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구조조정은 청년 실업의 만연이라는 구조적 불의를 해결 못한 '정치의 실패'를 개별 대학과 학과 및 교수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전형적인 '꼼수 정치'의 산물로, 대학 학과 분포의 기형화와 대학의 시장화만 촉진했을 뿐, 우리 사회가 당면한 합리적 대학구조조정이라는 과제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정도의 방침만으로는 교육부의 현행 대학평가 및 대학구조조정 정책 자체가 지닌 근원적인 불의와 비합리성이 제대로 교정될 수 없을 것이라는 데 있다.
대학 구조조정은 필요하지만…
몇 년 후면 출산율 감소의 여파로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 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어 현재 기준 전국의 대학 정원이 많이 남아도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대로 가면 당연히 학생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는 대학과 학과가 넘쳐나게 된다. 많은 대학들이 아예 문을 닫는 등 엄청난 사회적 혼란이 생겨날 것이다. 이 혼란을 최소화하려면 예방적인 대학구조조정은 정말 불가피하다. 그리고 이 과정을 단순히 수요-공급이라는 '시장 논리'에 맡기지 않고 교육부가 개입해 합리적으로 조절해야 하는 것도 맞다.
따지고 보면 이런 상황은, 과거 김영삼 정부 시절 시행한 '대학설립준칙주의'라는 이상한 정책으로 무분별하게 대학 수의 증가를 앞장 서 조장하고 많은 사립대들의 비교육적 정원 확대를 대학 자율을 존중한다는 명분으로 눈감아왔던 과거 교육부의 정책이 만들어낸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부는 이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권위와 힘을 활용해 우리 사회의 대학 교육 체제를 미래지향적으로 제대로 정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교육부의 정책은 그런 방향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어 보인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여기에서만이라도 피해야 할 시장 논리를 오히려 교육부가 앞장 서 조장한다는 것이다. 향후 학령인구(學齡人口)가 급감해서 대학들이 정원을 제대로 채우지 못한다고 해서 모든 대학과 학과가 그 '쓰나미'의 공격을 골고루 나누어 받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거의 일직선적인 대학서열체제 때문에 그 체제의 하부에 있는 대학들과 전공들이 집중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주로 지방대학들일 것이고, 주로 취업에 유리하지 않다는 이유로 인기가 없는 인문이나 예체능 계열의 전공들일 것이다. 그런데 교육부의 구조조정 정책의 토대가 되는 대학평가는 바로 이런 시장 논리를 반영하는 정도를 넘어 더욱 더 강화된 적자생존 논리를 대학들에 강제해 왔다. 인문과 예체능 계열에 대한 취업률 지표를 뺀다고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 교육부의 근본적인 정책 기조 자체가 처음부터 방향을 잘못 잡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교육부는 미래 우리나라의 바람직한 대학교육체제의 모습을 그려낼 그 어떤 철학도 비전도 갖지 못한 채 그저 자신이 지른 발등의 불을 끄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만 보이고 있다. 그리하여 어쩌면 몇 년 후 우리나라에는 대학이라는 대학은 모두 '인(in) 서울' 대학이고 대학 안에는 경영학이나 공학 같은 실용 계열의 전공들만 남아 있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교육부의 정책에는 대학의 사명이 무엇인지, 대학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 대학교육이 길러내야 할 인재상은 어떠해야 하는지, 앞으로 다양한 학문들을 어떻게 발전시킬지, 사교육 광풍이나 입시 지옥 같은 교육 병리를 만들어 내는 대학서열체제의 결정적 영향을 어떻게 완화시킬지 같은 문제에 대해 최소한의 고민이라도 해 본 흔적이 없다. 선무당이 병을 고치려 나선다 해도 이보다 더 부도덕하고 무책임하지는 않을 듯싶다.
