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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ㆍ朴은 이후락ㆍ 김형욱' 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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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權ㆍ朴은 이후락ㆍ 김형욱' 연상

정치 어제와 오늘 - 민주당 분란, 공화당 3선개헌 파동 닮았다

민주당의 분란이 열흘을 넘기면서도 수습의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다 해서 이런저런 말들이 무성하다. 여당으로선 전례가 없었던 내홍(內訌)이라느니, 집권 여당의 분란은 국정의 혼란이라는 논리까지 등장했다. 그럴까. 아무래도 이런 논리에 동의하기 어렵다.

사람이 모인 곳에 대립, 갈등, 충돌은 있게 마련이다. 없다면 그건 살아있는 조직이 아니다. 대립하고 갈등하고 충돌해야 할 일이 있는데도 대립하고 충돌하지 못한다면 그게 도리어 문제다. 중요한 것은 문제의 제기와 타협의 과정과 내용이다.

이번 민주당의 분란은 10.25 보궐선거 패배에 대한 문책이다. 올 들어 두 차례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했다. 민심이 민주당을 떠났다. 어느 소장파 의원 말대로 “이대로 가다간 다 죽는다”는 위기인식이 분란의 배경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며 나온 게 인사쇄신 요구다. 당.정.청 인사를 쇄신하라는 것이다. ‘동교동계 해체’, 동교동계의 중심이자 김대중 대통령의 측근중의 측근인 ‘권노갑, 박지원의 정계은퇴’ 요구는 인사쇄신의 방향과 표적을 말해 준다.

***오늘의 민주당, 3선개헌 당시 공화당과 닮은 꼴**

이런 경로에서 보면 문제제기는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 권위주의 정권이라던 박정희 시대, 공화당에서도 분란은 끊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창당주역이던 JP의 두 차례 ‘귀양살이’(자의반 타의반의 외유)가 공화당의 권력투쟁을 말해준다. 60년대의 공화당과 2000년대의 민주당을 비교해 봐도 ‘문제 제기가 어렵다’는 점에선 민주당이 공화당보다 더 경직된 조직이다.

그럼 진맥과 처방은 어떨까. 공교롭게도 이번 민주당의 진맥과 처방은 공화당의 3선 개헌 때 일어났던 권력투쟁과 닮아 있다.

요즘 쇄신의 표적이 된 동교동 사람들은 “저 사람들(쇄신을 요구하는 사람들) 누구 덕에 국회의원 됐는데... 은혜도 모르고”라는 말을 한다. 3선 개헌을 추진하면서 당시 청와대 이후락 비서실장이 “공천 주고 돈 줘 당선시켜 놨더니 야당만도 못하다”고 한 말과 어쩜 그리 같은지.

‘공천 주고 돈 주고 표까지 준 당의 주인이 누군데...’라는 인식. 민주당이 갖고 있는 병의 뿌리가 이것이다. 과거 공화당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악성이다. 꼭 닮았다.

이제 처방 얘기로 가 보자. 박정희 전대통령의 2기 임기를 시작한 이듬해인 69년 봄 공화당 주류는 3선 개헌에 나섰다. 경제개발은 이제 겨우 궤도에 들어선 단계라는 평가 아래 ‘중단 없는 전진’이 필요하다는 것이 개헌의 논리였다.

당시 공화당은 국회의석 3분의2라는 개헌선도 확보하고 있었다. 문제는 40명 선에 이르는 당내 김종필 계열의 개헌 반대였다. 대통령의 측근 중의 측근이던 이후락 실장,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개헌공작의 일선에 나섰다. 설득만이 아니라 회유, 협박까지 동원했다. 두 달 기간의 집중공략 끝에 반대진영을 평정하고 개헌발의를 위한 의원총회를 열었다.

***이후락.김형욱 해임 요구 - 오늘의 權.朴**

논의는 일사천리, 누구 한사람 개헌반대의 논리를 내놓지 않았다. 그래서 서명에 들어가려는데 이만섭 의원이 일어섰다. “이후락 비서실장, 김형욱 정보부장, 이 두 사람 해임을 선행조건으로 할 것”을 긴급 동의했다.

해임해야 할 이유는 “정치자금을 독점하고 당을 무력화하고... 그런데 이들을 청소 않고 개헌안 국민투표에서 당이 어떻게 국민을 설득할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었다. 두 세도가에게 눌려 지내던 의원들은 박수를 쳤다.

묘하게도 요즘 민주당 일부가 내놓은 ‘권.박 정계은퇴’ 요구의 논리가 이 무렵 이만섭의 논리를 닮아있다. 정치자금이 독점되고 당이 무력화돼 있고 거기 공화당엔 없던 인사의 독점이 더 보태져 있으니 민주당은 권위주의 정당이던 공화당보다 더한 권위주의 정당 체질이라는 고백이기도 하다.

