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야구 경기에서는 양팀 선수들이 벤치에서 모두 뛰쳐나와 마운드에 산처럼 쌓이는 패싸움이 많이 발생한다. 신체접촉이 필수적인 축구, 농구, 미식축구, 아이스하키와 달리, 남성성을 증명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제한돼 있는 야구의 경우 선수들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인지 '초남성적' 행동을 자주, 그리고 집단적으로 표출한다.
그래서 빈볼 시비가 꼭 '패싸움'으로 연결되지는 않더라도 일단 양쪽 선수단 전원이 그라운드에서 대치하여 적절한(?) 몸싸움을 하면서 각자의 남성성을 확인하고, 만회하는 '의식'을 거친 후에야 덕아웃으로 물러나게 되는 것이다.
'남자다움'(1)
이렇듯 성인 야구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빈볼'에는 몇 가지 룰이 있다. 우선 마운드의 투수는 같은 팀 주장이나 고참이 던지라면 던져야 한다. 타자가 예를 들어 호세라도 던져서 맞춰야 한다. 안 던지면 소속팀에서 왕따가 된다.
두 번째, 다리가 후들거려도 일단 맞힌 뒤, 그 타자가 이성을 잃고 불같이 달려들더라도 절대 뒷걸음 쳐서는 안 된다. 오히려 글러브를 땅에 가볍게 '툭' 던지고 마중(?) 나가 맞주먹을 휘두르면 그의 남성성은 매우 훌륭하게, 그리고 만인에게 입증된다.
그런데 성난 황소처럼 달려 나오는 선수에게 도저히 맞설 자신이 없을 경우? 일단 이를 악물고 (눈을 감고서라도) 주먹을 같이 휘두른다. 그렇게 딱 2~3초만 버틴다. 곧 포수와 내야수가 달려 나오고 이들이 상대 선수와 뒤엉키면서 정작 당사자들은 그 아수라장에서 빠져 나오게 된다.
지금은 부상 중인 삼성의 젊은 에이스 배 모 선수에겐 아픈 기억이 있다. 몇 년 전 롯데와의 경기에서 타자들에게 위협구를 계속 던지다 역시 위협구를 경험하고 볼넷으로 1루에 나가 있던 호세 선수가 갑자기 자기에게 돌진하자 기겁을 해 3루로 도망쳐 버렸던 것. 타자에게 집중하고 있는데 1루에서 호세가 폭주기관차로 돌변해 달려드니 놀랄만도 했겠지만 어쨌든 그에겐 잊고 싶은 기억일 것이다.
빈볼에도 금기와 신뢰가 있다
문제는 빈볼을 던지라 해서 던졌는데 그 타자가 자기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상대팀의 주장이나 고참선수인 경우다. 이런 경우 투수는 부담이 되지만 일단 던지고, 타자가 마운드로 달려오면 (역시) 절대 물러서지는 않지만 주먹은 휘두르지 말고 그 자리에 꼿꼿이 서 있는다. 사실상 동료들이 달려오기 전까지 그 자리에 서서 맞든지 알아서 주먹을 피하든지 재주껏 하라는 것이다. 미국 프로야구엔 없는 모습이다. 역시 동방예의지국의 야구답다.
그래서 봉중근 선수는 자신보다 열 살이 많은 안경현 선수가 날리는 주먹을 피했을 뿐 주먹을 휘두르지는 않았다. 작년 현대의 서른여덟 살 최고참 김동수 선수가 스물두 살 먹은 한화 투수 안영명 선수의 빈볼에 맞고 달려 나가 얼굴을 가격했을 때도 안 선수는 맞기만 했다. 사실 그가 서서 맞기만 하니 김동수 선수도 처음엔 주먹을 휘두르다가 두번째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밀어제쳤다.
물론 여기엔 주먹만 용납된다. 다른 연장(?)은 사용할 수 없다. 원래 거칠게 성장한 이 땅의 야구선수들이지만 일단 배트는 내려놓고 달려 나간다. 하나 더. 며칠 후 나이 어린 쪽이나 (대개는) 빈볼을 던진 쪽이 상대방 덕아웃에 찾아가 사과하고 서로 화해한다.
양성평등의 사회로 진군하는 오늘날 스포츠는 '남자다움'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유지될 수 있는 몇 안 되는 영역이다. 특히 야구는 '남성성의 보고(寶庫)'이자 '남성성의 정비공장(?)'으로 수많은 남성성을 검증하고 사회가 기준으로 삼는 남성성을 제시해 준다. 사실 유치한 측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거기엔 최소한의 예의가 있고 명승부가 있으며 그래서 로망이 있는 것이다.
