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레인저스의 구단주를 지냈던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은 “나는 야구로부터 비난을 이겨낼 수 있는 두꺼운 얼굴을 갖게 됐고 당장의 작은 고통보다는 먼 장래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말은 최근 국제사회의 이라크 전쟁반대 움직임에 아랑곳 하지 않는 부시의 강경 입장과 오버랩되면서 새삼스레 국제사회의 화제가 되고 있다.
***부시家와 인연깊은 야구**
부시 가문은 야구와 인연이 꽤 깊다. 조지 W. 부시의 할아버지는 1917년 예일대학교 야구팀에서 4번 타자로 활약했고, 미국 41대 대통령인 아버지 조지 부시는 예일대학교 1루수로 1947~48년 전미대학야구 월드시리즈에 뛰었던 경력이 있다.
조지 부시를 주축으로 안정된 전력을 갖고 있던 예일대학교는 1947년에는 캘리포니아대학(UC버클리), 1948년에는 남가주대학(USC)에게 고배를 마셔 우승의 기쁨은 누리진 못했다. 하지만 수비는 왼손으로 하고 공격은 오른손으로 하는 이른바 좌투우타였던 조지 부시는 깔끔한 수비와 정교한 타격솜씨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예일대학교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조지 부시는 1948년 주장으로서 예일대학교의 홈구장 예일필드를 찾아온 ‘홈런왕’ 베이브 루스에게 즉석사인을 받았다는 기록도 찾을 수 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어릴 적부터 야구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조지 W. 부시의 어릴 적 꿈은 야구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비해 야구재능이 뒤떨어졌던 조지 W. 부시는 일찌감치 야구선수의 꿈을 접어야 했다.
조지 W. 부시가 다시 야구와 인연을 맺게 된 건 1989년이었다. 1989년 조지 W. 부시는 메이저리그팀 텍사스 레인저스의 공동소유주가 되었고 팀 운영과 관리 부문의 일을 맡게 되었다.
호사가들은 "공화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피터 위베로스 메이저리그 커미셔너가 텍사스 레인저스의 구단주를 찾고 있던 중 당시 부통령의 아들이었던 조지 W. 부시에게 기회를 준 것"이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단기적 이익에 눈이 멀었던 부시’**
텍사스 레인저스 운영부문의 일을 보던 부시는 선수 트레이드와 관련해 결정적 실수를 두 번이나 저질렀다.
물론 대부분의 구단 운영자들도 지명도 있는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유망주를 내주는 트레이드를 하고 있지만 부시의 경우는 상황이 달랐다. 가시적 효과만을 노린 짧은 안목의 트레이드였기 때문이다.
부시는 89년에 새미 소사를 내주고 해롤드 베인스를 받는 트레이드를 지휘했으며, 93년에는 롭 넨을 플로리다에 주고 대신 투수 크리스 카펜터를 영입했다.
현재 메이저리그의 대표급 선수로 성장한 새미 소사와 롭 넨. 소사는 1998년 내셔날리그 MVP를 기록한 홈런타자가 되었고 롭 넨은 시속 1백60킬로미터대의 광속구를 주무기로 메이저리그의 정상급 마무리투수로 자리잡았다.
***연이은 트레이드 실패**
그렇다면 부시가 데려온 선수는 어떻게 됐을까?
텍사스 타선을 한층 더 탄탄하게 해 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해롤드 베인스는 주로 지명타자로 뛰었다. 트레이드 된 첫해 나름대로 좋은 활약을 했던 베인스는 이듬해 장타력이 크게 떨어졌다. 부시는 결국 헤롤드 베인스를 오클랜드의 무명투수 조 비트커와 다시 트레이드해야만 했다.
강속구를 지녔지만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던 롭 넨의 성공에 비해 부시가 ‘탈삼진왕’ 놀란 라이언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데려온 크리스 카펜터 투수는 별 볼일 없는 성적으로 메이저리그 선수생활을 마감해야 했다.
텍사스의 야구팬들은 새미 소사와 롭 넨이 팀을 떠난 뒤 좋은 성적을 내는 걸 지켜보면서 팀 운영전반에 걸쳐 관여했던 조지 W. 부시를 비난했고, 특히 1996년 텍사스가 플레이오프에서 마무리 투수의 부재로 패배할 때에는 “지금 롭 넨이 우리 팀에 있었으면”하는 넋두리를 해야했다.
단기적인 팀성적 향상을 위해 단행했던 트레이드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부시는 텍사스 레인저스의 새로운 구장인 알링턴 볼파크를 건설해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를 했다는 평도 들었다. 부시는 1994년 텍사스 주지사에 당선됐고 자연스럽스게 텍사스 레인저스의 공동 구단주자리에서 물러났다.
지난 2000년 미국 대통령선거 유세 도중 조지 W. 부시는 “세계적인 스타가 된 새미 소사 선수를 트레이드 한 건 정말 내 실수였다”며 겸연쩍은 미소를 보였다.
지금 세계는 부시가 야구팀에서 했던 것과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를 기대하고 있다. 과연 부시가 야구로부터 '비난극복'의 방법만 터득했는지, 아니면 자신의 '경영능력의 한계'도 절감해 세계여론에 따르는 성숙한 모습을 보일지 앞으로 예의주시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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