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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거래? 스테로이드의 치명적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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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죽음의 거래? 스테로이드의 치명적 유혹

[정희준의 어퍼컷·20] '약'으로 '몸' 만드신다고요?

지금 미국 프로스포츠가 약물파동으로 발칵 뒤집어졌다. 이른바 '미첼 위원회'라 불리는 메이저리그 금지약물 조사위원회는 프로야구선수 88명의 약물복용 사실을 밝혀냈다. 그 중에는 사이영상 7회 수상에 빛나는 미국 야구의 살아있는 전설 로저 클레멘스를 비롯해 배리 본즈, 호세 칸세코, 제이슨 지암비, 앤디 페타이트 등 7명의 역대 MVP와 10명의 역대 홈런왕이 포함되어 있다.

90년대 말 추락하던 미 프로야구의 인기를 다시 살려 놓은 것은 1998년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의 홈런 경쟁이었는데 이도 사실 약물경쟁이었다고 한다. 이들과 더불어 2001년 서른일곱 나이에 73개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다시 쓴 본즈의 공통점은 갑자기 거구가 되면서 불세출의 홈런타자가 됐다는 점이다. 이들 모두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면서부터 몸이 급격하게 거대해졌고 체중이 10㎏ 이상 불었다. 이는 운동만으로는 불가능한데 특히 운동을 직업으로 하는 선수들이 갑자기 몸이 불었다면 그 이유는 뻔한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단백질 흡수를 촉진시켜 체지방의 증가 없이 근육을 크게 하고 근력을 높일 뿐 아니라 집중력을 높여주고, 피로회복도 빨라지며, 공격성도 증가시키는 효력이 탁월하다. 그래서 지금은 육상의 필드경기와 단거리종목, 미식축구, 수영, 스피드스케이팅, 야구와 같이 근력이 중요시되는 스포츠의 선수들이 많이 애용한다. 또 문제가 되는 약물은 스테로이드뿐만이 아니다. 체급경기 선수들은 체중감량을 위해 이뇨제를, 손떨림과 스트레스가 치명적인 사격과 양궁선수들은 혈압강하제의 유혹을 받는다.

파우스트의 거래? 그러나 비참한 결말
▲ '미첼 위원회'라 불리는 미국 메이저리그 금지약물 조사위원회는 최근 배리 본즈를 포함해 프로야구선수 88명의 약물복용사실을 밝혀냈다. 사진은 홈런을 터트리는 배리 본즈 선수. ⓒ로이터=뉴시스

그러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분명 있게 마련이다. 신체의 구조와 기능을 강제로 바꾸는 데에는 혹독한 대가가 따른다. 스테로이드는 우선 간기능을 무력화 시켜 간염 및 간암을 유발하고 신장을 손상한다. 고혈압과 근육파열을 초래하기도 하고 급성 심장마비를 부르기도 하는 치명적 약물이다. 그 외에도 녹내장, 백내장, 탈모, 유방비대, 관절손상, 생리불순, 성장저하 그리고 짜잔~ 고환수축 및 정자감소. 재미있는 것은 복용 초기엔 성욕이 끓어오르다가 장기복용하면 남성기능 상실로 이어진단다.

미국의 미식축구 선수 중에 라일 알자도란 선수가 있었다. 80년대 중반까지 상대팀 선수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130㎏ 거구의 거친 수비수였고 많은 액션영화에도 출연해 NFL 최고의 스타였다. 그 선수는 스무 살 때부터 복용한 스테로이드로 인해 결국 뇌종양에 걸려 마흔 셋 나이에 요절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 이후 강연과 방송을 통해 스테로이드 같은 약물을 복용하지 말라고 특히 청소년들에게 호소했다. 항암치료로 다 빠진 머리에 두건을 쓰고서 말이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소원을 이렇게 표현했다. "다른 어느 누구도 이런 식으로 죽지 않는 것(No one else ever dies this way)"이라고.

다양하고도 심각한 부작용 때문에 스테로이드 복용이 만연했던 동유럽 국가들에는 현재 코치, 감독직을 수행할 50대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약물 부작용으로 1960~70년대 뛰었던 선수들이 대부분 요절했기 때문이란다. 동독에선 스포츠 의학자들이 해독제까지 개발해 선수들에게 투약했다는데 해독제보다 스테로이드가 더 셌나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보디빌딩을 하는 사람들도 유방비대를 막기 위한 약 '놀바'를 '충분히' 같이 복용해야 한다는데 스테로이드가 더 셀지, '놀바'가 더 셀지는 두고 볼 일이다. 50대쯤 되서 말이다.

