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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깡패'보다 '민주노조'를 더 미워하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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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깡패'보다 '민주노조'를 더 미워하는 한국

[일과 희망·26] 과연 '더 나쁜 놈'일까?

한 일간지의 지난 10월 31일자 기사를 옮기면 이렇다.

"한국방송의 1직급 이상 간부급을 대상으로 하는 제2 노동조합이 30일 출범했다. 한국방송 공정방송노동조합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 본관 시청자광장에서 출범식을 열고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윤명식 위원장은 출범사에서 '한국방송의 최우선 과제는 독립성과 공정성 확보이며, 도덕성을 회복해야 한다'며 '무능한 경영진에게는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위원장은 '강동순 방송위원 녹취록 파문'의 당사자로 지난 5월 '6개월 정직' 징계를 받은 바 있다. 따라서 제2 노조는 정연주 사장을 반대하는 일부 고참사원들과 정서를 같이하고, 정치적으로는 친한나라당 성향을 띨 것으로 보인다. 1직급 이상은 모두 300여 명인데 현재 노조 가입자 수는 50~60명으로 알려졌다.

이날 출범식에는 전여옥 한나라당 국회의원, 이주천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 이석연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공동대표, 배정근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위원장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한국방송 박승규 노조위원장은 제2 노조에 대해 '편한 입장은 아니지만 교섭대상도 다르고 서로 부딪칠 일이 없을 것으로 본다'며 말을 아꼈다."


지난 10월 27일 분신한 전국건설노조 인천지부 전기분과 정해진 조합원 사건에 대해 한 인터넷 언론이 보도한 기사 내용 중 일부를 옮기면 아래와 같다.

▲ 최초 노동조합의 주요 구성원들이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이 아니었다. 숙련 노동자로부터 성장한 소생산 자영업자들이 인류 역사 최초 노동조합의 주요 구성원들이었기 때문이다. 사진은 고 정해진 씨의 동료들이 정 씨의 사진을 들고 있는 모습.ⓒ프레시안

"인천 전기분과(민주노총)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한 지 만 4개월째이던 지난 19일, 한국노총 조끼를 입은 30여 명의 신원 미상자들이 농성장에 들이닥쳐 조합원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사건이 있었다. <민중의소리> 취재 결과 이들은, 소수의 사측 관리자를 제외하고 대부분 부천 소재의 경비업체인 'ㅊ'시큐리티 대원들이었음이 확인됐다. 이 경호대원들이 한국노총에 가입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해진 씨가 일했던 영진전업을 비롯한 업체에는 실제로 한국노총 소속의 노조가 설립되어 있다. 인천 전기 노동자들의 파업 이후 만들어진 '한국노총 경인전기원노조'는 사용자의 이익 대표자가 포함된 전형적인 어용노조다. 유해성 사장의 사촌 황모 씨와 친형인 해철(영진전업 전무이기도 함)씨가 각각 노조 위원장과 사무장을 맡고 있다. 이들은 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회유·협박만이 아니라 한국노총 소속 노조로써 관제집회도 벌여왔으며, 무력동원도 잦아져 분신 당일인 27일 아침에도 충돌을 일으킨 것으로 전해졌다."


땀 흘려 일하는 '노동'과 관련이 없었던 최초의 노동조합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노동조합의 태생적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민주노총의 영문 표기는 Korean Confederation of Trade Unions이고, 한국노총의 영문 표기는 Federation of Korean Trade Unions이다. 곧 '노동조합'을 뜻하는 영어 표현이 'trade union'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trade union.

아쉽게도 이 단어들 속에는 땀 흘려 일하는 '노동'과 관련된 의미가 없다. 최초 노동조합의 주요 구성원들이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숙련 노동자로부터 성장한 소생산 자영업자들이 인류 역사 최초 노동조합의 주요 구성원들이었기 때문이다. 앞에 인용한 기사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노동조합의 영어 표현이 그렇게 자리 잡게 된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17-18세기 매뉴팩처 시대의 수공업 노동자는 특권층이었다. 그들은 당시 도시 인구의 70%를 차지하고 있던 날품팔이 대중 위에 군림하는 특권층이었다. 숙련된 기술을 독점할수록 자신들의 특권이 강화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기술을 전수하는 데에 매우 인색한 장인-도제 제도들을 만들기도 했다. 식민지 경제가 상품의 수요를 전 세계적으로 창출했지만 상품을 생산하는 숙련 노동자들은 턱없이 부족했으므로 그들의 특권은 갈수록 강화되었다. 나중에는 일주일에 4일 정도만 일했고 점심시간은 두어 시간씩 소비하기도 했다. 대 자본과의 관계에 있어 파업의 효과가 지속적으로 발휘되고 있었으니 새삼스럽게 노동조합을 만들고 단체행동을 할 필요도 없었다.

이와 같은 숙련 노동자들의 특권은 기계가 생산에 투입되면서 파괴되기 시작했다. 기계가 숙련된 노동자들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기계 파괴 운동'은 이러한 변화에 대한 특권층 노동자들의 저항이었다. 그 당시 망치를 들고 기계를 때려 부순 노동자들은 우리가 막연히 짐작했던 것처럼 "역사 속에서 헐벗고 굶주려 온 노동자 대중"이 아니었던 것이다. 특권을 상실해가는 숙련 노동자들이 조직하기 시작한 것이 인류 역사 최초의 노동조합이었다. 달갑지 않지만, 노동조합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잊지 말자, 최초의 노동조합은 진보적이지 않았다!