▲ 경남 창원대학교 산학협동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취업설명회 및 IT업계 동향 세미나'.대부분의 좌석이 텅텅 비어 지방대 학생들의 취업에 대한 좌절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연하뉴스 |
지역균형발전도 고려하는 대학 구조조정을
다른 문제는 제쳐 두더라도, 앞으로 구조 조정 과정에서 살아남을 대학이 수도권에만 집중될 때 생겨날 폐해는 정말 심각해 보인다. 단순히 내가 지금 격심한 혼란과 위기를 겪고 있는 지방대 교수라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사교육 광풍이나 입시 지옥 문제가 생겨난 것은 기본적으로 모든 학생이 어떻게든 대학서열체제의 상부에 있는 대학들로 진학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수도권에 위치한 대학들이다. 이렇게 지금도 대학의 수도권 집중 현상은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 현상 때문에 지역 사회에서는 유능한 젊은 인재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되고 지적이고 문화적인, 그리고 심지어는 경제적인 황폐함이 심화되고 있다는 사정도 결코 사소하게 여길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지금과 같은 식의 교육부 정책으로는 이런 폐해를 더 심화시키기만 할 것이라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의 교육부가 MB 정부의 '막가파' 식 대학 구조조정 정책의 이와 같은 패착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전면적인 정책 재검토에 나서야 한다.
조금만 발상을 달리 해 보면, 지금처럼 학령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해 전체 대학 정원이 남아도는 상황은 대학 입시 경쟁과 사교육 수요를 결정적으로 완화시키기 위한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학서열체제부터 깨야 한다. 어떻게 가능할까? 아마도 이를 위한 거의 유일한 방법은 '좋은' 대학의 수도권 집중을 막고 지역 대학들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일 게다. 만약 수도권을 넘어 전국 각 지역에 입학하기도 비교적 쉽고 양질의 교육 환경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취업 등에서도 크게 불리하지 않는 많은 좋은 대학들이 있다면, 과도한 입시 경쟁에 따른 사교육 광풍 같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교육 병리도 자연스럽게 치유될 기반이 마련되지 않겠는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우선 교육부는 불투명하고 왜곡된 시장 논리에 따라 형성된 기존의 대학서열체제를 그대로 확인해 영구히 봉인하기만 하려는 대학 구조조정 정책을 당장 폐기해야 한다. 구조 조정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올바른 원칙과 비전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너무도 당연하게도 진짜로 부실한 대학들은 더 빨리 그리고 더 원칙적으로 퇴출시켜야 하고 수많은 사학들의 비리와 족벌 왕국화 및 교육기업화 현상은 대학 공공성의 원칙에 따라 더 철저하게 막아야 한다. 나아가 수도권 대학들, 특히 사립대학들에는 교수확보율이나 합리적인 강좌 당 학생 수 같은 '교육의 질'이라는 잣대를 더 엄격하게 적용하여 정원 감소를 압박하고, 대학 교육의 공공적 의미를 잘 이해하고 실천하려는 각 지역의 대학들에는 재정 지원 제한이라는 채찍이 아니라 오히려 재정 지원 확대라는 당근으로 교육의 질을 혁신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도록 유도하는, '투 트랙(two track)' 정책을 펼쳐야 한다.
재원 마련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미 정부는 대학 등록금을 낮추라는 국민적 요구에 못 이겨 국가 장학금 제도를 확대하는 등 막대한 재원을 대학 교육을 위해 쓰고 있다. 이를 확대하겠다는 공약도 했다. 문제는 그 재원을 개별 부모와 학생에게 지원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올바르게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그런 재원을 대학에 직접 지원하여 고지서 상의 등록금을 낮추게 하면서도 그것을 대학 공공성 강화, 대학들의 지역 균형 발전 및 각 학문 분야 사이의 균형 발전,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학 교육의 질 향상을 함께 겨냥한 대학 구조 조정의 지렛대로 활용하면 된다.
대학 구조조정 정책을 좁은 의미의 교육 정책으로만 보는 근시안도 벗어나야 한다. 그것의 사회적이고 경제적이며 정치적인 함의를 제대로 인식해서 전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력이 함께 이루어지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지역 대학들을 육성하고 그 교육의 질을 높인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대학서열체제가 쉽게 깨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밖의 다른 조치들도 필요하다. 가령 지역 대학들의 등록금을 수도권 대학들에 비해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도록 지원한다거나 중앙정부 공무원은 물론 각 지역의 공무원이나 공기업 채용 과정에서 그리고 가능한 대로 대기업을 포함한 민간 기업의 채용 과정에서 '지역인재 할당제' 같은 적극적인 차별시정정책을 펼치는 등의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이런 노력들이 정착되고 성과를 내면 학생들은 비싼 사교육비와 생활비와 등록금을 들여 굳이 수도권 대학으로 몰려가지 않아도 될 것이고 사교육 열풍 같은 다른 많은 우리 사회의 교육 병리 현상들도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각 지역의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활성화도 뒤따를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노력들은 지방 정부를 포함한 범정부 차원에서 그리고 정치권 전체 차원에서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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