심하면 목숨을 잃는데도 선수들이 약물에 손을 대는 이유는 무엇일까. 1960년대 뉴욕 양키스의 강속구 투수 짐 서튼은 자서전에서 '투수들은 20승이 보장된다면 생명을 5년 단축하는 약이라도 기꺼이 먹을 것'이라고 썼다. 미국의 한 스포츠 잡지에서 국가대표 육상선수들에게 '이 약을 복용하면 확실히 금메달을 딸 수 있는 대신 부작용으로 7년 뒤 사망한다. 당신은 복용할 것인가'라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놀랍게도 80%의 선수들이 복용하겠다고 답했다 한다. 이렇듯 운동선수들에게 성적은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남 얘기가 아니다

그런데 미첼보고서의 파장이 우리나라에까지 미치고 있다. 당장 프로야구 쪽이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내년부터는 우리 프로야구선수들도 약물검사를 받는다고 한다. 왜 당장 축구는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데 사실 야구가 훨씬 약물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종목이다. 축구는 쉴 새 없는 지구력이 중요하지만 야구는 순간적 파워와 집중력, 그리고 정확한 타이밍이 중요하다. 그래서 야구선수 중엔 30~40배의 효력을 가진 고농축 카페인을 복용하는 선수들도 있는데 어떤 국내 선수들은 경기전 일회용 커피 너댓개를 물에 풀어 단번에 들이키기도 한다.

1990년을 전후해 한국 프로야구에서 무시무시한 장타력을 자랑했던 롯데의 펠릭스 호세도 약물을 복용했다 한다. 그것도 사람용이 아닌 경주용 말이 먹는 스테로이드를. 이 때문에 결국 죽음에 이른 사례가 바로 2003~2004년 역시 롯데에서 뛰었던 용병 이시온(마리오 엔카르나시온)이다. 그는 2005년 대만 프로야구팀의 숙소에서 입에 거품을 문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사인은 독극물에 해당하는 약물복용이었다. 그 역시 한국에서 뛸 때부터 경주마용 스테로이드를 먹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프로야구도 외국용병선수들을 들여오고 특히 해외전지훈련을 미국으로 가기 시작하면서부터 금지약물에 손을 대는 선수들이 늘었다고 한다. 특히 FA제도가 도입되고 대박을 터뜨리려는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그 유혹은 참기 힘든 것이 되어가고 있다. 최근엔 갑자기 몸이 두꺼워진(?) 선수들이 팀에 한두 명씩 생기면서 스테로이드 복용에 대한 의구심이 더욱 늘고 있는 상황이다.

번식하는 '치명적 유혹'
▲ 우리나라에서도 보디빌딩 쪽에서 약물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스테로이드 장기복용은 몸에 엄청난 무리를 주게 되면서 노화를 촉진하고 장기가 망가지게 된다. 아놀드 슈와제네거를 우상시했던 보디빌더 안드레아스 뮌쩌는 서른하나의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 ⓒ프레시안

사실 스테로이드 등의 약물문제는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광범위한 문제이다. 10월 광주에서 열렸던 전국체전에서 우승한 국가대표 수영선수도 금지약물 복용이 드러나 메달을 박탈당하고 기록도 삭제됐을 뿐 아니라 2년 자격정지의 중형이 내려졌다. 두 명의 역도선수에겐 경고가 주어졌다. 국내 스포츠에도 확산되는 중인 것이다.

정말 문제는 스테로이드의 최근 인기가 우리가 지금 의심하고 걱정하는 수준을 넘어선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보디빌딩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보디빌딩 쪽에서 약물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코치들이 구해주기도 하고 외국에 주문해 받아먹기도 한단다. 급기야 지난 6월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제제를 오·남용의약품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향정신성의약품과 같이 반드시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만 약을 복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스테로이드 장기복용으로 인해 몸에 엄청난 무리를 주게 되면서 노화를 촉진하고 장기가 망가지게 된다. 당연히 목숨을 잃기도 한다. 모하메드 베나지자, 마이크 멘쩌, 소니 슈미트, 조니 풀러 등 90년대 최고의 보디빌더들 대부분이 스테로이드 과다복용으로 30대에 사망했는데 아놀드 슈와제네거를 우상시했던 안드레아스 뮌쩌는 서른하나의 젊은 나이에 '갔다'.

필자가 스테로이드 문제에 주목하는 것은 이런 유명선수들 때문만은 아니다. 청소년의 5~10%가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는 서구의 수준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겠지만 이제 우리나라에도 스테로이드에 관심을 갖는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메트로섹슈얼의 선구자 차인표

1994년 '사랑이 그대 품 안에'는 차인표를 스타로 만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남성의 몸'에 대한 한국인들의 시각을 확 바꿔 버렸다. 이전엔 이대근, 백일섭 스타일의 '드럼통형' 몸이 남성다움과 풍요를 상징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남성적인 몸이었다. 그러나 차인표가 셔츠 사이로 근육질의 웃통을 드러내고, 조명을 되받아 쏘며 빛을 발하는 그의 '갑빠'를 카메라가 클로즈업 하자 이 땅의 뭇여성들이 자지러진 그때부터 '바람직한 남성의 몸'은 바뀌었다.

