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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 모델', 손익계산 안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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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우리은행 모델', 손익계산 안 끝났다"

<양날의 칼 '분리직군 정규직화'②>노사 모두 우려도 한가득

지난해 12월 '분리직군제 도입'을 통해 3100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우리은행의 노사합의 발표 이후 동일한 노사합의가 있었다는 언론 보도가 몇 차례 있었다. <한겨레>는 지난 1월 10일 국민은행이 우리은행 모델로 정규직 전환을 결정했다고 보도했고, <동아일보>는 지난 1월18일 이마트가 캐셔(cashier)를 대상으로 분리직군제를 도입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프레시안> 확인 결과 해당 기업 담당자는 모두 "잘못된 기사"라고 밝혔다.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해법을 고심하는 가운데 여러 방법 중 하나로 검토 중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은 없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었다.

이 해명에 따르면 해당 기사는 모두 '오보'인 셈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오버'한 기사로 볼 수도 있다. 각 기업들이 우리은행 모델에 상당한 가중치를 두고 검토 중인 것은 여러 경로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은행 모델, 비정규 해법으로 확산될까?…"글세…"
▲ '우리은행 모델'이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이 될까? ⓒ프레시안

한 노동문제 전문가는 "국민은행과 신한은행 등이 우리은행 모델과 관련된 자료를 받아 갔다"고 말했다. 서비스연맹의 이성종 교육선전국장은 "홈에버, 현대백화점, 뉴코아, 농협유통 등 유통업계 내에서 우리은행 모델로의 전환에 대한 흐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은행이나 유통업체의 경우, 창구 텔러나 캐셔 등과 같이 숙련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인력을 대거 필요로 한다. 이들 기업은 지금까지는 텔러, 캐셔 등을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고용했지만, 2년 이상 비정규직을 같은 업무에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 비정규직 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될 경우 사정이 달라진다. 지금처럼 모두 비정규직으로 고용한 뒤 2년마다 계약해지 하기에는 기업의 부담이 너무 크다. 교육비용이나 생산성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의 해법으로 우리은행 모델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

하지만 "우리은행 모델이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으로 은행권과 유통업계에 확산될 것이라는 것은 아직까지는 섣부른 예측"이라는 정반대의 시각도 있다.

이승민 금융노조 정책실장은 "금융노조 소속 사업장의 움직임을 계속 확인 중"이라며 "논의는 계속되고 있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사업장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노사 모두 서로 눈치 보기를 하는 중인 것 같다"고 털어 놓았다.

우리은행 모델이 발표된 지 불과 3개월도 채 되지 않았다. 기업도 노조도 각각 이에 대해 다방면에서 분석 중이지만 이해득실을 고려한 '손익계산서'가 나오기엔 짧은 시간이다. 엇갈린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

"우리은행 모델, 차별의 고착화…비정규직법으로도 통제 불가"

'비정규직 철폐'는 최근 몇 년 간 노동계에서 어느 장소에서도 빠지지 않는 구호였다. 그런 면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이뤄낸 우리은행의 노사 합의는 노동계에게도 획기적인 해법일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은행 모델에 대한 노동계의 시각은 예상보다 싸늘하다. 노동계도 한꺼번에 정규직화를 얻어낼 수는 없다는 점, 또 비정규직이 일단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노조 가입 대상이 되기 때문에 추후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 노조를 통한 집단적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 우리은행 모델이 가지는 긍정적 측면에 대해선 인정했다. 하지만 꼼꼼히 뜯어보면 장기적으로 우리은행 모델이 가져올 변화가 결코 긍적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우리은행 모델은 기존의 정규직과 정규직 전환 대상자 사이에 현격한 처우의 차이를 두고 있다"며 "새로운 차별의 시작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2~3배의 임금 격차뿐 아니라 승진 상의 차이, 직무간 이동을 못하도록 해 고소득 직무로의 접근이 어렵도록 한 점은 사실상 '차별의 고착화'라는 것이다.

