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낚시에서 풍랑을 만나 어느 섬에 머물게 됐다. 하룻밤을 머문 그 섬이 마음을 잡아끌었다. 몇 년에 걸쳐 가진 돈을 죄다 털어 그 섬을 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섬을 나만의 원더랜드로 꾸몄다. 그 원더랜드를 찾아 일부러 섬에 들어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그 섬이 새롭게 부각됐다."
동화 속에서나 이뤄질 법한 아름다운 이야기, 그게 현실로 이뤄졌다. 단 두 사람의 힘으로. 국내 여행정보를 몇 번 뒤적거려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접했을 '외도 보타니아'는 최호숙 부부의 동화 같은 이야기로 시작됐다. 시작과 끝은 동화 같지만, 그 과정은 한편의 험난한 인생극장과 다름없었다.
지난 해 11월에 찾은 외도는 제법 날씨가 쌀쌀해질 법도 하건만 높은 하늘이며 따뜻한 바람이며 가을과 다름없었다. 누구는 이 섬을 두고 "반은 조물주가, 반은 사람이 빚은 섬"이라고 했다는데 말한 이의 그 마음이 이해가 될 만큼 천혜의 자연환경과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 향기 나는 식물들이 멋들어지게 어우러졌다.
유럽 휴양지가 떠오르는 '외도 보타니아(OEDO-BOTANIA)'라는 정식명칭이 생긴 것은 지난 2005년이지만 그보다 10년 전인 1995년 외도해상공원으로 첫 선을 보였다. 하지만 외도 보타니아의 최호숙 사장 부부가 한 눈에 외도에 반해 이곳에 둥지를 틀고 섬을 가꾸기 시작한 것은 또 3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간 60년대 말이다.
최호숙 씨 내외가 정착할 당시 외도는 몇 안 되는 섬 사람들조차 어서 벗어나길 바라는 섬이었다. 그럴싸한 모래사장이 없었으니 관광지가 될 리도 만무해 보였고 바위로 가득한 척한 땅은 농사를 짓기도 어려웠으며 당장의 찬기를 면하기 위해 수 백년 묵은 동백나무 등이 베어지는 그런 땅이었다. 전기나 전화 등의 시설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은 당연했다.
그 섬에 최호숙 부부가 들어왔다. 섬 사람이라고 해봐야 일곱 가구뿐이었으나 가진 돈을 몽땅 털어 섬을 사는 데 3년이 걸렸다. 섬에 들어온 후 처음 한 일은 귤 농사였다. 하지만 귤나무는 죽었고, 농사는 망했다. 지난 2003년 세상을 뜬 최호숙 씨의 남편 이창호 씨는 수학교사를 하다가 의류사업을 했었고 최호숙 씨는 초등학교 교사로 농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귤나무에 거름을 주기 위해 기르기 시작한 돼지농장도 실패였다.
하지만 귤나무의 방풍림으로 심었던 편백나무가 희망을 안겨줬다. 그저 귤나무의 바람을 막아주길 원했던 나무가 심어놓고 보니 제법 멋졌고, 이를 시작으로 그들의 정원은 시작됐다.
그 30여 년이라는 시간동안 가장 두려웠던 것은 '섬 생활의 불편'이 아니라 '희망을 잃는 것'이었다. 76년 공원 점유·사용허가를 받았지만 나무에 대해 아는 게 없었고 조경에 대한 지식도 백지였다. 나무를 심어 살면 성공이었고, 죽으면 실패라는 걸 몸소 체험해 아는 수밖에 없었다. 태풍이라도 불면 그 전에 심어놓은 식물들이 뽑혀나가기 일쑤였다. 숱하게 관련 책을 읽고 국내외 식물원을 돌아다녔다.
최호숙 씨는 풀 한포기, 돌 하나까지 모두 신경 써서 고르고 배치했다. 정취를 더할 조각은 모두 일일이 찾아다니며 선정했다. 척박한 땅을 식물의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땅을 고르고 나무를 심은 일은 고 이창호 씨가 도맡았다. 여기에 외도에서 나고 자라 누구보다 외도의 땅과 자연을 잘 알고 있던 강수일 씨 등이 힘을 보탰다.
