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수 노동부 장관과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 이철 코레일(옛 한국철도공사) 사장, 엄길용 철도노조 위원장은 28일 저녁부터 서울 중구 서울지방노동청에서 노동부 주선으로 4자 회동을 가진 뒤 "노·사·공익위원으로 구성된 3자 협의체를 구성하고 노사는 이 협의체의 결론에 따르기로 한다"고 합의했다.
이번 합의로 오랜 시간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했던 KTX승무원 문제와 관련해 코레일의 승무원 직접고용이든, 아니면 승무원의 코레일투어서비스(옛 KTX관광레저)로의 복귀든 최대 두 달 내에 결론이 나게 된 것. 결국 장기간 끌어왔던 KTX승무원 문제가 막판 고비에 서게 됐다.
하지만 합의 과정에서 당사자인 KTX승무원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상당 기간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1주일 내 협의체 구성, 한 달 내 다수 의견으로 결론 내린다"
이날 노사정은 다섯 시간 가까이 걸린 협상을 통해 협의체 구성에 합의를 이뤘다.
노, 사, 공익위원 각각 2명씩 총 6명으로 구성된 3자 협의체를 이날로부터 일주일 내로 구성하고 이 협의체에서 승무원의 외주화가 타당한지를 논의하겠다는 것.
협의체는 첫 회의로부터 한 달 내로 결론을 내고, 결론이 나지 않을 경우 전원합의에 따라 한 달 내로 1회에 한해 협의 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 즉, 빠르면 한 달 내로 최대 두 달 내에 어떤 방향으로든 결론을 내겠다는 계획이다.
6명으로 구성된 협의체의 결론을 다수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더불어 공익위원은 노동부 장관의 추천을 받기로 합의했다.
또 노동부발(發) 'KTX승무원 복직 합의' 소동 이날 노사정의 대표들이 만나기에 앞서 KTX승무원 문제와 관련해 합의가 이뤄졌다는 소식이 기자들 사이에 알려졌다. 내용상 모든 접근이 이뤄졌고 오후 5시 30분에 대표들이 간단한 미팅을 가진 뒤 합의내용을 발표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 하지만 같은 시간 철도노조는 이상수 노동부 장관이 '내놓은' 중재안에 대한 검토 회의를 벌이고 있었다. 철도노조의 김형균 홍보선전실장은 당시 <프레시안>과의 전화 통화에서 "합의된 내용은 없고 노동부의 중재안에 대해 여러 각도로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오후 5시 30분부터 시작된 노사정의 '간단한 미팅'은 밤 10시가 넘도록 계속됐다. 당초 알려졌던 '승무원들의 선 복귀 후 협상'이라는 내용은 철도노조를 비롯한 노사정이 '합의한' 것이 아니었던 셈이다. 철도노조 관계자 및 민주노총 관계자들은 모두 "합의는 아니었고 서로 그런 수준의 내용이 오갔던 것을 들었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최종 합의에서 '선복귀' 내용은 제외됨으로써 일부 언론의 'KTX승무원 복직 합의' 보도는 '오보'가 됐다. 그리고 이는 노동부발(發) '오보'였다.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사회적 문제가 됐던 뉴코아, 홈에버 등 이랜드 그룹의 비정규직의 홈에버 월드컵점 점거 도중 이뤄졌던 첫 노사 대표자 협상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었다. 이상수 노동부 장관이 노사 대표자의 첫 만남에 앞서 "의견 접근이 이뤄졌다"며 "노조가 내일부터 점거 농성을 풀기로 했다"는 등의 발언을 했지만 당시 이랜드일반노조와 뉴코아노조 등 협상의 당사자들은 "무슨 소리냐"는 반응을 보였었다. 당시 사회적 쟁점이 된 이랜드 비정규직 문제를 둘러싼 노사 갈등을 하루 빨리 풀고 싶은 이상수 장관의 '열의'가 오히려 노조의 강력한 반발과 사측의 발뺌을 불러와 합의를 어렵게 했다. 이날도 이철 코레일 사장은 협상 도중 기자들과 만나 "다 합의되고 발표만 하면 되는 것으로 알고 가뿐히 왔는데 노조가 상상하지 못했던 조건을 들고 나왔다"고 말해 이랜드 사태의 되풀이를 암시하기도 했었다. |
관건은 공익위원 의견…KTX승무원의 운명은?
오랜 시간 사회적 문제로 대두돼 왔던 kTX승무원 문제가 결국 이날 합의로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향해 치닫게 됐다.
