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지역 단체의 시민운동가가 아시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의 수상자로 알려진 것이다. 사람들은 궁금해 했다. 항상 중앙에서 활동하는 이들에게 촉각을 곤두세우던 언론에서도 그를 궁금해 했다. 대체 그는 무엇을 했을까? 어떻게 막사이사이상 위원회가 그를 먼저 발견한 것일까?
하지만 이미 시민운동계에서는 그는 낯선 이름이 아니었다. 내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천안 YMCA를 만들어내는데 일조하고 활동했으며, 천안지역의 풀뿌리 시민단체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이하 복지세상)의 초대 사무국장을 지낸 그는 지역에 뿌리내리고 온전히 지역운동을 펼쳐온 시민운동의 그 길을 올곧이 걸어온 사람이었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 오랜 친구와 조우하듯 마음이 따뜻했다. 오랜만에 그와 지역에 대해서, 시민사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만큼 즐거운 일이었다.
지금은 복지세상을 떠나 더 많은 단체를 만들어내기 위해 지역재단에 뛰어든 그를 복지세상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를 떠올릴 때마다 항상 함께 떠오르기 마련인 더 많은 단체를 만들어내는 일, 이른바 인큐베이팅은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그만의 활동이기도 하다. 숱한 시민단체를 만들어내고 스스로 문제제기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힘을 부여하는 인큐베이팅, 출산의 고통과 기쁨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그녀를 만났다.
지역에 뿌리내리기로 결심하다
'학생운동을 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으로 나뉘던 때가 있었다.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이른바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마음의 부채를 가져야만 하던 때가 있었다. 시대가 그랬다. 윤혜란 씨는 '그렇지 않은 학생'이었다. 운동권과 아주 거리를 멀리했던 것은 아니지만 학생운동이 불꽃처럼 타오르던 80년대 적극 참여하지 못했다. 사람과 사람 간에, 마음과 마음 사이에 갈등이 많았다.
"86학번이에요. 전공필수처럼 학생운동을 하던 때입니다. 그런데 저는 적극 참여하지 못했어요. 다른 이들에 대한 부채감이 있었고, 이에 3학년 때 한 학년을 쉬면서 여러 고민을 했어요. 딱 내가 가진 몫만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천안 출신인 제가 서울서 학교를 다니면서 지방과 중앙의 격차를 몸소 체험할 수 있어서 지역운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때가 대학 4학년 때죠. YMCA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지역운동의 다양한 갈림길 중 그가 YMCA에 먼저 필이 꽂힌 것은 청소년 문제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청소년 문제에 대한 관심은 그의 동생 때문에 비롯됐다.
"넷째 동생이 고등학교 부적응자로 정학을 당했어요. 부모님을 대신해서 동생문제로 학교에 불려 다니면서 제도권에서 배제된 아이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됐죠. 제도권에서 벗어난 아이들이 다시 복귀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었어요. 이를 도와주는 단체도, 사람도 없었죠. 지역에서는 더욱 심각했어요. 이것이 졸업 후의 진로를 결정하는 계기가 되었죠. YMCA를 조직하고 오랫동안 활동했는데 YMCA의 기조를 시민운동으로 잡고 있는 시기였습니다. 기독교 계열의 시민운동 선배들을 많이 만나면서 대학 때는 방황했는데 오히려 구체적인 방향을 잡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 해서 1990년부터 3년여 동안 천안 YMCA 창립을 준비했고 93년부터 97년까지 YMCA간사로 일했습니다."
천안토박이가 다시 천안에 돌아와 지역운동을 시작했다. YMCA로 시작했던 그의 지역운동의 관심사항은 사회복지운동으로 이전된다. 그러나 청소년 문제와 사회복지운동은 큰 명맥에서 한 갈래다.
"97년 즈음 사회복지운동을 중점으로 하는 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복지세상을 열어가는시민모임 창립을 준비했고 98년 6월 창립했습니다. 그리고 2004년 말까지 복지세상의 사무국장으로 지냈죠."
윤혜란 씨를 연상하면 흔히 떠오르는 복지세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복지세상을열어가는시민모임, 바닥에 천착하고 바닥과 소통
YMCA운동을 통해 배운 교훈과 고민들이 복지세상을 만드는데 보탬이 됐다. 백화점식 운동,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시민사회 전반에 대한 비판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했다.
