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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수업이 FTA를 만났을 때…

[교육과정/논란을 넘어 대안으로]과학-사회 벽 허무는 STS수업

최근 <프레시안>에 게재된 기획 '교육과정 논란'을 접한 독자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첫 번째 주제로 다룬 '문과-이과 구분부터 없애자'에 대한 반응이 특히 그랬다.

그 중 한 가지가 기존의 문과-이과 구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을 넘어 대안까지 제시하라는 요구였다. 하지만 그것은 언론이 혼자 감당하기에는 무리다. 교육과정의 대안을 마련하는 작업은 다양한 전문가와 시민의 폭넓은 참여 속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 하는 대신, 대안을 찾는 이들에게 참고가 될 수 있는 사례를 소개하기로 했다. 이번에 소개하는 사례는 과학교사들이 시도하는 STS수업이다. 과학(Science), 기술(Technology), 사회(Society)의 영어 첫 글자를 딴 STS수업은 학생들이 단지 과학 지식만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 과학과 기술의 사회적 의미와 영향을 고찰하게끔 하는 것이다. 이런 수업은 과학 교사들 사이에서만 시도된 것이지만, 경직된 문과-이과 구분을 넘어서자는 기획에 담긴 문제의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학문 간 벽을 허물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학교에서 STS수업을 실제로 진행해 왔던 이혜인 교사(서울 연천중)가 자신의 경험을 담은 글을 기고했다. 이 글에서 이 교사는 "왜 과학을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학생들에게 들려주지 못 하는 과학 수업에 대한 답답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런 답답함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어떻게 STS수업으로 이어졌는지에 대해서도 담담하게 설명했다. 다음은 이혜인 교사의 글 전문이다. <편집자>
- '문과-이과 구분, 이젠 없애자"
"경직된 문과-이과 구분이 '황우석 사태'낳았다"
"문과-이과의 차이는 제도가 만든 허상에 불과"
'하얀 거탑' 속에는 무엇이 있나?
'핀란드 교육'이 부럽다고요?
과학수업이 FTA를 만났을 때…

삶과 동떨어진 과학을 가르치며, 나는 답답했다

나는 중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교사다. 내가 과학 교사가 된 것은 우연이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다른 많은 고3 수험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대입 원서 마감에 임박해서야 전공을 결정하여 과학교육학과에 입학했다.

머리가 비상하게 좋아야만 과학을 할 수 있다거나, 과학자는 세상일에는 둔감한 채 연구실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한다는 당시의 편견에서 나도 자유롭지 못 했다. 그래서 나는 참 답답했다. 전공은 '과학교육'이지만, 온갖 세상일에 관심이 많았고, 또 그런 관심을 사람들과 나누고 표현하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였다. 그런데 대학에서 비싼 등록금을 내며 애써 배우는 학문은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일과 동떨어져 보였다. 답답한 게 당연했다.


▲ 2005년 2월 정부가 발행한 황우석 우표. 1백60만 장이 발행된 이 우표는 인간 배아 줄기세포의 배양과정과 불치병 치유를 바라는 내용으로 디자인됐다. 황 박사의 연구를 무조건 찬양하는 목소리만 나오던 당시 분위기 속에서 생명윤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연합뉴스

하지만 이런 '관심과 전공의 간격'에 대해 오래 고민할 여유는 없었다. 1990년대 이후 도입된 임용고사 때문이었다. 대학 시절 착실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졸업 후 딱 청년 실업자가 될 판이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욕구를 꾹꾹 눌러가며 열심히 공부했고, 다행히 붙었다.

교사로 임용돼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초기에는 내가 가르치는 과목과 나의 삶이 분명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퇴근 후에는 여러 사회단체 활동에 참석했지만, 거기서 배운 것을 수업에 적용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교과서에 제시된 과학 지식을 간결하고 정확하게 전달하고 실험을 자주 하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은 좋아했다. 하지만 누군가 '왜 교사가 과학을 가르쳐야 하고, 왜 학생들이 과학을 배워야 하느냐'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까봐 두려웠다. 왜냐하면, 나도 답을 몰랐으니까.

냉정한 '과학'이 따뜻한 '인권'과 어울리다니

그렇게 지내던 몇 년 전, 우연히 본 신문 기사가 내 삶을 흔들었다. 유네스코에서 '과학과 인권'이라는 교사 워크숍을 연다는 기사였다. 그 행사에 참가한 이유는 간단했다. '과학'과 '인권'이라는 두 단어의 만남이 생소하게 여겨졌고, 그래서 궁금증이 일었던 것이다.

거기서 행사 진행을 위해 오신 강사 선생님들을 처음 만났다. 그 때 그분들이 나눠준 자료집 이름이 '가치를 꿈꾸는 과학'이다. 당시 나는 이 이름이 참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냉정하고 차가운 이미지가 떠오르는 '과학'에 어떻게 '가치'와 '꿈'을 붙일 생각을 했을까?

