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매우 안이하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관계자는 "특별히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 "위해도는 거의 없다"며 주민들을 안심시키기에 급급했다. 11월 2일 정오경에 현장에 도착한 KINS 방재환경부의 한 선임연구원은 미리 대기하던 취재진에게 조사 과정을 간단하게 설명하며 "방사선량으로 보면 미미하기 때문에 주민을 소개하거나 통제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의 이런 발언은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당시 방사능 수치를 측정하던 연구원의 복장을 보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때 발전소 내부로 들어가던 방재 요원의 복장과는 달리 방사선 피폭을 막을 수 없는 지극히 평범했다. 다시 말해 순간 피폭이나 단기 피폭이 문제가 될 정도의 수치는 아니었다고 전문가로서 판단했던 것이다. 주민들을 대피시킬 정도였다면 방사성에 대해 잘 아는 이들 연구원들의 복장부터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정도의 수치가 주민들의 건강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닐 터이다.
원자력안전기술원 방사성 전문가들은 위해 물질, 특히 일반인이 극도로 위험을 느끼는 특성을 지닌 방사성 물질과 관련한 위해성 평가와 위해성 소통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전혀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아마 전문적인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받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도로 위에서 하루 1시간 정도 있었을 경우 연간 피폭 허용 기준치의 절반(0.5밀리시버트) 밖에 되지 않는 방사선에 노출되기 때문에 안심해도 된다고 위해성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엿볼 수 있었다.
누가 할일 없이 도로 위에서 하루 1시간씩 서있겠는가. 사례나 가정 자체가 부적절했다. 이보다는 인근 주택가에서 하루 8시간 이상 또는 24시간 생활하는 주민들의 위해성 여부와 위해 정도에 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방사능의 세기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해 줄어든다"는 말로 주민들과 위해도 소통을 할 것이 아니라 도로 위에서 방사능 수치를 측정하는 것과 함께 동시에 가장 가까운 주택가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이 어느 정도의 방사능에 노출되는 수준인지를 계산해 말해주어야 한다.
만약 방사선이 나오는 아스팔트가 10년 전에 시공돼 도로 옆 주민들이 하루 24시간씩 10년 동안 줄곧 노출됐다면 어느 정도의 방사선에 피폭될 수 있는지, 지금 이 정도의 수치가 나온다면 1년 전, 5년 전, 10년 전에 노출됐을 방사능 수치는 어느 정도인지를 모의 분석해 이를 바탕으로 주민들에게 위해성 여부와 위해성 정도를 설명해주어야만 한다. 이는 쉽게, 신속하게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왜 그런데 이런 중요하고, 주민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일을 정부는 하지 않는 것일까?
만약 정말로 주민들이 전혀 걱정할 만한 방사성 수치가 아니라면 민간 전문가들이 이를 충분히 이해할 터이고 그렇다면 이들은 혹 시민 단체나 주민들이 필요 이상의 과민 반응을 보인다 할지라도 이를 설명하고 설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주민들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방사성 물질이 다량 나온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불안에 떨게 마련이다. 지금껏 전혀 경험하지 못한, 그 어느 누구도, 또 살아오면서 학교에서 이런 식으로 방사선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우지 않았고 매스컴이나 그 어디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더구나 이번 사건도 전문가나 정부나 연구 기관이 아닌 후쿠시마 핵발전소 대참사 이후 방사능 문제에 매우 민감한 한 시민이 개인적으로 방사선 측정 장치를 구입해 이곳저곳을 다니면 방사능 오염 여부를 측정하다 우연히 발견해 불거진 것이다.
10월 31일 민간 단체인 '차일드 세이브'의 한 회원이 방사선 측정기를 가지고 이동하던 중 이 지역 지표면에서 시간당 2.5마이크로시버트(시버트(sV)는 인체가 방사선을 받았을 때 영향을 나타내는 단위로 일반인의 연간 선량한도는 1밀리시버트다. 이를 시간당 허용 수치로 계산하면, 0.11마이크로시버트라는 기준치가 나온다)의 방사선량을 확인한 후 이를 제보한 것이다.
일반 시민의 이런 행동은 지금껏 볼 수 없었던 것으로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그 배경에 깔려 있다. 정부가 할 일을 방기하고 있기 때문에 자녀의 건강을 염려한 아버지가 직접 나서 발로 뛰어 이런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주민들로서는 세금을 냈는데도 아무 일을 하지 않은 정부보다는 주변에 방사성 물질이 있다는 사실을 돈 받지 않고 알려준 그에 대해 신뢰를 더 가질 수 있다.
