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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1만1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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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1만1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바그다드 현지르포> 이라크 가정을 통해본 ‘충격과 공포’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지난 22일(현지시간)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전시내각회의를 통해 장기전 가능성을 시인하며"이번 전쟁의 기간과 범위를 제한하는 유일한 수단은 결정적 무력을 사용하는 일"이라고 말했었다. 그의 발언을 접한 바그다드의 시민들은 치를 떨면서도 동시에 공포에 떨고 있다. 이미 토마호크 미사일을 비롯해 심지어는 대형살상무기인 MOAB(모든 폭탄들의 어머니)까지 사용한 마당에 '결정적 무력'을 사용하겠다니...

연일 계속되는 폭격에 일상적인 생활을 잃은 지 오래된 이라크의 가정은 오늘도 해만 떨어지면 잠을 이루지 못한 채 공습에 대비해야 한다. 워싱턴 포스트의 종군기자 앤소니 쉐디드는 공포에 휩싸여 있는 이라크의 한 중류가정을 통해 바그다드 현지인들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다음은 24일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우리는 어두운 터널 안에 있다-폭격에 견뎌내고 미국의 바그다드 포위에 대비하는 이라크의 가족(We're in a Dark, Dark Tunnel- family Weathers Attacks, Prepares for U.S. Siege)"이라는 현지 르포의 전문이다.

<사진>바그다드의 시내

***"우리는 어두운 터널 안에 있다"**

우울한 탄식만이 바그다드를 감싸고 있는 가운데 이라크 서민들 집의 대다수 담벼락은 갈라져 있었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고통과 공포속에 살고 있는 한 이라크 가정은 어머니가 (폭격이 끝났다고) 고개를 흔들 때까지 쥐죽은듯 움추리고 있었다.

이라크 한 중류가정의 어머니는 "아, 이제 공습해제 사이렌이다"라고 말했다. 그 순간 딸은 벌떡 일어나 문을 열어젖혔다. 그녀는 창문을 열고 폭격으로 잿더미가 된 바그다드 시가지의 모습을 보며 소름끼쳐 했다. 또한 아들은 저공비행을 한 크루즈 미사일의 낙하지점 흔적을 찾아 후다닥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그들은 또 폭격에 대비했다.

어머니는 몇 분이 지난 뒤 "(계속되는 폭격 때문에) 몸서리가 처져요"라고 말하며 "우리는 정말 고통받고 있으며 나는 왜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절규했다. 그녀의 딸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너무 무섭고 집이 내 머리로 무너져 내릴까봐 두렵다"라고 말했다.

외국에서는 불과 분노에 휩싸여 있는 바그다드에 익숙해졌고 이라크 정부는 미국에 대한 승리를 호언하고 있다.

반면에 이 이라크 중산층의 다섯 가족들은 이번 전쟁이 그들의 인생의 존폐를 가름할 것으로 보고있다. 이라크 인들은 현재 고립돼있고 그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고통과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이 가정의 며느리는 현재 전쟁중인 이라크 상황을"우리는 지금 어두운 터널에 있으며 우리는 (평화의) 빛을 볼 수 없다"고 빼어나게 비유했다.

나는 오늘 이라크 정부의 호위나 그들의 이름을 익명으로 하겠다는 약속도 없이 이라크의 한 중류가정을 직접 취재했다. 망고 피클, 키베, 쿠프타, 쌀이 곁들여진 닭요리, 땅콩과 건포도로 구성된 이라크식 점심식사를 하던 중 그들은 정치와 전쟁에 관해 이례적으로 솔직히 속내를 토로했다.

***"우리도 변화를 원한다. 그러나 외세에 의한 변화는 싫다"**

아버지는 "이라크는 이미 변화의 준비가 돼있고 이라크 사람들은 변화를 원하고 있다. 이라크 사람들은 더욱 많은 자유를 갈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이라크를 해방시켜 주겠다는 미국 정부에 대해선 벌컥 화를 냈다. 그들은 후세인과 그의 독재정치를 비판하면서도 (이라크의) 긍지와 애국주의 때문에 이라크 사람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기회를 외세(미국)에 넘겨주어서는 안된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들은 알라신께 기도하는 일, 조용하게 저녁식사를 하는 것과 시간을 지켜 잠자리에 드는 것같은 이슬람교도로서의 일상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앞으로 안정과는 거리가 먼 이라크의 정세를 내다보고 있었다. 바그다드에서의 시가지 전투에서부터 무법성과 인권유린까지, 그들은 바그다드 사람들이 쉽게 내다보기 힘든 미래상황에 대해 대비하고 있었다.

