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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밑바닥부터 천천히 다시 일어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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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밑바닥부터 천천히 다시 일어서자"

[인터뷰]'비정규직과의 연대' 호소하는 이소선 여사

"비정규직들의 서글픔이 너무 커서 점점 더 멀어질까봐 걱정이야…."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최근 부쩍 비정규직과의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이 여사는 지난 12일 민주노총이 주최한 노동자대회와 이튿날 열린 전태일 36주기 추도식에서 양대 노총에 "더디더라도 가장 낮은 곳의 사람들을 보듬어 안고 가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지난 9월 한국노총과 정부, 재계가 합의한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을 놓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서로 갈등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이 여사는 지난 13일 "양대 노총 위원장이 힘을 합치지도 않고 노동자의 힘이 모자란다고 말하는 것은 다 핑계"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였다.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최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민주노총 때리기가 지식인들의 스포츠가 됐다"고 불만을 털어놓았지만, 아들의 죽음 이후 40년 가까이 노동자들과 함께 해 온 이소선 여사의 비판은 분명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비정규직 준비 안 됐으면 노동자대회 미룰 수 있지 않나"
▲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가장 밑바닥에 있는 비정규직을 껴안고 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프레시안

그래서 17일 어렵사리 인터뷰 자리를 마련했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위치한 전태일 기념사업회에서 만난 이소선 여사는 "(양대 노총 사람들도 모두)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도 할 수 있는데 그것을 내가 비판한다고 생각하면 섭섭할 수도 있다"면서 말을 아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사는 "노동운동 지도자들은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부터 얻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가장 밑바닥의 사람들로부터 시작해 튼실한 주춧돌을 세워야 그 집이 흔들리지 않는 것인데…. 위원장이 된다는 것은 종으로 살겠다는 것이지요.

노동자들의 종이 되려고 마음먹었으면 가장 힘든 처지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 조금만 참고 있어 달라고 설득하고 길도 보여주고 해야지요. 그것이 무엇보다 우선입니다."

이 여사는 "뿌리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장의 눈앞의 성과나 형식적인 집회에 급급해하지 말고 뿌리부터 천천히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빨리 하려고 애쓰지 말고 철저히 준비하고 조직을 해서 무언가 얻어낼 수 있을 때 그 때 일어서야 합니다. 알맹이가 튼실해야지 겉보기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런 의미에서 굳이 행진같은 것도 교통에 방해된다고 욕 얻어먹으면서 할 필요가 없지요."

전국노동자대회는 어느덧 연례 행사처럼 매년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늘 열리는 것이 됐다. 그러나 이소선 여사는 "시위를 한다고 하지만 그 동안 시위를 해서 한 번이라도 무언가 얻어낸 적이 있나"고 되물었다.

이소선 여사는 "별 성과도 없이 시위 하지 말고 그 돈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에 가장 공을 들이라"며 "비정규직이 아직 준비가 덜 됐다 싶으면 노동자대회는 한 해 안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힘들다, 힘들다고 하지만 하면 된다"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은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얘기다. 그러나 문제는 그 어려움에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조차 파업 한 번 하기가 힘에 벅찬 세상에서, 언제든 해고가 가능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머리띠를 묶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10년의 역사를 바라보는 민주노총은 대의원대회마저도 수가 부족해 무산될 정도로 허약함을 드러내고 있다.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들의 '총파업'은 세상을 멈추고 바꾸기보다는 그 실현 가능성 자체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노동운동의 현실이다.

이소선 여사는 "대의원대회를 못한다는 얘기는 지도부의 무능을 보여주는 엄연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참가 숫자조차 지도부가 파악을 못하고 대의원대회 개최를 결정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죠. 지도부가 전체 조직을 통솔할 능력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준비해서 대의원대회가 무산되면, 우리 조직은 힘이 없다는 것을 밑바닥까지 보여주는 것밖에 더 됩니까."

그러나 이소선 여사는 "힘들다, 힘들다고 하지만 하면 된다"고 강조한다. 서슬퍼런 독재정권 아래서도 여기까지 노동운동을 끌고 왔던 사람들이 못 할 것이 어디 있냐는 것.

형식과 겉모양에 치우친 노동운동, 상상력을 발휘하라
▲ 위기의 노동운동, 이소선 여사가 내놓은 해법은 다소 비현실적인 듯 하지만 그것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프레시안

"양대노총이 함께 모여서 길 위에 그저 주저앉아 요구조건 5개만 써서 붙여놓고 마스크 쓰고 앉아 있으면 되요. 그 많은 사람들이 하나라도 들어줄 때까지 안 움직이겠다고 하면 그 사람들을 다 어디로 끌고 가겠습니까. 혹여 끌고 가서 버린다면 또 거기서 다시 주저 앉아 버티면 되죠.

더 쉬운 길도 많습니다. 노동자들이 사흘만 집에서 안 나오면 온 세상이 마비되지 않습니까. 집회 같은 것도 하지 말고 그저 집에만 있으면 주동자가 없으니 아무도 잡혀가지도 않을 거잖아요.


옛날에 그런 적이 있지요. 평화시장에서 와이셔츠 만드는 노동자들이 하나 만들면 50원을 받았어요. 공임이 너무 적어서 힘들다고 하기에 모두 우리 집으로 오라고 해서 7평 방 안에 포개 앉아 문을 걸어 잠그고 밖에 안 나갔거든요. 결국 사장도 찾아오고 이 사람 저 사람이 오더니 8일 만에 80원으로 올렸습니다."

이 여사는 답답하기만 한 노동운동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로 의외로 간단한 얘기를 내놓았다. 그가 제시한 '대안'은 어쩌면 현실 속에서 가능한 얘기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말이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며 틀에 박힌 '투쟁'에 골몰하고 있는 양대 노총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양대 노총의 세력 다툼 속에 어느덧 관료화된 노동운동의 지도부를 향해 이소선 여사는 노동운동의 상상력 부재를 문제로 지적했다. '길이 없다고 외치기보다 길은 만들어 가면 된다'는 당연한 진리 앞에 노동운동의 갈 길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한 마디 하면 알아들어야지!"

이소선 여사는 덧붙여 "더 이상 사람이 죽는 것은 안 된다"고 했다. 노동자가 죽어가는 것이 더 이상 '뉴스'가 되지 못할 정도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가 너무나 많다. 때로 타의에 의해 운명을 달리 했지만 '누구에 의해 죽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다.

포항 건설노조 조합원 하중근 씨가 집회 도중 사망한 지 어느덧 3개월을 훌쩍 넘겼지만 경찰을 비롯한 정부는 입을 꾹 닫고만 있다. 더욱이 노동계 역시 하 씨의 사망에 대한 책임소재를 가려낼 것을 촉구하기에는 힘이 부족한 '답답한' 상황이다.

이소선 여사는 "하중근 씨가 죽었지만 진상규명 얘기도 안 나오고 가족들만 사람 하나 잃어버리고 힘든 거다"며 "사람은 이제 그만 죽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인터뷰 초반 이소선 여사는 "지난 12일과 13일 하고 싶은 얘기는 다 했는데 무슨 말을 또 하라고 하느냐"고 말했다. 인터뷰 중간에도 그는 "양대노총이 힘을 합쳐야 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 해야 한다고 한 마디 얘기하면 알아들어야지…"라며 질문을 하는 기자를 꾸중하기도 했다.

이 꾸중은 그의 말의 행간에 담긴 깊은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달라고 조르는 기자를 향한 것이기도 했지만, 간단한 원칙을 '알아듣지' 못하는, "다들 너무 똑똑해서 걱정인" 우리 노동운동 지도자들을 향한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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