이 합의에 따르면 관건은 공익위원의 의견이다. 노사가 각각 대표를 2명씩 두기로 한 만큼 공익위원들이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승무원들의 운명이 달린 것이다.
민주노총과 철도노조는 일단 "그동안 이상수 장관이 KTX승무원의 외주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혀 왔던 만큼 승무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결론이 나리라고 기대한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공익위원들이 과연 승무업무의 외주화의 불합리성을 인정할지는 미지수다. 더욱이 승무업무의 외주화가 이 협의체에서 공식적으로 '불합리하다'고 결론날 경우 파업을 벌이고 있는 기존의 승무원 80여 명 뿐 아니라 현재 코레일투어서비스라는 외주업체에 소속돼 있는 승무원들까지 코레일이 직접고용의 부담을 껴안아야 한다.
논의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된 당사자, KTX승무원
또 이번 합의 과정에서 정작 문제의 당사자인 KTX승무원들의 의견은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도 문제다. KTX승무원들은 현재 추석 연휴를 맞아 10월 1일까지 일종의 '휴가' 기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장 철도노조 KTX승무열차지부의 간부급 승무원들도 이날 오후에야 이 같은 '중재안'의 내용을 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한 달내로 협의체 논의를 통해 어떤 식으로든 KTX승무원 문제의 결론을 내기로 노사정이 합의하자 한 KTX승무원은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로 "협의체 구성을 통해 논의하자는 것은 지난 1년 7개월 간 수없이 있었던 얘기"라며 "코레일의 직접고용이 배제된 이 합의는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승무원은 "승무원들이 모두 휴가 기간 중이어서 전체 의견을 모으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이 같은 합의가 이뤄진 것은 당사자인 승무원들을 배제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주말이면 승무원들이 휴가를 끝내고 모일 수 있는 상황인데 굳이 급하게 합의를 한 까닭을 모르겠다"는 것.
승무원들 입장에서는 공익위원의 의견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모 아니면 도'로의 결론이 불가피한 이 같은 '위험한' 합의를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왜 노사정은 그토록 성급하게 '협의체 구성 합의' 만들었을까?
그렇다면 노사정 대표들은 왜 당사자인 KTX승무원들의 전체적인 의견을 들어볼 새도 없이 '성급하게' 협의체 구성이라는 합의문을 만들어냈을까?
여기에는 각각의 이해관계가 적절히 결합된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이상수 장관은 오랜 시간 사회적 문제가 돼 왔던 KTX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부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피력하고 싶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노동부 장관으로서는 승무원들이 코레일에 직접고용이 되든, 외주화가 타당하니 승무원들의 요구가 부당하다는 것으로 결론이 나든 잃을 것이 없는 셈이다. 주무부처의 책임자로서 어쨌든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는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철 사장 역시 비슷한 입장으로 볼 수 있다. 노사간 극한 대립으로 어느 한 쪽의 '패배'로 결론이 나는 것보다는 결과적으로 승무원들을 직접고용하게 되더라도 "노조의 집단행동에 밀렸다"는 비판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덜 수 있다. 노동부가 추천한 공익위원의 의견이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혹 승무업무 외주화가 타당하다는 결론이 날 경우에는 지난 1년 7개월을 끌어 왔던 KTX승무원 문제에서 코레일의 입장의 정당성을 대외적으로 인정받는 것이 된다.
철도노조 역시 최근 벌였던 이철 사장 등 경영진 퇴진 조합원 총투표에서 생각보다 낮은 찬성률을 보이며 KTX승무원 문제 해결에 딱히 출구를 찾지 못했던 점에서 이 이상의 해결책은 없다는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경영진 퇴진 찬반투표까지 한 마당에 결정적인 '반전의 기회'가 쉽사리 보이지 않았던 철도노조의 고민이 이날의 합의문에 도장을 찍게 한 셈이다.
민주노총은 물론 이석행 위원장의 주도적 노력 하에 '비정규직의 꽃'으로 불렸던 KTX승무원 문제가 좋은 방향으로 결론날 경우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상황이 된다. 최악의 경우 승무원들의 복직에 실패할 경우에도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정부 추천의 공익위원들이 비상식적인 판단을 했다'는 명분을 세울 수 있다.
결국 이 같은 각각의 이해관계에 따라 노사정 대표들이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논의한다'는 수준의 합의를 만들어낸 것이다. 각 주체들의 속내와 과정이야 어떻든 승무원들의 운명은 앞으로 최소 한 달, 최대 두 달 후 결정되게 된다.
여성 비정규 노동자 및 간접고용 노동자의 아픔을 사회 문제화 시켰던 KTX승무원 문제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그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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