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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가면 '오세훈 없는 서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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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가면 '오세훈 없는 서울'이 보인다!

[도시 주인 선언·17] 도시를 직접 만들 권리

지잉, 끼익, 철컥, 쾅. 쇠 깎는 소리, 자르는 소리, 혹은 옮기는 소리가 거리를 가득 채우고, 엄청난 무게의 쇳덩어리를 실은 트럭이 좁은 길을 지나간다.

여기 정말 작업실이 있나요? 라고 누구나 물을 법한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풍경이다. 문래동에 작업실이 모여 있다는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아기자기한 혹은 기발한, 무언가 '예술적'인 풍경의 거리에 대한 상상이 배반당했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도시 용도 지역 상 준공업 지역인 문래동은 여전히 철재상과 철공소가 활동을 하고 있고, 일상적 거리의 지배적인 것들은 앞서 얘기한 철에 관련된 소리, 풍경 혹은 냄새들이다.

그렇다면, 작업실은 도대체 어디에 붙어 있는 걸까? 눈썰미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철공소 옆 한 구석에 치워놓은 철문에 그려진 그림에서, 드문드문 달려있는 작업실 간판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지 모르고, 부지런한 사람들은 건물 옥상에서 그리다 만 그림, 설치 작업 등을 찾을 수도 있다.

물론 벽에 그려진 그림이 전부는 아니다. 2000년 이후, 작업실이 드문드문 들어선 이래, 그리고 이후 작업실이 급격하게 증가한 이래, 문래동의 예술가들은 다양한 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해 왔다. 물레 아트 페스티벌, 오픈 스튜디오, 공공 미술 프로젝트,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 정책 토론회, 독립 영화 상영회, 물물 교환 장터 등 여러 가지 활동이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진행되면서, 문래동을 새로운 공간으로 조금씩 구성해 가고 있다.

요컨대, 문래동은 철공소와 예술이 공존하는 유래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철공-예술, 공동 활동 구역'인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가들은 이 동네에서 어떤 일을 했을까?

▲ 문래동 전경.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문래 예술 공단(창작촌)이 가져온 지역의 가장 큰 변화로는 문래동을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곳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2009년 말, 한 언론은 2010년 문화예술 분야에서 주목할 곳으로 문래 예술 공단을 첫째로 꼽았으며, 현재도 많은 기관들, 일반 방문객이 꾸준히 문래동을 찾고 있다.

문래동은 예술촌, 창작촌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예술적인 것들'은 찾아보기 어렵고, 철가루 냄새가 코를 자극하며, 쇠 깎는 소리가 귓전을 울리고, 무거운 짐을 실은 트럭이 산책을 방해하는 곳이다. 무엇이 이들을 문래동으로 이끄는 것일까?

▲ 철공소 종사자들은 가끔 간식으로 막걸리를 마시곤 한다. 막걸리와 간단한 안주들은 문래 창작촌 내의 현장 식당에서 배달된다.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문래 예술 공단은 창작실이 밀집한 지역이다. 창작실은 예술가가 자신의 작업을 하는 사적인 공간이다. 달리 말하면 문래 예술 공단의 외양은 (예술 작업을 하는) 개인 공간의 모임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이와 같이 특정 활동을 위한 공간들이 밀집하는 일은 그다지 특별한 것은 아니다.