그 때 워크숍에서 다룬 내용들이 '체르노빌 사고', '유전자 조작 콩', '새만금 문제' 등이었다. 이것이 바로 'STS(Science-Technology-Society, 과학-기술-사회)' 수업이었다. 과학과 기술, 사회의 벽을 허물고, 이들 내용을 최대한 연계해서 가르치는 것이다. 예전에 이런 수업을 외국 사례로 접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입시 위주의 한국 교육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런 수업을 실제로 하고 있는 교사들이 있다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당시 강의를 진행하던 선생님들은 모두 '가치를 꿈꾸는 과학교사 모임'(가꿈) 회원이었다. 그래서 나도 이 모임에 가입했다. 우리 회원들은 STS수업 연구를 위한 세미나를 정기적으로 진행하곤 한다.

과학은 과학자들만의 탐구 대상이 아니다

얼마 전에는 우리 모임 회원들이 중·고등학교 윤리, 철학 선생님들과 합동 세미나를 개최했다. 윤리나 철학 선생님들은 생명과학에 대해 어떠한 관점으로 수업을 진행하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10년 전부터 생명과학과 관련된 수업자료를 개발하면서 생명윤리에 관심을 가져 왔다. 결국 윤리학과 철학에 바탕을 둔 접근이 요구됐고, 기존 교과의 벽을 넘나드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처럼 과목을 넘나드는 수업을 하다보면 종종 우리가 과학교사가 맞는지에 대해 의문 든다. 물론 우문(愚問)이다. 이런 시도들은 모두 과학을 더 과학답게 가르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이런 우문을 품게 된 것 자체가 과목 간의 벽이 두꺼운 한국 교육계 풍토를 보여주는 일이라고 본다.

STS수업에 대해 설명하려면 먼저 '과학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흔히 과학은 '가치 중립적'이며, '객관적'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과학철학자들의 논의를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 '인간 광우병'의 위험을 알리기 위해 지난해 한국을 찾은 자넷 깁스. 영국인인 그는 지난 2003년 1월 외동딸 조안나를 '인간 광우병'으로 잃었다. 그는 방한 당시 국회에서 열린 FTA와 광우병 증언대회에 참석하여 광우병 쇠고기의 위험성을 생생히 전달했다. ⓒ뉴시스

과학 지식, 과학적 방법, 과학자 등이 모여 과학을 구성한다고 여겼던 전통적 과학철학자들과 달리, 현대의 과학철학자들은 기술적, 경제적, 윤리적, 정치적 측면도 과학을 구성하는 부분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과학철학자, 과학자, 과학교육학자 등은 현대 과학에서 사회적 의미를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런 논의를 모아보면 '과학'은 결코 가치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이지 않다. 또 현대의 '과학'은 더 이상 과학자의 지적 전유물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원자력이 대표적인 사례다. 원자력 발전은 20세기 과학의 성과로 탄생한 것이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한국에 도입됐다. 그리고 핵 폐기장 부지 문제가 불거지면서 정치적, 사회적 논란을 낳고 있다. 요컨대 자연과학과 경제, 정치가 원자력이라는 주제를 교차하고 있는 셈이다.

또 '황우석 사태'를 통해 논란이 된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어떤가. 학계와 종교계가 윤리적인 문제로 대립했다. 이런 사례가 일상에 비춰 너무 멀게 느껴진다면 다른 사례도 있다. 먹거리 문제다. 최근 미국과의 FTA협상에서 '광우병 감염 의혹이 있는 소', '유전자 조작 콩' 등이 논란이 됐다. 자연과학과 경제, 정치 등이 생활과 밀접한 영역에서 만나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올 겨울 유난히 따뜻했던 날씨도 한 예가 될 수 있다. 이산화탄소 감축 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그것은 국제정치와 경제의 중요한 쟁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 교육을 받는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는 이처럼 자연과학과 다른영역이 서로 교차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지금의 어른들보다 훨씬 자주 부딪히게 될 것이다.

광우병 다룬 과학 수업, FTA도 함께 이야기 하자

그렇다면 이런 아이들을 위한 과학교육은 어떤 것이어야 하나. STS수업이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과학과 기술, 사회를 넘나들며 과학과 사회가 만나는 다양한 방식,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숱한 문제들을 아이들에게 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전자, 광우병 등을 설명할 때, 사회와 동떨어진 과학 지식으로 소개해서는 큰 의미가 없다. 과학 수업에서 이런 개념을 배운 학생이 한미 FTA협상에 관한 기사와 관련지어 생각할 수 있게 될 때, 수업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왜 과학 교과서 속의 지식이 우리 삶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한미 FTA협상과 같은 국가적 의제의 한 부분이 될 수밖에 없는지 등에 대해서도 가르쳐야 한다.