OEDO-BOTANIA - 매년 100만 명 다녀가다
그렇게 30년, 그들의 노력이 합쳐져 740여 종의 식물이 자라는 그럴싸한 식물원이 됐다. 외도를 오간 친인척들로부터 "몇몇 사람만 보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칭찬을 들었고, 스스로도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개방을 생각했다. 1995년 '외도해상공원'이 문을 열었다. 두 사람이 계획했고, 몇몇이 힘을 보탠 그 공원은 시작한 지 10년도 안되어 한해 80~100만 가량의 관광객이 몰리는 명소로 바뀌었다. 드라마 촬영지로 이름이 날리면서 외국 관광객도 늘었다. 지난 해 식물원을 가리키는 보타니컬 가든(Botanical Garden)과 유토피아(Utopia)를 합쳐 외도 보타니아(OEDO-BOTANIA)라고 이름을 바꾼 것은 외국 관광객을 타깃으로 한 것이다.
외도는 아직도 불편한 섬이다. 그러나 그 불편이 외도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게 하는 힘이 된다. 외도에는 숙박시설이 없다. 국립공원 관리지역이어서 건축허가를 얻거나 3층 이상의 건물을 못 짓는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자가발전하고 있다. 물도 부족하다. 샘물이나 지하수를 가지고 여기 사는 사람들의 식수는 해결하지만 부족하다. 하지만 숙박시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면 이 아름다운 섬이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동섬의 경우에도 구름다리를 넣어 연결하려 했는데 섬의 보존이나 태풍시의 위험 때문에 그대로 두고 볼 수 있게만 하고 있다.
늘 변화하는 섬, 외도
외도 보타니아의 김종하 이사가 전하는 외도 보타니아의 목표는 언제나 변화하는 섬을 만드는 것이다. 김 이사는 "꽃의 종류도 계속 바꾸고 매년 새로운 모습을 전함으로써 지난해 온 이들이 다음해 왔을 때도 볼거리가 있도록 해야 합니다. 늘 변화하는 섬, 그게 목표입니다. 꽃과 조경을 바꾸고 가든을 바꾸고 선착장에 휴식공간도 바꾸고 그렇게 외도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지요"라고 설명한다.
요즘은 숫자가 말을 해주는 세상이다. 하지만 외도 보타니아는 생각이 다르다. 조금 소수의 사람들도 즐기고 휴식할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란다. 여름 휴가철 성수기에는 하루에 1만5000명이 섬을 찾는다. 김 이사의 표현처럼 "앞 사람의 뒷머리만 보고 갈 수도 있는" 셈이다.
외도 보타니아 사람들도 더 많은 꿈을 가지고 있다. 최호숙 사장은 "외도의 풍경 위로 음악이 흐르는 DVD를 제작하고, 남편과 내가 외도에 쏟은 날을 추억할 수 있는 작은 박물관도 건립하고 싶다"고 말한다. 여기에 이집트풍의 피라미드 정원과 폐쇄된 중국풍의 정원도 빠질 수 없는 꿈이다. 정원에 관한 전문서적 '가든 북 스토어', 푸른 바닷가에 흰 건물로 지은 조개박물관까지 그의 꿈은 계속된다.
외도는 정부가 충분히 도와줄 수 있는 문화 사업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감동받는 것으로 그간 30년의 시간을 보상받는다는 최호숙 사장, 그러나 커가는 꿈들이 모든 어려움을 상쇄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식물원을 개인의 사업처라고만 생각하고, 수익사업으로 치부하는 행정기관이나 몇몇의 시각은 답답하다.
최호숙 부부는 개인의 민간투자로 섬을 바꿔 나갔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부의 반응은 냉담하다. "개인의 사업인데 정부가 어떻게 지원할 수 있겠나"라는 태도에서 조금도 벗어나질 못하는 것이다. 관광객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안전을 위해 필요한 방파제는 지금도 없다. 개인사업자에게 방파제를 만들어 줄 수 없다는 게 지방정부 입장이다. 풍랑이 심한 섬인데 방파제가 없으니 예약도 불가능하다.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이다.