며느리는 "(전쟁 때문에) 모든 것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몇 주동안 며느리는 집안식구들이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을 같이 도왔다. 그녀는 남편과 아래층 식당에 임시로 쓸 거실을 만들기 위해 매트리스를 아래 층으로 끌어내렸다. 가족들은 유사시 창문을 열고 재빨리 밖으로 뛰쳐나갈 수 있게 가구를 재배치했다. 소파와 테이블은 누더기로 덮여 있었는데, 이는 유리조각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또 두 정의 총과 탄약 한 주머니는 벽을 지지해 주는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2층 가옥에 가족들이 위아래층에 흩어져 있는 것은 포위상태에서도 저항하는 데 도움이 될듯 싶어 보였다.

두 개의 기름탱크는 전기가 나갔을 때 요리할 수 있는 등유로 차 있었다. 어머니는 수돗물이 나오지 않을 때를 대비해 모든 프라이 팬, 주전자와 보온병을 물로 가득 채워놨다. 비상식량인 밀가루, 설탕, 쌀, 콩, 전지우유, 비스켓, 잼, 치즈, 마르코니, 밀과 시리얼 등은 주머니마다 가득 차 있었다.

이 집의 아들은 비상식량의 비축량을 조사하며 "비상식량으로 석 달은 버틸 거에요"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의 부인은 이 말을 부정하며 "우리집 식구들은 식욕이 좋아서 한 달밖에 못버틸 것"이라고 농을 섞어 말했다.

이런 대화장면은 기쁨이 존재하지 않는 바그다드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다. 가족들은 이라크 군대가 미군의 폭격으로부터 주요 목표물을 가리기 위해 불 붙여진 원유 웅덩이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가 자욱한 하늘을 지켜봤다. 유정은 이틀째 계속 불타고 있고, 구름 한 점없는 바그다드의 하늘은 엷은 안개가 뒤덮고 있다. 허망하게도 가족들은 이 연기가 미군의 공중폭격을 제한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우리는 1만1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들은 "우리는 충분히 할 만큼 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최악의 날은 미-영 연합군이 바그다드에 3백20개의 크루즈 미사일을 발사해 후세인 대통령궁을 무너뜨렸던 금요일이었다. 10개의 미사일은 그들의 집 근처에 떨어져 집 앞의 창문이 깨졌다. 이 충격으로 냉장고 문이 떨어져 나갔고 부엌에 있는 서랍들이 내동댕이쳐졌다.

어머니는 "정말 강력한 폭탄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그다드에 사는 사람들은 난공불락으로 믿고 있는 바그다드의 견고함을 긍지로 삼고 있다. 시민들은 그들 앞에서 무릎을 꿇곤 했던 외세의 바그다드 도전 역사에 대해 열거하기를 좋아한다. 이라크 가정의 남자들은 비슷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곤 한다.

아버지는 "우리는 1만1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것이 피상적인 얘기같지만 내게는 큰 안도감을 준다"고 주장했다. 그의 아들은 "폭탄이 내는 소리가 그 실제 충격보다 더 신경에 쓰인다"고 말했다.

오늘 취재를 통해 이라크 사람들에게서 들은 고통은 사실에 가까왔다.

그들은 "친구들이 1월에 시리아로 피난갔지만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돈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또다른 사람들은 전쟁에서 상대적으로 오래 버틸 수 있는 모슬시 북쪽으로 이주했다 했다. 이 곳에 그냥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은 생사의 불확실함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며느리가 알고 있는 임산부는 열흘 안에 제왕절개 수술을 받기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의사가 종적을 감춰버렸다. 모든 병원마다 부상자들의 치료를 준비하는 데 일손이 딸려 임산부를 받아 주지 않았고 며느리의 또 다른 임신 7개월의 친구는 미국의 공습이 시작되자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이웃들은 그녀가 매일 두 아이의 귀에 솜을 틀어막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아이들의 기저귀와 우유를 구하느라 애를 태웠다. 며느리는 "내 친구는 완전히 미칠 지경이에요"라고 말했다.

