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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근혜 정부'의 레임덕, 당당한 박근혜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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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근혜 정부'의 레임덕, 당당한 박근혜를 보고 싶다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지록위마'는 권력 중독자의 자해

진시황이 죽을 때 조고(趙高)의 직책이 중거부령(中車府令)이었다. 수행실장 격이다. <사기> '이사 열전'에는 조고가 꾀를 만들어 승상 이사(李斯)를 설득한 것처럼 나와 있지만, 실제로는 이사가 주동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시황제의 큰아들 부소를 제거하고 막내아들 호해를 옹립하는 정변을 일으킬 동기가 조고보다 이사에게 컸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사의 거사를 위해 조고가 꼭 필요한 자리에 있었다. 시황제가 세워놓은 극한적 '법치' 체제가 쿠데타를 위한 도구가 되었는데, 제명(帝命)의 출납을 맡은 중거부령이 시황의 명령을 위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명령에 기계적으로 따라야 하는 법치 체제 위에서 조고가 만들어준 문서 몇 통으로 부소를 자결시키고 제국을 탈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국 시대에 법가 사상이 인기를 끈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강력한 중앙 집권으로 국제 경쟁에 유리한 것이었고, 또 하나는 중간 권력자의 발호를 억누름으로써 백성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황제는 이사의 법가 정책을 통해 천하통일의 위업을 이뤘던 것이다.

그런데 시황제도 이사도 법치 체제의 효력에 너무 도취되었나보다. 일체의 분권을 허용하지 않는 군현제 하나만으로 천하를 다스리려 했다. 진시황의 폭거 중 대표적으로 꼽히는 '분서(焚書)' 사건도 이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천하통일 후 시황제가 학자들을 모아 잔치를 벌였는데, 모든 학자가 황제의 정책을 칭송하는 가운데 순우월(淳于越) 한 사람이 비판적인 발언을 했다. 은나라와 주나라가 오래간 것은 왕실과 공신을 제후로 봉해서 울타리로 삼은 덕분인데, 폐하는 자제를 아무도 봉해놓지 않았으니 만약의 사태를 만나면 무슨 대책이 있겠냐며 "옛일을 배우지 않으면서 오래가는 일을 보지 못했다"고 지적한 것이다.

시황제가 이에 대한 이사의 의견을 청하자 이사가 반박했다. 천하가 어지럽던 옛날에는 생각을 한 가지로 모을 수 없었지만, 이제 폐하가 천하를 통일하고 흑백을 가렸으니 사사로운 주장을 갖고 "임금을 비판하여 명성을 얻고 주장을 달리하여 고상한 체하는" 풍조를 일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분서 정책이 나왔다.
ⓒ뉴시스

시황제가 불로장생을 추구한 설화도 법가의 중앙 집권제 때문에 나온 것이다. 모든 권력과 권위의 주체인 황제가 노쇠와 사망을 겪는다면 체제의 안정성을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천하통일이 공간의 정복이라면 불로장생은 시간의 정복으로서 그 짝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런데 시황제는 결국 늙고 병들고 죽었다. 이 상황에서 시황제라는 한 인간이 빠지더라도 지금까지 구축해 놓은 체제가 그대로 작동할 수 있으리라는 '제도에 대한 믿음'을 이사는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호해를 2세 황제로 받든 정변의 주체가 조고 아닌 이사였으리라고 내가 생각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시황제의 위업이 제도의 힘만이 아니라 시황제 개인의 지도력에도 의존했던 것임을 막상 시황제가 사라지자 이사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준 것이 조고였다. 황제의 비서실장 격인(국가정보원장 역할까지 보탠) 낭중령(郞中令)이 된 조고가 정보와 의전을 장악하자 그나마 경륜을 가진 정치가인 이사조차 권력만을 추구하는 조고에게 밀리게 된 것이었다.

2세 황제와 조고가 어떻게 죽이 맞았는지 보여주는 일화 하나가 '이사 열전'에 실려 있다. 2세 황제에게는 부소 외에도 형이 10여 명 있었는데, 조고의 공포 정치 아래 이들도 하나하나 죽어나가고, 그때마다 많은 가족과 측근이 연루되어 처형당했다. 공자 고(高)가 위험을 느끼고 도망칠 생각이 들었지만 그럴 경우 희생자가 많을 것이 걱정되어 황제에게 자살을 허락해 달라고 탄원을 올렸다. 탄원을 받은 황제는 기뻐서 조고에게 보여주며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군" 했고, 조고는 "사람은 죽음을 걱정하는데, 그것 걱정할 여유가 없을 정도라면 무슨 일을 꾸미겠습니까?" 화답했다고 한다.

불만을 가진 자들이 자살을 허락해 달라고 탄원을 올릴 지경이니 안보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2세 황제와 조고는 마음을 놓았다. 권력 서클 안에서는 공포 정치가 질서를 지켜준다. 그러나 천하 전체가 몇몇 권력자의 마음대로 돌아가 주지는 않는다. 귀족과 관리들이 공포정치에 묶여 제 구실을 못하는 동안 백성의 불만이 커져 반란이 줄지어 일어나게 되었다.

치안의 동요로 정치력이 더 많이 필요한 상황이 되어 가는데, 조고의 대응은 오직 공포 정치의 강화뿐이었다. 결국 이사조차 조고의 권력 집착 앞에 희생되고 말았다. 2세 황제를 즉위시킬 때 권력자는 이사였고 조고는 그 주구였다. 그런데 고삐 풀린 주구가 주인을 물어 죽이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권력의 운용이 정당성을 잃을 때 어떤 결과가 빚어지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지록위마'는 권력 중독증의 말기 증세를 보여주는 일화다. 조고가 승상이 되어 이사를 제거한 직후에 진나라가 군사적 재앙을 맞았다. 거록(鉅鹿)을 공격하던 장한(章邯)이 항우의 반격으로 곤경에 빠졌는데 조고가 패전 책임을 엄하게 묻겠다고 나서자 반란군 쪽에 투항해버린 것이다. 진나라 멸망의 군사적 고비였다.

이 때 황제의 책임 추궁을 두려워한 조고가 황제를 처치할 마음을 먹고 준비 공작을 벌인 일이 '지록위마'였다. 황제에게 사슴을 바치며 "말입니다." 하니까 황제는 "허허, 승상이 농담을…" 하는데, "말 맞아요. 다른 신하들한테 물어보세요" 하고는 말이냐, 사슴이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물은 것이다. 사슴이라고 대답한 자들을 손봐준 다음 꼬투리를 만들어 황제를 처치했다.

지록위마는 권력의 마이너스섬게임이었다. 이 일로 조고에 대한 지지와 신뢰가 늘어난 것이 아니다. 잠재적 반대 세력이 제거되어 그의 전횡에 대한 견제가 일시 막혔을 뿐이다. 전체적 파국을 더욱 악화하고 촉진한 자해적 술책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지록위마의 술책에 익숙했다. 천안함 사태를 놓고 충분한 근거 없이 북한 소행이라고 우겨댐으로써 사태의 정확한 판단과 효과적 대응을 가로막았다. 지지자 결집만을 위해 정부의 공신력을 손상시킨 자해적 술책이었다.

남북 정상 회담 대화록이 노출될 만큼 노출된 이제, 새누리당 지지자들 중에도 "이거 사슴이잖아?" 하는 사람이 더 많다. 아직 초창기인 박근혜 정권에서 이런 말기적 증세를 일으키는 까닭이 무엇일까? '이명박근혜' 정부의 후반부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박근혜 정부의 원칙을 당당히 세우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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