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서울시장 후보의 하루는 어떨까? 젊은 후보답게 강행군이겠지. 오늘 하루는 대단히 피곤한 하루가 되겠구나."
6일 오전 8시 여의도 김민석 후보의 자택 앞에 도착한 기자는 새삼 각오를 다졌다. 마치 내가 선거에 출마하기라도 한 사람처럼 비장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김 후보의 표정은 전혀 비장하지 않았다. 활짝 웃으며 기자에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에서 긴장감 보다는 일종의 여유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선거운동' 자체를 즐기는 것은 아닐까?
***부인에게 전화할 때 너무도 공손한 김 후보**
선거유세용 미니버스에 함께 올랐다. 이어서 김 후보의 아침식사. 식사는 요플레 한 통, 바나나우유 하나였다. 노무현 대통령후보와 함께 하는 이날의 유세일정들을 확인하고 스케줄의 변동사항들에 대한 간단한 보고를 받았다.
차량은 보훈병원으로 이동중이었다. 이날은 현충일. 첫 방문지가 보훈병원이다. 그런데 이동중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김 후보가 입고 있는 양복 의상을 체크하던 수행원이 상의와 하의가 자세히 보면 다른 옷임을 발견한 것이다.
김 후보는 급히 어딘가로 직접 전화를 걸었다. "옷을 잘못 내준 것 같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전화했다"는 내용. 그런데 말투가 너무도 공손하다.
수행원들에게 물었다. "도대체 누군데 저렇게 공손한가?" 대답은 "집에 부인에게 전화한 것"이란다. 김 후보가 공처가인가? 아님 애처가? 직접 묻지는 못했다.
***보훈병원 관계자, "소문보다 신중하다"**
보훈병원 앞에서 노무현 후보와 합류한 김 후보는 함께 병원에 입원중인 상이군경들을 위문하고 대화를 나눴다.
병원 측이 마련한 현황설명 시간에 김 후보는 특히 고엽제 후유증의 치료와 보훈대상자를 위한 위탁병원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김 후보와 노 후보의 방문에 대해 병원의 한 관계자는 "(병원)예산을 늘리겠다는 식의 공약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구체적인 애로사항을 듣고 앞으로 더 잘 알아본 후 결정하겠다는 것으로 봐서 두 사람 다 소문보다 꽤 신중한 성격인 것 같다"고 평했다.
보훈병원을 떠나 첫 유세지인 남대문시장으로 출발하는 차량에는 노무현 후보가 잠시 동승했다. 두 후보는 서울시장 선거뿐 아니라 지방선거의 전체적인 구도와 대선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을 교환했다. 기자에겐 "쓰지 말라"고 했다.
***"부패하고 부도덕한 인물보다는 차라리 젊은 후보가 나은 선택"**
남대문시장에서 시작된 이날 김 후보의 거리유세는 모두 5곳으로 이어졌다. 유세의 중심내용은 '부패하고 부도덕한 인물보다는 차라리 젊은 후보가 나은 선택', '청계천 복원 같은 전시성 행정 보다는 실질적인 복지예산을 늘리겠다'는 것이었다. 5번 모두 대부분 큰 틀은 비슷한 내용이었으나 청중의 연령이나 지역을 고려해서 조금씩 표현을 다르게 했다.
남대문시장 연설 후 김 후보는 노무현 후보, 이 지역 국회의원인 정대철 의원과 함께 시장과 상가들을 돌아다니며 상인들과 휴일을 맞아 쇼핑을 나온 시민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지지를 호소했다.
유세를 마친 후 국밥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김 후보는 이제까지 기자가 만나 본 정치인 중 최고의 식사속도를 보였다. 불과 3-4분이나 걸렸을까? 다른 일행들보다 먼저 식사를 끝낸 후 양해를 구하고 옆 테이블로 옮겨 한 신문사와 인터뷰까지 했다. 또 식당 2층으로 올라가 잠시 휴식까지 취하고 내려왔다. 다른 사람들은 식사 후 담배 한 대 피울 정도의 시간이었다.
분초를 나눠 현장을 뛰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터득한 노하우일까?