가구 거리, 패션 타운, 약국 거리 등 우리는 이미 도시의 많은 군락지를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곳들은 특정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곳들이다. 우리는 그러한 상품들을 구입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곳을 방문한다. 반면 문래 예술 공단은 상품을 파는 곳이 아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곳에 무언가를 화폐와 교환하기 위해서 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문래 예술 공단이 (무언가를 팔지 않는) 사적 공간의 집합에 지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구태여 이곳을 찾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문래 예술 공단은 상품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사람들에게 혹은 이 지역에 제공하며, 만들어가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것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도 아니고, 개인적으로만 소비하는 것도 아닌 그 사이 어딘 가에 있는 무엇이다. 그런 것을 우리는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2008년 여름, 문래동의 사랑방이라 할 수 있는 '프로젝트 스페이스 LAB39(LAB39)'에 10명 남짓의 동네 예술가들이 모였다. 8월부터 진행할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 '개나리 봇짐'을 위한 사전 워크숍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개나리 봇짐은 영등포구 소재 지역아동센터와 문래동 예술가들이 지역 어린이/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약 5개월에 걸쳐 50여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된 이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가들의 작업 콘텐츠는 다양한 교육 콘텐츠로 전환되었다. 예술가 개인의 작업이 자신의 작업실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혹은 미술 시장과 연결되는 상품이 아니라, 교육 프로그램이란 형태로 지역에 스며들게 한 것이다.

▲ LAB39는 이것저것 하는 프로젝트 공간이다. LAB39에서 진행된 포럼 풍경.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이렇게 지역에 문화예술이라는 공통재를 생산하는 일은 교육 프로그램 이외에도, 오픈 스튜디오, 동네 영화관(주말의 독립 명화), 거리극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었다. 이런 프로그램에서 주목할 부분은 그것의 자율성, 흐름의 생성, 도시 구성력에 의한 공통재의 생산이다.

자율성은 프로그램을 생산한 주체들의 성격을 나타내는 지표이다. 문래 예술 공단의 모든 프로그램은 그 누구의 지시도, 제안도 없이 자발적으로 진행되었다. 이것은 아래로부터의 자율적 기획이란 점에서, 위에서 아래로 진행되는 공공 프로그램과는 맥을 달리한다. 공공 프로그램은 자율적 프로그램을 포섭하기 위한, 홈파기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2010년 2월, 문래 예술 공단 인근에 '문래 예술 공장'이 문을 열었다. 문래 예술 공장은 서울시의 "컬처노믹스 정책에 따른 도심 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된 '서울시 창작 공간' 중 하나이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컬처노믹스란 무엇일까? 2009년 10월, 역시 서울시 창작 공간 중 하나인 '금천 예술 공장' 개관 행사의 홍보판에는 "문화가 곧 돈이다"란 서울시의 캐치프레이즈 문구가 붙어있었다.

'돈=발전'이란 등식이 성립하는 이 사회에서 '문화=발전의 도구'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낯 뜨거운 이 문구는 서울시 창작 공간이 지향하는 바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그것은 지역의 자생적 문화를 도시 발전의 에너지로 포섭하려 한다. 이러한 위에서의 포섭에 문래 예술 공단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 문래동 철재 상가에서는 다양한 예술 행사들이 진행된다. '주말의 독립 명화' 상영회 풍경.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2010년 1월, LAB39는 문래 예술 공장이 지원하는 '아트 간판 제작' 사업 참여를 취소했다. 예술가 작업실에 간판을 다는 간판 프로젝트는 본래 2008년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한 프로그램이었다. 이것은 문래동을 찾는 방문객 혹은 이웃들이 작업실을 찾을 때 도움을 주고,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좀 더 드러내려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여기에는 2008년 서울시의회에서 준공업 지역(문래동 포함)에 대한 개발 제한을 완화하는 내용의 조례가 통과되자, 좀 더 예술가들의 존재를 알려 재개발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이렇게 예술가들의 논의를 통해 이야기되던 간판 만들기가 급물살을 타게 된 건, 문래 예술 공장이 사업에 대한 지원을 결정하면서부터이다. 하지만 문래 예술 공장은 사업에 대한 단순한 후원자가 아니라 '갑'과 '을'이 설정된 계약 형식을 요구하였고, 이에 반발한 LAB39는 사업 참여를 취소하였다.