'남자답게'(2)
그런데 남성성이 사방으로부터 위협받는 요즘, 비(非)스포츠 영역에서 '남자다움'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이가 있었으니 바로 한화의 김승연 회장이다. 그는 예일대에 다니는 아들이 북창동 술집 종업원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들어오자 "남자답게 사과를 받아야 한다"로 시작해서 "남자답게 해결하라"며 실행에 옮겼고 결국 "남자답게 화해했으니 없던 일로 하자"며 마무리하려 했다.
그러나 김 회장의 '남자답게'는 사실상 '조폭답게'였다. 그는 치료비도 법도 필요 없다며 '사과'를 받기로 했다던데 김 회장의 사과는 도대체 어떤 사과인지 여기에 납치, 감금, 폭행에 쇠파이프와 전기충격기, 그리고 경찰의 최종발표를 기다려봐야겠지만 회칼에 권총까지 동원됐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해가 지고 밤이 찾아든 서울 시내에서 수 대의 고급승용차에 경호원과 조폭두목을 출동시켜 거느리고 강남, 강북, 청계산 공사판으로 질주하며 끝장을 보겠다던 그의 모습은 기업의 회장이 아니라 '밤의 황제'였다. 야구 선수들의 사과와는 달라도 많이 달라 보인다.
또 그가 이번 사건의 시작은 '남자답게' 했을지언정 지금의 진행 과정은 전혀 남자답지 못하다. 그는 막강한 한화 변호사들의 뒤에 숨어 계속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고 또 사건의 결정적 단서를 제공할 협력업체 대표, 자신의 비서실장, 현장에 있었던 조폭 두목과 아들 친구를 모조리 빼돌렸다고 언론은 전한다(나중에 그들 중 일부는 경찰에 출두했다 - 편집자). 아무리 봐도 그가 신봉해 마지않는 '남자답게'와는 거리가 있다.
그들의 안하무인에는 한계가 없다
물론 김승연 회장을 그렇게 '돌게' 만든 나름의 몇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북창동 술집 종업원들은 넘어서는 안 될 '나와바리(고유영역)'를 침범했던 것이다. '금기'의 경계를 넘은 것이다. 감히 '평민의 아들'이 '회장님의 아들'을, 종업원이 '황태자'를, '국산'이 예일대생을 때린 것에 더해 '북창동에서 노는 애들'이 청담동에 와서 논 것도 맘에 안 들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 상황에서 뚜껑이 열리지 않을 애비가 어디 있겠냐"며 김 회장을 두둔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일부 가진 자들의 일종의 특권의식 또는 선민의식은 유별날 뿐 아니라 '안하무인'급이다.
택시 기사들이 파업을 하자 이들과 언쟁을 벌이던 사장이 한 마디 내뱉는다. "옛날 같았으면 머슴이나 했을 놈들이…." 한보의 정태수 회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자기 회사의 임원들을 지칭하며 "머슴들이 뭘 알겠느냐"고 재벌의 총수답게 말한 바 있다. 1999년 프로야구선수협의회 결성문제로 시끄러웠을 때 두산 베어스 사장은 카메라 앞에서 당당하게 말했다. "지들 월급 주는 게 누군데!" 선수들이 없다면 '지'는 뭐 먹고 살았을까.
이들의 특권의식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희한한 사건이 있었다. 1994년 1월 어느날 새벽 2시경 서울 강남 도산대로에서 그랜저 자가용을 타고 가던 재벌 2세들은 건방지게 프라이드가 끼어든다고 해서 차를 세우고 타고 있던 두 명을 화분과 벽돌로 마구 내리쳐 중태에 빠뜨리게 했다. 영국과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재벌의 후예들에게 프라이드가 그랜저 앞으로 끼어드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금기의 침범이었던 것이다.
회사의 직원과 노동자들 덕에 자신들이 그런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는 사실,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이 그들의 노동에 대한 당당한 대가라는 사실, 그리고 우리는 '더불어 산다'는 사실을 깡그리 무시하는 무시무시한 사고가 실제로 우리 사회의 가진 자들 머리 속에 아직도 자리 잡고 있다.
'잘 큰' 재벌2세도 많지만…
물론 재벌이라고 다 이런 식으로 사람 우습게 알고 때리지는 않는다. 제대로, 잘 큰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그들도 결국엔 대부분 세금 포탈하고 분식회계를 저지르는 파렴치한 경제사범이 된다. 또 스스로의 잘못된 결정으로 인해 회사가 어려워졌는데도 자신의 자리는 꿋꿋이 지키고 직원들만 해고한다. 이게 바로 이 땅의 '재벌다움'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런 거 바라지도 않는다. 우리 때리지만 말고 우리 돈 떼먹지만 마시라.
김승연의 신념인 '남자답게'는 실제로는 '재벌답게,' '황태자답게,' '조폭답게'였다. 야구선수들은 '남자답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남자답게'를 떠들어댄 김승연은 전혀 남자답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분들, 앞으론 '남자답게' 나서는 일 제발 없어야겠다. 이 분들 남자답게 몇 명만 나섰다간 동네 사람 여럿 잡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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