ⓒ뉴시스 |
이번 사건은 다행히 방사능 오염의 원인(아스팔트)을 바로 찾아내 이를 재빨리 제거함으로써 그 충격은 확산되지 않고 조기에 수습하는 국면으로 흐르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아스팔트를 걷어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왜 아스팔트가 다량의 방사성 물질에 오염됐는가를 밝혀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곳이 더는 없는지, 또 어떤 경우에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면밀히 조사해 이런 사건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고 당장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우주방사선이나 건축 자재, 토양, 암반 등에서 자연적으로 나오는 라돈과 같은 자연 방사선뿐만 아니라 의료용 또는 산업용으로 쓰이는 다양한 인공 방사성 물질에서 나오는 방사선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비파괴검사나 연구실에서 실험용으로 쓰이는 방사성 동위원소, 엑스선이나 컴퓨터단층촬영장치(CT)와 같은 핵의학 진단 장치와 암 치료용 방사성 물질 등 우리 주변에는 방사성 물질이 넘쳐나고 있다.
이러한 인공 방사성 물질을 정부나 연구기관, 병원, 민간 회사 등이 얼마나 안전하게 사용하고 관리하며 폐기 처분하는지 알 수 없다. 인공 방사성 물질인 세슘137이 검출된 이번 사건은 한마디로 이런 곳에서 방사성 물질이 안전하게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대참사로 악몽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일본에서도 지난 10월 중순 도쿄의 주택가에서 고 방사성 물질이 검출돼 처음에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때문이 아니냐는 불안감에 떨었으나 긴급 조사 결과 부근 주택의 마루 밑에 있던 방사성 라듐이 담긴 병이 그 원인으로 밝혀진 사건이 있었다.
10월 13일 한 개인 주택의 마루 밑에서 방사성 라듐이 담긴 높이 약 7∼8센티미터, 폭 5∼6센티미터의 낡은 병 3∼4개를 발견했는데 이는 직전 세타가야 구의 조사에서 서울 노원구 월계동 도로에서 측정된 방사능 농도와 엇비슷한 시간당 2.707마이크로시버트의 고방사능이 검출돼 '핫 스팟(주변보다 방사능 수치가 높은 지점)' 논란을 일으킨 도로 부근에 있었다.
주택 마루 밑에서 심하게 썩고 흙이 묻은 나무 상자를 발견했고 안에는 라듐이 담긴 병이 들어 있었다. 병 안의 방사선량은 측정기 검출 한도(시간당 30마이크로시버트)를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방사성 물질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선진국에서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에 소개하는 것은 멕시코와 미국에서 실제 있었던 방사성 물질 오염 사고로 정말 예기치 못했던 곳에서부터 방사능 문제가 터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1984년 미국에서는 레스토랑의 철제 의자와 테이블이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정말 희한한 사건이 벌어졌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1977년 멕시코 유아라스의 한 병원에서 암 치료용으로 방사성 동위 원소인 코발트60을 미국에서 구입했다. 이 병원에는 방사성 물질을 다룰 수 있는 전문가가 없었다. 그래서 6100개의 코발트60 펠릿을 넣은 캡슐은 병원 창고에 들어가 버렸다. 방사능의 총량은 400퀴리였다.
펠릿 한 알이 갖고 있는 방사선 피폭량은 약 5센티미터 떨어진 곳에서 시간당 25라드(흉부 엑스선 촬영 때 받는 방사선량의 약 1000배)였다. 발암성 등 장기적 영향은 별도로 하더라도 사람이 시간 당 100라드의 방사선을 쬐면 백혈구의 감소, 염색체의 파괴가 일어나고 시간당 450라드를 전신에 쬐게 되면 50퍼센트는 즉사한다고 알려져 있다.
1983년 11월 이 병원에 근무하는 전기 기사 빈센테 소텔로와 그 동료는 상사의 명령으로 코발트60 캡슐을 창고에서 꺼냈다. 그들은 캡슐을 트럭 짐받이에 싣고 짐받이 위에서 캡슐을 찢어 은색의 코발트60 펠릿을 꺼냈다. 그들은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고 그것들을 폐품 수집 업자의 쓰레기 처분장으로 가지고 가서 9달러에 팔아치웠다.
쓰레기 처분장으로 급히 가는 도중 트럭 짐받이에서 몇 개의 펠릿이 길바닥에 떨어졌다. 쓰레기 처분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트럭 짐받이 여기저기에 수백 개의 펠릿을 남겨둔 채로 그들은 혼잡한 거리에 트럭을 멈추고 8주간이나 방치했다.