물론 이런 주장이 중고등학교의 모든 과학수업이 우리가 개발한 자료처럼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은 결코 아니다.

다만 현재의 과학교육은 너무 한 쪽에만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시민으로 자라게 하는 것은 모든 교과에서 추구하는 목적이다. 과학교육 역시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장차 과학과 사회가 엮인 문제에 대해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것은 과학교육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이런 지적에 동의한다면 STS수업에 담긴 문제의식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도시 학교의 경우, 한 학년을 여러 과학 교사가 맡는 상황에서 개별 교사가 짬을 내어 시험 범위에서 벗어나는 내용을 다루는 STS 수업을 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교사의 신념이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TS 수업을 통해 과학이 사회와 관계맺는 다양한 측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그래서 우리는 입시 위주의 척박한 교육 현실 속에서 여전히 '가치'를 '꿈꾸고 있는' 과학교사들일 수밖에 없다.

과학과 사회 사이에 벽을 친 학교에서 자란 시민의 비극

이쯤에서 우리가 해 온 활동 중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황우석 박사의 논문조작 사건이 밝혀지기 전, 그러니까 온 나라가 곧 다가올 생명공학의 시대에 대한 장밋빛 꿈을 꾸고 있을 때였다. 우리는 당시의 사태를 그대로 보고 있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교실에서 하는 생명공학 수업'이라는 제목으로 공개 발표회를 하기로 했다. 당시 분위기를 고려하면 비장한 결심이 따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과학에 대한 아무런 성찰이 없었던 당시 사회분위기를, 그리고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가 아무런 거름 장치 없이 학생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그대로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당시 우리의 생각은 소박했다. 학생들에게 '균형있는' 논의를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과학은 결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다. 그리고 절대로 믿어야 하는 신화도 아니다. 자연과학 연구에 대한 윤리적, 사회과학적 논의를 소개하여 당시의 일방적인 분위기에 대해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발표회가 열리던 날, 우리는 생명윤리에 관한 과학수업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며, 비판 없이 언론에 소개되는 생명공학연구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연구 과정에서 '생명'이 어떻게 실험대 위에서 조작되고 있는지, 이런 연구를 할 때 꼭 지켜야 하는 원칙은 무엇인지에 대해 소개했다.

황우석 박사의 연구에 대해 사소한 의혹을 제기하기만 해도, 국가의 역적이 되는 분위기였던 때였다. 우리는 소심했고, 그래서 공개 발표회를 앞두고 참으로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황우석 사건' 당시 우리 사회의 모습은 STS수업의 필요성을 분명히 확인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과학과 사회 사이에 견고한 벽을 친 학교에서 자란 시민들이 생명과학과 관련된 윤리적 쟁점에 대해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힘들었던 것은 당연했다.

과학교사도 과학에 관한 지식을 모를 수 있다
▲ '인간광우병'에 감염된 사람의 뇌. 전문가들은 소의 뼈와 내장을 다시 소에게 먹이는 '동종식육'이 광우병의 원인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소에게 육골분 사료를 제공해 왔다. FTA협상에서 쇠고기 문제가 논란이 되는 이유 중 하나다. ⓒ연합뉴스

생명윤리에 관한 발표회 외에도, 우리는 그동안 해 온 연구 작업들을 다섯 권의 자료집으로 정리했다. 이들은 실제 수업에서도 활용됐으며, 과학교육에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이들도 관심을 가질 만한 것들이라고 본다.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미래를 준비하는 에너지 교육 : 지구 온난화, 체르노빌 사건, 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 유전자 조작과 생명윤리 : 개인의 유전정보 사용, 실험에 이용되는 동물들의 권리, 유전자 조작 식품, 생명윤리기본법, 여성주의 관점에서 본 생명공학, 배아복제연구
· 함께 사는 지구 : 대기와 물의 오염, 쓰레기 문제, 새만금 간척, 종 다양성, 식량 문제, 오존홀
· 컴퓨터 윤리 : 네티켓, 컴퓨터 과다 사용 문제, 건전한 사이버 문화 등


그럼 STS수업을 교육현장에 도입할 때 부딪히는 어려움들은 어떤 것들인가. 다른 교육 문제들을 풀어갈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현행 입시 위주 교육이 낳은 경직된 풍토를 들 수 있다. 또 자연과학을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바라보는 인식의 부족도 어려움으로 들 수 있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 기계적으로 편성되는 문과-이과 구분 역시 곤란한 문제다. 이런 구분이 빚어낸 고정관념이 STS수업을 위한 중요한 장애물이 되는 것이다. 또 교사들의 교과 이기주의 등으로 인한 교과 간 소통의 어려움도 빠뜨릴 수 없다.

