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보통 사람 벼랑 끝으로 내모는 '권리금의 덫'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보통 사람 벼랑 끝으로 내모는 '권리금의 덫'

[도시 주인 선언·23] 모든 문제의 시작은 '권리금'!

최근 몇 년간 재개발 사업은 숱한 문제를 낳으면서, 도시 문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내가 지난 글에서 지적했듯이, 재개발 사업이 폭력으로 얼룩지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이전 상가 세입자의 권리금 문제이다. 특히 한국 토지 재산권의 구조는 재산권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고, '관리 처분 인가 계획'의 어디에도 권리금의 보상안이 없다는 점도 지적했었다. (☞관련 기사 : 피로 얼룩진 '비열한 거리'…뉴타운 다음은 압구정?)

이와 같은 문제가 지속적으로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풀리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권리금이 법과 제도의 밖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상가 세입자의 임차인은 일종의 자릿세의 명목으로 다음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요구한다. 봉천동의 한 아늑한 호프집에서 주인에게 권리금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호프집을 운영하는 모 씨(50대)는 상가를 임대하면서 3500만 원의 권리금을 지불했다. 원칙적으로 권리금은 동종의 업종에만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호프집을 운영하기 전에 그 공간은 당구장이었다. 당구장 단골을 만든 대가로 호프집을 개장하는 주인이 권리금 3500만 원을 지불해야만 했다.

폭력의 흔한 패턴(?)

만약 이 상가도 재개발된다면, 호프집 주인인 모 씨는 이전 당구장 주인에게 주었던 3500만 원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런 사람이 다수라면, 이들이 받지 못하는 권리금의 총액은 엄청난 액수가 될 것이다. 이 많은 돈은 국가가 승인하지 않은 방식으로 거래되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재개발 사업과 동시에 증발하게 된다.

그리고 으레 상가 세입자는 저항을 하고, 사업 시행자와 재개발 조합은 공사에 차질을 빚을까봐 이른바 경호원을 고용한다. 문제가 커지면, 전국철거민연합과 같은 단체에서 상가 세입자들을 지원하고, 국가는 이들을 불법 시위자로 낙인찍고 진압에 나선다. 용산 참사, 홍익대학교 앞 두리반, 명동의 마리 등으로 대표되는 이 시대 재개발에서 똑같이 나타난 패턴이다.

권리금과 관련해, 상가 세입자의 입장은 딱하지만, 이미 재개발할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들어갔으니 토지 소유자나 국가는 무죄라는 주장도 있다. 다시 말하면, 계약의 주체인 토지 소유주와 시행자 그리고 조합이 합의한 일에 대해서 상가 세입자는 어떠한 형태로든 권리금을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매번 권리금 투쟁이 발생하는 데도 상가 세입자의 권리금 투쟁이 적극적으로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은 대중의 내면에 "어차피 권리금은 못 받는 돈"이라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어깨들에 대한 국가의 침묵

나는 상가 세입자가 권리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상가 세입자의 권리금 문제가 지속적으로 불거지는 상황에서 왜 국가가 계속 침묵하느냐는 것이다.

특히 국가가 경호 업체 직원(?)의 폭력 행위를 눈감아 주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이론적으로 자유주의 국가의 기본 이념은 신체를 포함한 사람의 재산권을 보호해주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재산권 보호를 위해서 폭력은 오직 국가만이 독점하게 되어 있으며 사적 폭력은 허용되지 않는다. 재개발 시위 현장에서 찍은 동영상을 보면 어깨들(?)이 상대를 위협하는 데도 경찰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시위자들이 "왜 경찰이 보고만 있느냐"고 절규하는 장면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관련 영상 : 명동 마리 부상자 속출 "경찰 뭐하나")

경찰은 폭력 상황을 구경하러 온 관광객이 아니다. 상가 세입자와 직원들이 충돌하게 되면, 당연히 더 큰 폭력이 이어진다. 이른바 폭력의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런 충돌은 폭력 상황에 대한 국가의 묵인에 의해서 유도된 상황이기도 하다. 또 다른 의미에서, 상가 세입자는 직접적 이해 당사자인 재개발 조합이나 시행사와 만나지 못하고, 어깨들을 마주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폭력 상황은 "대리전"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폭력을 멈추게 할 폭력은 국가만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자유주의 국가의 기본 원리는 경찰의 침묵에 의해서 위협받고 있다.

▲ 용산 참사 등 도심 철거를 둘러싼 끊이지 않은 갈등의 핵심에 '권리금'이 있다. ⓒ뉴시스

끝나지 않을 폭력의 고리를 멈출 수는 없을까?

용역 업체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이른바 철거 업체의 정직원이거나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생이다. 비싼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대학생이 과감하게 철거 용역에 참가하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청년 실업난이 가속화되고, 등록금이 오르면서 경호 업체(?)에 지원하려는 청년도 늘어간다. 수많은 뉴타운, 재개발 지구에서 발생할 철거 문제들을 모두 해결하려면, 아직도 더 많은 용역 업체들이 생겨나야만 할 것이다. (☞관련 기사 : 용역 알바, "철거민 때릴 때 죄책감 들었다")

문제의 시작은 권리금이었다. 재개발 사업에서 토지 소유주는 조합을 통해서 시행사와 계약을 하고, 국가는 그것을 승인한다. 상가 세입자는 애초 계약 대상이 아니므로, 이들이 입을 권리금 손실에 대해서는 적어도 국가는 제도적으로 구제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구제 방안이 없는 손실을 입었으므로 권리금 투쟁은 자주 발생한다. 권리금 투쟁이 발생하면, 정체불명의 용역 업체 직원들이 나타나 폭력을 행사하고, 경찰은 침묵하기도 한다. 권리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태에서 계속 재개발이 진행된다면, 이러한 폭력의 악순환은 피할 수 없다.

물론 권리금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도시에 상존하는 폭력이 사라진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도시 재개발에서 끊임없이 불거져 나온 사적 폭력이 발생하는 가운데 국가의 침묵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도시 공간은 사람이 살 수 있는(can live) 부동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람이 살아야 하는(must live) 곳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도시가 살만한 공간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재개발과 관련한 도시의 폭력 문제를 시정하기 위한 방법은 비교적 명확해 보인다. 국가는 권리금 문제에 대한 제도적 해답을 내놓을 것, 그리고 경찰은 모든 종류의 사적 폭력 개입을 차단할 것.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