***"미국인이여 와라, 우리는 너희들에게 꽃을 던져 줄 것이다"**

가족들은 후세인을 무분별한 사람으로 비판했다. 후세인은 이란을 침략해 8년동안 전쟁을 치렀고, 쿠웨이트도 포위해 이라크 중산층의 재산을 완전히 날려버린 경제재제조치를 초래했다. 쿠웨이트와의 전쟁이후 한때 이라크 국민들은 후세인 정권을 스스로 전복시키려는 준비를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미국이 일으킨 전쟁에 대해 극렬히 반대했다. 이라크는 중동의 어느 나라보다도 긍지, 명예, 신성함의 전통을 갖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이 가족의 경우 미국의 공격은 하나의 모욕이었다. 그들은 "미국이 일으킨 전쟁은 후세인이 아닌 이라크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이런 말은 전쟁이 진행될 때 간혹 나오는 것이지만 일상적인 푸념으로 생각하기는 힘들다.

아버지는 "우리가 (후세인의 독재정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만 그 문제 제기가 미국 정부와의 연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누군가 이라크를 공격할 때 이라크 국민은 이라크를 편들게 된다. 이것은 우리가 후세인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이라크가 우리들이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조국이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이 가족의 한 친구는 말을 끊으며 "평화를 위한 폭탄투하?"라고 반문했다.

며느리는 "나는 리더십에 대해선 신경조차 쓰지 않아요"라면서 그러나 "미국이 우리 집을 싫어해 이 곳을 폭격하고 자신들의 돈으로 다시 이곳을 재건하려는 게 아니냐"고 미국을 비난했다. 그녀는 "미국의 이런 생각은 나로서는 정말 모욕적"이라고 덧붙였다.

테이블 주변에 모여 앉은 가족들은 며느리의 말을 듣고 머리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이런 생각에는 다소 이견이 있긴 하지만 의견충돌은 의미가 없다"면서 "미국인이여 와라, 우리는 너희들에게 꽃을 던져 줄 것이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이 가족은 이라크 정부에서 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과 같은 이슬람의 소수파벌인 수니파이다. 수니파들은 전쟁이 끝나면 북부 쿠르드 족과 남부에 있는 이슬람의 다수파벌인 시아파에게 헤게모니를 넘겨줄 게 분명하다. 이 가족의 아들은 몇몇 시아파의 친구들이 미국의 공격에 관해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라크 국민들의 애국심은 (외국의 내정간섭에 때로는 격렬하게 반대해온 역사로 가득 차 있는) 전쟁 과정과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왜 이런 생활이 일상이어야 하는가"**

현재 이라크에서는 생존이 최대의 현안이다. 오후 늦게까지 천둥 같은 폭격은 지평선을 가로질러 계속됐다. 이 가족의 아들은 "나는 B-52가 곧 사용될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고 가족들도 그런 상황이 올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라고 불안감을 토로했다.

그들은 극도의 흥분상태로 위축돼 있었다. 문이 쾅 하고 닫히자 아버지는"그것은 바람이다"며 놀란 가족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소리가 나자마자 아들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의 의자는 벽쪽으로 튀어나간 뒤였다. 몇 분이 지난 뒤 아들은 또다시 그런 행동을 했다. 어머니는 "나는 이제 아주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란다"며 아들에게 "다시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거리에서는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수레가 집 근처를 지나가며 피리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수레는 깡통을 모으고 등유 탱크를 리필해주러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수레가 지나갈 때 화가 치밀어 오른다는 아들은 침울한 표정으로 "나도 다른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살 수 있다. 나는 내 머리로 폭탄이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이렌 소리도 듣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왜 내가 이렇게 해야만 하는가? 왜 이런 생활이 일상적이야만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어린 아들의 이 말을 듣고 모든 사람들은 바닥만 응시한 채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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