다는 투수가 더 긴장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홈경기 부진, 노래방에서 공부 되겠나
'패인'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사실은 이해하기 힘든 롯데의 홈경기 성적이다. 방문경기 성적은 37승 26패인데 반해 홈경기는 32승 31패라는 점은 프로야구단의 성적으론 생각하기 힘든, 어쩌면 있을 수 없는 성적이다. 특히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홈경기는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경기다. 미국의 경우 NBA플레이오프나 월드시리즈의 최종전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이라면 대부분 홈경기를 네 번 하는 팀이 홈경기만 쓸어담아 승리할 정도다. 일본도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롯데가 어웨이에서 더 힘을 내고 홈에서 반타작에 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롯데팬의 너무나도 열광적인 응원을 한번 생각해 본다. 선수들 중엔 경기에 나서면서 집중하기 위해 인스턴트 커피 다섯 개를 한꺼번에 들이키고 나서는 이도 있다. 그런데 롯데의 팬들은 타석에 나서는 모든 롯데선수에게 응원가를 사직야구장이 떠나갈 정도의 앰프반주에 실어 쏘아보낸다.
사직구장을 두고 지구상 최대의 노래방라고 하는데 극도로 집중해야 하는 선수들에게 과도하게 기계까지 동원해 응원하는 것은 선수들의 집중을 방해하고 경기력을 끌어내리는 역할을 할 뿐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외국의 경우도 경기 막판 결정적인 순간쯤 돼야 관중들이 박수와 함성을 보내는 정도이지 대부분의 경우 노래를 부르지도 거기에 앰프를 사용하지도 않는다. 아마도 일본이 노래와 구호를 좀 활용할 것이다. 절박한 순간에 앰프소리에 맞춰 2만5000명이 온 힘을 다해 노래를 부르면 선수는 정신 없다.
로이스터, 지금 모습 그대로 내년에 우승하자
나는 로이스터가 어떤 비판에도, 어떤 스몰(?)스러운 기사에도 흔들리지 말고 올해와 같은 운영방식으로 내년 시즌을 이끌었으면 한다. 당장의 성적에만 급급해 선수의 육성이나 부상관리도 제대로 안 하는 한국야구에 제대로 된 팀 재건(Rebuilding)이 무엇인지 한수 던져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프로스포츠 통털어 프로구단다운 운영의 가능성을 가진 팀은 롯데 뿐이다. 부산시와의 조화가 어느 정도 잘 이루어질지가 관건이겠지만 한국스포츠 최초의 상품다운 상품이 될 가능성을 지닌 구단이다.
올해 젊은 선수들이 일취월장 했고 내년 손민한이 다시 최고투수답게 제몫을 해주고 정수근이 돌아오면 롯데는 우승전력이다. 조성환은 우승팀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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