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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부산에 이런 문화유산이 숨어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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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부산에 이런 문화유산이 숨어 있다니!

[도시 주인 선언·28] 도시를 만드는 사람들 ①

이대로! 살고 싶다

한때 개발 광풍이 불면서 사람들은 한 곳에 오래 머물며 사는 '정주'를 우습게 여기게 되었다. 마치 휴지를 사 쓰고 버리고 새로 사듯이, 집도 사서 몇 해 살다가 팔아 버리고 또 다른 데를 사서 이사를 한다. 운이 좋아 시세차익을 얻으면 목돈이 되는데, 무엇하러 한곳에 사는가? 하는 식이다.

심지어 정주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쓸데없이 고지식하거나, 너무 가난해서 이사를 못가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정작 개발 회사들은 이리저리 돈만 주면 쉽게 옮겨 다니는 사람들 행태를 이용해서 개발을 한다. 그러다가 수많은 주민에게 개발이 되니 안 되니 하면서 몇 년 동안 한숨만 쉬게 하고, 사업을 중단하는 경우도 많다.

여러 경우가 있겠으나, 사진에 나오는 분들은 이런 개발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경험을 해 보셨다. 이분들은 어느 정도 자신들의 문제가 해결되었음에도, 고생을 많이 하셨는지 당시에 썼던 구호를 아직도 그대로 놔두고 있다. '이대로! 살고 싶다'

ⓒ유한짐

일일이 확인한 적은 없지만, 내 경우 한 곳에서 몇 년씩 살다보면, 동네에 잔정이 들어서 쉽게 떠날 생각을 하지 못 한다. 이웃이나 친구들은 물론이고 그 몇 년간 지나다닌 골목들, 시장, 동사무소, 포장마차, 은행, 곳곳에 박힌 기억들 때문이라도 떠나기 아쉽다. 또 다른 곳에 가서 그런 기억을 새롭게 만든다고 생각하면 더 성가시다.

게다가, 내 상황이 어쩔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디를 가야하는지 누구를 만나야하는 건지 다 알고 있다면, 혹은 모르고 있더라도 이웃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얼마나 편한가. 인터넷 검색하다가 잘 못 찾는 경우에 비하면 훨씬 나은 것이다.

그림이 걸린 못은 어디서 왔으며, 싱크대 수세미는 누구한테 샀고, 걸레가 된 애기 옷은 어디서 산 것이며, 등이 나가면 등은 어디서 사야 하는지 알게 되는 것이다. 배가 아프면 어느 의사가 낫고, 이가 아프면 어디가, 새시는 어디가 잘하며, 열쇠는 어디서 만들어야 하는지…. 사람과 장소와 물건이 잔뿌리처럼 끊임없이 이어져서는 내가 사는 곳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런대로 살 만하다. 이렇게 이어지고 이어져서, 살림이 집 안에서만 풀리는 게 아니라, 골목, 시장에서도 풀린다. 이래저래 이렇게 저렇게 한 곳에 오래 머물다 보면 그 동네 전체를 다 이해하게 된다. 보통 이런 것은 지식이라고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네 시시콜콜한 지식들은 막상 이사를 새로 들어가게 되거나, 낯선 동네에 가면 이런 지식들이 절실하게 된다. 아무에게나 물어 보며 폐를 끼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중요한 일을 아무 데서나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이사를 처음 오면 떡이라도 나누며 말을 걸어 본 것 같다.

요즘은 뭐 인터넷으로 다 할 수 있어서 그런지 떡 돌리는 사람들은 드물다. 그러나 번지르르하게 만든 간판에 속아 엉뚱한 의사를 만나, 고생을 하고 나면 주변 이웃을 찾아 묻게 될 수밖에 없다. 이웃이 뭐 별거냐? 얼굴 알고, 어디 사는지 알고, 말 걸 만한 사람이면 이웃이지. 꼭 경조사에 다 따라다니고, 술친구까지 되어 몰려 다녀야 이웃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골목골목은 문화유산

이런 자잘한 지식뿐 아니라 한 동네에 오래도록 머물게 하는 즐거움이 있다. 맛 집도 훌륭한 즐거움이지만, 골목 자체가 재미나다. 집들만 보고 다녀도 재미난 것이 많다. 같은 건물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같다 손 치더라도 줄줄이 두서너 채나 비슷하지, 골목 전체가 같은 경우는 거의 없다.

높은 것, 낮은 것, 퍼진 것, 길쭉한 것. 희한한 것은 오장육부가 다 잘 돌아가서, 사람들이 살림살이를 수 있게 해 준다. 좁든, 넓든, 높든, 낮든 좌우지간에. 게다가 우리나라 골목에는 건물 사이 좁은 틈이 있다. 그곳도 음침한 데, 빨래가 널린 데, 물건이 쌓인 데, 화분을 놓은 데…셀 수 없는 다양함이 있다.

계단은 더 재미나다. 승강기처럼 수직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서, 대각으로 건물을 휘젓는다. 올라가는 방법부터, 재료며, 진귀한 것들이 무척 많다. 쭈욱 시원하게 올라가는 것이 있고, 한번 돌아가는 것, 두 번 돌아가는 것, 빙 둘러 둘러 올라가는 것, 반쯤 올라가다 방향을 틀어서는 다시 또 쭈욱 오르는 것도 있다. 비가 들이 치지 말라고 새시를 붙인 것, 다 뚫려 있는 것, 플라스틱으로 막은 것, 유리로 막은 것…사람이 다니기엔 아슬아슬한 것도 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 계단으로 오르내리며 산다. 각자 형편에 맞게 상황에 맞게 경우에 맞게 성격에 맞게 스스로 만들어 산다.

현관문을 봐도 그렇다 튀어 나온 것, 들어가 있는 것, 나무로 된 것, 쇠로 된 것, 번들거리는 것, 검은 것, 파란 것…주차장도 재미나다, 2중 주차, 3중 주차, 가로로 겹쳐 주차하는 곳, 입구에 큰 문을 달아 깔끔하게 만든 곳, 주차장에서 살림을 하는 곳, 장사를 하는 곳, 1년 내내 같은 차가 움직이지도 않는 곳. 주차장에서 빨래도 말리고, 고추도, 무도 말린다. 아이들은 골목에서도 놀고, 주차장에서도 놀고 집안에서도 논다. 활기차다.

▲ 부산시 사직동(왼쪽), 인천시 선린동(오른쪽). ⓒ유한짐

▲ 서울시 관악구 인헌동. ⓒ유한짐

▲ 서울시 관악구 인헌동. ⓒ유한짐

▲ 서울시 관악구 인헌동. ⓒ유한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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