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경쟁'을 통한 범여권 후보단일화를 요구하며 <프레시안>을 통해 27가지 의제를 발표했던 개혁성향의 학자 27명(진보와 개혁을 위한 의제27)이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와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하는 공개편지를 보내왔다.
이들은 "이번 대선에 민주화 세력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과 안타까움 반영된 상황이라면 권력을 야당에게 넘겨주는 것이 순리일지도 모르지만 결코 야당이 희망이 될 수는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이어 정, 문 후보를 향해 "두 분의 단일화는 너무나 당연한, 그리고 절실한 과제"라며 "수구냉전세력이 이 나라를 망치는 것에 결연히 자신을 던질 준비가 돼 있다면 이 시점에서 연대의 길로 들어서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은 앞서 발표한 27가지 정책의제 가운데 단일화를 위한 7대 의제를 추려 제시하며 "가치와 정책연대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밝혔다.
이들의 제안은 전날 백낙청 교수 등 시민사회원로들의 범여권 단일화 촉구의 연장선에서 기획된 만큼 본격적인 외부의 '단일화 압박'으로 해석된다. 특히 단일화에 적극적인 정동영 후보 보다는 미온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문국현 후보에 대한 압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문 후보 측의 한 인사는 백 교수 등의 단일화 촉구에 대해 "정동영 후보 측이 시민사회 원로들을 통해 이런 식으로 압박하는 건 온당치 않다"고 불쾌감을 표해 궁극적으로 정-문 후보 간의 접점이 도출될지는 미지수다. <편집자>
가치와 정책을 통해 국민에게 감동을 드리는 연대를 이뤄야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우리 스물 일곱명 연구자들의 마음은 처연합니다. 우리 사회의 운명을 또 한 번 변화시킬 12월 19일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두고 펼쳐진 현실 때문입니다. 연구자들로서 우리들 역시 상황이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해 적지 않은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우리 국민은 언제나 정의롭고 슬기로웠습니다. 1987년 민주 항쟁을 통해 민주화 시대를 연 것도,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해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도 다름 아닌 국민 여러분의 용기와 지혜, 그리고 무엇보다 불의를 거부하는 정의감이었습니다.
민주화 세력에 대해 국민 여러분이 때로는 실망하시고 때로는 안타까워하시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지난 10년간 최선을 다해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한반도 평화 공존을 모색해 왔지만, 동시에 양극화가 심화되고 사회 통합은 약화돼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민주화 세력의 일부는 이미 기득권 세력으로 변화돼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 진행되는 대선에는 이런 국민 여러분의 실망감과 안타까움이 반영돼 있으며, 이를 정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저희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상대의 티끌을 지적할 게 아니라 먼저 자신의 들보를 보라는 말은 바로 민주화 세력에게 주는 충고일 것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이번 대선에서 권력을 야당에게 넘겨주는 것이 순리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그렇다고 결코 야당이 희망이 될 수 없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들 중 대부분, 그리고 그들을 대변하는 대통령후보 자신은 평화공존보다는 냉전수구적 발상을 지니고 있으며, 성장지상주의로 우리사회를 더욱 극심한 양극화사회로 내몰 것임은 물론 세계화와 지식기반사회에 걸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준비할 수 있는 미래세력과는 거리가 멀기만 합니다. 물론 이들에 대한 현명한 판단은 국민의 몫이지만, 우린 이러한 수구세력의 본질을 밝히고 민주화세력이 가고자하는 길을 분명히 밝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비록 국민들에게 받아 마땅한 질타는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진정한 인간 중심의 따듯한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민주화 세력에게 아직도 회피할 수 없는 사명이 남아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건국, 산업화, 민주화의 해방 60년을 진정으로 결산하는 이번 대선은 1948년 건국에 이어 60년 만에 21세기의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 수 있는 기회입니다. 평화를 사랑하고 상생을 모색하고, 무엇보다 정의를 소중히 하는 세력이 새로운 대한민국을 이끌어야 한다고 저희는 믿습니다.
정동영 후보님, 문국현 후보님. 두 분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바로 이러한 시대적 소임을 할 수 있기 위해서 두 분의 단일화는 너무나 당연한 그리고 절실한 과제입니다. 두 분이 서로 지향하는 가치가 다르다면 각자의 길을 가야 하겠지만, 서로가 민주화세력의 정통성을 기초로 미래세력으로 나아가고자 하며, 수구냉전세력이 이 나라를 망치는 것에 결연히 자신을 던질 준비가 되어있으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로 꿈꾸는 사회가 같다면, 이 시점에서 연대의 길로 들어서 주시기 바랍니다. 진보와 개혁을 소중히 하는 사람들이라면, 연대는 더없이 소중합니다. 작은 차이 속에서 모색하는 큰 연대는 민주주의와 사회통합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대통합민주신당과 창조한국당의 가치와 정책 연대를 저희가 제안하고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차이 속에서 연대를 이뤄내고 연대 속에서 차이를 존중하는 진보와 개혁의 새로운 정치가 열리기를 저희는 간절히 바랍니다.
문국현 후보님, 정동영 후보님. 분명 이 땅에 평화를 사랑하고 진정한 개혁을 통해 인간다운 사회가 구현되기를 바라는 수많은 국민들, 그리고 진보와 개혁을 소중히 하는 사람들은 가치와 정책 연대를 통해 민주ㆍ평화ㆍ미래 세력이 하나로 되길 원하고 있습니다. 얄팍한 정치 전략이 아니라 진정성과 포용성에 기반한 새로운 정치를 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세력의 크기와 지지율의 차이를 뛰어 넘어서 누가 이 땅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지에 대한 허심탄회한 토론을 통해 가치와 정책을 중심으로 국민에게 희망과 감동을 주는 연대를 이루어 주십시오.