"시민운동의 중심에 있어야할 일반 시민들이 계속 빠져나가는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때 생각했던 것은 시민단체가 제기하는 문제가 시민의 눈높이로 볼 때 너무 높지 않은가 하는 점이었는데 처음에는 관심을 가지고 참여했다가 너무 다르니까 떨어져 나가는 게 아닌가 싶었죠. 그러던 중 사회복지가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영역이라는 판단이 들었어요."
그렇게 사회복지 중심의 지역운동을 시작했다. 1년간 관련 자료를 찾고 사람들을 만났다. 그렇게 해서 1998년에 복지세상을 창립했다. YMCA를 하면서 이런 문제에 고민했던 전문가, 시민단체 간사들이 복지세상에 모였다. YMCA와는 달리 복지세상은 천안밖에 없는 말 그대로 지역단체이기 때문에 지역문제에 천착할 수 있었다.
"사회복지 의제를 가지고 활동하던 단체들을 돌아보았지만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적었어요. 지역마다 상황은 다르니까. 바닥에서부터 천착하고 지역사회와 소통할 수밖에 없었죠. 어려웠지만, 그것 때문에 더 많은 결실을 얻을 수 있기도 했어요. 7~8년 동안 집중했던 프로그램도 모두 그런 것의 결과였죠."
하지만 윤혜란 씨가 만들어나가는 복지세상은 다른 사회복지단체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고, 이는 비단 사회복지단체에서 뿐 아니라 시민사회에서도 새로운 바람이었다. 윤혜란 씨가 주목한 것은 '인큐베이팅과 네트워킹'이었던 것이다.
두 가지 동력, '인큐베이팅'과 '네트워킹'
"복지세상이 창립된 98년은 IMF이후 지역의 사회복지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던 시기였어요. 그러한 문제들을 직접 부딪치거나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작은 단위들이 많았는데 이 단위들의 자생력을 높여 조직화하는데 도움을 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예컨대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들을 뵈었는데 조직화 되어있지 않았어요. 문제 지점을 정확히 아는 분들인데도 불구하고요. 그분들도 저희에게 거는 기대가 컸죠. 당시 지역복지단체들은 거의 불모지였거든요. 그분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너무 한시적이고 그들 스스로 자생력을 키우고 스스로 해결해가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인큐베이팅이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조직이 '충남장애인부모회', '미래를여는아이들' 등이다. '미래를여는아이들'의 경우 지역자원을 활용해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방과후 프로그램을 만든 게 시작이 됐다. 접근성이 좋은 교회를 빌려서 자원활동가가 참여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는데 나중에는 아예 교회가 중심이 되어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면서 하나의 단체가 완성됐다.
"'미래를 여는 아이들'은 계속 재인큐베이팅을 해서 지금은 9개의 방과후 프로그램이 생겨났고 그룹홈과 청소년문화지원센터가 그 안에서 생겨났어요. 아이들의 욕구가 계속 커지니까요. 충남장애인부모인협회의 경우 천안지회로 나갔는데 충남 안에서만 4개의 지부가 생겼죠. 새끼를 친다고 볼 수 있는데 인큐베이팅은 계속 될 거예요. 운동의 이념이나 철학이 전해지는 것인데 충남여성장애인연대는 아직도 인큐베이팅 단계여서 함께 사무실을 쓰고 있지요. 아직도 영역별로 계속 만들어나가고 있어요."
인큐베이팅을 통해 많은 단체들이 스스로 자생력을 키워 직접 문제를 해결해가는 실질적인 과정을 만들어내는 성과를 거뒀지만 그보다 더 큰 장점은 사람을 키워낸 일이다. 지도력을 가진 사람들을 키우는 게 인큐베이팅을 통해 가능했다.
"조직을 갖추고 일하다 보면 단체 하나가 탄생된 것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는데 그게 바로 사람을 키우는 일이죠. 이사회는 이사회대로, 자원활동가는 자원활동가대로, 활동가는 활동가대로 시민운동의 지도자로 성장하게 되는 과정을 거칠 수 있어요. 복지세상은 그 분들이 일정기간 동안에 자생능력을 가지고 훈련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던 거죠."
인큐베이팅과 동시에 추진한 것이 네트워크이다. 사회복지 의제에 관심을 가진 단체가 적었기 때문에 이를 지역사회의 중심과제로 올려놓기 위한 방안이었다. 인큐베이팅을 통해 만들어진 단체 간에 네트워크 구성을 통해서 사회복지 문제를 지역사회의 이슈로 만들어 가는데 한 목소리를 냈다.
