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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4년 전 이탈리아와 다른 게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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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4년 전 이탈리아와 다른 게 있나

[프레시안 스포츠] 안정환 퇴출과 신문선 소환은 닮은꼴

4년 전 월드컵 16강 전에서 탈락한 이탈리아는 미쳐 있었다. 선제골을 넣었지만 히딩크 감독의 모험적인 공격수 투입으로 한국에 통한의 역전패를 당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핵심은 바이런 모레노 심판의 '편파판정'이었다.

이탈리아 언론들은 이탈리아 축구의 '골든보이' 토티를 퇴장시킨 모레노 심판을 난도질했다. "개최국인 한국과 모레노 심판 간 모종의 사전합의가 있었다"는 추측성 보도까지 서슴지 않았다.

축구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이탈리아의 어른들(?)'도 이 문제에 직접 개입했다. 들끓는 국민정서 때문이었다. 치암피 당시 이탈리아 대통령은 "승리는 우리가 차지했어야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원 의장 마르셀로 페라도 "그들은 우리의 승리를 훔쳤다"고 심판 판정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이 와중에 웃지 못할 코미디가 벌어졌다.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연장 골든골을 성공시킨 안정환이 이탈리아 클럽 페루자로부터 퇴출당했다. 안정환의 죄목은 '괘씸죄'. 페루자의 괴짜 구단주 가우치는 "이탈리아를 (월드컵에서) 쫓아낸 안정환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가우치는 한 발 더 나아가 "안정환은 팀에서 아무런 하는 일도 없이 돈을 벌었는데 이탈리아 축구를 망쳤다. 안정환의 골은 이탈리아에 대한 범죄행위"라고 망언을 했다.

이 일을 두고 국내 언론들은 이탈리아의 지나친 '축구 국가주의'를 맹비난 했다. "월드컵이 국가의 명예를 건 중차대한 스포츠 이벤트지만 여기에 이탈리아처럼 과도한 '국가주의'가 개입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탈리아는 안정환 퇴출 조치에 부끄러워 해야 한다"는 게 비난의 요지였다.

다른 유럽 언론들이 공격수를 계속 투입하며 승리를 쟁취한 '히딩크 찬양'에 열을 올리자 이탈리아 언론은 방향을 급선회해 참을성이 없었던 토티를 몰아 세우기도 했다. 토티는 "내가 이탈리아 남부 사람이라 이탈리아 언론이 나를 한국 전 패배의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다"며 이탈리아에서 뿌리 깊은 남북 간의 지역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4년 뒤 한국팀에게 당시 이탈리아팀 못지 않은 일들이 벌어졌다. 스위스 전에서 벌어진 오프사이드 논란 때문이다. 선심을 깃발을 들었지만 주심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스위스의 골잡이 프라이가 쐐기골을 뽑아냈다. 0-1로 뒤지던 상황에서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해 사실상 16강 진출의 꿈을 잃어버린 한국 선수들은 거세게 항의하며 억울함을 호소했고, 경기장에 있던 붉은 악마들도 '오프사이드'를 크게 외쳤다. TV를 시청하던 국민들도 가슴을 치고 있었다.

이 순간 한 방송사의 해설위원은 "저건 사기예요"라는 말로 국민 감정에 호소했다. 반면 다른 방송사의 해설자는 "오프사이드가 아닌데요"라는 자신의 소신을 그대로 밝혔다. 국민 감정을 등에 업은 해설위원은 '영웅'이 됐지만 소신을 밝힌 해설위원은 '역적'이 됐다. 결국 이 일 때문에 '역적'이 된 해설위원은 방송사에 의해 소환조치 됐다. 방송사가 해설위원을 소환한 까닭은 '국민정서' 때문.

국내 언론은 4년 전의 이탈리아 언론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국민들이 냉철한 판단을 할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이 아니라 여론에 끌려갔다. 스위스 전에 임했던 한국에 대한 철저한 분석은 없었다. 다만 오심 논란과 편파 판정 의혹 만을 부풀리는 기사였다. 프랑스 전에서 논란이 됐던 비에라의 헤딩슛은 명백한 '노 골'로 규정해 놓고서 말이다.

4년 전 이탈리아, 스페인의 언론이 일제히 한국 전이 끝난 뒤 개최국을 위한 편파 판정에 항의했던 것 처럼, 국내 언론은 '스위스는 FIFA 회장인 제프 블라터의 조국'이라며 스위스가 심판 덕을 보고 있다는 쪽으로 상황을 몰아가기도 했다.

네티즌들도 "재경기를 해야 한다"며 서명운동에 나섰다. 이 와중에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FIFA(국제축구연맹)에 이 문제를 정식으로 제소하겠다"며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4년 전 모레노 심판이 이탈리아의 '공공의 적'이었다면 이번에는 엘리손도 심판이 한국의 '공공의 적'이 된 셈이다.

현재 축구 전문가들은 스위스 전에서 발생했던 오프사이드 여부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자신의 의견을 과감하게 펴는 축구 관계자들이 극히 드물다. 용기가 없다고 이들을 비난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 정서에 반하는 말을 해서 졸지에 네티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은 이들의 심정도 감안해야 한다. 아직 국민들이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생각이 이들에겐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한 축구인은 "스위스 전 오프사이드 여부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주심 고유의 판단이 가미돼 있는 오프사이드 판정을 정확히 분석하려면 여러 각도에서의 검증이 필요하다"며 "오프사이드 여부 판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한국이 조별 예선 세 경기에서 초반부터 제 플레이를 하지 못했는지, 왜 중원에서 힘 한번 쓰지 못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다. 그저 코너킥 몇 개, 프리킥 몇 개, 파울 몇 개 등으로 이뤄진 숫자놀음식의 자료정리가 아니라 제대로 된 분석이 축구협회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나이테에 줄 하나 늘어날 틈도 없이 너무도 빨리 훌쩍 자라버린 한 그루의 '나무' 때문에 '숲'을 보지 못하는 실수를 하지 말자는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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