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선 파문'이 대통령 아들 비리 차원을 넘어 김대중 대통령 본인과 현 정권을 벼랑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청와대의 해외망명 주문, 김 대통령과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과의 유착관계, 현 정권 내부의 권력 암투관계 등의 의혹을 담은 녹음테이프가 공개됨에 따라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조짐이다.
김 대통령은 최씨의 테이프가 언론에 공개된 7일 '아들들 물의'에 대한 사과의 뜻을 육성으로 표명하고 사태 수습을 서둘렀다.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을 통해 사과의 뜻을 전하고 민주당을 탈당한지 하루만의 일이다. 이날 김 대통령은 "앞으로 이 문제(세 아들 문제)에 대해선 법의 처리를 지켜봐 주시기 바란다"며 "법에 따른 엄정한 처리"를 거듭 강조했으나 부풀대로 부푼 현 사태가 쉽게 무마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검찰이 녹음테이프 내용의 진위를 수사하고 있어 최씨의 일방적 주장에 대한 신빙성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으나 '최규선 파문'은 여느 비리게이트에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영화관 매점 운영권을 둘러싸고 최씨와 최씨의 비서 사이에서 생긴 작은 불화가 불과 1개월만에 현 정권의 존립을 위협하는 최대 뇌관으로 떠오른 셈이다.
최규선 게이트의 확산 과정 전말을 살펴본다.
***김홍걸 등에 업은 로비 의혹으로 시작**
사건의 발단은 3월28일 최씨의 전 운전기사 천호영씨가 경실련 사이트에 '최규선의 비리'라는 폭로문을 띄우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천호영씨는 4월2일 최씨의 고소로 경찰에 잡혀 영장이 청구했다. 하지만 영장이 기각되자 4월8일 천호영씨가 최규선(미래도시환경 대표)씨를 검찰에 고발,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면서 사건이 본격화했다.
천씨는 최씨의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개입뿐만 아니라 ▲김홍걸씨와 홍걸씨의 동서 황인돈씨에게 타이거풀스 주식과 수억원 제공 ▲아파트 상가분양권 등 이권개입 ▲ 수십억원의 비자금 관리 등의 의혹을 함께 제기했다.
이에 최씨는 하루 뒤인 4월9일 기자회견을 자청, "김 대통령의 3남 홍걸씨에게 그동안 용돈이나 주택구입 자금 등의 명목으로 한번에 1만달러 등 수만달러를 준 적이 있으나 대가성은 없었다"고 밝혔다. 해명이 도리어 의혹을 증폭시킨 셈이다.
이로써 최규선 게이트는 김홍걸 비리 의혹으로 확대됐다. 당시 김 대통령의 2남 김홍업씨가 아태재단 문제로 의혹을 받고 있던 차에 홍걸씨마저 비리 의혹에 거론되자 대통령 아들들의 권력형 비리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고, '3홍 비리'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최씨를 소환한 검찰 수사의 초점은 최씨가 고위층 인사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각종 이권 사업에 개입했는지 여부와 최씨가 홍걸씨에게 줬다는 돈의 대가성 여부에 맞춰져 있었다. 당시 검찰은 "사건이 복잡한 것은 아니다"며 수사가 장기화되지 않을 것을 시사했다.
***청와대의 조직적 지원?**
그러나 그후 전개된 사태는 그렇게 간단치 않았다.
최씨 의혹은 그가 검찰 소환을 앞두고 서울의 한 호텔에서 최성규 경찰청 특수수사과장, 김희완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등 4~5명과 함께 대책모임을 가진 사실이 KBS TV 특종보도로 드러나면서 현 정권과의 관련성으로 번져갔다. 97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참여, 2000년 권노갑 민주당 전 고문의 특보 등 현 정권에서 활동한 최씨의 경력도 의혹을 가중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특히 대책회의에 참석했던 최 총경이 4월14일 오전 홍콩으로 돌연 출국, 최규선씨 비호를 위한 도피가 아니냐는 의혹이 결정적으로 확산됐다. 최 총경은 출국 직전에 청와대를 방문, 노인수 사정비서관 등 몇몇 비서관들과 만난 후 잠적한 것으로 알려져 최 총경 도피에 청와대측의 조직적 지원 여부에 관심이 집중됐다. 문제의 열쇠를 가진 최 총경은 홍콩, 인도네시아, 일본을 경유해 미국에서 잠적했다.
게다가 최씨가 법정에서 "청와대 비서관이 최성규 총경을 통해 (나의) 해외 도피를 권유했다"고 폭로, 청와대측이 홍걸씨의 비리연루를 은폐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이 증폭됐다.
한편 최규선씨가 차세대 전투기사업과 관련 김동신 국방장관과 접촉했다는 의혹, 마이클 잭슨 공연사기 사건에 민주당 박주선 의원(전 청와대 법무비서관), 이강래 의원(전 청와대 정무수석 비서관)이 관여됐다는 의혹, 신건 국정원장에게 구명을 청탁한 의혹 등이 제기돼 정관계 인사들이 최씨 의혹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까지만 해도 최씨가 정관계 인사들을 등에 업고 각종 이권사업에 호가호위한 사실 여부가 검찰 수사의 핵심이었으며 그 가운데 홍걸씨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에 관심이 모아졌다.