영등포구는 또 일명 '문래 예술 창작촌'으로 불리는 문래3가 54번지, 58번지 일대에서 추진 중인 '예술 거리 조성 사업'을 올 연말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이 사업은 (…) 작업실마다 아트 간판을 설치하며…. (<서울신문> 2010년 10월 28일자)

위 인용문은 간판 제작에 관한 기사이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 발전'을 꿈꾸는 공공 기관의 개입은 예술가들의 자발적 프로그램을 도구화된 사업으로 만들고, 그 과정에서 예술가를 새로운 도시 구성력을 가진 주체가 아니라, 사업을 수행하는 '용역 업체'로 전락시킨다.

이는 도시에 대한 권리가 지역민들이 아니라 공공 기관에 있다는 것을, 공공 기관 스스로가 주지시키는 작업이며, 그것의 가장 큰 힘은 자본이다. 문래 예술 공장을 통한 서울시의 막대한 예산 투입은 자율적 예술 지대인 문래동에서 모든 걸 삼켜버리는 블랙홀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예술가들의 자율적 활동은 지속된다. 많은 문래동의 예술가들이 여전히 공공 기관과는 다른 자체 기획들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가장 큰 힘은 자율성 그 자체이다. 자율성은 스스로 생산하는 능동적 힘이다. 그들은 공공이 제시하는 형식을 따르기보다 스스로 창조한 질서의 평면에서 자유롭게 미끄러지는 힘이다.

이 힘에 대한 홈파기를 시도하던 공공과의 마찰은 예술가들의 자율성에서 비롯된 자연스런 결과물이며, 거꾸로 예술가들의 자율적 힘을 입증하고 있다. 또한 그로써 문래동은 젠트리피케이션과 함께 거대 화랑과 미술관을 무대로 하여 도시개발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종속되어 버린 '시각 중심주의적 예술'과는 다른 종류의 예술이 펼쳐지는 무대가 되고 있다.

▲ 오픈 스튜디오 모습, 사진작가 박지원 작업실에서는 관객들의 참여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둘째로 흐름의 생성은 예술가 주체들이 기획한 프로그램의 성격이다. 위에서 언급한 프로그램은 모두 지역과의 접속을 기초로 하고 있다. 개나리 봇짐의 사례는 문래 예술 공단이 단순한 사적 공간의 집합을 넘어서 도시의 일부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개나리 봇짐 이후, 극단 '몸꼴'은 자체적으로 지역 아동들을 만나기 위한 연극 교육을 기획했고, 몇몇 작가들은 영등포구의 후원으로 예술 학교 강사로 지역아동센터에서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영등포구에서 주최하는 영등포 아동 축제 '둘이 살짝 손잡고'는 지역의 사회복지 기관과 문래동 작가들의 연대와 참여로 매년 열린다. 이처럼 예술가들의 프로그램은 문래 예술 공단을 문래동 3가라는 행정구역으로 한계 지어진 물리적 구획을 넘어, 영등포구 혹은 서울이라는 도시 속의 흐름으로 확장시켰다. 이것이 바로 문래 예술 공단을 개인 작업실의 물리적 집합 형태로만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작업실이라는 사적 공간이 변화하는 모습이다.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 동네 영화관, 오픈 스튜디오를 통해 예술가 개인의 사적인 공간은 참가자들이 공유하는 공부방으로, 영화관으로, 전시장으로 전환되었다. 여러 프로그램이 지역에 문화예술이라는 공통재를 생산했다면, 작업실은 공통재가 유통되며, 다양한 마주침이 생성되는 공간으로 기능한 것이다. 그것은 문래 예술 공단이 도시의 흐름으로 작동할 때, 그 네트워크의 노드로 작동하면서, 사적 공간도 공공 공간도 아닌 그 자체로 '공통적인 것'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예술가들의 프로그램은 문래동에서 생겨나는 새로운 도시 구성력을 보여준다. 예전 철재 상가의 옥상은 떠나간 사무실에서 팽개친 쓰레기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그러한 쓰레기장으로서의 옥상은 건설 자본이 이야기하는, '개선되어야 하는 낙후한' 도시의 이미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2008년부터 LAB39가 시작한 '옥상 미술관 프로젝트'는 철재 상가 지역을 '발전된 도시'에서 배제되어야 하는 것으로 여기게 하는 철재 상가 건물의 낡고 오래된 옥상에서 시작했다. 그들은 문래동 내외부의 사람들을 불러들여, 옥상의 쓰레기로 조형물을 만들고, 파티를 열었다. 아무도 찾지 않던 옥상은 지금은 문래동 주말거리를 채우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 꼭 가야하는 장소가 되었다.