원래 남성의 몸은 응시의 대상이 아니었다. 허름한 선술집에 걸려 있는 소주회사의 달력은 모두 여성모델의 농염함을 담고 있다. 야한 영화도 여성을 벗겼지 남성 벗기는 장면을 드물었다. 그러나 차인표가 등장하고 곧 이어 또 다른 차씨, 차승원이 등장하면서 남자의 몸도 볼거리의 대상이 되었다. 갑빠와 '왕(王)'자와 알통으로 다져진 근육질의 몸은 이제 '노가다'의 몸이 아니라 세련된 몸이 되었다. 상품이 되었다. 여성은 수영장 가겠다고 다이어트 하는 정도지만 요즘 남성은 수영장 가려고 다이어트에 운동까지 한다.

남성이 여성화되고 유니섹스 패션이 넘쳐난다. 남자가 머리 기르고 귀걸이에 화장도 한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갑빠'에 집착한다. 요즘 남성연예인을 보라. 젊은 연예인은 몽땅 '몸만들기'에 나서고 원하는 몸이 완성되고 나면 다들 경쟁적으로 사진을 찍어 매체를 통해 유포시킨다. 이런 몸을 여자만 보는 게 아니라 남자들도 들여다보며 부위별로 품평한다. 그냥 힘센 두꺼운 근육이 아니라 다듬어지고 공들여진 세련된 근육이다. 스테로이드 먹은 근육이다. 얼굴성형에 지방흡입도 하는데 스테로이드 정도 못 먹겠나.

하다못해 요즘 장난감과 만화를 보라. 죄다 갑빠에 왕(王)자다. 기준은 정해졌다. 그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뒤떨어진, 세련되지 못한, 낙오자의 몸이다. 그리고 그 기준을 요즘 청소년들은 내면화시키고 있다. 이제 헬스클럽에 가도 건강하려고, 살 빼려고 가는 게 아니라 다들 몸 만들러 간다. 아는 트레이너가 말했다. "어떻게 오셨어요"라고 물어보면 다들 "체중 좀 줄일려구요", "건강 챙겨야죠"라고 답하는데 막상 운동 가르치려 하면 다들 부위별 몸만들기만 원한단다.

다시 보자 다이어트 약, 속지 말자 대머리 약
▲ 다이어트 광고에서 애용하는 전/후 (before/after) 대비전략은 과거의 몸을 '창피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프레시안

다이어트 광고를 보라. 몽땅 과거의 몸과 대비시킨다. 전형적인 전/후 (before/after) 대비전략이다. 그러면서 과거의 몸을 창피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하긴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옛것'을 부끄러워하는 이들도 없을 것이다.

목욕탕에서 양치질을 할 때 떨어지는 치약이 배에 걸리면 놀림감 되기 십상이다. 안타깝다. 문화도, 인종도, 국적도 다양한 세상이 되었다. 당연히 몸도 다양해야 한다. 몸매가 날씬하지 않다 해서, 살이 좀 많다 해서, 허리띠 밖으로 뱃살이 삐져나와 허리띠를 감춘다 해서 차별 받고 왕따 당해서야 되겠는가.

산업사회에선 인간이 소외되고 후기산업사회에선 신체가 소외된다고들 한다. 승리를 위해, 돈과 인기를 위해, 취직을 위해, 결혼을 위해, 수영장에서의 '작업'을 위해 우리는 우리의 몸을 너무 학대한다. 그러나 약물로, 수술로 이런 것들을 얻겠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스테로이드로, 다이어트 약으로, 대머리 약으로 다시 태어나겠다고 나섰다가 심한 부작용으로 복용을 후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살 빼는 약'으로 알려진 식욕감퇴제의 소비량이 세계 3위에 오를 정도인데 그 부작용은 신경불안, 심장기능이상, 두통, 구토, 설사, 고혈압에 우울증까지 다양하고 끊기가 쉽지도 않지만 끊는 경우 요요현상에 공황장애까지 따라온다.

얻고자 하는 바로 그것을 잃는 경우도 있다. 바로 대머리 약. 남성다움과 젊음이 가버린 것으로 보일까봐 걱정하는 남성들은 대머리 약을 먹고 머리숱을 늘리려 한다. 사실 여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대머리 약의 가장 대표적이고 보편적 부작용은 바로…맙소사, 정력 감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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