"큰 그림을 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당장 관광객이 늘어나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된다. 유람선, 숙박업소, 식당, 기념품 가게의 매출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을 유동성 없는 규제 등으로 막고 있다. 개인의 사업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지역을 찾는 관광객의 편의를 도모하는 것이라는 더 큰 그림을 왜 보질 못하나"하는 게 김 이사의 설명이다.
그래서 외도 보타니아는 아직도 자가발전이고 그로 인해 여름에 선풍기 하나 돌리기 힘들다. 전기를 들여오는 해저케이블은 정부의 지원 없이는 설치할 수 없다. 외도 보타니아는 정부가 도와야할 문화사업이다.
유람선을 고급화하고 크루즈를 만들자
묻혀가던 돌섬을 한 해 100만 명이 줄을 지어 찾는 관광지로 만든 최호숙 씨는 외도가 있는 거제의 관광업이 발전하기 위해 유람선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려해상공원에서 중요한 것은 섬과 바다다. 하지만 섬과 바다를 잇는 유람선은 너무 열악하다.
지금의 유람선은 100명 정도의 고객을 싣고 그저 너무 급히 달리기만 한다. 고객 서비스는 찾기 힘들고 손님 층을 고려한 차별화 전략은 없다. 배의 규모가 너무 적어 안전성에도 문제가 있다. 항구시설에는 쉴만한 공간이 없다.
이에 최호숙 씨는 유람선을 고급화해 크루즈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유람선협회를 만들어 유람선을 고급화하고 최고급의 서비스를 제공해, 외국처럼 크루즈를 해보자는 견해인 것이다. 여기에 전기의 여력이 있고 시설을 보완하면 야간개장도 가능해 환상적인 야간 섬 크루즈 관광코스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유람선협회를 만드는 것은 성사되지 못했다. 통영도 장사도를 개발한다, 지심도를 개발한다 등 섬의 개발은 이어지지만 그 개발의 궤를 잇는 일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 그 섬들을 잇는 종합적인 발전계획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면담일시 - 2006년 11월 6일 오전 10시 면담장소 - 경남 거제시 일운면 와현리 산 109번지(외도) 면담인사 - 김종하(외도-보타니아 시설부 이사) |
"외도개발의 주역, 최호숙 사장의 관광대국을 위한 제안" - 최호숙 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외도> 발간 30여 년이라는 시간을 외도 개발에 바친 최호숙 씨는 지난 2003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외도>라는 책을 발간했다. 외도개발을 통해 체득한 관광에 대한 마인드와 외도에서의 지난 30년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해서도 최호숙 씨는 한국이 관광대국으로서 거듭나길 바라는 그의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이 매혹적인 남해가 제대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관광지가 되길 꿈꾸고 그 꿈을 이야기한다. 그의 책을 통해 그가 제안하는 관광대국으로 가는 방법을 요약해 전달한다. 매혹적인 남해에 새로운 섬문화, 포구문화를 만들자 책을 통해 최호숙 씨는 "남해는 정말 매혹적이다. 점점이 떠있는 무수한 섬들, 그 사이를 오가는 배의 흔적들, 수많은 양식장들이 진주처럼 반짝이며 정겨운 포구는 정취를 더한다"고 말한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3400여 개의 섬이 있으며 이 섬들은 우리나라가 보유한 세계적 관광자원이라고 자부한다. 하지만 섬을 개발하기 위한 지방자치단체들의 노력은 어떤가. 섬과 육지 사이를 다리로 연결하고 도시처럼 유흥시설이나 숙박시설을 만들고 있다. 섬은 섬다울 때 제 맛이 있다. 힘들게 배를 타고 찾아가야 비로소 닿는 섬. 육지의 연장이 아니어야 하는 것이다. 섬을 섬답게 개발하는 것과 더불어 포구와 어촌마을들을 정리하고 개발해 포구문화를 형성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해외에 나갈 때마다 관련서적을 수집하고 찾아보며 포구문화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전하기 위해 행정기관을 찾았다. 