이처럼 옥상 미술관 프로젝트는 시간이 멈춘 듯한 낡은 공간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며, 상상의 단초를 제공하는 지역의 새로운 구성력으로 작동한다. 철재 상가 거리에서 옥상미술관을 찾아 옥상으로 올라온 사람들은 새로운 시야가 펼쳐진 그 곳에서 주변 건물의 공간적 외연과 높은 시점을 확인하며 건물이 가진 힘의 차이를 통해 드러나는 이질적 환경을 깨닫게 되면서도, 옥상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도시 구성력의 힘을 깨닫는다.

즉, 옥상에서의 새로운 배치는 공간의 기능 전환을 통해, 한 지역에 위치한 이질적 공간 배치에 새로운 리듬을 부여하는 구실로 작동하는 것이다. 요컨대 옥상 미술관 프로젝트는 새로운 도시의 구성이란 물리적 건조 환경의 교체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간에 대한 상상력을 제공하고, 자극하는 삶공간의 생산으로 가능함을 깨닫게 한다.

▲ LAB39가 주최한 옥상 미술관 프로젝트에 초대된 에스토니아 예술가 그룹 '논그라타(NON GRATA)'의 퍼포먼스 현장.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도시 구성의 힘은 문래동 내부에서 대안적 삶의 형식을 창조하는 형태로도 나타난다. '공용 공간'은 문래동 예술가 몇몇이 모여, 함께 사용할 공간 계획과 문래동 생활에서의 작은 실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공용 공간 준비의 주축이 된 사람들은 소모임, '문래동 읽기 : 그날(그날)'이다.

그날은 문래동에 대한 스터디를 하고 문래동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제안하고, 기획하며, 참여하는 멤버들의 반 이상은 문래동에서 작업과 함께 거주를 하는 예술가들이다. 그들은 주점이었던 공간을 청소하고, 재개발 지역에서 주워온 가구와 폐목재들을 재활용해 생활과 작업에 필요한 공간으로 재구성했다.

그리고 문래동에 꼭 필요한 공용 빨래방과 샤워실을 갖추었다. 공간이 완성된 이후, 생활과 작업을 함께 하는 문래동 작가들과 문래동을 방문한 외국 작가들이 자주 이용했다. 그밖에도 문래동 회의와 독립 영화 상영회를 진행했고 작가들의 전시장으로 운영되었다. 사진전이 열리거나, 가끔 외부에서 활동하는 기획자나 예술가들이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공용 공간의 공간 운영과 관리는 예술가들이 직접하며, 누구나 필요에 따라 사용 가능하다. 이러한 공용 공간은 개인 작업실을 넘어선 '다른 공간'에 대한 고민의 시작이며, 이러한 시도들은 문래동에 새로운 공간 생성의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 함께 살기위해 필요한 것들을 문래동 예술가들이 십시일반 만들었던 지하 '공용 공간'. 샤워장, 빨래방을 겸용한 전시장, 공연장의 다목적 공간이다.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작업실이 된 철공소', '세현정밀'도 이와 비슷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세현정밀은 철재상가 옆 블록의 소규모 철공소 밀집 지역에 있는 평범한 철공소였다. 어느 날 주위의 비어있던 공간에 철공소가 아닌 작업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단층 건물로 구성된 거리, 개방된 공간 구조는 그들을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만들었다. 여기엔 세현정밀 사장님-이라고는 하지만, 혼자 운영하는 철공소-의 '마당발'도 한몫했다.