그런데 폐품 수집 업자에게 넘겨진 수천 개의 코발트 60펠릿 중 극히 일부는 땅 속에 묻히거나 어딘가에 섞여 들어가 행방불명이 됐지만 대부분은 다른 고철과 함께 제철 공장에 보내졌다.
300퀴리의 방사성 코발트가 2개의 공장에서 처리돼 철강 제품에 들어갔다. 한 공장에서는 방사성 물질로 오염된 철로 테이블과 의자의 다리를 만들었다. 이렇게 제조된 의자와 테이블은 멕시코뿐만 아니라 미국에까지 수출됐다. 다른 한 공장에서는 이 철을 사용해 5000톤의 건축 자재를 만들었고 이것 또한 멕시코 국내 수요뿐만 아니라 일부는 미국으로 수출됐다. 약 600톤의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제철품이 미국으로 수출됐다.
미국 정부와 멕시코 정부는 협력해 오염된 모든 테이블 유를 회수했으며 오염된 철제를 사용해 건축된 건물들을 부수고 자재를 회수했다. 멕시코 정부는 전기 기사의 트럭을 격리하고 미국한테서 방사성 물질 탐사용 헬리콥터를 빌려 쓰레기 처리장, 고속도로를 철저히 탐색해 코발트60 펠릿을 회수했다.
이렇게 해 사고는 일단락됐지만 10명이 고 방사선에 노출돼 중상을 입었고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됐다. 방사성 물질에 대한 무지와 부주의, 그리고 철저하지 못한 안전 관리가 엄청난 손실과 인명 피해까지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물론 정부나 일부 핵전문가는 미국과 멕시코에서 벌어진 이런 사례는 오래 전의 일이고 국내에서는 이와 같은 사건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방사성 물질을 다루는 국내 실태를 보면 제2의 서울 주택가 고 방사성 물질 검출 사건이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하겠다.
방사성 물질은 다루는 산업 현장, 특히 비파괴검사를 하는 업체에서는 툭하면 노동자들이 방사성 물질이 담긴 비파괴검사기를 아무데나 방치하는가 하면 어떤 경우에는 자신들의 부주의나 무지로 고 방사선에 노출돼 암에 걸려 숨지거나 고 피폭으로 중상을 입고 있다.
현대중공업으로부터 비파괴검사를 의뢰받은 하청 업체에서 최근 2년간 노동자 3명이 백혈병과 골수이형성증후군 발병으로 산재 승인을 받았고 1명 또한 추가로 혈액 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는 사실이 올해 국정 감사에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또 지난 2004년 연간 방사선 피폭량이 20밀리시버트 이상인 56명 중 48명이 비파괴 업체 종사자인 것으로 정부 조사에서 드러나 비파괴 업체 노동자의 피폭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들은 대개 안전 교육 따위를 제대로 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자신의 안전 문제도 소홀히 할 정도이면 사용하다 남은 방사성 물질을 법 규정에 따라 완벽하게 안전 처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이번 기회에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모든 방사성 물질에 대해 수입, 생산, 유통, 사용, 폐기 등 모든 단계에서 적절한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긴급 점검할 필요가 있겠다.
서울 노원구 주택가 방사능 피폭 문제가 불거지자 신임 박원순 서울 시장은 "인근 주민들에 대해 주민들의 불안 해소 차원에서라도 역학 조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아스팔트 때문에 설혹 주민들이 상당한 양의 방사선이나 방사성 물질에 피폭됐다 하더라도 그리고 이 때문에 건강에 악영향이 있었다 하더라도 역학 조사로 그 인과 관계를 확실히 밝혀내기란 매우 어렵다. 주민들이 지닌 건강 문제는 방사선이라는 단 하나의 요인이 아닌 대기오염, 실내 오염, 유해 화학 물질 노출, 음식물, 운동 부족, 유전 등 여러 복합 요인에 의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역학 조사가 주민들의 심리적 건강에는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이런 역학 조사에 들어가는 비용도 따지고 보면 국민이 낸 세금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이런 일에 세금을 들이지 않으려면 애초부터 방사능 아스팔트와 같은 문제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위험을 사전 예방하지 못하면 결국에는 건강도 잃고 돈도 잃고 갈등만 키우며 심지어는 다른 생산적인 활동을 하거나 여가를 즐겨야 할 시민들까지 방사능 감시 활동을 하도록 부추긴다는 사실을 이번 서울 주택가 방사능 검출 사건은 우리에게 교훈으로 남겼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