하지만 공무원이 바뀔 때마다 도로묵이 됐다. 설명하고 설득해 일을 추진할 단계에 이를 쯤 담당자가 바뀌어 다시 시작해야하는 것이다. 체계적인 기획과 충실한 콘텐츠를 최근 지자체들이 관광사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야심찬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한다. 그러나 기획만 거창하게 해서 그림 몇 장 붙여놓고 수십억 원을 쏟아 부은 채 썰렁하게 서 있는 곳이 많다. 우리들의 삶과 전혀 가깝지 않은 문화 콘텐츠들이다. 지역에 대한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초현대적인 큰 건물을 올린 뒤 성대한 오픈식을 가진 다음 관리는 제대로 하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장기적인 계획 없이 초스피드로 만들어낸 관광자원들은 시장이나 군수나 바뀌고 나면 골칫거리가 되어버리고 만다. 주인의식의 부재, 열정 부재, 지속적인 관리 부재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이런 실속 없는 문화행사장을 만드는데 언제까지 우리 세금을 내야 하는가. 그런 공간일수록 작아도 단단한 기획을 갖고 시작해야 한다. 문화공간은 성대한 오픈보다는 사후관리, 지속적인 개발이 가능한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한 것이다. 어느 날 개발 붐이 불면 무질서하게 달려들어 도로도 골목도 정비하지 않은 채 건물을 세워 도시도 시골도 아닌 엉성한 어촌동네로 만들어놓은 것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골목을 정리하고, 가로등을 아담하게 설치하고 무질서한 간판들도 정리해서 소박하고 정감있는 마을로 만드는 일이 그렇게 힘든 일일까? 정부는 기념관이나 박물관, 특별한 농장 등 확실한 주제를 잡아서 주민들이 스스로 개발해 나가게 도와주고, 가로등 설치나 골목 정리 같은 공공부문의 사업만 하면 될 것이다. 미국 카타리나 섬과 이탈리아 카프리섬 포구문화를 연구하기 위해 우리 부부는 외국의 섬을 꽤 방문했고 그중 미국의 카타리나 섬은 미국인들이 여름에 가장 가고 싶어하는 휴양지라고 한다. 이 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지정된 형태의 차만 다닌다는 점. 석유를 쓰지 않은 친환경적인 차만 다니는데, 아주 작고 예뻐서 그 자체로도 볼거리가 된다. 그 작은 차로 작은 골목골목을 여행하는 프로그램도 있어서 그 차를 몰고 다니며 요금을 받는 주민들은 돈을 벌 수 있었다. 섬 가운데 있는 선인장 동산은 손잡고 산책하기 좋았고, 잠수함은 꼭 타보고 싶은 예술적인 디자인이었다. 선착장에는 나무를 많이 심어 그늘도 많았고,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기발하고 독특한 카드, 달력, 조각품, 사진 등을 전시한 작은 가게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했다. 이탈리아 카프리 섬은 조금 달랐다. 세계적인 관광지라기에 연구를 좀 해 보려고 하던 차에 자연조건도 외도와 비슷하다고 대사관에서도 추천해서 더욱 관심을 갖고 간 곳이었다. 카프리섬은 민박촌이 좋았다. 우리가 머문 집의 경우 주인 부부가 즐거운 표정으로 집안 구석구석에 있는 테이블보, 꽃병, 작은 인형, 커튼, 샹들리에 등을 화제로 올리며 그것들을 어디에서 어떻게 구했는지, 거기에 깃든 추억과 사연은 무엇인지를 들려주었다. 스파게티는 어떤 집이 맛있고, 카페 분위기는 어디가 좋은지도 친절히 설명했다. 당연히 호텔과는 다른, 내 집처럼 포근하고 따뜻한 정감이 느껴졌다. 우리나라 지자체 주도로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주민들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주민들이 민박이라는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경영마인, 서비스 마인드를 교육시켜야 한다. 외지에서 온 사람이 하는 것 보다 그 땅에서 오래 살아온 원주민이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하는 것이 지역주민에게도 정부에게도 이롭기 때문이다.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