결국 이런 학제간 수업은 다양한 과목의 선생님들이 동일한 주제를 놓고 충분히 토론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이런 토론이 진행된 바탕 위에서 교수방법과 교육내용을 정하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학교사 개개인의 인식 변화다. 처음 우리 모임에 참여했을 때 나는 내가 별 어려움 없이 STS수업에 적응할 줄 알았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모르는 것도 많았고, 중요한 주제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지나치는 내 무딘 모습을 발견하며 실망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좀 불편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나는 과학교사가 과학과 관련된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증에서 차츰 자유로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내 자신이 교사로서 성장하고 있는 과정에 있다는 점을 인정하게 됐다. 또 STS수업에서 종종 시도하는 토론, 조사, 합의회의 등 학생 중심 교육활동을 실제로 하면서 교사의 통제가 제한적으로만 이뤄지는 수업에 대한 두려움도 줄었다.

'점수'로 효과를 검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예전에 어느 선생님께서 우리 모임 선생님들이 정규 수업의 상당 부분을 STS수업에 할애하고 있는 것처럼 말씀하신 기억이 난다. 우리가 STS수업을 강조하니까 그렇게 비춰지나 보다. 그러나 우리의 수업도 여느 과학교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신 생활과학 시간, 재량학습, 특별활동, 학기말 수업 등을 활용하여 STS수업을 실시할 따름이다.

또 STS수업의 효과를 검증할 수 있는 평가 도구가 있느냐는 질문도 받는다. 중간 기말 시험처럼 명료한 숫자로 효과를 보여줄 수 있는 평가 도구는 아직 없다. 사실 그런 식의 도구는 앞으로도 계속 없을지 모른다.

평가의 방법은 학습의 목표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STS수업의 목표는 애당초 계량적인 지표로 표현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다만 학생들의 글쓰기, 그리기, 역할극 등 다양한 표현을 통해 그 성과를 짐작할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모임의 선생님께서 지도하신 생명윤리 수업에서 '배아의 도덕적 지위에 대한 합의회의' 후 학생들이 직접 작성한 합의문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끝맺으려 한다.
- 배아는?

난자와 정자가 수정된 후 4~5일 째부터 2주까지를 '전배아', 그 후부터 8주 전까지를 '배아'라고 부른다. 배아복제연구에서는 전배아 상태의 수정란을 다루지만 통상적으로 이를 배아라고 부른다.

- 합의 회의는?

사회적 영향력이 큰 신기술에 대해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패널들이 전문가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함께 토론하여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 제도지만 과학기술 관련 주제에 대한 사회적 의사결정을 위해 유럽에서 종종 사용돼 온 방식이다. 과학기술이 가치중립적이지 않다는 전제를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STS수업의 취지와 통하는 면이 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외국의 합의 회의 모델을 따라해 보는 활동을 했다. 이 수업에서는 중학생들이 전문가들의 3가지 각기 다른 의견, 즉 '배아는 완전한 인간이다', '배아는 단지 세포 덩어리일 뿐이다', '배아는 잠재적 인간이다' 라는 제시문을 읽고 토의한 후 모둠 별로 배아의 도덕적 지위에 대한 합의문을 작성했다. 다음은 학생들이 작성한 합의문 사례들이다.

사례 1)
배아는 완전한 인간은 아닐지라도 하나의 생명체다. 그래서 배아는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하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는 있지만 그로 인해 배아는 희생되고 여성들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게 된다.

그리고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계속하게 될 경우 복제인간이 탄생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게 하며, 배아줄기세포 치료 방법 이외에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방법을 연구해 건강한 인간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례 2)
배아는 아직 며칠 지나지 않은 세포 덩어리로 완전한 인간이 아니다.

그래서 다수의 의견이 배아복제를 찬성하는 쪽으로 모아졌다. 배아를 이용하여 불치병을 고칠 수 있게 하되 배아 복제를 법으로 엄격히 제한하여 안 좋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례 3)
다수의 시민의 의견에 의거하여 배아는 잠재적 인간으로 결론지었다. 이로써 우리는 배아를 함부로 다룰 수 없다는 결정도 내린 셈이다.

중립적인 입장에서 볼 때, 배아복제를 억제하는 기준을 제시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따라서 배아복제의 규정을 명확히 내려 후에 혼란을 초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규정의 제한선은 난치병의 치료 및 연구 외의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런 목적 이외의 용도로 배아를 사용한 사람들은 엄벌에 처하는 게 옳다. 또한 연구에 필요한 여성의 난자 역시 매매를 금지해야 한다. 오직 기증을 통해서만 확보해야 한다. 이를 어기는 경우에도 처벌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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