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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세계>는 왜 실패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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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세계>는 왜 실패했는가

[오동진의 영화갤러리]

세상사 돌아가는 모양새, 지하철을 타고 다녀보면 단박에 알 수가 있다. 사람들 삶이 팍팍하면 할수록 지하철 안에는 상인들과 걸인들이 늘어난다. 요즘이 특히 그렇다. 지하철을 탈 때마다 상인들이 장사하는 소리를 듣거나 걸인들의 하소연을 듣는다. 상인들이 파는 물건들도 가지가지다. 가죽(이라고 주장하는)지갑에서부터 올드 팝송 몇백곡이 들었다는 박스세트 CD(알고보면 동남아 가수가 리메이크해서 부른 것들), 황사용 마스크 등등 어떤 때는 도깨비 시장에 온 것같아 호기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파는 사람들이나 사는 사람들이나 그 표정들을 보고나면 재밌다 뭐다 하는 생각이 쑥 들어간다. 모두들 피곤한 것이다. 사는 게 힘든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지하철이 몇호선이냐에 따라 장사꾼이나 걸인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강남을 경유하는 지하철보다 공단이나 서민지역을 관통하는 지하철에서 조금 더 관용의 태도들이 나타난다. 서울보다는 지방의 지하철에서 조금 더 따뜻한 '성금'들이 모인다. 생각해 보면 그게 이상할 것이 없다. 아파 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의 심정을 이해하는 것이며 고픈 사람만이 고픈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줄 줄 알기 때문이다. 이럴진대 영화가 될 일이 있겠냐는 생각이 든다. 지하철에서 돈 천원에 머리빗에다 이쑤시개에다 귀후비개까지 얹어 파는 사람들이 하루에 얼마나 수익을 남기겠는가. 그런 사람들에게 영화란, 영화를 본다는 행위란,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이겠는가. 아마도 영화얘기하면 무슨 염병할 얘기냐고 따귀나 맞지 않으면 다행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우아한 세계 ⓒ프레시안무비

따라서 영화가 잘되려면 사람들이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편안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화를 찾을 일이 없다. 지난 3월 한달의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이 20% 안팎으로 떨어진 것은 그런 이유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얘기하면 그거 말도 안되는 억지라는 반박이 있을 수 있다. 한국영화의 점유율은 떨어졌어도 상대적으로 할리우드의 점유율은 올랐으니 그게 그거일 수 있으니 그렇게 아전인수격으로 갖다가 붙이면 안된다는 지적, 어쩌면 백번 옳은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어렵게 하루하루 일용의 노동으로 사는 사람들, 그보다 조금 낫다 해도 영세민과 서민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반년에 한번 볼까말까한 영화가 할리우드 것보다는 한국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점점 더 영화를 볼 수 없는 환경이 되가니 한국영화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말이다. 한국영화가 안된다고 하니 별별 이유를 다 붙인다고? 그런 건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라도 찾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세상이 어려울수록 작가들 가운데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명징하게 현실 얘기를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안 그런 것처럼 보여도 한재림 감독의 <우아한 세계>는 비현실적인 조폭 가장 얘기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마치 조폭처럼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이 한편으론 가장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 가를 직설하고 있는 영화다. 이건 진실의 리얼리티 드라마지 우스개 상업영화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아한 세계> 역시 센 흥행은 하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영화가 너무 고단한 현실을 닮아있어서일지도 모른다. 현실에서도 겪는 일, 영화관에서도 겪으랴 하는 것이 이 영화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이럴 때에 '동갑내기'들이나 좋아할 영화만을 만들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요즘과 같은 때는 진지한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가, 아니면 사람들이 쉴 만한 오락영화를 만들어야 맞는가. 이래저래 고민이다. 영화판도 고민이고, 이 세상도 고민이라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이 글은 영화주간지 '무비위크' 227호에 실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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