***"이래서 어떻게 전쟁에 이기느냐"**
김 후보는 다음 유세장인 마포로 가는 차량 안에서 수행원들과 즉석 회의를 가졌다. 그동안 유세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과 남대문시장 유세에서 미흡했던 점들에 대한 김 후보의 따끔한 질책이 터져 나왔다.
"수행원은 후보가 유권자에 다가가기 전에 먼저 후보가 오고 있음을 알려야 한다. 후보와 유권자의 만남이 자연스럽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는데 뒤에서 지켜보며 따라와서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이 뿐 아니라 유세과정에 드러난 문제 하나하나씩 그 원인을 분석하고, 유세현장에서 쓰일 다양한 요령과 기술들을 직접 알려주며 대안을 제시했다. '선거의 귀재'라는 정치권의 평가 그대로였다.
"이래서 어떻게 전쟁에 이기느냐." 김 후보의 질책이 이어졌다. "몸을 던져서 일 하지 않으면 선거에서 절대 이길 수 없다." 김 후보의 마지막 말이었다.
***"선거는 어떻게 보면 옛날 유랑극단 같은 것"**
오후 유세는 종묘공원과 약수동 사거리 그리고 성동구 구민회관 앞으로 이어졌다. 주로 각 지역의 기초단체장과 구 의원을 위한 지원연설을 겸한 것으로 노무현 후보가 먼저 연설을 마치고 떠나기 직전에 김 후보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김 후보측 설명에 따르면 함께 단상에 오르는 것보다 이 방법이 유권자에게 더 큰 인상과 호감을 주는 방식이라고 한다.
종묘공원 유세에서 김 후보는 노인들에게 큰절을 올렸다.
약수동 연설을 끝내고 유세차량으로 돌아오자 한 지지자가 선물했다는 아이스크림 한 개가 김 후보에게 전달됐다. 김 후보는 무척 흐뭇한 듯 "선거에 나선 후보는 사람들의 사랑을 쫒아 계속 떠돌아 다녀야 하는 처지니 선거는 어떻게 보면 옛날 유랑극단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후보도 나처럼 유세 중에 이런 선물을 받는지 무척 궁금하다"는 말이 이어졌다.
이날 마지막 유세인 성동구 구민회관 앞 유세에서는 꽤 많은 청중이 모였고, 김 후보 연설 후 환호성도 터져나왔다. 그러자 김 후보는 갑자기 단상을 내려와 청중 속으로 뛰어들어 유권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며 돌아다녔다. "오늘 한 5천표는 굳었을 것"이라는 수행원들의 흡족한 멘트가 이어졌다.
5곳의 유세를 모두 끝내고 이동하는 중 '선거의 귀재'라는 호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귀재는 무슨..." 하고 말을 아끼던 김 후보는 "아까도 말 했지만 몸을 다 던지고 하면 (무슨 일이든) 된다"며, "가장 빛나지 않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기꺼이 몸을 던져 일하는 조직은 선거에서 이기기 마련"이라고 선거 승리의 비결을 설명했다.
저녁 일정까지 시간 여유가 있어서 간접적으로 홍보도 할 겸 식사를 강남 쪽에서 하고 가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연이은 유세로 후보가 상당히 지쳐있어 저녁식사는 편안하게 하자는 의견이 모아져 여의도의 선거캠프로 향했다.
김 후보는 잠시 쉬겠다며 수행비서도 없이 혼자 목욕탕으로 갔다. 기자도 차마 목욕탕에는 따라갈 수 없었다. 잠깐 눈 붙이겠다는 뜻인데 방해할 수 없었다.
덕분에 수행원들과 기자도 다소 긴장을 풀고 오후 8시까지 2시간 정도 식사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나중에 라디오프로 진행 같은 거 하면 어떻겠냐**
저녁 일정은 방송국으로 이어졌다. 먼저 라디오연설 녹음을 위해 MBC로 향했다.
MBC 라디오 방송용 공식연설 녹음은 세 번만에 끝났다. 첫 번째는 10초 초과, 두 번째는 연설 도중 재채기, 마지막은 9분30초의 제한시간을 정확히 2초 남기고 끝냈다.
녹음실을 나서며 "칼 같이 맞췄다"는 방송국 관계자들의 칭찬에 "나중에 라디오(시사)프로 진행 같은 거 하면 어떻겠냐"는 김 후보의 농담이 이어졌다.