이에 저희 스물 일곱명의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은 후보 단일화를 위한 7대 의제들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진보와 개혁을 소중히 하는 후보라면 이 7대 의제들은 가치와 정책 연대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저희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1. 부패청산을 통한 투명사회 실현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공직사회의 투명성 확보는 필수이므로, 공직자의 반부패감시기구의 기능을 확대하고 조사권을 부여하며, 납세자소송법, 징벌적 배상제도 등을 도입하여 부패의 사전예방 및 사후처벌 강화를 확립해 나가야 합니다. 또한 민간부문에서 기득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불법적, 탈법적 시도에 대해서도 과감한 대책을 강구해 나가야 합니다.
2.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균형 발전
중소기업에 대해 평생학습이나 R&D 지원은 물론, 금융, 수출, 행정, 법률상의 전폭적 지원을 통해 경쟁력과 일자리창출력을 혁신적으로 증대해야 합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수직 관계를 수평적 분업ㆍ네트워크관계로 전환할 수 있는 기반을 확립해야 합니다. 대기업의 경쟁력 강화는 장려하되, 과도한 경제력집중을 유발하거나 불법행위나 기회편취 등에 대해 규제원칙을 고수해야 합니다.
3. 비정규직 양산체제의 해소
전체노동자의 60%선에 달하는 비정규직의 노동조건 개선과 그 규모의 축소를 위해 근본적인 정책의 전환이 요구됩니다. 이를 위해 현재의 연공서열에 따른 급여체계를 직무와 숙련, 직능 중심의 체계로 개편하며 사회보험 적용의 확대, 기업복지 격차의 축소 등을 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체제로 나아가야 합니다.
4. 교육혁신 등 사람투자
인적자본의 고양이 절대절명의 과제입니다. 기회균등할당제 도입, 내신위주의 선발, 직업중심대학 지원 등 과감한 대학의 혁신을 감행하여 공교육체계 전반의 정상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무상교육과 무상보육의 폭을 확대해 공공영역에서 아동ㆍ청소년시기에 최대의 능력개발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할당제 강화ㆍ돌봄의 사회화를 통해 여성의 경제활동참여폭을 넓히고 노인ㆍ장애인에 대한 직업능력 기회를 최대화해야 합니다.
5. 민생대책 강화를 통한 사회양극화 해소
자영업자, 5인미만 기업종사자, 실직자 등 경쟁약자에 대해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강화하여 자립능력을 고양시키며, 빈곤여성과 빈곤노인에 대한 지원체계도 적극 강화해야 합니다. 나아가 취업, 건강, 가족부양, 주거, 노후 등 민생의 불안요인을 해소함으로써 사회양극화의 심화요인을 제거해 나가야 합니다.
6. 사회적 대타협
비정규직문제를 비롯하여, 연금, 교육, 조세재정 등 매우 심각한 사회적 위기에 대한 사회적 해법을 찾고 사회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사회적 대타협기구를 상시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투명성, 일관성, 합리성이라는 신뢰의 조건을 충족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7. 평화공존체제의 정착
대북관계는 물론, 대미ㆍ대동북아관계 속에서 평화공존체제가 확립되어야 합니다. 남북경제협력을 한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평화경제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한미관계 역시 군사동맹위주에서 양국간 공동관심사에 대한 공동대처와 예방외교로 재편해야 합니다. 동북아국가들과도 다자협의체의 활성화, 비군사안보분야에서 사안별 공동안보기구로 확대하여 나가야 합니다.
정동영 후보님, 문국현 후보님. 지금 우리가 어떤 판단을 하느냐에 우리사회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저희가 바라는 것은 아름다우면서도 진정성이 담긴, 그리고 차이를 존중하면서 큰 길을 함께 가는 성찰적인 연대입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허심탄회한 토론과 논쟁을 통해 아무런 기득권이나 정략적인 이해득실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우리사회의 미래와 국민들의 희망, 그리고 민주ㆍ평화ㆍ미래세력의 소명을 위해서 위에 제시한 정책과 가치를 중심으로 단일화를 선언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국민에게 감동과 희망의 싹을 드려 실망과 허탈, 패배주의에서 벗어나와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여는 장으로서 이번 대선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두 분의 용기어린 결단만이 이 시대의 희망입니다.
진보와 개혁을 위한 의제 27
고동현(연세대, 사회학), 김근식(경남대, 정치학), 김연철(고려대, 정치학), 김영범(한림대, 사회학), 김정훈(성공회대, 사회학), 김종걸(한양대, 경제학), 김태일(영남대, 정치학), 김하수(연세대, 국어국문학), 김호균(명지대, 경제학), 김호기(연세대, 사회학), 문진영(서강대, 사회복지학), 박용수(서강대, 정치학), 박은홍(성공회대, 정치학), 박준식(한림대, 사회학), 서동만(상지대, 정치학), 서보혁(이화여대, 정치학), 손혁재(경기대, 정치학), 오현철(전북대, 정치학), 이상이(제주대, 예방의학), 이태수(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사회복지학), 임채원(서울대, 행정학), 조현옥(이화여대, 정치학), 정상호(한양대, 정치학), 정해구(성공회대, 정치학), 최태욱(한림대, 정치학) 홍종학(경원대,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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