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에 의해 끊임없이 변모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이 만든 도시는 과연 사람을 위한 곳인가? 도시를 만드는데 기여한 사람은 정작 도시가 제공하는 편익을 제대로 누리고 있는가?
<프레시안>은 진보적 도시 연구 집단 한국공간환경학회와 공동으로 '도시 주인 선언' 기획 연재를 시작한다. 현재 시민 열 명 중 아홉 명이 도시에서 거주하고 있다. 도시에 거주하지 않는 나머지 시민도 도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다. 이 기획은 도시의 거주자와 이용자는 누구나 차별 없이 평등하게 "도시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우리에게 아직 생소한 개념인 "도시에 대한 권리"에는 도시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평등하게 누릴 권리, 도시 공공 공간에 대한 자유로운 이용권, 도시 행정에 대한 참여권 등 도시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권리들이 포함된다. 또 이 안에는 자유롭게 무선 인터넷에 접속할 권리 등 최근에 새로 포함되었거나 되어야 할 권리도 있다. 다른 나라의 도시에서는 시민들의 당연한 권리로 인정되고 있는데도, 아직 우리의 도시에서는 생소한 권리도 있다.
앞으로 매주 화, 금요일 두 차례씩 이어질 이번 기획 연재를 통하여, 지금 대한민국의 도시에서 도시의 주인이어야 할 시민들이 과연 적절한 수준의 권리를 누리고 있는지, 당연한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침해받거나 무시되는 권리는 없는지,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되는 사람들은 없는지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기획을 통해 우리의 도시에서 도시 거주자나 방문자가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양적으로, 질적으로 더 확장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프레시안 |
노점상 없는 거리를 생각할 수 있을까? 하긴 복원된 청계천이나 노점상을 이면 도로로 몰아넣은 종로구 등의 사례가 있긴 하다. 물만 흐르고 사람만 지나다니는 거리로 전락했지만 말이다.
올해 들어 노점상을 경악케 하는 일이 있었다. 2010년 10월, 국토해양부가 도로법 시행령에 과태료 기준을 마련하면서 기존 '1평방미터당 10만 원. 300만 원 상한'으로 적용되어온 서울시 등의 허가를 받지 않은 점용에 대한 과태료를 '1회당 150만 원'으로 개악한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점용 면적 기준 없이 일괄적으로 과태료를 부과하게 한 것, 지역별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것 등으로 대혼란이 일었고 노점상에게도 변경된 기준에 따라 과태료가 부과되었다. 노점상들이 거세게 항의하고 지방자치단체마다 혼란을 제기하자 국토해양부가 개정안을 내기에 이르렀다. 노점상 정책에 대한 전면 재검토의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노점상, 인도를 점유하다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나 담당 공무원, 전문가도 인정하듯이 장기적인 경기 침체와 일자리 부족으로 생계형 노점상이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제대로 된 일자리나 경험,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소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일 중 하나가 노점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도로 점용 허가를 받지 않고 인도, 도로, 해변 등 국공유지에서 상행위를 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되고 있다. 과태료가 부과되고 행정대집행(강제 철거)의 대상이 된다. 법과 현실의 괴리가 아닐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도 노점상을 마냥 불법이라며 어떠한 권리도 인정하지 않고 현실성 없는 전업, 취업 알선 대책만 반복할 뿐이었다.
도로 등 국공유지를 점유하여 생계를 꾸려나가려는 게 과연 불법이고 철저히 불허해야하는 것일까?
▲ 2007년 2월 서울시가 작성한 '노점상 관련 각계 입장'. ⓒ프레시안 |
법과 인권의 사각지대
단지 도로 점용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점상이 겪는 인권 침해가 많다. 물, 전기 등을 합법적으로 공급받을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가 국제 행사다 거리 미관이다, 개발이다 해서 휴업을 하게 하거나 아예 강제로 철거하기도 한다. 이를 이용하여 단속 무마 대가로, 전기·수도 이용 대가로 터무니없는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자리 임대, 매매 혹은 갈취를 하는 이들도 있다. 바로 법과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점상들이 겪고 있는 일들이다. 언제까지 이를 방관할 것인가?
▲ 서울시가 노점특별관리대책을 발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법 노점 근절 캠페인을 벌이자 지난 2007년 5월 25일 노점상들이 서울 시청 앞에서 항의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전국노점상총연합 |
합법화, 관리를 가장한 노점상 규제
노점상을 합법화한 사례가 없는 건 아니다. 이미 1980년대 후반, 조직화되고 있는 노점상들을 통제하기 위해 유화책으로 제시된 것이 풍물 시장, 가로 판매대 합법화다. 그리고 2007년에는 서울시 노점특별관리대책을 시작으로 일부 지역에서 기존 노점상 중 일부를 규격 노점이라고 하여 합법화해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합법화가 노점상의 도시 점유권,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중장기적으로 노점상 자체를 근절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 조성된 풍물 시장은 대부분 흉물로 전락하여 철거되었으며 가로 판매대 등 보도 상 영업 시설물도 조례를 통해 없애고 있다.
규격 노점 또한 길게는 5년까지만 재계약을 할 수 있으며 신 발생 노점상은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로변 대신 이면 도로 혹은 골목으로 규격 노점을 이주시키기도 했다. 과연 무엇을 위한 합법화인가?
노점상들. 도시에 대한 권리를 외치자
노원구를 비롯해서 지난 6월 지방 선거 이후 노점상에 대해 이렇다 할 입장을 내지 않고 있던 지방자치단체들이 본격적으로 노점을 정비하겠다고 밝히기 시작했다.
가령 김성환 노원구청장은 지난 3월 노원구 노점상들을 만난 자리에서 "실태 조사를 진행하겠다", "노원구 거주 노점상만 허락하겠다", "재산을 엄밀히 따져서 노점상을 정리하겠다"고 통보했다. 여러 논란이 일자 우선 노원구 실태 조사 계획은 미뤄지고 있지만 노원구청장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재산을 이유로 노점상을 규제하자는 발상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납득할 수 있는 재산 기준을 정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탈노점하기 어려운 노점상에게 억지로 전업, 취업을 하라고 강요하는 꼴이다. 해당 자치구 거주민만 장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도 1990년대 이후 다른 자치구까지 가서 노점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지금 현실에 맞지 않다.
실제로 지난 2005년 전국노점상총연합이 약 570명의 노점상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와 1998년 같은 단체에서 약 740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타 지역 거주 노점상이 절반을 넘어섰다. 노점을 그만두겠다는 비중이 1998년 34.8퍼센트에서 5.6퍼센트로 대폭 감소했다. 다른 방법이 없거나(42.8퍼센트), 다른 일을 하고 싶어도 자본과 기술이 부족해서(35.6퍼센트) 노점을 계속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 대부분이었다.
노점상에게도 도시에 대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신 발생 노점상까지 포함하여 현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노점 허가제를 철회하고 노점 등록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강구해볼 수 있다. 인사동의 대표 명물인 노점상을 골목으로 이주시키기보다 오히려 현 자리를 비롯해 노점이 가능한 곳을 지방자치단체가 적극 발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노점을 통해 일자리를 마련하고 창업에 성공하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자연 발생적인 노점상을 인위적으로 허가제 혹은 관리제로 규제할 것이 아니라 노점상의 순기능을 적극 고려하여 등록제로 전환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이뤄지고 있지 못하고 자칫 기존 정책과 마찬가지로 왜곡될 수도 있다. 하지만 권리의 측면에서 적극 생각해 볼 문제다. 노점상 대책 혹은 정책은 규제뿐이라는 발상에서 탈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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