분리직군제로 인한 차별을 제재할 장치가 없다는 것도 이같은 우려를 심화시키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민주노총 사무금융연맹의 김금숙 교육선전실장은 "비정규직 법의 차별금지 조항으로는 분리직군제로 인한 차별을 해소하기가 쉽지가 않다"며 "그런 면에서 비정규직보다 더 나쁜 제도"라고 못 박았다.

김성희 소장도 "비정규 법안의 차별금지 조항은 '합리적인 이유가 아닌 차별을 금지'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합리적'이라는 주관적인 기준이 판단 근거"라면서 "하지만 직군제 관행이 사회적으로 확산된 다음 과연 이같은 차별을 비합리적이라고 노동위원회가 판단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 모델이 칭찬받을 수 있었던 핵심적인 이유인 '고용안정'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다. 김금숙 실장은 "정규직에 대한 정리해고도 유연하게 일어나는 현실에서 고용 보장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했다.

김성희 소장은 "결국 명칭만 바꿨을 뿐이지 내용상으로는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며 "과거에도 차별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인데 혹시나 차별금지 조항에 걸릴지 몰라 별도로 직군제라고 이름을 붙인 것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정규직 중심 노조의 우려…"임금동결 요구하면? '직무급' 불똥 튀지 않을까?"
▲ 우리은행 모델에 대해 노사 모두 각각 우려의 시선을 갖고 있다. ⓒ프레시안

우리은행 노사가 정규직 노조의 2006년 임금동결을 전제로 분리직군제에 합의했다는 것도 이 모델의 확산을 어렵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우리은행의 경우 한 해의 임금인상분을 양보한 것이지만, 조합원들의 반발이 상당히 컸다. 이같은 반발로 우리은행 노조는 지난 1월 예정에 없던 임시 대의원대회를 소집해야 했다.

또 분리직군제 도입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차원을 넘어 전체 정규직에게까지 불똥이 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노동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 김성희 소장은 "최근 은행권에서 나오는 직무 성과급제의 초점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보다는 역량과 성과를 평가해 차등 임금을 적용하는 것이 본질"이라고 말했다.

김금숙 실장도 "단계적으로 전면적인 직무급제 확산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며 "전체 정규직에게까지 직무급이 확산될 경우 연공급제에 익숙한 우리 전통에서 거부감이 상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우리은행은 향후 노조 가입 대상인 4급 이하의 직원까지 개인연봉제와 개인성과급제를 도입해 임금에서의 차이를 둘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존에는 직군 전체가 동일하게 받던 성과급을 개인별로 차등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우리은행은 이미 지난 2002년부터 직군을 나눠 인사관리를 해 왔지만 직군별 고정급의 차이는 없었다.

김경란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분리직군 정규직화 논의는 현재는 비정규직의 해법으로 촉발된 측면이 크지만 향후 전체 정규직의 임금체계까지도 건드릴 수밖에 없다"며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고 신중한 것"이라고 말했다. .

기업도 '눈치보기'…"아직 법 시행도 멀었는데…"

조심스럽기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우리은행 모델을 반대하고 있는 노동계에 비해 경영계는 상대적으로 여유롭게 향후 움직임 및 파장을 지켜보겠다는 분위기다.

이마트의 '캐셔 정규직화' 보도 직후 신세계 관계자는 "법 시행은 오는 7월부터이지만 2년 이상 사용을 금지하도록 한 비정규직 법의 실질적인 적용 시기는 2009년 7월부터인 셈"이라며 "아직까지 여유가 있는 만큼 여러 대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또 전문가들은 "노조가 앞으로 임단협을 통해 기존의 정규직과의 차이를 좁혀가려고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며 "임금 등에서의 직무간 격차가 차이인지 차별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는 만큼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더욱이 기업별 비정규직 규모와 복지 및 임금 혜택의 수준 차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인건비 자체는 늘어날 것이라는 점에서도 이 모델이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으로 확산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대기업을 제외한 중소·영세사업장에서 이같은 방식으로 정규직화를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

김성희 소장은 "실질적인 정규직화의 단초로 활용하기 위해서도 '우리은행 모델'이 갖고 있는 여러 함정들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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