다음은 SBS, 7일 아침에 방영될 TV연설 녹화였다. 유세차량을 방송국 주차장에 정차시키고 차안에서 분장을 하며 연설문안을 다듬고 의상을 바꿔 입었다.
이 때 다소 시간여유가 있어 청계천 복원 공약이 다른 시장후보들 모두가 찬성한 공약이고 투표에 영향도 크지 않을지 물었다.
"그런 실현가능성이 적은 공약에 의지하면 나중에 큰 대가를 치른다"는 답변이 나왔다. 인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실현 가능성이 중요하다는 의지로 읽혔다.
정확한 나이를 묻자 "지금 39살이고 내년에 40살"이라며 "내가 학교를 일찍 들어간 덕에 친구나 동창들은 다들 40살"이라고 했다. 친구들 나이까지 거론하는 걸 보니 자신이 더 이상 정치 초년생인 '청년'이 아니라 '불혹'에 가까움을 강조하려는 듯했다.
김 후보가 토론회나 연설에서 너무 이명박 후보 측의 과거경력 공격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닌지 물었다. 이에 대해 김 후보는 "검증은 당연한 것이고 정책과 함께 후보들이 어떤 사람인지도 충분히 유권자가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분이 어떻게 총선 때 그런 부정선거를 하고도 서울시장 후보로 나온 것인지 솔직히 좀 이해가 안된다"고 덧붙였다.
***탤런트 박철씨 갑자기 뛰어 올라와**
김 후보와 몇 가지 가벼운 질문들을 주고받는 동안 탤런트 박철씨가 갑자기 유세차량 속으로 뛰어 올라왔다.
박씨는 "여러 어른들과 의견을 나눠 봤는데 (내가) 고정프로를 맡고 있는 것이 있어서 직접 나서서 돕기는 힘들지만 마음으로 지지를 보낸다"고 말했다. 그리고 김 후보와 나란히 앉아 기자의 사진촬영에 포즈를 취해 주기도 했다.
SBS 공식연설의 녹화를 마친 후 김 후보는 여의도의 작은 프로덕션스튜디오로 이동하여 7일 밤에 있을 TV토론을 대비한 리허설을 가졌다.
SBS 녹화때 스튜디오 색깔 때문에 두 번이나 의상을 바꿔 입었던 김 후보는 여기서도 또 한 차례 의상을 바꿔 입었다. 다소 피곤한 기색을 보이던 김 후보는 기자에게 웃으며 "선거는 결국 노가다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힘든 일을 그럼 왜 계속 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후보는 정색을 하고 "사실 안 나오면 그만인 게 선거인데 이렇게 나온 것은 뭔가 의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실제 방송과 같은 시간동안 모의 토론회 형식으로 리허설이 진행됐다. 참석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졌고, 이에 대해 김 후보가 답하면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고쳐나가는 방식이었다. 프로덕션 관계자는 "김 후보는 이미 이곳에서 4차례나 모의토론회를 했다"며 "이번 주말에도 한번 더 하기로 예약이 돼 있다"고 밝혔다.
***밤 12시반이 넘은 시간까지 차량 안에서 다시 회의 주재**
TV 모의토론을 마친 후에도 밤 12시를 넘기면서까지 평가회의가 계속됐다. 김 후보의 선거관계자와 핵심수행원 대부분이 자리를 같이 했고, 김 후보의 약점과 강점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특히 민주당 서울시 선대본부 상임위원장인 이해찬 의원은 매섭게 김 후보의 약점들을 지적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했다.
회의가 끝난 후 이해찬 의원에게 김 후보가 왜 서울시장감인지 물었다. 이 의원은 "사장과 시장은 다르다"며 "시장은 이윤이 아니라 무한한 봉사를 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김민석 후보 같은 봉사할 수 있는 인물이 적임자"라고 주장했다.
TV 모의토론 평가회의 이후엔 차량회의가 또 이어졌다. 막판 선거운동에 쓸 휘장의 도안 등이 뒤늦게 도착했고, 이에 대한 결정을 위한 회의였다.
기자는 12시 40분경 김 후보와 인사를 나누고 유세차량에서 내렸다. 그때까지 회의는 계속됐고, 좀 더 이어질 것 같았다. 이렇게 하루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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