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국제법을 위반한 것인가? 이것도 아니다.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려면 NLL은 영해선이고 그 이남 수역은 영해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박정희 정부 때 제정된 영해법에는 NLL 이남 수역이 빠져 있다.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국제법적으로 영해로 인정받으려면 영해법을 제정하고 국제사회에 공표해야 하고 유엔에 기탁해야 하는데, 이중 어느 것 하나 이뤄진 게 없다. 이건 안 해서라기보다는 해봐야 소용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북한의 NLL 월선은 아무것도 위반하지 않는 것인가? 나는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NLL 해법의 핵심이라고 본다. 그 답의 실마리는 앞선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남북기본합의서에 있다. "해상불가침구역은 해상불가침경계선이 획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는 조항에 따르면, 북한의 NLL 월선은 남한의 관할 구역을 침범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영해선이라고 하면 국제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북한이 '불법선'이라고 반격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공식적인 해상분계선이라고 하면 정전협정에도 없고 이후 정치군사회담에서도 합의된 적이 없기 때문에 북한이 '유령선'이라고 맞받아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남북기본합의서를 근거로 삼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잠정적 해상분계선'이라는 합의가 필요한 이유
앞의 글(☞ '화약고 NLL', 노태우는 해결책을 알고있다)에서 주장한 것처럼, 남북한이 기본합의서 정신을 살려 NLL이 '잠정적 해상분계선'이라는 구체적인 합의에 도달하면, 문제 해결에 획기적인 돌파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우선 남북한 사이의 군사적 긴장과 무력 충돌의 불씨인 북한의 NLL 월선 및 NLL 이남 수역으로의 사격 훈련을 방지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또한 '미완의 구상'으로 끝난 서해평화협력지대 창설에도 상당한 추진력이 생길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이를 계승·발전시킨다면 환상의 나비 효과도 만들어낼 수 있다.
국정원이 공개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꼼꼼히 읽어보면 노무현-김정일 두 정상은 서해평화협력지대 창설에는 공감대를 형성했으나, NLL에 대한 이견은 완전히 해소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NLL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평화협력지대로 덮자는 제안을 내놓았고, 김정일 전 위원장은 남북 양측이 서로 해상분계선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포기"하고 이 사이를 비무장 평화지대로 만들자고 했다. 안타깝게도 두 정상의 대화는 이 부분에서 끝나고 말았고, 구체적인 협의는 실무회담으로 넘겼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지난 2007년 10월 3일 오전 공식 회담에 앞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
그리고 정상회담 결과로 나온 10.4 선언에서는 "남과 북은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을 국방장관 회담을 통해 협의하기로 했다. 또한 "해주지역과 주변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그러나 11월에 열린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서도, 그 뒤에 열린 남북 장성급 회담에서도 서해평화협력지대의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는 공동어로 구역 지정 합의에 실패하고 말았다. 남측은 NLL을 기준선으로 등거리, 혹은 등면적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북측은 NLL 이남 수역에 지정해야 한다고 맞선 데에 따른 결과였다.
결국 NLL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남북한이 NLL의 성격에 대해 보다 명시적으로 합의할 필요가 있다.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을 살려 '잠정적인 해상분계선'이라는 합의가 유력한 방안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잠정적이라는 표현은 '새로운 해상분계선을 확정할 때까지 유효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NLL 해결로 '환상의 나비효과' 만들어야
제기되는 문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남남 합의의 문제이고 또 하나는 남북 합의의 문제이다. 먼저 남북 합의 가능성과 관련해 북한이 NLL에 '잠정적 해상분계선'이라는 지위를 부여하는 데 동의할 가능성은 있다. '잠정성'이라는 지위는 북한에도 일정 정도 명분을 세워줄 수 있다. 또한 김정은 체제도 서해평화협력지대 창설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고 경제발전을 최우선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협의의 여지는 충분히 있다.
오히려 남남 합의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 걱정이다. NLL이 극심한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해 있고 영토선으로 간주하는 국민들의 정서도 크다는 점에서 '잠정적인 해상분계선'이라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보수 정권인 박근혜 정부의 리더십이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국민 통합, 남북한 신뢰 구축, 국제 협력이라는 세 층위로 이뤄진 만큼, NLL을 둘러싼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은 '환상의 나비효과'를 만들어낼 수 유력한 방법이다. 남남갈등의 소재를 초당적 협력과 국민적 합의의 기반으로 전환하고, 남북한의 화약고를 평화와 공동 번영의 바다로 만들 수 있으며, 미국과 중국까지 가세한 패권 경쟁의 서해를 남북한과 중국을 연결하는 환서해 경제권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NLL 문제를 방치할 경우 평화협정 논의의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고, 평화협정 논의가 어려워지면 북핵 해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반면 NLL 해결의 진전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NLL을 잠정적 해상분계선으로 자리매김하고 이 토대 위에서 서해평화협력지대를 추진하면, 박근혜 정부의 핵심 목표 가운데 하나인 개성공단의 국제화 전략에도 탄력이 붙을 수 있다. 개성공단에 관심을 가질 만한 외국은 1차적으로는 중국이라고 할 수 있는데, NLL 문제 해결을 통한 서해의 안정화-개성공단 정상화 및 확대-해주와 개성 도로 보수-해주경제특구 개발-해주항 개방-해양생태공원 조성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면 서해 경제권에 속하는 중국으로서도 상당한 매력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남북한과 중국 사이의 물동량이 크게 늘어나면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한 서해 아라뱃길도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이러한 해법에 주목해 NLL 문제를 풀어낸다면 노무현 정부보다 큰 업적을 남길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노무현의 '부정'을 통한 접근이 아니라 '계승'을 통한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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