***포스코ㆍ이희호 여사 연루의혹**
4월24일 검찰은 최규선씨와의 비리연루의혹을 받고 있는 홍걸씨 문제를 조기에 매듭짓기로 큰 방향을 세우고 홍걸씨의 소환을 위한 수순밟기에 들어섰다. 홍걸씨의 알선수재 등의 혐의를 완성하기 위한 큰 그림이 틀을 잡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5월1일 검찰에 소환된 권노갑 전 고문이 홍걸씨와 최씨 사이의 좋지않은 소문에 대해 이미 2년전부터 국정원 간부(김은성 국정원 2차장)로부터 보고받고 이를 막기위해 노력했다는 발언은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김 대통령이 아들의 비리 의혹을 알고도 방치했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암묵적 시위였던 셈이다.
또한 검찰은 유상부 포스코 회장을 소환, 포스코측이 타이거풀스 주식을 시가보다 비싸게 구입한 경위를 조사하고 30억원의 부당 차익을 최씨에게 전달한 혐의를 추궁했다. 그리고 유상부 회장 등 최고 경영진이 김홍걸, 최규선씨와 직접 만난데 이어 김희완씨를 포스코 계열사 고문으로 영입했던 사실들도 새로 밝혀져 비리 의혹이 급속도로 번져갔다.
유 회장은 또 유병창 홍보담당 전무를 통해 재작년 7월 포스코 영빈관에서 홍걸씨를 만났으며 이희호 여사가 만남을 주선했다고 밝혔다. 청와대측은 사실을 부인했으나 최씨 의혹이 포스코와 이희호 여사까지 확산되면서 파장은 한단계 더 증폭됐다.
***최규선 테이프 공개로 DJ 직접 겨냥**
그러다 지난 7일 최씨가 검찰출두를 이틀 앞두고 녹음해둔 테이프 3개와 본인이 직접 쓴 메모가 언론에 전격 공개되면서 사태는 또 한번 확대됐다. 사건의 파장이 홍걸씨를 넘어 김 대통령으로 직접 이어진 것이다.
최씨의 검찰 출두직전 청와대의 해외망명 주문, DJ-김우중 커넥션, 김홍일씨와 홍걸씨간의 권력암투 등의 내용이 담긴 최씨의 테이프는 사실확인에 앞서 상당한 개연성을 가진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선 최씨는 테이프를 통해 김 대통령이 "규선이, 대우를 도와주게.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큰 힘을 발휘했네… 그 사람(김우중 전 회장)을 돕게. 그리고 차기 전경련 회장이 될 것이네. 나, 도움을 많이 받았네. 그리고 이 회사 저 회사 만나게 하지 마. 그냥 대우만 만나서 투자유치를 시키게"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김 대통령의 정치자금 출처와 대우에 대한 특혜로 해석되면서 정경유착 의혹을 강하게 불러일으켰다.
테이프가 공개되자 재계에서는 김 대통령과 김 회장이 정권 초기에 상당히 긴밀한 관계에 있었음을 인정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한 최씨 문제와 관련해 대기업들은 대부분 외환위기 당시 알리드 왕자와 조지 소로스의 방한, 외자유치 등을 성사시키며 실력을 발휘한 최씨를 만나보기를 희망, 대부분의 기업들이 최씨와 접촉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실제로 한 대기업 관계자는 "한푼의 외자가 아쉬운 당시 외자유치에 실력을 보였던 최씨를 대부분 기업이 만나고자 했다"고 말했다.
또한 최씨는 지난 14일 김현섭 청와대 민정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김홍걸씨에게 1백만원권 수표 3백장을 건넸는데 수표 추적을 피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니 검찰 소환을 늦춰달라"고 부탁했다고 주장했다. 최씨는 이와 관련 김 비서관의 전화번호까지 공개하며 "전화내역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권력층 내부 암투도 드러나기 시작**
최씨는 한편 "당시 갈등구조는 나, 권노갑, 김홍걸, 이희호 여사를 한 축으로 하고 김홍일, 김은성, 정성홍이 반대축이었다. 김은성은 2000년 7월8일 두차례에 걸쳐 나를 양재동 자신의 안가로 불러, 온갖 협박을 했다. 이후 나와 홍걸씨는 형제 이상으로 똘똘 뭉쳤다"고 권력내부의 알력관계를 묘사했다.
현재 구속중인 김은성 국정원 차장이 분당 파크뷰 특혜분양을 폭로하며 동교동계를 압박하는 것이나, 이에 맞서 권 전 고문이 구속에 앞서 김은성 2차장을 물고 들어간 대목 등은 최규선이 주장한 권력층 내부의 암투관계가 사실일 수 있음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이 외에도 청와대 비서관과 국정원 직원, 최성규 총경등이 밀항 대책회의를 갖고 자신을 해외로 도피시키려 했다는 주장 등이 구체적 정황과 함께 상술돼 있다.
물론 최씨의 성격이 감정 기복이 심하고 과시욕이 강하다는 평가가 있어 녹취록 내용이 과장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테이프에 거론된 당사자들도 최씨의 주장을 부인,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최씨의 녹음 테이프 공개로 이들에 대한 검찰의 조사가 불가피해 제2의 최규선 파문이 예상된다. 더욱이 최씨는 공개된 테이프와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입수한 테이프 말고도 정관계 인사들과 대화를 녹음한 테이프와 메모를 대량 보관중인 것으로 알려져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어느 하나 사실로 드러날 경우 예사로운 것이 없다. '최규선 게이트'는 이제 '3홍 비리 의혹'을 넘어섰다. 김대중 대통령 자신, 이희호여사, 권력 핵심부 전체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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