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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농장> 조지 오웰, 반공 아닌 반골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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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농장> 조지 오웰, 반공 아닌 반골 지식인!

[프레시안 books] 고세훈의 <조지 오웰>

"아버지와 같은 풍모를 지닌 웨이터와 떡갈나무로 만든 물병에 대해 나눈 대화가 기억난다. 그 식당에서는 구리를 감은 떡갈나무 병에 포도주를 담아왔다. 나는 그것을 하나 사서 영국에 가져가고 싶다고 말했다. 웨이터도 공감하는 눈치였다. 그래요, 아름답지요? 하지만 요즘에는 살 수가 없어요. 이제는 아무도 이런 것을 만들지 않거든요. 사실 아무것도 안 만들지요. 이 전쟁이란 게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우리는 전쟁이 안타까운 일이라는데 동의했다. 다시 나는 관광객이 된 느낌이었다. 웨이터는 나에게 다정하게 물었다. 스페인이 마음에 들었습니까? 다시 스페인에 오겠습니까? 아, 그럼요, 다시 오고말고요." (<카탈로니아 찬가> 中)

세상의 불행이 나의 것으로 온전히 스며드는 그런 날, 겁이 덜컥 나버려 한걸음도 앞으로 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날, 나는 <카탈로니아 찬가>의 이 구절을 조심스레 떠올린다. 스페인 내전의 혹독함 속에서 부상을 당하고 바르셀로나로 이송되고 나서, 조지 오웰은 친절한 웨이터에게 진심으로 대답한다. "그럼요, 다시 오고말고요."

그리고 이 아름다운 휴식의 시공간 다음은 비극적인 당파 투쟁으로 인한 숙청과 내전 안의 내전 그리고 지옥 같은 탈출이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지 오웰은 그 지난한 날의 기억을 최대한 목소리를 가늘고 얇게 만들어 문장으로 완성한다. "그럼요, 다시 오고말고요."

그럴 수 있을까? 나는 내 심장의 요동에 귀 기울이며 동시에 세상의 숨소리를 섬세하게 기억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나는 바로 지금 2012년 당대의 풍경을 나의 소리를 담아 손으로 그려낼 수 있을 텐데.

우리에겐 반공 국가의 틀 안에서 소비에트 집단 농장을 비난한 우화 작가로 잘못 알려진 조지 오웰. 아마 <동물 농장>처럼 난해한 상징을 가지고 있고, 제2차 세계 대전을 중심으로 그 전과 후의 세계사에 대한 숙지 없이는 제대로 이해되지 못할 어려운 소설이 초등학생에게 반공 동화처럼 읽혀진 경우는 세계 어디를 찾아 봐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격동의 20세기를 가장 정치적인 문장으로 완성시킨 거장의 문학을 탐닉할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조지 오웰의 초기작인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신창용 옮김, 삼우반 펴냄)과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 펴냄)이 출간이 되며 그의 문학적 성취의 언덕길을 우리가 훔쳐볼 수 있게 되면서 그에 대한 평가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탈린주의로 대변되는 전체주의에 대한 혐오의 시작이 인민에게 어떻게 복무하는 것이 예술적인가를 고민했던 지점에서 출발된 그의 완성 태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그는 아직도 우리에게 미지의 작가일지 모르겠다.

▲ <조지 오웰 : 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고세훈 지음, 한길사 펴냄). ⓒ한길사
그래서 고세훈의 조지 오웰 평전 <조지 오웰 : 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한길사 펴냄)는 문학에 대한 고찰은 물론이고 부제가 "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라는 것도 중요하게 느껴진다. 즉, 조지 오웰의 문학적 발자취와 함께 20세기 초 그 격동의 시기를 관통하며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완성하고자 했던 그의 사상적 배경을 동시에 공유하면서 우리는 바로 지금 이곳에서의 창작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작가들에 관한 평전 읽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최고의 평전이라고 칭송받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안인희 옮김, 푸른숲 펴냄)과 같은 작가들에 관한 평전은 그의 문학의 숨겨진 씨줄과 날줄을 한 올 한 올 앞과 뒤에서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고세훈의 이 책 역시 그러하다. 그는 자신의 책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조지 오웰이 직접 쓴 1차 자료를 뼈대로 하여 그의 삶과 글쓰기 그리고 이 둘 모두에서 드러난 그의 사상의 자취와 맥락을 조용히 추적하고, 글쓰기를 포함한 오웰의 삶의 행적이 권력의 속성에 대한 폭로와 경고 그리고 권력자에 대한 저항의 기록이라면 이 책 역시 스스로 권력자이며 권력을 탐하고 추종하는 지식인들에 대한, 오웰의 눈과 입을 빌을 빌린, 하나의 긴 보고서일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들었던 나의 생각 또한 같았다. 겉으로 표현되어지는 몇몇의 구절 혹은 몇 분간의 말을 들었을 뿐임에도 '당신은 ―주의자이군요'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고 써버리는 이 이념 과잉의 땅에서 조지 오웰의 사상적 문학적 과정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마저 주는 듯하다. 그는 열심히 가난한 사람과 함께 호흡하고 그 호흡의 결을 잡는 마음으로 문장으로 변환시키며 시대의 거대 담론과 각을 세웠다.

하위 상층 중간 계급의 한 지식인이 가난한 자들에 대한 깊은 인식과 함께 세계와 연대하며 실천하였고 그리고 파시즘의 태동을 목도하며 그에 대한 경고와 증오로 풍부해진 문학을 완성한 이야기야말로, 바로 지금! 섬세한 논쟁이 아닌 거대 담론의 양쪽에서 무언가를 선택해야만 하고, 전체주의적인 원시적 세계관이 아직도 세상의 대안인 듯 확성기로 떠드는 무리들을 목도해야 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교과서는 아닐까? 그래서 고세훈의 책의 제목은 "조지 오웰 평전"이 아니라 "조지 오웰 : 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전체주의는 문학을 죽임으로써 문화 또한 불가능하게 만든다. 오웰에 따르면, 문화는 '통제된 성장'이다. 식물이 제멋대로 자랄 때, 사람들은 '자연'이라 부르고 땅이 개간되고 묘목들이 일렬로 심어질 때 '경작'되었다고 말한다. 성숙된 문화는 진공이 아니라 앞선 세대가 남긴 예술과 지혜의 토양 위에서 비로소 경작된다. 예술 작가는 한 사람의 작가로서 늘 자유주의자여야 하고 자유주의는 개인의 신성성에 서 있지만 전체주의는 개인의 존재를 위협함으로써 문학을 위협하고 문학을 위협함으로써 문화를 위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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