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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한' 매력녀…그 여자의 속은 숯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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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한' 매력녀…그 여자의 속은 숯덩이"

[일과 희망·32] 원래부터 '편안한' 여자는 없다

시대가 변하면서 남성과 여성의 이상형은 바뀌고 있다. 이러한 이상형은 바뀌고 있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남성 1인 생계부양자 가족이 지배적이고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통하던 시대에는 여학생의 희망사항에 당당하게 '현모양처'가 등장하곤 했다.

이제는 현모양처라고 당당하게 밝히는 여성은 누군가의 '처(妻)'가 되기조차 힘들다. 남성도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시대의 덤불을 함께 헤쳐 나갈 인생의 동반자를 원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남성은 자기 일에 열심인 여성에게, 여성은 자신의 일을 이해해주고 자신의 어려움에 귀 기울여줄 수 있는 자상한 남성에게 매력을 느끼기 쉽다.

서점가에는 '어떻게 하면 남성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여성이 될 수 있는지'에 관한 책들이 즐비하다. 세련된 연애를 하고픈 여성은 남성의 심리를 배우기 위하여 열심이다. 상대적으로 '어떻게 하면 여성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남성이 될 수 있는지'에 관한 책들은 빈약하다. 남녀 간 불평등한 성별 권력 관계를 반영하여 여성은 남성과의 좋은 관계를 위하여 더욱 많은 노력,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최근 남성이 찾는 여성의 매력은 편안함이다. 편안함은 치열한 경쟁시대의 전사로서 여성에게 바라는 매력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상냥하고 친절한 여성? 여성은 지금 '감정노동'에 고달프다
▲ 상대방에게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상냥하고 친절한 여성. 알고 보면 그 여성의 속은 타들어 갈대로 타들어가서 시커먼 재가 되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진은 지난 설 직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에서 한복을 입고 고객에게 인사하는 안내 직원의 모습. ⓒ연합뉴스

상대방에게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상냥하고 친절한 여성. 아마도 남녀노소를 떠나 누구나 호감을 가질 법한 여성이다. 알고 보면 그 여성의 속은 타들어 갈대로 타들어가서 시커먼 재가 되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혹은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거나.

이 사회가 여성에게 구하고자 하는 편안함은 여성성의 특성도 아니고 타고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여성은 타인을 배려하며 보살피고자하는 의도를 갖고 자신의 감정 상태를 통제하는 감정노동(emotion labor)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신분은 역사적으로 감정노동을 하도록 훈육하는 체계를 가져왔다. 한국 사회는 유교 가부장제의 영향으로 인해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 조건에 처해 있었다. 유교를 비롯한 전통 사상은 마음 수양을 강조하고 있는데, 위계적인 사회 관계의 정치학 속에서 그것은 소외된 감정 노동으로 나타난다. 불평등한 관계의 대표적인 예로서 부부 관계, 부자 관계, 군신 관계가 있는데, 여기서 공통되는 것은 아내, 자녀, 신하가 윗사람의 허물이나 횡포에 대해서조차 너그럽게 이해해야만 했다는 점이다.

부계 가족 제도는 여성으로 하여금 불만을 참고 애정을 키우는 감정노동을 부과하고 있고 이러한 감정노동은 여성 개인이 처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한 필요이다. 부계 가족 제도는 여성에게 자기 자신이 아닌 부계 가족의 대변자로서의 감정과 이해 관계에 따라 느끼고 행동하도록 강제하는 구조이고, 여기서 여성의 감정 노동은 가족이라는 집단의 통합을 낳고 갈등을 최소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부인의 모임에 남편은 왜 안 나올까?

상대방에게 편안함을 주는 감정노동을 하지 않는 미혼 여성은 '성격 괴팍한 까칠한 여성'(반대로 그런 남성은 단지 '무뚝뚝하다'라는 평가를 받는다)이라는 오명을, 비혼 여성은 '노처녀 히스테리'(반대로 '노총각 히스테리'라는 말은 없다)로 이야기되기도 한다.

힘의 관계에서 여성은 일상적으로 감정적으로 자신의 표정과 마음을 다스리는 노동을 체화해간다. 가령 일반적으로, 부부동반 모임이라 하면 남성끼리의 모임에 여성이 끼는 것이다. 여성은 단지 남편 동료뿐아니라 처음 보는 그들의 부인과도 때로는 불편함을 감수하고서 웃음띤 얼굴을 하고 어색함을 무마해야만 하는 감정노동을 한다.

부인끼리의 모임에 배우자 남성이 끼는 경우는 드물다. 왜냐하면 남성은 어색함을 무릅쓰는 감정노동을 굳이 할 필요를 못 느끼기 때문이다.

이성애 관계의 연애 관계가 종료하면 헤어진 이유야 어찌되었건 남녀 모두에게 상실의 아픔이 자리 잡는다. 그러나 실연의 아픔을 빨리 정리하는 쪽은 여성인 경우가 많다. 관계 속에 있을 때는 모진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받아도 티내지 않고 상대방을 보살피는 쪽은 여성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남성은 관계를 보살피는 노동에 적극적이지 않다. 그러다가 관계가 끝났을 때 더욱 아쉬움을 느끼는 쪽은 남성일 수 있다. 여성은 피곤한 감정노동으로부터 해방되었지만 그러한 노동의 수혜자였던 남성은 허전함이 더 강할 수 밖에.

편안함은 타고난 여성성의 특성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수행하는 여성의 감정노동은 일상적인 연애관계에서부터 노동시장의 업무에까지 깊이 스며들어 있다. 특히 백화점 판매원, 승무원, 간호사 등의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업무 능력은 감정노동을 잘하는지의 여부이다.

편안함은 타고난 여성성의 특성이 아니다. 하루에도 참을 인(忍)자를 열 번도 더 새기며, 가슴이 새카맣게 숯 덩어리가 되고 있는 여성들이 수행하고 있는 감정노동인 것이다. 성차별의 지표인 남녀간의 임금격차가 전세계적으로도 매우 심각한 한국사회에서 시급하게 해결해야할 과제는 여성들의 노동에 대한 재평가이고 감정노동에 대한 인식과 제고는 반드시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여성들은 지친 자신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남성, 사회를 좀 만나고 싶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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