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리틀 DJ다운 모습이었다.”
TV토론 다섯 번째 주자로 나선 한화갑 고문의 방송이 끝난 직후, 토론에 참석한 한 패널이 짤막하게 던진 촌평이다.
아니나 다를까 방송에 비쳐진 한 고문은 외모와 말투뿐만 아니라 민감한 사안을 에둘러 무마하는 ‘기술’까지 김 대통령과 흡사했다.
방송 도중 ‘좀더 공격적인 질문을 하라’는 주문이 몇 차례나 패널들에게 전달됐을 정도로 이날 한 고문을 괴롭힐 만한 긴장된 질문은 다소 부족했다. 패널들이 한 고문에게 말렸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정치인은 전문가가 아니다”**
스튜디오가 마련된 한국여성개발원에 한 고문이 도착한 시간은 11시 30분경.
TV 토론을 몇 분 앞둔 심정을 묻자 “검찰이나 안기부에 끌려가서 숱한 공격을 받기도 했었다. 아무리 방송이라도 사람이 묻고 사람이 답하는 것인데 어려울 것이 무엇이겠는가. 편안한 마음이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한편으로는 “첫 소풍 가는 유치원생 같은 마음이다. 패널은 전문가이지만 정치인은 전문가가 아니지 않느냐”며 긴장을 표하기도 했다.
TV를 통한 토론정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TV 매체의 위력은 충분히 인정하고 실감한다. 이번 TV 토론은 나를 알리고 진실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한다”며 적극성을 보였다.
분장사가 방송 전 마지막 점검을 하는 동안 한 고문은 “TV 토론이 잘되고 못되고는 실력이 아니라 분장에 달린 것 같다”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자민련과 합당 추진하겠다”**
한 고문은 이날 ‘한국에서 화합하는데는 으뜸이다’는 자신의 이름풀이를 강조하며 당 내외적인 화합을 위해 헌신해 왔다고 주장했다.
한 패널이 이에 대해 “화합도 좋지만 국민회의 특보단장 시절에 5공 세력과의 전략적 화해를 시도하지 않았냐”고 캐묻자 “그런 적 있다. 그러나 과거에 우리를 탄압했던 분들에 대해서도 협조를 구함으로써 보복할 의도가 없다는 점을 보여주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원내총무시절, 비리 의혹이 있는 야당 의원들을 협박해 의원 영입을 추진하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카톨릭 신자로써 결단코 그런일은 없었다”며 적극 부인했다.
한 고문은 또 자민련과의 합당에 찬성하느냐는 질문에 “당이 중지를 모아 외연을 넓혀가는 것을 찬성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역연대를 추진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을 밝혔다.
이날 오전 한 고문은 MBC 라디오 대담프로에 출연, 자민련과의 합당을 위한 추진기구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병역 소집해제 사유에 대해 한 고문은 ‘찬스(답변 시간을 2분 연장)’까지 요청하며 ‘과거 행정상의 오류와 사상적인 의심을 받아 생긴 일’이라고 해명했다.
***"당권·대권 중 한 마리만 잡겠다"**
한 고문은 이날 현 정부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구체적 평가는 피했으며 현 정권의 실세로써의 책임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명확한 답변은 밝히지 않았다.
‘리틀 DJ’라는 별명과 관련해 김 대통령과는 ‘주군과 가신’의 관계로 비쳐진다고 하자 “그건 사실이다. 일종의 의리로 인간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대통령 비서’로서의 기존 이미지를 부정하지 않았다.
권노갑씨 등 동교동 세력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는 “정치적 관계와 인간적 관계는 구분해 달라”며 직접적인 답변은 피했다. 방송이 끝난 후 패널들과 가진 자리에서 이와 관련된 질문이 나오자 한 고문은 “기자들은 자리를 피해달라”며 자세한 내막을 공개하기를 꺼렸다.
당권·대권 도전과 관련해 일관적이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 “오늘 TV 토론에 나왔다는 것이 대권에 도전한다는 증거가 아니냐”고 못박았으나 “(당권과 대권 중) 나중에는 한 마리만 잡겠다”고 밝혀 '대권을 포기하고 결국 당권 장악에 나설 것'이라는 정가의 예측과 관련 여운을 남겼다.
***정책적 대안 제시 부족**
현 정부와 대통령 친인척 비리연루 등에 대해서는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사직당국이 진상을 공개할 것이다”고 밝혔지만 제도적 대안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없었다.
한 고문은 특히 과거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과 청와대가 동화책에 나올 만큼 청렴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한 것에 대해 “청와대 수석을 지낸 사람이 구속되고 대통령 친인척이 연루되는 상황에서 그때 잘못 판단한 것을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차세대 전투기 사업이나 SOFA 문제는 미국과의 전통적 우호관계를 강조했을 뿐 현재의 양국간 불평등한 관계 개선에 대한 구체적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다. 다만 현 정부의 햇볕정책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계승하겠다는 소신을 목소리 높여 강조했다.
부실 대기업 처리, 재벌의 은행소유, 공기업 민영화에 관련해서는 분명한 입장을 밝혔으나 절충적이고 원칙적 소신에 그쳐 현실인식의 부족을 드러냈다.
호주제 폐지와 경선자금 공개 등 공통 질문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찬성을 표했다.
***원칙만 강조, 현실인식 부족해...**
방송이 끝난 직후 한 고문은 “(토론이)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다”고 밝혔지만 흠집없이 무난하게 마무리 된 것에 흡족한 표정이었다.
한 고문 경선 캠프의 한 관계자도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 간혹 있었지만 잘 처리했다고 평가한다. 내용을 좀 더 압축해서 표현할 필요가 있고, 표정처리를 보완해야 겠다"는 자체 평가를 내놓았다.
토론에 참석한 패널들은 한 고문의 ‘말솜씨’가 그동안 출연했던 주자들 가운데 가장 뛰어났다는데 입을 모았다. 질문의 예봉을 피해가는 능수능란한 말솜씨 탓에 미처 캐묻지 못한 것이 많이 남았다는 아쉬움이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많은 괴리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패널로 참석한 이두원 교수(연세대, 경제학)는 부실기업 처리, 공기업 민영화 등과 관련된 한 고문의 답변 가운데에는 원칙만 강조해 현실인식의 부족을 드러낸 면이 많았다고 밝혔다.
지나치게 원론적인 답변으로 일관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 교수는 정치인에게 모든 분야에서 세부적이고 전문적인 식견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이긴 하지만 시청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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