"2002년 지방선거 당시가 네트워크의 중요한 기점이었어요. 1년간 준비를 했죠. 복지세상과 독립해나간 단체들이 모두 합쳐 '살고 싶은 복지도시 천안네트워크'를 구성했는데 그동안 활동했던 것을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실천 가능한 복지의제를 만들고 그것을 선거에 나온 후보들에게 알리고 당선 후 관철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어요. 사회복지 문제를 10개 영역으로 나누고 33가지 이슈로 정리해냈고 이를 '천안을 복지세상으로 만드는 33가지 방법'이라는 책자로 엮어 냈어요."
이를 주제로 초청토론회도 개최했는데 그들 스스로 놀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재미있는 후보토론회를 만들어냈다. 하나의 가능성이 열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오기조차 꺼려하던 후보자들이 높은 수준의 토론을 연출해내고 그 이후 사회복지 쪽에서 변화가 가시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풀뿌리희망재단의 꿈
그는 또 다른 인큐베이팅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 2004년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며 부상으로 받은 상금 5000만 원으로 그는 지역재단을 준비했다. 오래 전부터 꿈꿔오던 일이었다.
"2000년에 로타리재단의 후원을 받아 미국여행을 했는데 인큐베이팅을 통해 새로운 모델을 창조하는 단체들에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당장 운동을 하면서 끝까지 갈 수 있을지, 오랫동안 지역사회와 호흡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우리 현실이에요. 50년, 100년 후를 생각하는 미국의 운동을 보며 당장 내년을 걱정해야하는 우리와 비교를 안 할 수가 없었죠. 복지세상의 경우 한 달 회비가 600여만 원 정도뿐이지만, 그 마저도 지역에서는 쉽게 구하기 어려운 수준이에요.
풀뿌리운동을 잘하지 못한 점도 있지만, 개별적으로 자기 과제를 수행하면서 홍보까지 잘 하기는 어려운 현실이에요. 겨우 2~3명이 그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데. 복지세상이라는 단체를 그만 둔다면 내가 할 일이 그게 아닐까 생각을 했어요. 운동하는 단체들이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줄 수 있는 곳, 운동하고 싶은 이들이 운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 미국에서 지역재단을 보면서부터 꿈꿔왔는데 상 받고 상금이 생기면서 풀뿌리 희망재단에 대한 꿈을 현실로 옮길 수 있었어요."
그가 생각하는 지역재단의 존재이유는 "다양한 지역의 풀뿌리운동단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에 있다. 지역운동에 관심 있는 시민그룹과 실제로 활동을 전개하는 단체들이 효과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소통시키는 수단으로서의 재단 말이다. 그는 이미 다양한 조직들을 인큐베이팅하는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여전히 필요로 하는 영역이나 프로그램 등을 중심으로 한 단체를 지원하고 싶은 열정으로 팽배하다.
"지역재단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시민들이 많이 참여하도록 열어두고 있어요. 상금으로 내놓은 것과 시민과 단체들이 정성껏 마련해주신 것까지 포함해 1억7000만 원을 모았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모으는 과정 자체가 의미가 있었어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단순히 돈만 모인 게 아니라 사람들의 바람은 무엇인지, 시민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들은 무엇에 목마른지 등을 알 수 있게 됐죠. 2006년 8월말 창립예정입니다."
윤혜란 씨는 풀뿌리 운동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대안으로 지역재단을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원칙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는 지역재단을 위해 단체나 업체, 또는 시민 개개인의 지원이 필수적이지만 기준을 만들어 설득하고 때로는 거부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계속해서 그렇게 설득과 더불어 헤쳐 나간다면 모든 것은 스스로 따라 오게 되어 있다는 그의 믿음은 사실상 나의 믿음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말
지난해 인터뷰를 한 후에 윤혜란 씨는 그의 계획을 그대로 실천했다. 그의 말은 틀림없이 현실이 됐다. 천안에 뿌리를 둔 풀뿌리희망재단은 지난 해 8월 말 창립대회를 개최했으며 올 4월 재단법인으로 정식 설립됐다. 한 해 사이 기부금은 배로 늘어나 3억5000만 원가량의 모금을 거뒀으나 풀뿌리희망재단에게 모금활동은 한, 두 해의 일이 아니라 기부문화를 정착시키고 활성화시키는 그들의 목표를 실현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공익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를 인큐베이팅하고, 그곳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지원하며, 연대해서 지역의 기부문화 활성화를 추구하는 지역재단의 목표가 천안을 넘어 전국으로 불길로 타오르길 기대해본다.
면담일시: 2006년 5월 30일 면담장소: 복지세상을열어가는시민모임 사무실 면담자: 윤혜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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