그들은 골목 주변에 쌓여있던 쓰레기더미를 함께 치우고, 꽃밭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형성된 관계들은 예술가가 작업에 필요한 기술을 철공소 노동자에게 배우고, 철공소의 부족한 일손을 예술가가 지원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이 과정 속에서 세현정밀은 자연스럽게 예술가들이 필요한 장비를 사용하기 위해, 혹은 용접과 같은 기술을 배우기 위해 가는 작업실이 되었다. 생산물의 형태는 다르지만, 노동자와 예술가는 무언가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이러한 공통점을 기반으로 한 그들의 만남은 세현정밀을 그들의 작업에 공통적으로 필요한 장비를, 정보를 공유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공용 공간과 작업실이 된 철공소, 세현정밀은 문래동 예술가 스스로가 삶의 형식을 구성해가는 사례이다. 그들은 일상적 삶에 있어서 공통적으로 필요하지만 부족한 것들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통해서 해결하고자 했다. 이는 문래동 예술가들이 뿔뿔이 흩어진 개인들이 아니라 '공통적인 것의 생산'이라는 연합의 기획을 꾸려나가는 주체들임을 보여준다. 이 과정 속에서 그들은 버려진 공간을 '쓸모 있는 공간'으로, 공간과 사람의 관계를 '소유'가 아닌 '필요'로 바꾸었다.

이상의 특징들, 자율성, 흐름의 생성, 도시 구성력은 모두 문래 예술 공단의 성격을 규정짓는 단어들이다. 예술가들의 자율적 움직임은 이를 도시 발전의 에너지로 도구화하려하는 위에서의 포섭을 탈주하면서, 문래동 내외부의 다양한 마주침을 생성시켰고, 문래동 내에서는 대안적 형식의 삶을 창조하는 도시 구성력으로 자리하고 있다.

▲ 철재상들이 영업을 하지 않는 일요일, 예술가들이 물물 장터 '썬데이 문래'를 열었다.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현대 도시는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다. 서울 역시 예외는 아니다. 자고 일어나면 저곳에 무엇이 있었는지도 모를 만큼 우리네 도시는 쉴 틈 없이 옷을 갈아입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거리에는 공사 가림막이 쳐지고, 또 어디를 재개발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럴 때마다 궁금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어릴 때 놀던 빈 터가 주차장으로 바뀌고, 골목길이 있던 동네가 통째로 아파트 단지로 바뀌는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누가 그것을 결정했는지 말이다.

이러한 도시의 변화 속에서 확인되는 한 가지는 도시의 많은 부분들이 '우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광장과 같이 도시의 대표적인 공공 공간으로 여겨지는 곳들 역시 도시 발전이라는 명제의 위엄 하에 특정한 성격의 공간으로 '기획'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문래동이 가지는 하나의 함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도시를 구성할 권리에 대한 것이다.

문래 예술 공단은 그것이 지닌 자율성, 그들이 생성해낸 흐름들, 그리고 도시 구성력을 통해, 단순한 사적 공간의 집합을 넘어 도시의 일부로 기능하며, 공통적인 것의 생산 방식을 스스로 발명해내었다. 그들 앞에 놓여진, 공간 환경의 특이성, 재개발을 앞둔 세입자라는 조건은 그들이 예술 그 자체보다는, 공간적 (예술) 실천에 뛰어들도록 만들었고, 이러한 주민으로서의 정체성, '계속 이 곳에 머무르고 싶다'는 사실은 이질적 개인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바탕이 되었다.

앙리 르페브르가 말한 것처럼, 삶을 바꾼다는 식의 말은 적합한 공간의 생산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무의미한 것이다.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곳, 그 동네를 작업하며, 새로운 삶의 형식들을 실험해 가는 것. 그리고 그 영감을 주변에 흩날리는 것. 그것이 바로 도시를 구성하는, 공간을 생산하는 일이 아닐까. 문래동은 바로 그러한 생산의 새로운 터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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