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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인권위 파행, 해법 있나?

치명타 입은 정부 행정력, 다시 시험대 올라

지난 26일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가 공식출범했다. 하지만 몸통과 손발은 없고 머리만 있는 파행적 출범이었다. 관련 부처와의 이견으로 사무국을 구성하지 못한 채 인권위원 11명과 인권위 설립준비기획단 직원 27명만으로 발족한 것이다.

국가 공식 조직 출범 사상 전례가 없는 초유의 사태다. 정부 국정운영능력에 대한 치명타라 할 만하다.

일이 이렇게 까지 된 것은 인권위를 바라보는 시각 차이, 정부조직 축소라는 행정운영의 논리, 부처간 견제와 책임소재의 상충 등등 여러 가지 복합적 이유가 있다.

그러나 저간의 사정이 어찌되었든 지금과 같은 파행적 상황을 오래 지속시킬 수는 없다. 앞으로 이 문제를 얼마나 조속히, 어떤 방식과 내용으로 풀어내느냐는 현정부의 정치력과 행정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인권위의 파행 출범을 초래한 표면상 이유는 국가인권위원회 사무국 직제 규정에 대한 부처간 이견 때문이다.

***인권위 인원수와 특례규정 입장차 커**

인권위 측은 애초 439명의 인원을 요구했고, 조직관리를 담당하는 행정자치부는 1백여명 수준을 제시했다. 그러다 지금은 인권위 321명 요구, 행자부 120명선 제시로 격차가 줄긴 했다. 그러나 여전히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 절충에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김창국 초대 위원장은 “인원을 축소시켜 ‘우리도 인권위가 있다’는 정도의 과시효과만 내려는 것이냐”고 반발한다. 반면 정부 안에서는 “다른 정부조직은 지금 인원이 충분해서 늘리지 않는 줄 아느냐”면서 난색을 표하는 상황이다.

사무국 인원 소요치에 대한 견해차이가 이처럼 큰 것은 인권위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인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인권위는 인권 및 평등권 침해사건의 진정접수와 조사라는 기본 기능 외에 인권 관련 법령과 제도 정비, 공직자에 대한 인권교육 등의 기능도 함께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행자부 측은 진정접수와 조사의 기본기능만 우선 시작하고, 공직자 교육 등은 기존 인력과 시설을 활용해도 된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또 하나 인권위 구성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인권위 인원 충원 특례규정이다. 인권위는 업무의 특수성을 감안, 공직자가 아닌 민간 활동가를 대거 채용할 수 있도록 하는 특례규정을 마련했다.

인권 및 시민단체 활동경력 14년 이상은 3급, 9년 이상은 4급, 4년 이상은 5급으로 채용할 수 있도록 하고, 채용시 행자부 장관과 협의 없이 통보만 해도 되며, 임용방식도 필기 및 실기시험 대신 서류와 면접만 치러도 되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그러나 행자부는 인권위 업무중 기존 부처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업무와 중복되는 부분은 해당 공무원을 파견 받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공무원 채용을 맡고 있는 중앙인사위도 “인권위 특례규정은 국가공무원법에도 어긋나고 국가인권위법에도 나오지 않는 조항으로 위법”이라며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어쨌든 이와 같은 조직구성 및 특례규정에 대한 부처간 이견 때문에 사무국이 구성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5월 24일 제정, 공포된 국가인권위원회법상 6개월 이내 발족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업무를 담당할 실무조직도 없는 상태에서 인권위가 출범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인권논리와 행정논리 위주의 시각 차이**

이처럼 파행 출범이 이루어진 표면상 이유는 인권위 인원수와 특례규정에 대한 견해 차이이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인권위 출범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 차이가 깔려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기관에 의한 개인의 인권 침해 구제를 주목적으로 하는 조직이다. 당연히 기존 정부조직들, 특히 검찰, 경찰, 국정원 등과 같은 권력기관에서는 인권위 출범 자체가 탐탁치 않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간 인권운동 성과의 연장선상에서 인권위 출범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더 많은 인원으로 더 큰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는 것이고, 반면 기존 정부조직에서는 가급적 적은 인원으로 최소한의 역할만 해 주기를 바라게 되는 측면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근본 입장차이가 현재 논란의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논란을 이런 시각차이만으로 돌릴 수도 없다.