자본주의 체제에 이르러 임금 노동자가 광범위하게 출현하고 50년의 세월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노동자를 기계처럼 일하도록 만드는 테일러-포드 시스템(Tayler-Ford System)이 전 세계의 공장을 관철하면서 노동조합은 체제를 변화시키는 진보적 성격을 획득할 수 있었지만, 우리가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최초의 노동조합은 지금처럼 진보적 성격의 조직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 태생적 한계 때문에 수구보수 세력에 호응하는 보수적 노동조합은 언제나 출현할 가능성이 있고, 그 대표적 예가 소위 '어용노조'들이다.

사용자의 친인척들이 조직한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농성 천막을 침탈하는 일이 벌어지거나, 대기업에 고위 관리직 중심의 노조가 결성되자 출범식에 보수 정당과 우익 시민단체 간부들이 참석해 축하하는 모습이 연출되는 것 역시 노동조합이 자칫 보수화할 수 있는 태생적 위험성과 무관하지 않다.

과잉생산에 따른 이윤율 저하로 연간 수조원의 수익을 남기는 대기업도 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인 인력 구조조정과 하청업체 단가 후려치기를 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보수적 성격의 어용노조는 결국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없게 되고, 그 자리를 진보적 성격의 민주노조가 대신하게 되는 것은 역사의 순리다. 노동조합은 권력과 자본의 대척점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어용노조·용역 깡패보다 민주노조가 거부당하는 시대

문제는 민주노조들에 대한 우리 사회 대중의 정서가 어용노조들에 대한 정서보다 훨씬 더 비우호적이라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을 짓밟는 어용노조에 대한 거부감보다 민주노조에 대한 거부감이 훨씬 더 커지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벌어진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을 짓밟았다는 이유로 민주노총에서 제명당한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언론이 같은 재벌 계열회사 노동조합의 단체교섭 투쟁에 대해서는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자신을 교양인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조차 그러한 언론 보도에 별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세계사적 시각으로는 이미 '상식'에 속하는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는 아직 이해가 낮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반감까지 갖고 있다. 민주노조에 대해 "투쟁으로 회사를 말아먹는다"라거나 "공연히 정치 파업을 일삼는 체제 전복 세력"이라는 비난이 아직도 '먹어주는' 세상이다.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한 '용역 깡패'들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 대중의 정서도 마찬가지다. '반 조폭 정서'보다 '반 노동조합 정서'가 훨씬 더 큰 사회에서 '나쁜 놈'인 깡패들이 '더 나쁜 놈'인 민주노조 조합원들을 두드려 팬 것이 무슨 큰 죄가 될 수 있으랴.

"불쌍한 간호사들이 파업도 못 하냐"고 꾸짖는 유럽의 어머니
▲ 얼마 전 개봉했던 영화 <파리 여자, 뉴욕 남자>에서는 "출근길에 데모하는 노동자들 때문에 길 막히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말하는 딸에게 어머니가 "불쌍한 간호사들이 파업도 못하냐?"라고 꾸짖는 장면이 나온다.ⓒ프레시안

철도노조와 화물연대가 파업을 예정대로 진행했다면 대부분의 언론은 그 파업이 초래한 경제적 손실과 시민들이 겪어야 하는 불편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을 것이고, 대중의 정서는 "투쟁을 일삼는 과격한 노조"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찼을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러한 현상이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은 거의 비극에 가깝다.

얼마 전 개봉했던 영화 <파리 여자, 뉴욕 남자>에서는 "출근길에 데모하는 노동자들 때문에 길 막히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말하는 딸에게 어머니가 "불쌍한 간호사들이 파업도 못하냐?"라고 꾸짖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도 시골 광산촌에서 파업하다가 런던의 왕립발레학교까지 어렵사리 찾아와 면접시험을 마치고 돌아가는 광부 부자(父子)에게 교장 선생님이 "파업에서 꼭 승리하세요"라고 격려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나라 어머니들과 교장 선생님들 중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다른 나라에서는 수십 년 전에 자리 잡은 보편적 정서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특별한 소수 운동권의 정서로 취급 된다.

영화 <파리 여자, 뉴욕 남자>에서 어머니가 딸에게 "불쌍한 간호사들이 파업도 못하냐?"라고 꾸짖은 뒤에 곧바로 "여기는 미국이 아니야"라고 덧붙인다. 유럽 사람들이 미국 사회에 대해 갖고 있는 '천박한 자본주의'라는 시선은 자신들보다 잘 사는 나라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 아니다. 그런데 실제로 미국식 시장경제주의조차 한국 사회에서는 차라리 진보적이다. 미국 교사노조가 연봉 인상을 요구하면서 연례적으로 벌이는 파업에 대해 미국의 학부모들은 우리나라처럼 "교사들의 이기적 요구가 아이들의 학습권을 침해했다"고 들고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학부모들이 그 사회에도 당연히 있겠지만 우리처럼 대중의 지배적 정서는 아니다.

"언론보도보다 한국의 노동조합은 합리적이더라"는 외국인 CEO

어떤 이들은 "다른 선진국들의 노동조합은 우리나라 노동조합들처럼 전투적이고 과격하지 않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언론의 보도 등을 통해 갖고 있던 선입견보다 실제로 겪어본 한국의 노동조합들은 매우 합리적이었다"거나 또는 "과격한 노동조합이 있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회사 경영진에게 있다"고 말하는 국내 기업의 외국인 CEO들이 많은 실정이다. 지금도 프랑스의 철도와 지하철을 포함한 공공 부문 노동자들은 우리나라 어느 노동조합보다 훨씬 강도 높은 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노동자 권리에 대한 이해가 역사 속에 제대로 자리 잡아 본 경험이 없는 사회에서는 다른 나라들이 오래 전에 겪어야 했던 고민이 여전히 유효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무의미하다"는 각성이나 운동권에 대한 비난이 교양인의 단골 메뉴처럼 인식되는 현상은 우리 사회가 올바로 발전하는 방향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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