다시 공화당 얘기로 옮아가자. 당시 이 실장, 김 부장은 실세 중의 실세, 특히 김형욱 정보부장은 국회의원 잡아들이는 일도 식은 죽 먹기로 알던 저돌형으로 악명 높았던 인물이다.

거기 도전한다는 건 바위로 돌진하는 계란. 그런데 이만섭 의원이 한 몸을 던져 돌진했다. 죽을 각오를 하고 나선 ‘단독 결행’이라고 했다. 그 무렵 당도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그 소식을 듣고 “김성곤이 지는 김형욱이 하고 뭐가 다르다고”라고 코멘트했다. 그 작품이 누구의 것인지 그 배후와 의도를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이 지목한 김성곤은 백남억, 길재호, 김진만 등으로 이뤄진 공화당 4인체제의 중심인물이다. 이들 4인체제와 이후락, 김형욱 두 실세는 창당 주역이던 김종필 견제에서 동맹군이었고 3선 개헌공작도 함께 추진하고 있던 맹우이기도 했다. 그런데 왜 이만섭을 내세워 ‘맹우 제거’의 칼을 뽑았을까.

***3선개헌에서 10.2 항명파동까지**

4인체제는 군사정권 주체들과 달리 공화당에 참여한 민간정치인 세력이었다. 이들은 대통령의 측근들이 들고 나온 3선 개헌을 받아들이던 때 다음 단계로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구상했다.

“박 대통령은 쿠데타로 집권한 성격과 태생적 한계 탓에 종신집권이 필연의 길이다. 장기집권이 시작되면 정쟁이 끊일 날이 없고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피를 보지 않고는 정권교체란 없다. 그러니 3기 집권 기간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해서 박 대통령은 외교 안보를 맡는 대통령으로 종신집권의 자리에 올리고 내정은 내각이 전담하게 하자”는 것이 이원집정부제 구상이었다.

이 구상을 밀고 가는데 이후락, 김형욱은 치명적인 걸림돌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이 기회에 그들을 제거하지 않고는 그 둘을 제거할 기회는 다시는 오지 않는다”고 그들은 판단했고 그 판단은 정확했다.

박 대통령은 그날 밤 즉시 의원총회가 선정한 대표단인 4인체제 사람들을 불러들여 이후락, 김형욱 두 사람의 해임을 약속했고 지체 없이 약속을 실행했다.

4인체제는 손쉽게 승리했다. 그러나 승리가 바로 더 참담한 패배로 가는 길이었다. 그들은 박 대통령의 3기 집권 1년도 채 안돼 ‘10.2 파동’(8대 국회 때인 71년, 4인체제가 당시 여권 핵심이던 오치성 내무장관의 해임결의안에 찬성해 결의안을 통과시켜 버린 항명파동으로, 이로 인해 4인체제 멤버인 김성곤, 길재호 두 의원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출당된다)으로 무너졌다.

***민주당, ‘오만과 독선’ 넘어서야**

다시 민주당 얘기로 옮아 가자. ‘당.정.청의 인사 쇄신’은 등 돌린 민심을 되돌리는 처방일까. 그런 확신을 지니고 내놓은 것일까. 어쩜 포스트 DJ를 겨냥한 권력투쟁은 아닐까. 그런 상념에 마주치는 것은 민주당 실패의 원인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 때문이다.

그 한 사례를 보자. 민주당의 실패, 그 원인 중의 중요한 하나는 ‘오만과 독선’이라는 민주당이 지닌 성격적 결함이다. 민주당은 비판을 용납하지 못했다. 의약분업, 재벌해체, 북방정책 등 그들이 말하는 개혁에서 일체의 비판을 허용하지 않았다. 비판에 대한 완강한 거부는 끝내 칼을 뽑고 만 ‘비판언론과의 전쟁’에서 잘 드러나 있다.

민주당은 비판을 모르고 자랐다. DJ리더십은 맹목적이라고 할 절대지지의 지역패권에 기초해 있었다. DJ노선은 비판을 의식한 일이 없다.

그들이 야당으로 핍박받던 시절, 신문들도 독재정권의 비판을 제약받았기 때문에 야당에 대한 비판을 자제했다. 그런데도 그 시절 어쩌다 야당에 대한 비판의 글이 오르면 그것도 용납 못해 매체나 필자에게 전화, 편지 등 수단으로 ‘항의의 융단폭격’을 한 게 DJ리더십이고 동교동이었다.

공천 주고 표 주어 국회의원에 당선시킨 DJ리더십은 당내 민주주의나 비판이 자랄 토양이 아니다. 그런 체질에선 권노갑이 없었어도, 박지원이 없었어도 그런 비선(秘線), 그런 측근 중의 측근은 있기 마련이 아니었을까.

이 체질을 넘어서야 한다. 이걸 넘어서지 않고는 실패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인식의 기초 위에서 민주당의 새 출발은 모색되고 추진돼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공화당 4인체제가 걸었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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