연세대 김판석 교수(행정학)는 “미시적으로 인권위 자체의 기능과 의욕으로 보자면 많은 인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가경영이라는 거시적 시각에서 보면 인권위에 기존 정부조직에 비추어 과도하게 많은 인원을 배정할 경우 국가 전체의 틀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의 상황이 빚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김 교수는 “공정거래위원회를 제외한 모든 상설 위원회의 인원이 1백명 미만인 상황에서 3백명 이상을 요구하는 인권위에 대해 공무원들은 모두 어처구니 없어 한다”면서 “만약 공무원의 상식에 벗어나게 인원이 책정된다면 공무원 감축기조가 흔들리고, 다른 모든 부처에서 증원 요구가 빗발쳐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걱정이다.

실제 현정부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97년말 93만명이던 전체 공무원 숫자를 2000년 87만명 수준으로 낮추었다. 그러다 금년부터 각급 부처의 요구 때문에 다시 조금씩 늘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판에 인권위원회 인원 배정문제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권위의 기능적 중요성과 정부조직 전체의 운영이란 두 가지 준거를 조화시킬 수 있는 상호 양보와 조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인권위 출범은 ‘주인 없는 과제’**

하지만 과연 누가 그 조정역할을 담당할 수 있느냐도 문제다.

사실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다다르게 된 것은 인권위 출범 자체가 ‘주인 없는 과제’였다는 측면도 중요하게 지적되어야 한다.

외국어대 황성돈 교수(행정학)는 “인권위가 특정 부처 소속 조직이었다면 무슨 수를 쓰던 사전 부처협의를 끝내고 사무국을 먼저 구성한 후 출범했을 것”이라면서, “입법, 사법, 행정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국가기구라는 인권위의 위상 때문에 인권위 출범을 그 누구도 책임지고 챙기지 않는 바람에 일이 이렇게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시 말해 정부조직을 감시하기 위해 기존 정부조직으로부터 독립적인 위상을 갖는 인권위를 만들기로 정치적 합의는 이루어졌지만, 정작 국가기구의 하나로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다시 기존 정부조직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는 딜레마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이 딜레마는 지금까지만이 아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조속히 인권위의 정상적 출범을 이루기 위해서는 누군가 조정역할을 담당해서 인권위와 행자부 및 중앙인사위 사이의 갈등을 풀어내야 한다. 하지만 과연 누가 나서서 조정을 담당하고, 누가 그 책임을 질 것인지가 여전히 불분명한 상황인 것이다.

여기 대해서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해법이 상충된다.

황성돈 교수는 “청와대가 나서야 한다”고 주문한다. “부처간 견해 차이가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지금 이 상황까지 몰고 온 것은 청와대가 손을 놓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26일 파행 출범이 이루어진 날 대통령이 주무 수석을 혼쭐내고 단단히 챙기도록 했어야 한다”며 “어차피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인 이상 청와대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김판석 교수는 “청와대가 정치적으로 나서면 안된다”고 전혀 상반된 견해를 밝혔다. “청와대가 직접 나서면 공무원 입장이 곤란해지고 행정이 정치적 힘에 의해 왜곡될 우려가 있어 향후 국가 전체 틀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가 될 것”이라며, “특히 정권 후반기일수록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려는 유혹을 자제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김 교수는 “정치적 색깔도 없고 행정적으로도 잘 아는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이 전체 행정의 명분을 살려서 조정역할을 담당하는 게 최선”이라는 해법을 제시했다.

***현정부의 정치력, 행정력 시험대 올라**

과연 앞으로 청와대가 나설지, 총리실이 나설지, 아니면 인권위와 행자부 사이에서 자율적인 조정이 이루어질지 관심 있게 지켜볼 대목이다.

그중 어떤 방식이 되든 인권단체와 공무원, 더 나아가 전체 국민여론을 만족시키는 정답을 이끌어 내기는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다. 인권위의 파행 출범을 통해 이미 현정부의 정치력과 행정력의 중대한 결함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인권 신장의 획기적 교두보가 될 국가인권위원회 출범이 있기까지는 국제인권기구의 압력, 인권대통령을 자임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의지, 국내 인권단체의 지속적인 요구, 여야 정치권의 합의, 그리고 법무부 등 유관부처와의 갈등 조정 과정이 있었다.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국가 전체의 정치적 선택이 내려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는 현정부의 정치력과 행정력에 달린 문제가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김판석 교수는 인권위 파행 출범에 대해 “의사결정권을 갖는 최상층부에서 이상과 포부는 있었지만 행정적 현실감각과 정치력이 부족해서 빚어진 일”이라고 진단했다. 행정평론가 정두언씨도 “정부 전체가 뭔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뚜렷한 증거”라고 평했다.

정치적 결정을 현실로 안착시키는 과정이 곧 정치력이고 행정력이다. 정권 국정운영능력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지금까지 인권위 파행 출범 과정에서 이미 그 중대한 결함을 드러낸 현정부의 정치력과 행정력이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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