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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후 20년 흘렀지만, 노동자들 삶은 오늘도…"

女 비정규 4사 노조 "비정규직 철폐" 공동투쟁 선포

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부터 20년이 흘렀다. 이에 앞서 최초의 동맹파업으로 노동자들의 힘을 세상에 알렸던 구로동맹파업은 어느덧 22년 전의 일이다.

그 세월의 흔적이 무색하게 2007년 뜨거운 뙤약볕 아래 700여 명이 다시 구로동에 모였다.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 자리 잡은 기륭전자 본사 앞이다.

24일 오후 기륭전자 앞에 모인 여성들은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현실은 오히려 87년 이전 시기로 후퇴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외환위기(IMF) 이후 비정규직으로 대거 쫓겨난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고 했다.
▲ 24일 기륭전자 앞에 모인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 ⓒ프레시안

여성 비정규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을 최초로 알리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싸움을 하고 있는 기륭전자, 공공부문에서도 늘어만 가는 비정규 노동자 가운데 하나로 '비정규직의 꽃'이라는 '애칭'까지 얻었던 KTX·새마을호 승무원, 평범한 '아줌마'에서 두 번의 점거농성과 강제해산이라는 노동계에서조차 유례없는 역사를 썼던 이랜드 그룹 비정규직 노동자까지.

"20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이 없는 현실"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의 파업이 꼭 2년째를 맞던 이날, 이 4개 노조가 한 자리에서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공동투쟁을 선포했다.

"20년 전보다 오늘은 나아졌습니까?"
▲'똥물' 뒤집어 쓰고 싸우기도 했었는데...20년 후 노동자들의 삶은 나아졌나. ⓒ프레시안

1985년 구로동맹파업으로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도화선 역할을 했던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동일방직, YH, 원풍모방 등 서슬 퍼런 독재가 살아있던 시절,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자 투쟁의 맨 앞에 있었다. 끌려가고 잡혀가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때로 똥물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그렇게 싸워서 얻어낸 '민주화'였다. 그리고도 20년이 흘렀다. 하지만 2007년 오늘도 '가장 열악한 비정규 노동자'의 대명사로 여성 노동자들이 싸우고 있다. 이들은 "오히려 20년 전보다 더 열악해졌다"고 했다.

이날 공동투쟁선포식에서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등 40여 개 단체들이 발표한 연대결의문은 오늘날 여성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10년 전의 오늘, IMF 경제위기 당시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은 우선적으로 정리해고의 대상이 되거나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됐다. 남편이 있다고, 아줌마라고,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집으로 돌려보내졌고, 남편 월급으로는 부족하지 않느냐고, 아이들 학원비라도 벌어야하지 않겠느냐고, 다시금 자연스럽게 비정규직으로 재활용됐다."

어렵게 이뤄낸 '노동 현장에서의 민주화'도 IMF라는 '괴물'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그 칼날이 겨눠졌다.

그 결과 오늘날 노동계 주장으로 비정규직이 850만을 넘어 10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의 70% 가량이 여성 노동자다. 이들은 대부분 겨우 최저임금 안팎의 월급을 받으며 그마저도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고용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2년이, 540일이, 2달이 지났지만…"

최근 들어 가장 격렬하고 오랜 노사분규가 벌어지는 곳도 주로 여성 비정규 노동자들이 대다수인 사업장이다. 그리고 대부분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장기화의 수순을 밟고 있다.

이날로 꼬박 2년을 맞은 기륭전자의 파업, 542일 째를 맞은 KTX 승무원, 6월 30일 점거 이후 두 달이 꼬박 돼 가는 이랜드노조까지. 어느 곳이고 좀처럼 쉽게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최초로 불법파견 논란에 불을 지피며 문자해고통보 등 제조업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던 기륭전자의 경우에는 노동부, 검찰에서 모두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들의 복직 대신 회사는 벌금 500만 원만 내고 불법의 '죄 값'은 다 치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승무업무 외주화에 맞서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있는 KTX·새마을호 승무원은 노동부가 유례없이 두 차례에 걸친 조사를 벌였지만 "100% 합법은 아니나 종합적으로 적법 도급"이라는 모호한 판정이 나왔다. 철도공사는 "정부에서도 적법이라는데 승무직 복직은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홈에버, 뉴코아 등 이랜드 그룹의 경우 노조의 점거 농성 이후 노사가 지루하도록 여러 차례 협상을 벌였지만 좀처럼 입장차가 좁혀지지 못하고 있다. 노조는 고용보장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회사는 일부 선별적인 재계약 및 1년 후 외주화 철회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결국 이들 4개 사업장의 노조가 한 자리 모여 앞으로 공동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힌 것은 더 이상 이 문제가 개별 사업장의 문제를 넘어선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소연 기륭전자 분회장은 "이처럼 모든 여성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이 좀처럼 해결안되고 있는 것은 그것이 더 이상 단위사업장 차원에서 풀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며 "기륭전자 대표이사도 우리를 복직시켜 줄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정치적 문제'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 이제 더 이상 단위사업장 차원에서 풀릴 문제가 아니라는 문제 의식 때문에 이들 장기투쟁사업장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공통 투쟁을 벌이기로 했다. ⓒ프레시안

"오늘은 비록 내 딸과 함께 싸우지만 손녀만큼은…"

이에 이들은 이날 한 목소리로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세상의 절반이건만 고통의 대부분을 감수하는 여성들, 누구보다 장기간 싸우고 있는 우리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힘든 하루가 전체 노동자의 환한 웃음의 하루로 되살아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늘 구로공단에 오면서 열다섯 어린 나이로 먹고 살기 위해 찾아들었던 30년 전 생각이 났다"며 말을 시작한 최순영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도 "그 시절 어린 나이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하면서 '우리 아이만큼은 이런 세상에서 일하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오늘도 우리는 딸들과 함께 투쟁해야 하는 시대"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한 뒤, "이제라도 내 손자가 태어나 살 땅은 그런 땅이 되지 않기 위해서 함께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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